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개막작_소란을 부르는 기록


시설 밖, 나로 살기

시설 밖, 나로 살기 | 2024 | 37' | 다큐 | 추병진



 

시놉시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20년 동안 살아온 초현은 정해진 대로만 살아야 하는 시설을 떠나자립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시설 안팎에서 초현을 상처 입히는 말들이 계속되고, 이를피해 시설에서 도망치듯 나온 초현은 피플퍼스트 동료들의 지원으로 자립생활주택에서살게 된다. 자립생활이 쉽지만은 않지만, 시설 밖에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초현은 자신의 탈시설·자립 경험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얼마 후 초현과 동료들은떨리는마음을안고국회로향한다.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로서 국정감사에 출석한 초현은 어떤 이야기를 준비했을까.




인권평

- 이정한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영화의 오프닝은 '박초현은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누구인가'와 '어떤 사람인가'는 다르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그 사람의 이름, 장애 유무, 성별과 같은 ‘사회적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질문한다. ‘박초현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는 그 사람의 사회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보다는, 그 개인의 고유한 면을 찾는 질문이다. 그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사람의 내면을 찾는 질문인 셈이다.

 

### 1.

 

영화는 표창장 수여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는 고급스러운 행사장에서 정갈한 옷차림으로, 또박또박한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상을 받는다. 시설에서 받은 인정, 시설에서 받은 상. 초현이 그 상을 받고 향하는 곳은 다름아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열리는 마로니에 공원이다. 박초현은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한 대답이다. (그리고 그는 3.26전국장애인대회의 탈시설장애인상을 받았고, 시설에서 받은 ‘모범 장애인상’을 찢어 버렸다.)

 

초현은 7살에 시설에 들어가 26살까지 살았다. 스무 살 무렵부터 시설에서 나가고 싶어했지만, 체험홈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통제의 공간에서 머물러야 했다. 자립을 '체험'한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자립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그래서 그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단상에 올라 ‘올해 안에 자립하겠다’고 다짐한다.

 

그 다짐의 이유는 시설이 가한 반복적인 괴롭힘 때문이다. 시설은 자립하겠다는 초현에 대해 무람없이 다그치고, 결국 탈시설해 활동하는 데에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퇴소식을 한다면서도 그 일정은 모두 시설의 통제 속에 있다. 옆에서 지켜보며 긴 시간 그의 자립을 지지해 온 피플퍼스트 박경인 역시 초현이 당하는 그 괴롭힘을 절실히 목격한다.

 

이 '목격'은 개인 간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하나의 운동을 만들어내는 강한 기반으로 작동한다. 자기 집 소파를 내어 준 하은, 지친 초현을 살핀 정원, 장난스러운 말들 사이로 그를 위로하는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동료들… 그들의 목격, 그 목격 이후의 지지와 연대가 초현의 자립을 함께 만들어 갔다.

 

평범한 삶에 도달하기 위해선 수많은 '비범한' 연대가 필요햤다. 하지만 이것이 개인 간의 사적 관계로만 이뤄져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 방기로 귀결된다. 장애인을 시설에 가둘 때는 조력이나 지지 없이 결정이 내려지지만, 탈시설에는 공동체 전체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분리하고 배제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시설 밖 '나'로 살기 위해선 많은 '너'들이 필요했다.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의 가영, 대현, 바다, 태준, 하은, 정원, 기백, 찬빈, 지연… 모두가 그의 동료였다.

 

누군가는 이러한 연대에 대해 ‘도움받아야 하는 증거’라고 제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지겹도록 답하고 있다. 세상 누구도 도움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우리는 누구나 서로의 지원과 지지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지역사회’에 살겠다는 선언은 ‘나’로서 ‘너’를 지원하고, ‘너’의 연대로 ‘나’의 삶을 꾸려가겠다는 선언이다. 초현이 탈시설한 뒤 열렬한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그는 가장 확실한 자립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 2.

 

국정감사의 시간. 밥을 먹고, 하품하고, 하루 종일을 기다리고도 초현의 차례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종일을 기다리고서야 서미화 의원의 질문이 시작된다. 우리는 그의 국정감사 증언 영상을 수없이 봤지만, 다시 한번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동료들과 함께 손으로 입을 가리며 긴장감을 애써 참는다. 준비한 원고를 또박 읽어 가는 초현의 단호함은 내 떨림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가 겪었던 여러 위협과 어려움을 차분히 발언할 때, 우리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본다. 몇날 며칠을 컴퓨터 앞에 앉아 답변 원고를 써내려갔을 그 시간들을. 체험홈을 거치고 자립주택을 지나 내 명의로 계약된 임대 주택을 얻기을 때까지의 그 지난한 과정들을. 탈시설의 투쟁 현장에 환한 웃음으로 나타나서도 발언할 때면 엄중히 전하는 그 단호함을. 우리는 초현이라는 인물을 발견하면서도, 동시에 여전히 그가 전하는 이야기 속의, 여전히 시설에 남은 ‘언니, 오빠’들을 그린다. 지긋지긋한 거주시설의 통제에서 벗어나고도 여전히 동료들과 지역사회에서 함께하고자 하는 그 부채감이 그의 자립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그는 말한다. "저는 제가 생각보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시설보단 지역사회에서 사는 걸 원해요." 사람들이 그의 장애 정도를 보고 '저 정도면 잘 살 수 있다'고 판단하는 현실은, 장애인의 삶을 제대로 보지 않으려는 편견이다. 그의 말처럼, '나도 못 산다. 그러나 시설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 이것이 진짜 발언권이다. "나는 잘은 아니더라도, 살아남고 있다는 걸 시설에 보여주고 싶다." 여전히 초현은 그 증명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국정감사장, 그는 8시간을 기다린 끝에 증언대에 섰다. "나를 20년 동안 시설에 살게 한 사회에 사과받고 싶습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떨림 없는 단호함이었다.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를, 우리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듣지 않았던 걸까.

 

### 3.

 

연말, 그는 눈을 감고 2024년을 회상한다. 세상 다 산 노인처럼 한숨을 푹 쉬면서도 그는 주저 없이 말한다. "2025년 소망은 자립하기예요." 자립주택에 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자립’을 꿈꾼다. 자기 이름으로 계약된 집을 갖는 것, 나의 공간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꾸미는 것, 내 개인 공간에 사람을 초대하는 것, 이 모든 것을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꿈꾸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거주지의 공간을 넘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직접 만들어가는 완전한 ‘자립’을 꿈꾸기 때문에 그는 ‘탈시설 후의 자립’을 여전히 소망하고 있다.

 

영화는 그 간절함을 전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영화가 끝난 뒤, 그는 이미 그 꿈을 넘어 더 큰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시설 밖의 ‘나’는 영화가 끝난 뒤에 더욱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다. 초현은 2025년 1월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한 집으로 이사했고, 자신이 결정한 첫 번째 생일을 4월 9일에 축하했다. 동지들과 함께, 당당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토록 빛나는 삶이 지역사회에 있으니 어찌 탈시설 운동에 함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나도 분명하게 말한다, 탈시설 붐은 온다!




제작진 소개


연출추병진기획
제작피플퍼스트 성북센터각본
촬영추병진편집추병진
녹음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