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

2024 | 31’ | 극 | 이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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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비혼, 직장인, 장애인, 배우, 활동가등등 다양한 수식어를 가진 민아. 친구 현경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모인 날, 깜장 치와와가 민아게게 다가온다. 민아는 깜장 치와와에게 '마루'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가 살아온 삶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귀여운" 마루, 오직 귀엽기 위해, 인간 세계에 귀여운 생명들을 제공하기 위해 견디어 온 시간들을.

“마루야, 지금 네게는 뭐가 보이니?”


인권평

장애, 욕망, 돌봄,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

김상희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며, 때로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존재들을 조명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마루와 내 친구의 결혼식은 그러한 역할을 고민하며, 장애인, 여성, 동물과의 관계속에서 돌봄과 독립,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장애를 가진 주인공 민아가 다양한 정체성과 욕망을 지닌 존재들과 관계를 맺으며 겪는 일들을 다룬다. 결혼을 앞둔 친구와 함께하는 모임에서 한 친구가 길을 잃은 강아지를 발견하고, 임시 보호자가 될 사람을 찾는다. 하지만 저마다의 사정으로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민아가 강아지를 맡게 된다. 처음에는 돌봄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만, 이내 ‘마루’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민아는 또 다른 사회적 편견과 마주한다. 친동생과의 만남에서, 동생은 장애를 가진 민아가 친구의 임신 소식을 전했을 때 축하 대신 걱정을 먼저 내비친다. 또한, 자신과 상의 없이 강아지를 데려왔다며 화를 낸다. 이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또 다른 돌봄이 필요한 존재와 관계를 맺으려 할 때, 사회가 보이는 시선과 구조적 편견을 보여준다. 민아에게는 관계 맺을 권리와 욕망이 있지만, 주변인들은 이를 불편하게 여기며 쉽게 차단해 버린다. 이는 마치, 돌봄이 필요한 존재가 또 다른 돌봄이 필요한 존재와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민아는 이러한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루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둘은 점차 가족이 되어간다. 건강이 좋지 않던 마루가 점차 회복하는 과정은, 단순한 반려동물이 돌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돌봄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민아는 마루를 보살피면서도 마루에게서 위안을 얻고, 이는 인간과 동물 간의 관계에서도 충분히 가능함을 증명한다.

이 영화는 사회가 당연하게 여겨온 돌봄의 구조와 그 속에 자리 잡은 차별적 시선을 비판하면서, 누구나 관계를 맺고 함께 살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돌봄을 받기만 하는 존재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관계를 선택하고 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해주는 영화다.

반장

2024 | 42’ | 극 | 양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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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자신의 진짜 꿈은 외면한 채 장애라는 벽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체어를 탄 소녀와 아무 꿈도 목표도 없이 남들이 시키는 대로 과서 같은 삶을 살아온 모범생 소녀의 아름다운 성장통.

장애 때문에 반장은 꿈꿀 수 없었던 은호와 하고 싶지 않은 장을 늘 억지로 도맡아 온 선우가 서로를 통해 세상의 시선과 계를 뛰어넘어 자신이 진짜 원하는 선택을 하는 이야기.


인권평

서로로부터, 서로에게

홍성훈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반장>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보기 드문 영화다. 십대 청소년 인물들이 전면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학생들이 교실로 우르르 몰리는 학교 복도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유유히 들어가는 은호. 그리고 임시반장이지만 교실에 있는 모두가 ‘어차피 반장’이라고 생각하는 선우가 주인공이다.

은호와 선우는 맨 뒷자리에 한 분단 간격을 둔 채 나란히 앉아 있다. 선우는 담임교사로부터 은호의 하굣길에 동행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둘은 집으로 향하며 같이 있는 시간을 늘려나간다. 이때부터 조금씩 선우는 은호의 시선에서 주변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체육시간이면 체육관 어느 한 곳에서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는 은호가 신경 쓰인다거나, 하굣길에서 무심코 이용했던 육교가 은호에게는 장애물일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변화는 선우만이 겪는 과정이 아니다. 은호 또한 선우와 상호작용하면서 애써 외면하려 했던 자신의 꿈을 꺼내본다. 은호는 선우에게 원래 자신의 꿈이 영화감독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자신이 영화감독을 하기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에 그 꿈은 접었다고 한다. 은호의 이야기를 들은 선우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음 만남 때 인터넷에서 산 드론을 선물하기도 한다. 벤치에 앉아 둘이 함께 드론을 날리며 학교의 전경을 찍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다.

영화 <반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선우와 은호의 욕망의 부등호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해 커져가는 것이다. 앞에서 썼듯, 선우는 반 친구들에게나 교사에게나 이미 반장이라는 기대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선우는 그 기대감 앞에서 머뭇거린다. ‘반장 선우’는 엄마나 다른 사람이 심어놓은 꿈이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은호는 선우에게 반장 일이 힘들면 안 하면 되지 않냐며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고 조언을 건넨다. 선우 역시 은호에게 반장 일 어렵지 않다며 다리 신경 쓰지 말고 반장선거에 나가보라고 말한다. 은호와 선우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너무 쉽게 얘기하는 서로의 말에 상처받지만 동시에 그 조언을 곱씹으며 생각이 많아진다.

 

결국 화해하고 오해를 푸는 두 사람 선우는 은호에게 반장선거에 나가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은호 덕분에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선우는 은호가 반장에 도전할 수 있도록 진심 어린 말들을 건네고 그런 선우의 응원에 은호 역시 반장선거에 대한 마음이 흔들린다. 드디어 반장선거 당일 은호는 번쩍 손을 들고 반장선거에 나간다.

“안녕하세요. 반장 후보 이은호입니다”

과연 은호는 꿈을 이루게 될까? 영화제에서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소리의 소리

2025 | 28’ | 다큐 | 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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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내 이름은 소리다. 한소리의 소리는 엄마의 소리를 잘라낸다. 엄마의 소리를 튕겨내고 끊어낸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이 끝난 직후 내가 뱉어낸 소리는 엄마를 괴롭혔다. 외할아버지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소리의 폭력. 사과는커녕 오히려 더 뻔뻔하게 던져지는 소리.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엄마를 할퀸다.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고 씩씩하게 웃으면 한다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하고, 엄마를 위한 선택이었다며 내가 행한 소리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위로를 가장한 그 소리를 엄마는 또 잘 들어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 앞에서 나의 소리를 소거하는 일이다.



