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동 소녀
감독 오재형, 임영희 | 2022 | 다큐, 애니메이션 | 29분 57초
- 배리어프리 ⭕
시놉시스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로 유학 온 이야기, 성인이 되어 광주5.18을 겪은 이야기, 노년이 되어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된 엄마의 이야기.
인권평
어둠을 헤치고 맞닿은 시간
‘양림동 소녀’
-은석 (예술행동 한뼘,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영화는 주인공의 녹음 준비 장면을 잠깐 비추더니 피아노 소리와 함께 우리를 그림책 안으로 안내한다. 진도 옥주호를 타고 낯설기만 한 광주 양림동의 청소년 시절을 지나 보프룩 양림카페와 송백회의 청년기, 광주 5.18 한가운데를 따라가다 보면 노년의 주인공은 어느새 꿈많은 소녀 임영희가 되어있었다. 추억에 젖어 눈을 감아도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만든이들의 소개까지 마치고 나면 영화는 ‘섬초롱꽃에 내린 아침 단비’처럼 반짝거리며 끝이 난다.
<양림동 소녀>는 같은 이름의 그림책 작가이자 주인공인 임영희, 주인공의 목소리 뒤로 배경처럼 피아노를 연주하던 오재형, 두 명의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소리를 그대로 옮긴 것 같은 자막은 그림책의 글씨가 되고 그림을 설명하는 것 같은 나레이션은 시절을 회상하는 누군가의 입담으로 펼쳐진다. 이런 점에서 <양림동 소녀>는 최근 본 어떤 영화보다도 ‘장애인접근성’이 자연스럽다. 누군가는 이 평이함이 ‘장애인접근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는 오재형 감독이 <피아노 프리즘>(2021)에서 보여준 접근성에 대한 고민과 시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
영화제 슬로건이 결정되자마자 <양림동 소녀>를 보게 된 건 행운이었다. 주인공 임영희는 광주에서 겪었던 ‘저항의 순간’들을 종이에 깊게 베인 살처럼 드러내다가 ‘우리가 이렇게 잘 싸웠노라’ 돌아보는 장면에서는 환희에 찬 모습으로 그려낸다. 시위대가 폭도로 몰리고 진압군에 의해 고립되는 대목에서는 ‘국가의 낙인’이 개인과 한 시대를 어떻게 유린하고 망가뜨리는지를 환기시킨다. 나치가 장애인을 세금 갉아먹는 존재로 낙인찍으며 학살을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감행했듯, 광주의 시민군은 어느새 죽어 마땅한 폭도가 되었고 2023년 지하철 탑승 시위대는 시민의 출근을 볼모로 하는 파렴치한 ‘강자 집단’로 갈라치기 된다.
주인공을 포함한 뇌졸중 환자들이 단체로 카페에 갔을 때 사람들이 슬슬 피하더라는 말에서는 43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비장애인 중심의 한국사회 단면을 들춰낸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일상에 ‘되도록’ 보이면 안되는 존재, ‘가능하면’ 병원이나 시설에 있어야 하고 ‘웬만하면’ 허락되지 않은 교통은 이용하면 안되는 존재.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를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여기서 한 발짝이라도 어긋났을 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쏟아내게 한다. ‘OO들, 집에서 편하게 있을 것이지 왜 나와서 XX이냐. 내가 출근 못하면 당신들이 책임질 거야?’ 단 한 번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노동하며 지역에서 함께 살아본 적 없는(살아갈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은) 누군가의 요구에 이런 극단의 혐오가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비장애인의 속도와 견고한 능력주의가 어디서 흘러나와 어디로 흘러가는지 우리는 세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어둠 속 달을 가리키는 누군가의 몸짓’을 보고도 어둠도 달도 보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아니 어둠을 헤치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섬초롱꽃에 내린 아침 단비’처럼 반짝이는 당신의 시간을 응원하며, 어둠을 헤치고 맞닿을 우리들의 시간을 응원하며,
춤추는 혼잣말
감독 이진희 | 2020 | 극 | 33분 | 기획·제작 장애여성공감
- 배리어프리 ⭕
시놉시스
ep 1: 결심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시설을 코호트 격리한다는 뉴스를 들은 은수. 오늘따라 학원에서 돌아온 딸의 말이 불편하다.
ep2: 나는 노동자 바쁜 하루 만큼 많은 소지품이 필요한 윤정. 면접을 앞둔 아침 활동지원사가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ep 3: 흔들리는 독백 장애여성 배우 예슬은 요즘들어 무대가 답답하다. 멋진 장애여성 배우여야 한다는 압박감 탓일까. 동료들과 운동을 하고 공연을 만들다 보면 길이 보일까.
