장애인, 미디어, 교육

장애인, 미디어, 교육 | 2022 | 극 | 00:23:23 | 연출 장주희 | 기획 어깨너머 | 제작 어깨너머
시놉시스
미디어강사 성필은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영상제작기초‘ 수업을 시작한다. 성필은 차별 없는 미디어교육을 목표로 차근차근 수업을 이어가지만 무슨 이유인지 장애인 수강생들은 미디어수업에 불만을,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풀샷(Full Shot)은 왜 ’서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설명할까? 니샷(Knee shot)에 ’니‘는 뭘까? 아니 그런데 삼각대 다리는 왜 이렇게 얇지? 복잡한 촬영장비와 어려운 영상용어, 미디어 강사가 의도하지 않은 이 차별을 비장애인 미디어 강사와 장애인 수강생들은 어떻게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인권평
스크린 바깥으로 확장되는 투쟁의 결의 <장애인, 미디어, 교육>
- 하민지 (비마이너 기자, 옥바라지선교센터 운영위원장,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장애인인 권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란 무엇인가. 내로라하는 수많은 학자와 감독이 이 질문에 답해 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답은 “아무것도 아니다”이다. 지난해 9월 타계한 프랑스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가 한 말이다. 그는 1997년, 50돌을 맞은 칸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인터뷰 전문을 보면 조금 더 길게 대답했다.
“영화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영화는 무엇을 원하는가. 모든 걸 원한다. 영화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뭔가를 할 수 있다. 영화는 프랑스 혁명 당시 평민계급의 처지와 비슷하다. 평민계급과 영화 모두 사회 속에서 위치가 급속히 높아졌으나 자기 자리를 정확히 찾지 못했다. 정치적 힘이란 측면에서 특히 그렇다. 그러나 둘 다 앞으로 뭔가를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한겨레, 이성욱 기자, ‘누벨바그 선봉장 장 뤼크 고다르 감독 / ‘영화란 아무것도 아니다’’, 1997년 5월 12일)
답변 전체를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은 영화를 무시한 언사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영화는 뭐든 될 수 있다’는 뜻에 가깝다. 실제로 고다르 감독은 현대영화의 시초라 불릴 만큼 여러 혁신적 시도로 195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새로운 물결) 사조를 이끌었다. 1968년 5월 혁명 이후부터는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메시지를 영화에 담기 시작했다. 뭐든 될 수 있고, 뭔가 할 수 있는, ‘영화’로 이야기하기 위해 죽기 전까지 비디오 실험에 몰두했다.
장애인인권영화란 무엇인가. 올해 21돌을 맞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매해 장애인인권영화를 기다린다. 선정작을 심사할 때 중요하게 보는 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장애인인권에 관한 메시지가 혁명적인가. 둘째, 영화적 순간을 체험할 수 있는가.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작품은 드물다. 그러다 장주희 감독의 <장애인, 미디어, 교육>을 보게 됐고 심사평에 이렇게 썼다. “이 작품이 선정되지 않는다면 마로니에공원에서 무기한 농성을 하겠다.”
장애인인권영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이번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한 <장애인, 미디어, 교육>이라 답하겠다. 앞서 말한 두 가지가 모두 충족된 것은 물론이고, 컷과 컷이 부딪는 지점에서 메시지의 힘이 더욱 극대화된다. 영화적 순간이 현란한 기교로서만 기능하지 않는단 뜻이다. 관객을 몰입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장치들이 차별에 맞서 싸우는 장애인 당사자의 위력을 드러낼 용도로 사용됐다. 장애인 당사자가 배우로 등장해 연기하며, 카메라가 투쟁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던 것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장애인은 뭐든 될 수 있다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반딧불장애인야학. 미디어강사가 ‘영상제작기초’ 수업을 진행한다. 카메라 사용법과 종류를 설명하는데 용어가 너무 어렵다. DSLR, 캠코더, 감도, 노출, 셔터스피드 등. 삼각대 설치도 해보지만 잘 되지 않고, 설치된 삼각대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겐 너무 높다.
비장애인 중심 교육은 쇼트사이즈를 배울 때 정점을 찍는다. CLOSE UP, BUST, KNEE, FULL… 한 학생이 영어 말고 다른 걸로 써달라고 요청하자 강사는 칠판에 이렇게 적는다. “클로즈업, 바스트, 니샷, 풀샷… 됐죠?” 강사의 말을 들은 한 학생이 질문한다. “선생님, 풀삽이 뭐예요?” 강의 중간에 한 학생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옆 사람의 모습을 찍는다. 비장애인 중심 교육을 혼이라도 내듯 ‘찰칵’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강사는 학생이 한글공부하는 노트에 알파벳으로 쓰게 한다. “케이, 엔, 이, 이, KNEE, 니…” 학생은 강사에게 “저 당구 삼구 쳐요”라며 휴대전화 앨범을 보여준다. 휴대전화에는 학생이 찍은 나들이 사진과 영상이 가득하다. 강사가 말한다. “이게 풀샷이에요!” 학생이 대답한다. “풀삽이 뭐예요?”
비장애인 중심 사회는 장애인의 욕구와 필요를 고려하지 않는다. 교육 체계에서 배제돼 중년이 넘어서야 한글을 배운다. 손을 사용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는 아무리 좋은 카메라가 있어도 자신의 휴대전화 카메라만 못하다. 그러나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열등한 사람이 아니다. 풀샷이란 용어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자연 배경과 친구의 모습을 함께 찍을 땐 멀리서 찍어야 한다는 걸 안다.