인권평

방향이 돌려진 카메라가 찍은 것은

홍성훈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길혜에게는 소리가 있다. 길혜는 (주로) 소리를 통해 타인 혹은 세상과 소통한다. 그녀에게 상대방의 말은 곧바로 감각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길혜의 말이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경우는 드물다. 역시 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얼핏 들으면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길혜에게는 소리라는 매개자가 중요하다. 눈치챈 이도 있을 텐데, 길혜의 딸 이름은 ‘소리’다. 그리고 길혜는 구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러니까 딸 소리는 엄마 길혜의 말을 상대방에게 전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말을 엄마에게 정확한 입모양으로 전달함으로써 엄마와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든 유효한 사실일까? 딸이자 영화를 제작한 한소리 감독은 이전 작품 <주고받는 노력>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출품작)에서 이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소리의 소리>는 질문에 대한 또 다른 답변이라고 볼 수 있다.

2024년 12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시민들의 일상은 멈췄다. 대통령의 탄핵선고를 앞두고 있지만 한밤중에 벌어진 계엄령 사태는 우리가 아직도 불면증을 겪고 있는 원인이 되었다. 그것은 길혜-소리 모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모녀는 만약계엄령이 지속되었다면, 일상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이야기한다.

소리: ‘계엄령 합니다’ 했잖아. 너무 무서웠지?

엄마 대화 어떻게 할 거야?

엄마: 대화?

소리: 응

엄마: 가만히 있으면 되지.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길혜의 말에 소리는 한바탕 웃어넘긴다. 이어서 길혜는‘가만히 안 있으면 죽어.’라고 말한다. 이날의 대화는 둘의 웃음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소리에게는 여러 번 곱씹는 장면이 된다.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태도에는 길혜 자신이 필요하는 것을 요구하면 주변 사람들이 피곤해한다는 경험이 녹아있는 듯하다. 소리는 혹시 그 ‘사람들’에 본인이 포함되는지 의심한다.

그런 의심을 증폭시킨 것은 길혜의 아버지의 죽음(그러니까 소리에게는 외할아버지), 그리고 장례식이었다. 길혜는 장례를 치르고 난 이후에도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낙담한다. 소리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언제까지 슬픔에 빠져 있을 것인지 묻는다. 하지만 길혜는 말없이 걷기만 한다. 길혜의 생각과 마음은 표정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소리에게도 외할아버지의 죽음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다. 소리는 엄마 길혜 대신 외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말을 들을 수 있고, 건넬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것은 중환자실로 소리를 들여보낸 길혜의 의지이기도 했다. 소리는 그런 길혜에게 이제 그만 슬퍼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소리는 길혜의 애도를 중지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지, 세상과 길혜를 연결해준다는 자신의 ‘소리’가 되려 길혜의 고유성을 드러낼 기회를 차단하지는 않았는지 성찰하기 위해 길혜를 찍던 카메라를 자신에게 돌린다. 그리고 길혜에게도 카메라를 건넨다. 과연 방향이 돌려진 소리의 카메라, 길혜가 찍은 카메라는 무엇이 찍혔을까? 직접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어머니! 하늘빛이 어떻습니까?

2024 | 21’ | 다큐 | 방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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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평생을 절망과 투쟁 속에서 살아온 중복 장애인 이종형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시와 하모니카를 통해 치유하며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낸다. 그의 이야기는 그저 개인의 고백이 아닌, 세상에 깊은 울림을 전하는 여정이다. 사라진 시집을 찾기 위해 전국의 헌책방을 뒤지는 한 사람의 노력과 이종형 시인의 삶을 담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중요한 것들은 원래 보이지 않는다는 깨닫게 된다.


인권평

장호경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이 영화는 세 가지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며 진행된다. 하나는 이 영화의 제작과 관련된 감독 자신의 이야기와 주인공의 시집을 찾아 떠나는 여정, 또 하나는 영화의 주인공인 시인 이종형의 이야기, 마지막 하나는 이 영화의 형식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군 복무 중 사고로 시력을 잃었던 적이 있는 감독. 현재는 점자 도서관에서 촬영 봉사를 하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기에” 촬영을 배우고 카메라를 잡게 되었다 이야기하는 감독.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난 시인 이종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감독은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종형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종형은 18세 때 폭발사고로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이후 이종형은 30여년 전시로 등단하여 시집을 한 권 냈다. 감독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이 시집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자신이 기록하는 이 영화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작 이종형시인은 이 영화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종형과 함께 볼 수 있는 배리어프리 영화를 만들기 위한 공부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기에”

우리는 이 영화를 음성해설과 자막해설을 포함하고 있는 영화로 만날 수 있다.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 영화는 자연스럽게 음면해설과 이어지며, 음면해설은 억지스럽지 않게 그 자리에서 의미를 가지고 존재한다. 보통의 배리어프리 영화들은 이미 제작이 완료된 상태에서 삽입되기 때문에 들어갈 자리를 확보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음성해설의 경우, 현장음과 현장음 사이, 대사와 대사 사이 제한적으로 존재하는 시간 안에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절약적인 문장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도 선택적으로 전달할 수 밖에 없다. 수어통역이나 자막 같은 경우도 영화의 미장센을 깰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 그러나 이 영화

는 먼저 배리어프리를 고려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에 억지스럽지 않고 여유있게 삽입되고, 오히려 영화의 이해를 돕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흔히 배리어프리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 그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영화감상을 방해한다는! 편견을 깬다.

이 영화는 이종형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 외적인 것, 이종형을 만난 감독과 “이종형의 고귀한 인생”이 담긴 시집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의지와 이 과정이 담긴 영화를 이종형과 함께 보고자 하는 감독의 노력이 더 중요한 영화다. 그리하여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누군가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가 그 주인공에게, 제작자에게 어떤 의미로 회귀하는가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미덕! 이 모든 노력이 어떤 고귀한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는 해야하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일이며, 이런 일들이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라는 감독의 수줍은 마지막 고백이다.



