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기

감독 공새롬, 민다홍   | 2023 | 극 | 23분 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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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오랫동안 가족을 돌봐야 했던 홍은 돌연 부산행을 택한다. 결혼은 싫지만 혼자 사는 것은 심심할까봐 걱정인 새롬은 부산살이를 시작하려는 홍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한다. 같은 거라곤 성별뿐인 극과 극의 두 사람이지만 함께 생활하며 룸메이트에서 서서히 가족이 되어간다. 청력 손실과 파혼 그리고 실직으로 아직도 성장통을 겪고 있는 서른 중반의 두 사람이 같이 사는 이야기.


인권평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

-홍성훈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걸까? 일정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공동의 생활방식을 정립해 나가며 마음을 교류한다는 것은 품이 꽤 들어가는 일이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으로부터 벌써 여덟 해를 보낸 나로서는 혼자 사는 삶이 익숙하고 편하다. 물론 나는 중증장애인 당사자인지라 하루 중 열여섯 시간을 활동지원사분들과 함께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생활영역이 침범당하지 않을 때의 일이다. 만약 어느 날 내가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된다면, 나의 생활영역을 공유해야 한다면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바로 대답이 나오진 않는다.

 

제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출품작 <같이 살기>(감독 : 민다홍)는 서로의 ‘곁’을 내어주는 두 여성, 홍과 새롬의 이야기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홍(영화 자막에는 본인을 ‘홍’으로 지칭한다)이 부산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부산에는 홍의 친구인 새롬이 있다. 홍이 부산에 가는 이유는 검은 화면에 텍스트로 제시되는데, 홍이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이야기가 쓰여 있다. 홍은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스트레스로 인해 서서히 청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홍을 맞아준 것은 새롬이다. 새롬과 홍은 부산에서 함께 살 집을 구하고 함께 살기 시작한다. 새롬 또한 결혼을 준비했다가 다시 혼자가 된 여성으로서 살고 있다. 새롬과 홍은 강아지 장고, 뚱이와 동거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생활은 엄연한 현실이다. 직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생활 공간에서도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조금씩 삐그덕댄다. 각자 생각하는 설거지 타이밍이 다른 점이라든지, 두 사람은 같이 살면서 서로가 다른 점을 발견해 낸다. 하지만 둘의 다름이 함께 살기의 위태로움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은 것은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들을 수 있는 ‘곁’을 내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홍과 새롬이 함께 맞는 노년을 상상하면서 나누는 이야기 장면에 있다.

 

위기는 밖에서 온다. 홍의 청력손실은 부산에서 얻은 일자리를 잃게 하는 ‘장애’가 된다. 청력손실이 곧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능력의 장애로 인식되면서 초래된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홍만이 아니었다. 2019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기업들은 인력감축으로 돌파구를 마련했고, 그 파도는 새롬에게까지 덮친다. 새롬 또한 인력감축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홍과 새롬은 슬기롭게 대처한다. 홍은 새롬의 부모님 집 창고를 빌려 본인의 명의로 ‘드론 촬영 사업장’을 만들고 홍보를 시작한다. 드론 촬영은 소리를 잘 들을 수 없어도 홍의 재능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홍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밝다. 새롬도 새로운 직장을 찾기 시작한다.

 

영화는 홍과 새롬이 그루트를 심는 장면에서 끝난다. 영화는 큰 갈등과 극적인 결말 없이 끝나지만 그럼에도 프레임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건 아마도 나도 모르게 둘이 앞으로 함께할 삶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프레임 화면을 가득 채운 저녁 노을빛처럼. 관객들도 ‘같이 살기’의 넉넉함을 느껴보길 바란다.

나의 세개

감독 김종률 | 2023 | 극 | 30분 5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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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전 보치아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보국은 경기 규정 변경으로 국가대표에서 탈락하고 매우 무기력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본인의 전 코치였던 생활체육협회 권 이사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보치아 클럽을 맡아 지도에 줄 것을 요청하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전 국가대표선수가 자신들을 가르치러 왔다는 소식에 나눔보치아클럽 참여자들은 처음엔 연습시간마다 무관심과 불평불만으로 일관하다가 보국에 의해 조금씩 성장하고 변하여 보치아를 재미있게 즐기는 분위기로 바뀌고 이에 힘을 얻은 보국도 다시 국가대표에 도전한다.