기획의도
코로나19. 장애인 집단시설의 집단감염. 장애인 거주시설은 코호트 격리 되었다. 우리가 5년간 만나던 신아재활원의 거주인들은 확진자와 비확진자로만 나뉘어 불린다. 개인의 이름을 호명하며 탈시설 이후의 삶을 차근차근 그리던 시간과 관계의 힘으로, 우리는 시설이 아닌 공간으로 서로를 이동시키고 싶었다. 지금 당장 코호트 격리를 중단하고, 거주시설을 비워야 한다. 시설 밖 장애여성 배우들은 시설이 존재하는 시설사회에서 누구도 자유롭기 어렵다고 말한다. 춤추는허리는 이번 웹 독백극으로 장애여성의 몸이 부딪히며 보고 있는 세계를 카메라로 담아 보고 싶었다. 촬영 과정은 카메라에 장애여성의 몸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카메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에 가까웠다. 매 순간 몸으로 세상과 만나고 부딪히며 살아가는 장애여성의 독백은 시설의 폭력성과 인간의 조건, 노동에 대해 질문한다.
인권평
춤추는 혼잣말
-김상희 | 1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위원
춤추는 혼잣말은 코로나 시대에 장애여성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이자 끊임없이 증명해 보여야 하는 장애여성에 사회적 역할에 관해 묻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는 세 가지 에피소드가 나온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장애여성인 은수가 나름의 방식으로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주변 시선들은 은수의 양육에 대해 의심하고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무례한 시선을 받는 것에 성토하는 장면에서 쉽게 판단되어지는 장애여성의 위치성을 고민하게 되었다. 더구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일어나면서 모든 장애를 가진 이들이 코로나 감염인으로 의심을 받고, 자신의 아이가 장애여성 엄마를 두었다는 이유로 일상에서 고립되어가는 장면이 나오는 데 매우 공감이 갔다. 작년 한 해 갑작스런 코로나 상황에서 예측하기 어렵고 보이지 않은 이 바이러스로 인해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가해지는 혐오와 차별은 심해져 갔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발달장애를 가진 여성이 취업을 위해 면접장에 가면서 고군분투하는 상황을 그려낸 내용이다. 장애유형과 상관없이 장애여성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떠올렸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조언 따위를 한다며 장애여성에게 자신들의 가치관과 기준을 입히려고 한다. 영화에서도 발달장애여성인 윤정이 급히 면접 장소를 가다가 넘어졌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 요청하는 것을 망설이는 장면이 나온다. 도움을 요청하면 필요한 도움만 주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온갖 참견의 말들이 줄줄이 따라 오기 때문에 선뜻 도와 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장면에서 장애여성인 나의 경험도 맞닿아 있음을 느꼈다. 주변인들은 장애여성이 수동적이거나 결정하는데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란 편견으로 자꾸만 간섭의 말을 자주 듣기도 하고 목격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극단에서 활동하는 장애여성이 배우로서 자신의 연기와 예술성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특히 신체적 중증 장애를 가진 여성이 배우로서 예술을 한다는 것에 대한 고뇌가 그려지며 본인이 선보이는 예술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저 비장애인이 하는 예술을 따라하는 건 아닐까? 자신이 장애를 가져서 더 좋게 평가되어지는 걸까? 이러한 질문을 들으며 나 역시 장애를 가진 이들이 연극을 하고 글을 쓰고 무대 앞에 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고민한 바 있다. 지금껏 비장애중심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예술이라는 영역에 장애를 가진 이들이 틈을 만들고 재해석해내는 모든 작품과 행위들이 하나의 고유한 예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영화의 세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장애여성이 이 사회 안에서 겹겹이 쌓인 차별을 어떻게 저항해 가는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춤추는 혼잣말 같은 장애여성 관점의 영화가 많이 제작되어 장애여성들의 저항이 담긴 목소리가 들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