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라당 넘어간

2024 | 17’ | 극 | 유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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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본인의 조현병까지 잘 극복해오던 경미.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정말 필요했던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하지만 곧이어 사기를 당한 듯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무너질 듯 흔들리는 마음으로 경미는 그리다센터의 문을 두드리고, 따뜻한 동료들과 함께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다.



인권평

최한별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진보적 장애운동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무엇인가. 하나만 꼽기 어렵지만, 그 중 하나에 ‘의료적 모델’이 반드시 들어간다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장애를 ‘치료되어야 할 질병’, ‘비정상의 상태’로 규정하는 시도들을 반대한다. 우리의 몸과 정신은 지금 이대로도 완전하며, 바로잡아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손상없는 몸과 마음에만 기준을 둔 비장애중심적 사회이다. 이런 주장을 ‘사회적 모델’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수십년간 사회적 모델에 기반해 활동해오던 우리 안에서 “근데 사실 제가 아파서 힘들긴 한데요”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손상때문에 생기는 아픔, 증상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칫 ‘그래서 결국 장애를 가진 상태는 문제’라는 ‘자백’처럼 들릴까 조마조마한 건 여전히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장애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 등장한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다음 장을 향해 잘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영화 ‘홀라당 넘어간’은 바로 이 지점에 서있다. 사회적 문제(가족 돌봄 부담, 경제적 어려움 등)를 겪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증상이 발현 또는 심화되는 과정은 사회적 모델에 기반해 있고, 증상의 재발로 인해 우울해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당사자의 심리는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걸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스트레스와 증상의 심화로 인해 고통받는 당사자를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 관계, 공동체라는 메시지를 향해 서툴지만 확실하게 나아간다.

 

이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유의미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이 당사자들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원하는 것은 ‘홀라당 넘어간 마음’ 때문에 힘들고 혼란스러운 순간,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 머리를 맞대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무엇보다 그들 역시 홀라당 넘어간 마음을 갖고 있기때문에, 당사자의 마음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위로도 조력도 제안도 당사자에게 힘이 된다. 즉, 힘있는 연대의 근거가 바로 홀라당 넘어간 마음인 것이다. 이 힘을 누가 함부로 ‘비정상’이라 말할 것인가.

 

2023년 기준 정신장애인은 약 10만명 이라고 한다. 10만 명이 고립만 되어 있다면10만 개의 외로움이 만들어질 뿐이지만, 이들이 서로 모인다면 10만 개의 연대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자꾸 정신장애인들이 서로 힘을 모으는 공간과 시간을 유지하기 위한 예산이 깎인다고 하니 걱정이다. 홀라당 넘어간 마음들의 연대를 허하라! 

삶이 회복이다

고운누리 및 마노스사회협동조합 마준호  | 2020 | 다큐 |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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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삶'이라 쓰고, '회복'이라 말하는 정신장애인들의 평범한 삶의 이야기이다. 삶 속에서도 회복이란, 어느 정점에서의 완결이 아닌 삶의 여정 그 과정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정신질환 당사자의 아픈 나날 속에서 깨달은 회복의 의미와 일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삶이 회복이다>은 작지만 따뜻하고, 가볍지만 마음 한켠 묵직하게 채워 줄 감동이 아닌 공감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인권평

영화에는 담기지 않은 정신병원과 요양원의 하루하루를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김유미 노들장애인야학 | 20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위원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원이라는 우리나라 정신의료, 복지의 지형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비로소 귀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신병원은 강제입원, 장기입원의 문제로 자주 도마에 오른다. 정신요양원은 퇴소가 없는, 출구가 없는 ‘시설’로 자리매김해 있다. 이 영화를 제작, 출품한 고운누리는 정신장애인 재활시설로, 정신장애인이 지역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나갈 수 있게 지원하는 기관이다.

긴 병원생활을 치렀거나 자신만의 증상 속에서 오래 지내온 이들은 어찌보면 ‘일상’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말하는 회복은 살아내는 것이면서, 텅비어버린 일상을 채워가는 일에 가깝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는 말은 곳곳에서 흔하게 하는 말이지만, 정신장애 당사자가 들려주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보니 회복이 오더라’는 경험담은 깊은 수행에서 탄생한 말처럼 느껴진다. 영화 속 인터뷰이들은 일상에서 '갈 곳'이 생기고, '동료'가 생기고, ‘할 일’이 생기고, '역할'을 갖고, '직업'을 가지면서 회복을 감각했다. 비장애인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게 주어지는 일상의 거리들이, 질환과 장애로 고립되어온 이들에게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상을 계획하고, 채우는 일은 쉽지 않고 또 그것을 유지해나가는 것은 더 어려운 과제다. 그렇기에 지역사회 안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환대받고 동료들의 지지를 받는 경험이 중요하다. 영화 속 한 인터뷰이는 회복의 과정에 중요했던 요소로 동료를 꼽는다. 한번 해보자, 함께 해보자 북돋아주는 동료와 지원기관의 역할은 회복을 돕는 필수 요소로 보인다.