인권평

느림 속에 긴장감을 주는 우리들의 보치아

-김상희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비장애중심의 사회에서 스포츠 종목 대부분 빠른 속도와 순발력이 요구된다. 잽싸고 빠르게 몸을 움직이는 스포츠를 보며 관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소리친다. 영화 ‘나의 세개’는 스포츠 영화이지만, 앞에 비장애중심의 스포츠와 다르다.

 

장애인 단체에 있다 보면 한 번쯤 들어볼 법한 용어인 보치아에 관한 내용이다. 보치아는 뇌병변 장애인들을 위해 처음 시작된 운동 경기이며, 지금은 다양한 장애유형들이 함께 즐기는 스포츠이다. 이 경기는 양팀으로 나눠 흰색 표적 공 중심으로 파란 공과 빨간 공을 던져 흰색 공과 가까운 거리에 따라 점수가 계산된다. 많은 장애인이 취미 활동 혹은 전문 선수로 활약하며 매우 중요한 운동 경기로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인 만큼 경기 진행에 대한 기술과 참여자를 잘 이끌어갈 리더쉽이 부재한다면 재미없는 공놀이로 전락될 수도 있다.

 

영화 ‘나의 세개’에서도 보치아 클럽이 운영되고 있지만, 모두 지루해하고 아무 의욕이 없는 참여자들이 나온다. 보치아 클럽을 운영 중인 생활체육협회 권이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고심하며 해결책으로 전 보치아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보국을 섭외한다. 보국은 경기 규정 변경으로 국가대표에서 탈락하고 자포자기한 삶을 살아가던 가운데 전 코치였던 권이사의 제안에 선뜻 하겠다고 말은 못 했지만, 결국 수락하며 보치아클럽의 코치로 다시 시작한다.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보치아클럽 멤버들에게 보국은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며 보치아만의 재미를 가르치고 무기력하기만 했던 분위기도 바꾼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영화 내용 소재로 쓰인 보치아에 대해 생각해 봤다. 사실 나는 보치아를 할 줄 모른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해 본 뒤로 보치아를 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소속 센터에서 보치아 교실과 대회를 운영하며 옆에서 가끔 구경하며 보치아가 주는 긴장감을 느껴왔다.

 

보치아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장애유형을 가진 장애인들이라 공을 던지는 모습이 다 다르다. 느린 동작과 떨리는 손으로 꽉 쥔 공이 언제, 어느 방향으로 굴러갈지 몰라서 손에 땀이 나도록 긴장된다. 강직이 심해서 원하던 방향으로 공이 안 가 실망한 표정을 하고 있는 참여자들을 보면 나도 같이 아쉬움을 느낀다. 양손 사용이 어려운 참여자가 홈통을 이용해 방향 조절을 해서 기막히게 표적 공에 맞추는 걸 보면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이것이 다른 감각의 긴장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느림 속에 긴장감, 그것이 보치아의 매력이다.

 

끝으로 영화 속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찾을 수 있었다. 보치아 클럽의 운영 담당자가 참여자들을 대하는 말투와 태도이다. 참여자들을 부르는 호칭을 조금 더 존중감 있게 바뀌었으면 좋겠고, 어린아이 달래는 식의 태도보다 평등한 대화법으로 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인권 영화를 목적으로 기획했다면 조금 더 앞으로 나갔으면 한다. 인권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관점의 성찰은 하면 할수록 끝이 없다.

소희로부터

감독 정창영 | 2023 | 극 | 29분 1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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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소희는 인턴사원 지윤을 만나게 된다. 지윤은 생애 첫 직장생활에 설렘이 가득하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시간, 티타임을 망설이는 지윤. 소희는 그런 지윤의 행동이 궁금해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소희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장애인의 삶과 장애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뒤늦게 깨달으며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인권평

배려가 아닌 권리의 시선으로부터

-홍성훈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어느 시인의 말처럼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또 하나의 우주가 굴러들어 오는 일과 같다. 우리는 그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우주’가 너무 넓은 나머지 ‘나의 우주’가 돌이킬 수 없이 바뀌는 일도 종종 생긴다. 그를 통해 내가 변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지킬 것인가? 판단은 각자의 몫에 달려 있다.