천사와 드라이브

2024 | 29’ | 다큐 | 김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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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로사의 아버지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으로, 손재주를 타고났지만 재능을 펼칠 기회가 적었다, 그가 가족을 향한 사랑과 희생을 표현하는 방식은 드라이브였다. 어느 날, 그에게 또 다른 불치병이 찾아온다. 그의 불건강을 지켜보며 로사는 숨 가쁜 꿈을 꾼다. 언젠가 다시 아버지와 드라이브를 할 수 있을까.


인권평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소중하고 평범한 꿈에 대하여
이정한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딸 '로사'의 나지막한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로사는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며 그의 삶을 차분히 전한다. 유년 시절, 청년의 기억, 실업과 장애로 이어진 삶의 여정을 로사는 담담히 읽어 내려가듯 말한다. 아버지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가장' 중 하나였다. 경제난 속에 실업자가 되었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내를 조수석에, 세 아이를 뒷자리에 태우고 함께 드라이브를 떠나는 것, 그것은 평범한 가장들의 평범한 소망이지만, 장애와 실직이라는 이중의 벽 앞에서 그 꿈은 멀어져 간다.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무엇에 의해서든, 우리는 오래간 무의식적으로 평범함을 구축해 왔다. 정상성, 혹은 평범성은 한국사회에서 비장애인중심의 사회로 건축되어 왔다. 가부장제 속에서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 가족 구성원의 살림과 지지를 감당하는 어머니, 그리고 그런 부모에 대해 존중의 마음을 갖는 자녀. 이 평범한 정상가족의 형태가 우리 사회의 대를 이어 오고 있다. 비장애인으로서 생애주기를 거치며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도시 사회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안락함을 꿈꾸는 것은 인간 사회의 평범한 정상의 모습으로 상정되어 왔다. 많은 경우 그 평범한 모습을 꿈꾸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경쟁의 과정을 견뎌 내고 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욕망, 사랑하는 가족과 안락한 미래를 꿈꾸는 것은 누군가에겐 허황된 소망인 동시에 불가능한 시련으로 놓이고 만다. 로사 가족의 이야기는 그 평범한 정상에의 욕망이 어떻게 탈락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그린다.

 

장애인 아버지를 둔 가족이 겪는 ‘평범한’ 일상은 비범한 인내와 돌봄의 연속이다. 로사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 영화는 그런 일상의 무게를 단조롭게 전하기에, 우리는 이 ‘뻔한’ 일상에서 어떤 고유함을 찾을 수 있는지 묻게 된다. 아버지를 위해 밥을 차리고, 말벗이 되어 주며, 함께 시간을 나누는 일은 ‘딸’이 수행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그 부조리한 사회를 그리거나, 그에 분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보편적이고, 정상적이고, 평범하다고 여겨져 왔던 그 형상이 사실 환상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사례가 된다. 아버지는 장애와 중증 호흡기 질환으로 인해 위태로운 삶의 시간들을 보낸다.

 

평범한 일상 안에 스며든 희망과 사랑의 조각들을 소중히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는 걷지 못하고, 호흡기 장애로 인해 인공호흡기를 달고 살아가지만 영화는 그 고통에 집중하지 않는다. 고통의 외침 대신 반복되는 호흡기 소리와, 아이처럼 들뜬 아버지의 표정이 이 영화의 톤을 만들어 간다.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배제하고 있는지 찾는 대신, 그런 배제 속에서도 가족이 어떻게 희망을 꺼내 들고 살아가는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영화 속 아버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노트북을 다루며 전동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차량을 찾아본다. 그 계획은 구체적이고 조심스럽다. 로사는 그 계획을 응원하면서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버지는 중증 COPD 환자이며, 발병 후 60개월 이내 사망률이 40%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미 7년째 살아가는 그는 다행히 60%에 해당하지만, 반반의 확률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위태로운 불안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사망위험군이라는 진단 결과를 로사는 아버지에게 전하지 못한다. 나아질 거라는 아버지의, 혹은 자신의 희망을 꺾고 싶지 않기에, 차차 나아지리라, 산소호흡기를 뗄 수 있노라 말한다. 눈물을 삼키며 전하는 이 소망이 로사의 가족을 여전히 희망차게 만든다.

 

이 가족에게 비극은 없다.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감행하는 아버지, 함께 집터를 보러 가고 중고차를 찾으며 소소한 웃음을 나누는 가족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적 장치보다 진실하다. <천사와 드라이브>에는 불쌍한 장애인이나 근엄한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다. 거대한 투쟁이나 슬픔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지켜내는 사람들이다. 차별과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자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도, 그들은 생의 매 순간을 평화롭게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휠체어에 몸을 실은 아버지의 드라이브는 그저 상상 속의 장면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여정인지도 모른다.

 

산소호흡기의 바람 소리와 기계음이 영화의 마지막을 채운다. 그러나 그 소리는 죽음의 전조가 아니라 삶이 지속되고 있다는 증거다. <천사와 드라이브>는 그래서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야말로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기록이 아닐까?

같이 살기

감독 공새롬, 민다홍   | 2023 | 극 | 23분 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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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오랫동안 가족을 돌봐야 했던 홍은 돌연 부산행을 택한다. 결혼은 싫지만 혼자 사는 것은 심심할까봐 걱정인 새롬은 부산살이를 시작하려는 홍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한다. 같은 거라곤 성별뿐인 극과 극의 두 사람이지만 함께 생활하며 룸메이트에서 서서히 가족이 되어간다. 청력 손실과 파혼 그리고 실직으로 아직도 성장통을 겪고 있는 서른 중반의 두 사람이 같이 사는 이야기.


인권평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

-홍성훈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걸까?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공동의 생활방식을 정립해 나가며 마음을 교류한다는 것은 품이 꽤 들어가는 일이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으로부터 벌써 여덟 해를 보낸 나로서는 혼자 사는 삶이 익숙하고 편하다. 물론 나는 중증장애인 당사자인지라 하루 중 열여섯 시간을 활동지원사분들과 함께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활영역이 침범당하지 않을 때의 일이다. 만약 어느 날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된다면, 나의 생활영역을 공유해야 한다면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바로 대답이 나오진 않는다.