영화에는 담기지 않은 정신병원과 요양원의 하루하루를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한 번뿐인 삶. 어렵더라도 회복을 꿈꾸고 일상을 가져볼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그런 기회는 고립되어 있는 당사자가 스스로 만들기는 어렵다. 주변과 사회가 움직여 함께 만들어내야 한다. 일상은 오롯한 개인의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고 구성된다는 점 또한 잊어선 안 된다.


김다예 선언

감독 김다예 | 2019 | 다큐 | 23분 | 기획·제작 김다예, 김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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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사람들에게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다예 그러나 실상은 우울증,공황장애가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해 선입견 넘치는 이 세상에 다예는 자신의 병을 주변에 선언하기 시작한다. 가족들에게만 제외하고 주변인 모두에게 선언을 하기 시작하는데 선언을 하며 받은 사람들의 리액션에 가족들에게까지 고백할 용기가 생긴다.


기획의도

나는 자신을 숨기며 페르소나로 살고 있는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의 진짜 모습대로 살아라. 당당하게 그렇게 살아라.


인권평

-조한진희 | 다른몸들

"정신병원에 다니고 있어.”

김다예는 자신의 질병/장애를 주변에 고백하기 시작한다. 친구, 교수, 가족들. 정신장애에 대한 낙인이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한국 사회에서, 그는 자신의 질병/장애를 드러내기로 '결심'한다. 자해하고, 우울해하고, 약물을 복용하는 자신. 그 모든 것도 자신의 일부라고 말한다.

최근 코로나 19 상황에서 청도 대남병원 사례를 통해 새삼스럽게 확인하고 있듯, 우리 사회 정신장애인의 자리는 없다. 폐쇄병동이 아닌 지역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는 정신장애인들을 위험한 범죄자처럼 대하는 것에 익숙하다. 때로 질병/장애로 인한 어려움보다 낙인으로 인한 고통이 더욱 크다. 주인공이자 연출자인 김다예도 사회에 정신장애인에 대한 낙인이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고 있다. 지인들에게 정신과에 다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냐고 직접 되묻기도 한다. 그는 그 모든 차별과 낙인의 시선에서 조금도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영화는 주인공이 계속해서 '선언'을 하고, 그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그런 ‘김다예 선언’에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진행된다. 영화는 여러 미덕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을 갖는다. 정신과적 질병/ 장애 뒤에는 언제나 문제적 가족 혹은 가족 문제가 있다는 의식을 강화하게 될까 우려스럽고. 무엇보다 가까운 이들에게 자신의 질병/장애를 드러내는 것도 관계의 연장이며 모든 관계는 서로의 호흡을 맞추는 일이기도 한데. 정신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고백'이 상대에게 너무 일방적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운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여러 심사위원이 개막작으로 선정하자고 입을 모은 것은 자신은 정신과적 질병/장애와 함께 살고 있으며 이것이 자신의 일부라고 정면으로 흔들림 없이 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의 세계에서 비로소 성원권을 스스로 인정해가는 과정을 그가 보였기 때문이다. 부서져 있다고 여겼던 세계를 복구해가는 과정, 공개적으로 자신을 통합해내는 과정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정신과 질병/장애와 함께 살아가며 스스로 통합해내는 자신을 보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나를 보라’ 선언이 된 것이다.


봄빛

감독 유병재 | 2018 | 극 | 15분 | 기획·제작 정신재활시설 성남고운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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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정신재활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던 주인공 한비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질환이 생기며, 몸담았던 직장인 정신재활시설을 그만두게 된다. 일을 그만 둔 이후 집에서만 지내며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던 도중 주치의의 권유로 자신이 근무했던 정신재활시설의 회원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인권평

-박성준 | 심사위원

정신질환으로 인해 정신장애인은 누구라도 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내용의 영화가 ‘봄빛’이다. 언제부터인가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강남역 살인사건 등 특정 범죄를 떠올리게 되었다. 뉴스를 접한 대중은 무의식적으로 정신장애인은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해 버리고, 치료의 대상이고, 분리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1~2년 전에도 경찰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정신장애인 체크리 스트’를 도입하여 ‘정신질환으로 자·타해 위험이 의심되는 사람에 대한 강제입원을 신청할 수 있다’는 반인권적 얘기도 서슴없이 해왔다. 하지만 2010년을 기준으로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비장애인 범죄율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듯 정신장애에 대한 오해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자립생활운동이 그렇듯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은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문제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즉 정신장애인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정신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에 차별과 억압, 낙인효과가 발생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이 시작되었고, 정신장 애인의 권익옹호 활동이 활발해졌다. 강제로 병원에 가두고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를 가진 시민’으로 인정하고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정신장애인에게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