 

영화 <소희로부터>는 비장애인인 소희가 직장에 인턴사원으로 들어온 지윤을 통해 알지 못했던 세계의 조각들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지윤은 휠체어를 탄 장애여성이다. 지윤이 출근하기 하루 전날, 직장동료들은 지윤의 이야기를 나눈다. 지윤의 이야기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은 그의 ‘장애’다. 동료들은 혹시나 장애로 인해 지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소희는 미리 판단을 내리지 말자고 한다. 다음날 제일 먼저 지윤이 사무실에 출근하고, 미리 책상 정리를 마친다. 소희는 지윤과 인사를 하며 자신이 한 달 동안 사수를 맡게 되었다고 말하고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뭐든 물어보라고 한다. 지윤은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고 주어진 업무를 곧잘 한다.

 

이렇듯 사수로서의 소희와 인턴인 지윤은 서로 잘 맞는 듯하지만 묘하게 어긋나는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소희가 지윤에게 티타임을 제안하지만, 지윤이 거절하거나,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식사 자리를 제안해도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꺼내며 식당에 다녀오라고 말한다. 상냥하지만 어딘가 뼈 있는 거절을 받은 듯한 소희는 자신의 어떤 면이 지윤에게 불편한 지점으로 다가오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소희는 지윤에게 정면으로 묻는다. 자신이 불편하냐고. 지윤은 그런 건 아니라고 답하지만 어쩐지 할말을 다 하지 못한 사람처럼 표정을 짓는다. 소희는 이때다 싶어 지윤에게 그러면 다음 날 같이 점심을 먹자고 제안하고 지윤은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어 제안을 받아들인다.

 

다음날 지윤과 점심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선 소희는 자신이 알던 세계가 조금씩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자주 가던 식당에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턱이 있었고, 휠체어가 갈 만한 곳은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더군다나 겨우 두 사람이 들어간 식당에서는 전동휠체어를 탄 지윤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민들과 마주해야 했다. 식사 후 편의점에 앉아 같이 커피를 마시던 소희가 지윤에게 화가 나지 않냐고 묻는다. 지윤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짓는데, 이어지는 화면에는 지윤이 마주한 물리적인 턱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턱’들, 예를 들면 지윤이 일을 구하는 과정에서 들었던 장애인을 향한 수많은 차별과 편견 섞인 말들이 나온다. 그 말을 들은 지윤은 어느샌가 비장애인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자’라고 마음먹었고, 그 마음이 지윤이 소희에게 ‘선을 긋는 태도’로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소희는 알게 된 지윤의 세계로부터 도망치지 않기로 한다. 지윤과 함께 회사 주변을 돌아본 소희의 눈에는 전에 보이지 않았던 ‘턱’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한다. 소희는 혼자 길거리를 가는 동안에도 턱 앞에서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거나, 턱을 오르고 내려가면서 단차를 넘을 수 없는 지윤을 생각한다. 그제야 묘하게 어긋나 보였던 지윤의 세계가 이어진다. 소희는 먼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행동한다. 그 첫 번째는 회사 내 탕비실에 있는 티백이나 커피 스틱들을 지윤의 손에 닿는 위치로 옮겨놓는 일이다. 지윤은 이제 본인도 차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환하게 웃고, 소희와 지윤이 차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의 제목 ‘소희로부터’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어쩌면 감독은 배려의 시선으로만 지은을 바라보았던 소희가 ‘함께 살 권리’를 가진 동료로서, 지은의 옆에 서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을까? 장애인이 동료 시민으로 거듭나는 것은 ‘권리’를 말하기 시작한 순간 이후의 일이니까 말이다.

주고 받은 ( ) : 노력

감독 한소리 | 2023 | 다큐 | 11분 2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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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보고자 하면 보일 것이고, 듣고자 하면 들릴 것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엄마에게 이 세상은 속삭임으로 가득 차 있다. 조용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말은 ‘입모양 읽기’로, 그 소리를 감각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줄곧 온갖 상점이나 은행, 동사무소, 공항 같은 곳에 엄마와 갈 때면 항상 나는 그녀를 대신해서 말했다. 그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게 20년 이상 지속되었다. 엄마가 직접 세상과 소통하는 대신 내가 나서는 게 요즘 사회에서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공항에서의 소통 또한 당연히 나의 몫이었는데, 엄마랑 나는 이제 이걸 깨보기로 했다. 엄마는 매일을 이루는 대화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오가는 공항이라 조금은 낯설기도 하지만, 엄마는 자신감 넘친다. 크고 작은 긴장과 걱정을 잔뜩 안고 있는 것은 오히려 나였다. 엄마의 옆자리에서 벗어나 멀찌감치 떨어져 엄마를 가만히 바라보고, 영상을 편집하는 내내 프레임 속의 엄마를 반복해서 보는 과정을 거치니 겁쟁이는 나였다는 걸 더더욱 깨닫는다.