 

제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출품작 <같이 살기>(감독 : 민다홍)는 서로의 ‘곁’을 내어주는 두 여성, 홍과 새롬의 이야기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홍(영화 자막에는 본인을 ‘홍’으로 지칭한다)이 부산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산에는 홍의 친구인 새롬이 있다. 홍이 부산에 가는 이유는 검은 화면에 텍스트로 제시되는데, 홍이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이야기가 쓰여 있다. 홍은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로 인해 서서히 청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홍을 맞아준 것은 새롬이다. 새롬과 홍은 부산에서 함께 살 집을 구하고 함께 살기 시작한다. 새롬 또한 결혼을 준비했다가 다시 혼자가 된 여성으로서 살고 있다. 새롬과 홍은 강아지 장고, 뚱이와 동거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생활은 엄연한 현실이다. 직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생활 공간에서도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조금씩 삐그덕댄다. 각자 생각하는 설거지 타이밍이 다른 점이라든지, 두 사람은 같이 살면서 서로가 다른 점을 발견해 낸다. 하지만 둘의 다름이 함께 살기의 위태로움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것은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들을 수 있는 ‘곁’을 내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홍과 새롬이 함께 맞는 노년을 상상하면서 나누는 이야기 장면에 있다.

 

위기는 밖에서 온다. 홍의 청력손실은 부산에서 얻은 일자리를 잃게 하는 ‘장애’가 된다. 청력손실이 곧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능력의 장애로 인식되면서 초래된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홍만이 아니었다. 2019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기업들은 인력감축으로 돌파구를 마련했고, 그 파도는 새롬에게까지 덮친다. 새롬 또한 인력감축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홍과 새롬은 슬기롭게 대처한다. 홍은 새롬의 부모님 집 창고를 빌려 본인의 명의로 ‘드론 촬영 사업장’을 만들고 홍보를 시작한다. 드론 촬영은 소리를 잘 들을 수 없어도 홍의 재능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홍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밝다. 새롬도 새로운 직장을 찾기 시작한다.

 

영화는 홍과 새롬이 그루트를 심는 장면에서 끝난다. 영화는 큰 갈등과 극적인 결말 없이 끝나지만 그럼에도 프레임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건 아마도 나도 모르게 둘이 앞으로 함께할 삶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프레임 화면을 가득 채운 저녁 노을빛처럼. 관객들도 ‘같이 살기’의 넉넉함을 느껴보길 바란다.

나의 세개

감독 김종률 | 2023 | 극 | 30분 5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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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전 보치아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보국은 경기 규정 변경으로 국가대표에서 탈락하고 매우 무기력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본인의 전 코치였던 생활체육협회 권 이사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보치아 클럽을 맡아 지도에 줄 것을 요청하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전 국가대표선수가 자신들을 가르치러 왔다는 소식에 나눔보치아클럽 참여자들은 처음엔 연습시간마다 무관심과 불평불만으로 일관하다가 보국에 의해 조금씩 성장하고 변하여 보치아를 재미있게 즐기는 분위기로 바뀌고 이에 힘을 얻은 보국도 다시 국가대표에 도전한다.


인권평

느림 속에 긴장감을 주는 우리들의 보치아

-김상희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비장애중심의 사회에서 스포츠 종목 대부분 빠른 속도와 순발력이 요구된다. 잽싸고 빠르게 몸을 움직이는 스포츠를 보며 관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소리친다. 영화 ‘나의 세개’는 스포츠 영화이지만, 앞에 비장애중심의 스포츠와 다르다.

 

장애인 단체에 있다 보면 한 번쯤 들어볼 법한 용어인 보치아에 관한 내용이다. 보치아는 뇌병변 장애인들을 위해 처음 시작된 운동 경기이며, 지금은 다양한 장애유형들이 함께 즐기는 스포츠이다. 이 경기는 양팀으로 나눠 흰색 표적 공 중심으로 파란 공과 빨간 공을 던져 흰색 공과 가까운 거리에 따라 점수가 계산된다. 많은 장애인이 취미 활동 혹은 전문 선수로 활약하며 매우 중요한 운동 경기로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인 만큼 경기 진행에 대한 기술과 참여자를 잘 이끌어갈 리더쉽이 부재한다면 재미없는 공놀이로 전락될 수도 있다.

 

영화 ‘나의 세개’에서도 보치아 클럽이 운영되고 있지만, 모두 지루해하고 아무 의욕이 없는 참여자들이 나온다. 보치아 클럽을 운영 중인 생활체육협회 권이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고심하며 해결책으로 전 보치아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보국을 섭외한다. 보국은 경기 규정 변경으로 국가대표에서 탈락하고 자포자기한 삶을 살아가던 가운데 전 코치였던 권이사의 제안에 선뜻 하겠다고 말은 못 했지만, 결국 수락하며 보치아클럽의 코치로 다시 시작한다.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보치아클럽 멤버들에게 보국은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며 보치아만의 재미를 가르치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분위기도 바꾼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영화 내용 소재로 쓰인 보치아에 대해 생각해 봤다. 사실 나는 보치아를 할 줄 모른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해 본 뒤로 보치아를 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소속 센터에서 보치아 교실과 대회를 운영하며 옆에서 가끔 구경하며 보치아가 주는 긴장감을 느껴왔다.

 

보치아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장애유형을 가진 장애인들이라 공을 던지는 모습이 다 다르다. 느린 동작과 떨리는 손으로 꽉 쥔 공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굴러갈지 몰라서 손에 땀이 나도록 긴장된다. 강직이 심해서 원하던 방향으로 공이 안 가 실망한 표정을 하고 있는 참여자들을 보면 나도 같이 아쉬움을 느낀다. 양손 사용이 어려운 참여자가 홈통을 이용해 방향 조절을 해서 기막히게 표적 공에 맞추는 걸 보면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이것이 다른 감각의 긴장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느림 속에 긴장감, 그것이 보치아의 매력이다.