풀삽인지 풀샷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장애인은 장애인의 방식과 속도로 이미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뭐든 할 수 있다. 장애인야학의 영상제작 수업 씬은 이 같은 메시지를 밝고 재밌게 그린다.
*장애인은 모든 걸 원한다
장애인야학 수업에서 그려진 비장애인 중심 사회는 교실 바깥으로 확장된다. 쉬는 시간, 휠체어를 이용하는 학생이 삼각대 위에 높게 매달린 카메라 렌즈를 쳐다본다. 로우앵글로 찍힌 렌즈는 노려보듯 그를 내려다본다. 그는 비슷한 카메라를 본 양 기억을 더듬는다. 기억은 지난해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투쟁 현장에 닿는다. 학생은 경찰의 채증카메라를 떠올린다. 학생의 얼굴에 채증카메라가 오버랩된다.
이후 등장하는 JTBC ‘썰전라이브’ 시청 씬은 이 작품의 백미다. 수업이 재미없었던 학생들은 강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스크린을 내리고 썰전라이브를 단체 관람한다. 지난해 4월 13일,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토론회 방영분이다. 강사가 들어와서 묻는다. “뭐 보세요?” 한 학생이 대답한다. “영화 보고 있어요.”
썰전라이브가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차별받는 장애인들이 함께 볼 땐 영화였다. 정확히는, 함께 보고 분노하면서 영화적 순간을 만들고 있었다.
장 뤽 고다르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자. 고다르의 말과 썰전라이브 시청 씬을 이렇게 연결해 보면 어떨까. 영화는 뭐든 될 수 있다. 썰전라이브를 함께 보며 함께 분노하는 장애인은 뭐든 될 수 있다. 영화는 모든 걸 원한다. 함께 분노하는 장애인은 모든 걸 원한다. 영화는 뭔가를 할 수 있다. 함께 분노하는 장애인은 뭔가를 할 수 있다. 즉, 썰전라이브 자체가 아니라 함께 시청하며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순간이 영화인 것이다. 그래서 영화 보고 있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썰전라이브 토론 장면과 지난해 420 투쟁 현장이 계속 교차편집 된다. 썰전라이브를 보며 시큰둥하거나 열 받는 표정을 지은 장애인의 얼굴은 420 투쟁 현장에서 경찰 방패에 둘러싸인 채 굳게 싸우는 얼굴로 이어진다. 썰전라이브를 보고 있는 야학학생 모두 투쟁 현장 속에도 있었던 것이다. 다큐멘터리 같은 실사와 극영화 속 연출된 썰전라이브 시청 씬이 왔다갔다 하면서 영화는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라는 이번 영화제 슬로건처럼, 영화 속 분노가 스크린 바깥으로 나아가며 관객은 놀라운 영화적 순간과 투쟁의 결의를 체험하게 된다.
썰전라이브 속 이 전 대표는 “이동권 시위를 왜 지하철에서 하느냐”, “이동권 시위가 아니라 탈시설 시위라고 해라” 등의 망언을 쏟아낸다. 장애인은 이동권도 원하고 탈시설도 원한다. 비장애인이 누리는 모든 걸 원하기 때문에 투쟁한다. 투쟁하는 장애인이 휴대전화 메모장에 천천히 쓴다. “이준석 나쁜 놈 샷.” 그는 이렇게 적고 재밌다는 듯 키득키득 웃는다.
*장애인의 카메라는 뭔가를 할 수 있다
강사가 썰전라이브 영상을 일시정지 하고 말한다. “영상용어는 약속이에요. 이게 바스트샷이에요.” 잘 보고 있던 ‘영화’를 끊자, 학생들이 항의한다. 어려워서 수업 못 듣겠다고 집에 가겠다고 한다. 장애인콜택시가 갑자기 빨리 잡혀서 어쩔 수 없이 일찍 간다는 사람도 있다. 손을 사용하기 어려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무릎 위 방석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말한다. “이게 니샷이에요. 무릎으로 찍는 샷, 니샷!”
영화는 이렇게 끝난다. 투쟁하는 장애인의 휴대전화 카메라, 무릎 위에 있는 ‘니샷’ 카메라는 무엇을 찍게 될까. 썰전라이브를 보고 함께 분노했으니 아마 투쟁현장의 풍경을 찍지 않을까. 이 전 대표는 투쟁현장에 오질 않으니 이준석 나쁜 놈 샷은 못 찍을 것 같다. 싸울 때 뜨거운 동지 샷, 폭력경찰 물러가라 샷, 혐오발언하는 시민 싫어 샷 같은 것이 카메라에 담길 것이다. 이 같은 추측이 가능한 것은 영화가 야학교실에서 투쟁현장으로 이야기를 매끄럽게 확장했기 때문이다.
‘장애인인권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표준이 될 작품
<장애인, 미디어, 교육>은 연출과 실사를 넘나들며 비장애인 중심 사회를 은유했고, 투쟁현장 한복판에서 투쟁하는 장애인의 면면을 오롯이 담았다. 영화 속 투쟁의 결의를 스크린 바깥까지 확장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영화적 순간을 나타낸 연출, 호흡이 빠르지만 잘 정돈된 교차편집 등 다양한 기법으로 혁명적인 메시지를 잘 살렸다. ‘장애인인권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표준이 될 작품이다. 이 같은 수작을 영화제에 모실 수 있어 영광이다. 이 작품의 인권평을 내가 쓰게 된 것도 영광이다.
제작진 소개
연출 | 장주희 | 기획 | 어깨너머 |
제작 | 어깨너머 | 각본 | 어깨너머 |
촬영 | 조아해, 부성필 | 편집 | 장주희 |
녹음 | 조아해, 부성필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