 

끝으로 영화 속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찾을 수 있었다. 보치아 클럽의 운영 담당자가 참여자들을 대하는 말투와 태도이다. 참여자들을 부르는 호칭을 조금 더 존중감 있게 바뀌었으면 좋겠고, 어린아이 달래는 식의 태도보다 평등한 대화법으로 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인권 영화를 목적으로 기획했다면 조금 더 앞으로 나갔으면 한다. 인권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관점의 성찰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소희로부터

감독 정창영 | 2023 | 극 | 29분 1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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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소희는 인턴사원 지윤을 만나게 된다. 지윤은 생애 첫 직장생활에 설렘이 가득하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시간, 티타임을 망설이는 지윤. 소희는 그런 지윤의 행동이 궁금해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소희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장애인의 삶과 장애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뒤늦게 깨달으며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인권평

배려가 아닌 권리의 시선으로부터

-홍성훈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어느 시인의 말처럼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또 하나의 우주가 굴러들어 오는 일과 같다. 우리는 그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우주’가 너무 넓은 나머지 ‘나의 우주’가 돌이킬 수 없이 바뀌는 일도 종종 생긴다. 그를 통해 내가 변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지킬 것인가? 판단은 각자의 몫에 달려 있다.

 

영화 <소희로부터>는 비장애인인 소희가 직장에 인턴사원으로 들어온 지윤을 통해 알지 못했던 세계의 조각들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지윤은 휠체어를 탄 장애여성이다. 지윤이 출근하기 하루 전날, 직장동료들은 지윤의 이야기를 나눈다. 지윤의 이야기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은 그의 ‘장애’다. 동료들은 혹시나 장애로 인해 지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소희는 미리 판단을 내리지 말자고 한다. 다음날 제일 먼저 지윤이 사무실에 출근하고, 미리 책상 정리를 마친다. 소희는 지윤과 인사를 하며 자신이 한 달 동안 사수를 맡게 되었다고 말하고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뭐든 물어보라고 한다. 지윤은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고 주어진 업무를 곧잘 한다.

 

이렇듯 사수로서의 소희와 인턴인 지윤은 서로 잘 맞는 듯하지만 묘하게 어긋나는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소희가 지윤에게 티타임을 제안하지만, 지윤이 거절하거나,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식사 자리를 제안해도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꺼내며 식당에 다녀오라고 말한다. 상냥하지만 어딘가 뼈 있는 거절을 받은 듯한 소희는 자신의 어떤 면이 지윤에게 불편한 지점으로 다가오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소희는 지윤에게 정면으로 묻는다. 자신이 불편하냐고. 지윤은 그런 건 아니라고 답하지만 어쩐지 할말을 다 하지 못한 사람처럼 표정을 짓는다. 소희는 이때다 싶어 지윤에게 그러면 다음 날 같이 점심을 먹자고 제안하고 지윤은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어 제안을 받아들인다.

 

다음날 지윤과 점심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선 소희는 자신이 알던 세계가 조금씩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자주 가던 식당에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턱이 있었고, 휠체어가 갈 만한 곳은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더군다나 겨우 두 사람이 들어간 식당에서는 전동휠체어를 탄 지윤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민들과 마주해야 했다. 식사 후 편의점에 앉아 같이 커피를 마시던 소희가 지윤에게 화가 나지 않냐고 묻는다. 지윤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짓는데, 이어지는 화면에는 지윤이 마주한 물리적인 턱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턱’들, 예를 들면 지윤이 일을 구하는 과정에서 들었던 장애인을 향한 수많은 차별과 편견 섞인 말들이 나온다. 그 말을 들은 지윤은 어느샌가 비장애인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자’라고 마음먹었고, 그 마음이 지윤이 소희에게 ‘선을 긋는 태도’로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소희는 알게 된 지윤의 세계로부터 도망치지 않기로 한다. 지윤과 함께 회사 주변을 돌아본 소희의 눈에는 전에 보이지 않았던 ‘턱’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한다. 소희는 혼자 길거리를 가는 동안에도 턱 앞에서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거나, 턱을 오르고 내려가면서 단차를 넘을 수 없는 지윤을 생각한다. 그제야 묘하게 어긋나 보였던 지윤의 세계가 이어진다. 소희는 먼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행동한다. 그 첫 번째는 회사 내 탕비실에 있는 티백이나 커피 스틱들을 지윤의 손에 닿는 위치로 옮겨놓는 일이다. 지윤은 이제 본인도 차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환하게 웃고, 소희와 지윤이 차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의 제목 ‘소희로부터’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어쩌면 감독은 배려의 시선으로만 지은을 바라보았던 소희가 ‘함께 살 권리’를 가진 동료로서, 지은의 옆에 서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을까? 장애인이 동료 시민으로 거듭나는 것은 ‘권리’를 말하기 시작한 순간 이후의 일이니까 말이다.

주고 받은 ( ) : 노력

감독 한소리 | 2023 | 다큐 | 11분 2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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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보고자 하면 보일 것이고, 듣고자 하면 들릴 것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엄마에게 이 세상은 속삭임으로 가득 차 있다. 조용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말은 ‘입모양 읽기’로, 그 소리를 감각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줄곧 온갖 상점이나 은행, 동사무소, 공항 같은 곳에 엄마와 갈 때면 항상 나는 그녀를 대신해서 말했다. 그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게 20년 이상 지속되었다. 엄마가 직접 세상과 소통하는 대신 내가 나서는 게 요즘 사회에서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공항에서의 소통 또한 당연히 나의 몫이었는데, 엄마랑 나는 이제 이걸 깨보기로 했다. 엄마는 매일을 이루는 대화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오가는 공항이라 조금은 낯설기도 하지만, 엄마는 자신감 넘친다. 크고 작은 긴장과 걱정을 잔뜩 안고 있는 것은 오히려 나였다. 엄마의 옆자리에서 벗어나 멀찌감치 떨어져 엄마를 가만히 바라보고, 영상을 편집하는 내내 프레임 속의 엄마를 반복해서 보는 과정을 거치니 겁쟁이는 나였다는 걸 더더욱 깨닫는다.


인권평

나는 너를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주고 받았다

-장호경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살아오는 동안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그 마음을 소중히 할 줄 알고 너 때문이 아닌 내 탓으로 마음의 빚을 지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는 걸 배웠더라.”

엄마는 한 식당의 이 글귀를 읽는다. 딸은 엄마의 발음을 교정해 준다.

엄마는 청각장애인이다. 엄마는 입 모양을 읽고 입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인이 듣기에는 부정확하다. 딸은 그런 엄마를 대신해 세상과 소통한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엄마가 직접 세상과 소통하기로 한다. 엄마를 지켜보는 딸. 여행 내내 이어지는 딸과 엄마의 대화. 딸은 엄마가 음악을 어떻게 느끼고 춤을 추는지 궁금하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엄마의 세상이 궁금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딸과 엄마의 대화 내용을 이해하고 서사를 따라가는 감상은 그리 중요치 않다. 청각장애인인 엄마와 청인인 딸이 소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주고받고 있는가를 발견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감독은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화면분할 편집을 시도한다. 이 좌우 이분할 화면은 굉장히 흥미로운데 왼쪽과 오른쪽 모두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 위쪽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주로 말을 하고 있는 엄마의 시선은 위를 향하고 있고, 주로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딸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딸은 자신이 이야기할 때만 잠깐 잠깐씩 시선을 위로 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면에서는 말하는 엄마의 입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청인들은 청각장애인의 입말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감독은 편집 기법과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에게 이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엄마의 온전한 얼굴이 보였을 때, 눈만 보였을 때, 입만 보였을 때. 그리고 신기하게도 온전하게 엄마의 얼굴이 보였을 때가 엄마의 말을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하고 듣기, 소통의 매커니즘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무엇을 보고, 듣는가. 어떻게 보고, 듣는가에 대한 재경험. 단순한 소리 정보만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표정, 몸짓 같은 비언어적인 정보들과 소리 정보가 합쳐졌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나의 노력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대화는 이루어지고, 소통에 가까워진다.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에 빈 부분을 남겨두었다. ‘주고받은 ( ) : 노력’.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의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해 보자.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나는 괄호 안에 과연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인가.


그리운 어머니

감독 김홍기 | 2024 | 다큐 | 16분 20초 | 제작 노들야학 영화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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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오래전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의 꿈을 꾸었다.

올해는 비가 와서 어머니 산소가 걱정이 되어 가보고 싶었다.

야학에 가서 어머니 산소에 같이 갈 것을 부탁드렸다.

우리는 다 같이 묘지에 수북이 자란 풀을 뽑았다.

모두 땀을 많이 흘렸다.

우리들이 와서 어머니가 기뻤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 같이 와준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노들야학 영화반 인권평

우리의 영화는 우리가 만든다*

- 유지영(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그간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장애인 당사자가 감독으로서 만든 영화가 출품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비장애인 감독이 장애인 출연자를 담은 영화가 훨씬 더 많았다는 점은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올해로 어느덧 22회를 맞이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노들장애인야학 영화반 학생들이 감독으로 들고 온 다섯 편(무려!)의 영화를 소개할 수 있어 그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본다.

 

다섯 편의 영화를 다섯 명의 감독이 만들었기에 이들 영화가 담은 주제는 모두 다르다.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영화 ‘그리운 어머니’(감독 김홍기)는 그리움이라는 아주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으나 휠체어를 타고는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풀이 무성한 무덤가로 향하는 과정 자체의 어려움을 담기도 한다. 영화 '4월 어느 날 패러글라이딩'(감독 오지우)에서도 패러글라이딩을 통해 느끼는 (찰나의 해방감과 같은) 감정을 다루지만 역시나 그 찰나에 닿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을 무척 자세하게 보여준다.

 

물론 그중에는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반기지 않고 손쉽게 해고하는 차별적인 사회를 담아낸 영화 ‘해고 노동자 이야기’(감독 박지호)나 시설에서 경험한 삶을 나누고 비오는 날 우비를 쓴 채로 다시 시설에 찾아가 보는 영화 ‘우리는 말한다’(감독 조상지)처럼 뚜렷한 주제 의식을 갖고서 보다 직접적으로 장애인 당사자가 처한 현실을 말하는 작품도 있다.

 

또한 직접 그린 그림과 사진 등을 통해 담담하고 짧게 일상을 담은 ‘나의 오후는’(감독 서호영)에서는 긴 설명 없이도 장애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일을 말한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니, 일단 그것만으로도 재미는 보장돼 있다.

 

특히 장애인 당사자가 인터뷰 진행자가 돼 비장애인을 인터뷰하며 촬영하는 장면이나 전동휠체어에 탑승해 촬영한 덕에 등장할 수밖에 없는 흥미로운 앵글에서 의도하지 않은 전복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들이 노들야학 영화반의 영화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스크린을 통해 보는 장면을 잠시나마 상상해 본다. 그야말로 ‘우리의 영화는 우리가 만든다’는 말에 걸맞은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이들 영화를 보는 ‘일’이 하나의 ‘사건’이 돼, 영화를 만드는 계기로 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노들노래공장의 ‘우리의 노래는 우리가 만든다’(만수)는 문장을 단어만 ‘영화’로 바꿔서 사용했음을 밝힌다.


원더

감독 신재 | 2024 | 극 | 28분 5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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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성준은 소설 쓰기를 그만둔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동창 댄이 불쑥 성준을 찾아오고, 평온한 성준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인권평

나는 너의 이야기가 궁금해

-장호경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댄은 소설가 지망생이다. 최근 새로운 작업에 들어간 댄. 이번 작업의 주인공은 언어장애가 있어 문자로 소통하는 장애인이다. 아직 기획 단계에 머물러 있는 작업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듣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사람들은 문자로 소통한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다. 댄이 떠올린 주인공은 사실 대학시절 친구인 성준이다. 성준 또한 여러 번의 수상 경력도 있는 촉망받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소설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간다.

 

한편 댄은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돌입한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다 성준을 떠올리고, 취재 겸 오랜만에 그를 찾아간다. 컴퓨터를 앞에 놓고 술 한 잔 하며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댄은 성준이 대학 시절에 쓴 소설 ‘원더’를 좀 보여달라 요청한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소설을 꺼내보는 성준.

“그 땐 쓰는 것도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즐거웠는데...”

댄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성준에게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유를 설명하는 성준. 댄은 성준이 글을 쓰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다. 성준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인물을 등장시킨 첫 소설이었는데 완성시키지 못했다며, 내 감정도 쓰다보면 미지근해지는데 다른 인물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그럴싸한 거짓말만 하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이야기한다. 다음 날, 성준의 집에서 잔 댄은 비어있는 성준의 집을 둘러본다. 상자 안에 담겨 있는 성준의 상장들과 트로피, 그리고 그 옆에는 파스가 있다.

 

다시 합평 자리. 댄은 성준과 있었던 그 날의 일을 소설로 썼다. 솔직하고 정확한 글쓰기라는 고민, 문자로 한 글자, 한 글자씩 쓰는 성준에 대한 묘사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 소설을 좀 더 진전시키기 위해 아예 성준의 집으로 들어가는 댄. 댄과 성준의 동거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소설 쓰기를 그만 둔 성준, 두 번째는 성준이 모티브가 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완성시켜야 하는 댄, 그리고 세 번째는 두 사람의 만남이 가져다주는 변화이다.

 

성준은 왜 소설 쓰기를 그만두었나. 성준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파스까지 붙여 가며 어렵게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가야하는 육체적 한계도 느꼈을 것이다. 상장, 트로피와 함께 상자 안에 유폐시켜 놓은 파스는 성준의 이런 마음을 느끼게 해준다. 반면 이런 성준의 상황은 장애 때문에 갖는 어려움이긴 하지만 마치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다’라고 표현되는 글쓰기의 어려움, 글쓰기의 진정성 같은 것들에 대한 비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댄은 성준과 비교된다. 댄은 성준과의 대화에서 솔직하고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관찰해야 쓸 수 있는 글’을 쓴다고 칭찬한다. 댄은 주인공으로 상정된 성준을 관찰하고, 주인공으로서 개연성을 지닌 성준을 읽어내고자 한다. 솔직하고 정확한 글쓰기란 고민을 갖고 있는 성준은 발견하지만 내가 어떻게 솔직하고 정확한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성준의 ‘원더’가 완성되어야 댄의 소설도 완성된다. 이렇게 다른 지점에서 소설을 쓰는 두 사람은 며칠간의 동거를 통해 변화를 겪게 된다.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 자신에게 다른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 안의 이야기도 좋지만 영화 밖의 이야기도 좋다. 장애인 당사자를 소재로 하는 콘텐츠들이 어떤 관점에서 당사자를 다뤄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이는 댄을 통해 투영되는데 당사자를 잘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훌륭하지만 관찰에서만 그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많은 콘텐츠들에서 장애는 (흔히 대상화라 표현되는) 장애 당사자의 서사가 중심이 아닌 주변적 소재로서 등장하고, 어떤 현상을 (대개는 결핍과 관계의 문제) 은유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되곤 한다. 장애와 당사자를 잘 관찰하고 그의 신체가 움직이는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그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어떻게 당사자의 생각과 태도와 일상을 변화시키는지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자기 표현이 어려운 발달장애인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이나 비언어적 표현들에 대해 오랜 시간 관찰하고, 표현의 의미를 알아내는 적중률을 높이는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장애인 당사자와 관계를 맺을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 면에서 댄이 글을 쓰기 위해 성준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자신이 쓰던 소설을 휴지통에 넣는 장면은 통쾌하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장점은 비장애인 뿐만이 아니라 장애인도 변화한다는 점이다. 댄의 끈질긴 질문과 글에 대한 집요함은 잠자고 있던 성준의 글에 대한 욕망도 일깨운다. 다시 파스를 붙이며 밤새 글을 쓰는 성준의 모습은, 수혜자로서 대상으로서 주로 묘사되던 장애인 캐릭터를 뒤집는다. 섬처럼 자신의 질곡 속에 갇혀 있던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관계를 통해 변화하고, 새로운 지향을 꿈꾼다.


이사

감독 여인서 | 2021 | 다큐 |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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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점점 낡아가는 집이 못내 못마땅한 남실은 매일 유튜브에서 전원주택 매물을 검색해본다. 도시를 사랑하는 남편 선구와 달리 그녀는 서까래와 아궁이가 있는 시골집에서 살고 싶다. 한편 남실의 아들이자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청년인 인찬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동네 친구들, 선생님, 보이지 않는 관계망들이 인찬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한편 인찬의 누나인 감독은 이사를 가지도, 쿨하게 머물지도 않는 가족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동시에 인찬의 방보다 넓은 방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언젠가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집에 대한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가족은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게 될까?



인권평

집, 다양한 욕망들이 춤추는 공간

-홍성훈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 <이사>에는 어느 가족이 등장한다. 틈틈이 주택 탐방(?) 유튜브를 보는 남실과 만화와 그림에 열정을 쏟는 인찬, 그리고 둘의 모습을 찍는 ‘나’는 한 집에서 산다(틈틈이 아버지이자 남편인 선구도 등장하지만 앞선 세 사람에 비해 비중이 작은 편이다).

나날이 커가는 키를 색연필로 표시한 벽지가 너덜너덜해지고 고양이가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집.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조금만 더 시선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욕망들이 깃들어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가장 뚜렷하고 정확한 욕망을 이야기하는 이는 남실이다. 그는 서울을 떠나 서까래와 툇마루가 있고 아궁이로 불 떼는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 ‘나’는 남실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우리집 값이랑 저렇게 넓은 집값이랑 비슷하냐”
이때 돌아온 남실의 대답, “그러니까 왜 서울에서 살아야 되냐고.”

한편, 남실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리모델링했는데 이로 인해 인찬에게는 방이 하나 더 생긴다. 인찬은 그 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책을 마음껏 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좋아한다. 또한 인찬은 같이 그림 그릴 친구가 있는 동네를 사랑한다. ‘나’는 인찬의 모습을 보며 죄책감에서 벗어나 내심 마음을 놓는다. 아스퍼거 증후군 동생이 있음에도 더 많은 것을 독점하고 있었다는 죄책감을 느끼던 ‘나’였다. 그런 ‘나’는 조금씩 부모가 없는 세상에서 인찬과의 삶을 상상한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남실은 선뜻 자신의 욕망을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사랑하는 인찬에게 같이 가자고 설득하기 힘들뿐더러 ‘나’에게 인찬에 대한 부담감이 더 늘어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서다.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지금의 집으로 오기까지 스무 번도 넘는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아마 추측컨대 이사의 이유는 대부분 인찬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지지망이 있는 곳을 찾으러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인찬과 그림 그릴 수 있는 친구가 사는 그런 동네 말이다. 인찬은 다행히 그런 동네를 찾았고, 지금 만족해한다. 하지만 가족이 모든 삶의 조건을 장애인 구성원에 맞출 필요는 없다. 남실이 장애운동가의 길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실’이라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자신의 욕망을 쉽게 포기하지 않아서다.

과연 남실은 자신이 꿈꾸던 공간을 찾아 떠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동생 인찬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공존’할 수 있을까? 이후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 영화 <이사>다.


느린 걸음

감독 김해빈 | 2021 | 다큐 |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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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발달 장애 3급인 판정을 받은 아들 도현을 키우고 있는 선화와 민재. 장애 판정을 받은 지 좀 됐지만 장애인 등록은 하지 않았다. 진전이 되지 않는 도현의 상태. 그리고늘어만 가는 도현의 치료비에 빠듯해지는 생활. 선화는 도현의 치료와 지원비를 위해 장애인 등록 및 바우처 신청을 하기 바라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 대한 걱정을 하는 민재는 이를 반대한다.



인권평

장애등록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차별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지영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부부는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자녀를 두고 있다. 이들은 자녀의 교육비 때문에 생활에 허덕이면서도 혹여나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될까봐 장애인 등록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장애인으로 등록하면 교육비가 대부분 지원된다는데 그거 그냥 하면 안 될까? 장애 등록하지 말고 내가 주말까지 일해서 생활비는 더 벌면 되잖아. 부부 사이에는 어느덧 커다란 견해차가 생긴다.

16분 30초 분량으로 길이가 짧은 영화 ‘느린 걸음’에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는 어린 자녀를 둔 부부의 현실이 잘 드러난다. 젊은 부부는 모든 게 처음이어서인지 아이 앞에서도 자주 무너지는 모습을 드러낸다. 발달장애 자녀의 돌봄을 부부라는 개인이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영화는 아득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희망이나 화해를 말하지 않는다. 관객들은 이들 부부의 갈등이 쉽게 해결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등록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차별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차별을 만드는 건 장애등록 그 자체가 아닌 사회다. 영화가 그 점을 짚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쉽다. 영화는 부부가 처한 현실을 사회가 아닌 개인의 영역으로 자주 끌고 들어간다. 부부는 자주 무너져서 울고 차별로 인해 장애등록이 단순히 ‘선택’이 아닌 갈등의 요소가 된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영화는 거기서 그친다.

그렇기에 더욱 영화 ‘느린 걸음’ 밖으로 시선을 확장해봄 직하다. 이 영화를 보고난 뒤 관객들이 나눌 말이 풍성해지기를 기대한다.


여우와 두루미(부제 : 초대전쟁)

감독 양준서 | 2020 | 극 |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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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절친 사이인 한 장애인이 비장애인 친구를 식사 초대 하면서 시작된다. 비장애인이 집들이 겸 장애인 친구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지만, 나루에 집에는 그릇과 포크가 단 2개뿐. 먼저들 먹으라고 하고 주식은 나무젓가락이라도 얻기 위해 편의점으로 간다. 하지만, 친구는 이미 식사를 다 마친 상황. 물론 주식의 몫까지.

기분이 상한 주식은 복수를 다짐하고, 나루를 집으로 초대한다. 물론 나루가 먹기 힘든 음식과 포크를 준비하지 않고서 말이다. 결국 나루도 기분이 상하게 되고, 둘의 초대 전쟁은 시작된다.



인권평

-김유미 (1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희화화하지 않고 웃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일상에서 자주 느낀다. 장애를 둘러싼 여러 표현들은 정치적 긴장 속에 있을 때가 많다. 웃고 욕하는 일상의 작은 표현들 속에 손쉬운 빗댐과 무신경한 대상화가 있다. 장애와 장애인은 손쉬운 욕지거리 표현이 되는가 하면, 실수할까 두려워 말 건네기 어려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우와 두루미’를 보며 오랜만에 크게 웃을 수 있었다. 비장애인보다 장애인 배우가 훨씬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라 얼떨떨한데, 배우들은 ‘어라 이거 장애차별 아니야?’ 싶게 헷갈리는 짓궂은 장난들을 주고받는다.

나루와 주식, 이들은 서로를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절친한 사이이다. 나루는 집에 놀러온 친구 주식에게 짜파게티를 끓이게 하고, 주식이 젓가락을 찾으러 간 사이 여자 친구와 함께 짜파게티를 홀랑 다 먹어버린다. 뇌병변장애인인 나루의 집엔 젓가락이 없고, 포크만 딱 두 개가 있을 뿐이다. 약이 오른 주식은 콩자반과 젓가락으로 복수를 기약하고 나루를 집으로 초대해 작은 승리를 거둔 뒤 낄낄거린다. 영화는 이 과정을 유머 가득하게, 대놓고 웃기는 방식으로 담고 있다.

장애, 비장애의 관계 속에서 대놓고 약 올리고 웃기는 일이 가능한 건, 이들 관계에 쌓인 힘의 균형 덕분 아닐까 싶다. 어느 한 쪽으로 쉽게 찌그러지는, 불균형한 힘의 관계에선 우정이나 유머가 어렵다. 우리 사회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힘의 불균형 속에 처할 때가 많다. 물론 힘의 열세는 대체로 장애인 쪽이다.

이 작품은 인천의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배경으로 촬영된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에 오랜 기간 장애인,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부대끼며 가꿔온 민들레 공동체의 경험과 힘이 깔려있다고 본다. 장애와 비장애의 구획을 넘어 유머와 자유를 경험하는 공동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짜장 범벅이 된 입으로 활짝 웃는 나루의 얼굴과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싹싹 긁어먹으며 기뻐하는 쪼잔한 주식의 모습 덕에 더 잘 웃을 수 있는, 반가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