인권평

나는 너를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주고 받았다

-장호경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살아오는 동안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그 마음을 소중히 할 줄 알고 너 때문이 아닌 내 탓으로 마음의 빚을 지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는 걸 배웠더라.”

엄마는 한 식당의 이 글귀를 읽는다. 딸은 엄마의 발음을 교정해 준다.

엄마는 청각장애인이다. 엄마는 입 모양을 읽고 입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인이 듣기에는 부정확하다. 딸은 그런 엄마를 대신해 세상과 소통한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엄마가 직접 세상과 소통하기로 한다. 엄마를 지켜보는 딸. 여행 내내 이어지는 딸과 엄마의 대화. 딸은 엄마가 음악을 어떻게 느끼고 춤을 추는지 궁금하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엄마의 세상이 궁금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딸과 엄마의 대화 내용을 이해하고 서사를 따라가는 감상은 그리 중요치 않다. 청각장애인인 엄마와 청인인 딸이 소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주고받고 있는가를 발견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감독은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화면분할 편집을 시도한다. 이 좌우 이분할 화면은 굉장히 흥미로운데 왼쪽과 오른쪽 모두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 위쪽이 클로즈업되어 있다. 주로 말을 하고 있는 엄마의 시선은 위를 향하고 있고, 주로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딸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딸은 자신이 이야기할 때만 잠깐 잠깐씩 시선을 위로 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면에서는 말하는 엄마의 입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

 

청인들은 청각장애인의 입말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감독은 편집 기법과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에게 이것을 경험하게 해준다. 엄마의 온전한 얼굴이 보였을 때, 눈만 보였을 때, 입만 보였을 때. 그리고 신기하게도 온전하게 엄마의 얼굴이 보였을 때가 엄마의 말을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하고 듣기, 소통의 매커니즘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무엇을 보고, 듣는가. 어떻게 보고, 듣는가에 대한 재경험. 단순한 소리 정보만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표정, 몸짓 같은 비언어적인 정보들과 소리 정보가 합쳐졌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나의 노력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대화는 이루어지고, 소통에 가까워진다.

 

감독은 이 영화의 제목에 빈 부분을 남겨두었다. ‘주고받은 ( ) : 노력’.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의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해 보자.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 나는 괄호 안에 과연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인가.


그리운 어머니

감독 김홍기 | 2024 | 다큐 | 16분 20초 | 제작 노들야학 영화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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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오래전 부모님과 함께 살았을 때의 꿈을 꾸었다.

올해는 비가 와서 어머니 산소가 걱정이 되어 가보고 싶었다.

야학에 가서 어머니 산소에 같이 갈 것을 부탁드렸다.

우리는 다 같이 묘지에 수북이 자란 풀을 뽑았다.

모두 땀을 많이 흘렸다.

우리들이 와서 어머니가 기뻤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 같이 와준 사람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노들야학 영화반 인권평

우리의 영화는 우리가 만든다*

- 유지영(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그간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장애인 당사자가 감독으로서 만든 영화가 출품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비장애인 감독이 장애인 출연자를 담은 영화가 훨씬 더 많았다는 점은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올해로 어느덧 22회를 맞이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노들장애인야학 영화반 학생들이 감독으로 들고 온 다섯 편(무려!)의 영화를 소개할 수 있어 그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본다.

 

다섯 편의 영화를 다섯 명의 감독이 만들었기에 이들 영화가 담은 주제는 모두 다르다.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영화 ‘그리운 어머니’(감독 김홍기)는 그리움이라는 아주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으나 휠체어를 타고는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풀이 무성한 무덤가로 향하는 과정 자체의 어려움을 담기도 한다. 영화 '4월 어느 날 패러글라이딩'(감독 오지우)에서도 패러글라이딩을 통해 느끼는 (찰나의 해방감과 같은) 감정을 다루지만 역시나 그 찰나에 닿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을 무척 자세하게 보여준다.

 

물론 그중에는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반기지 않고 손쉽게 해고하는 차별적인 사회를 담아낸 영화 ‘해고 노동자 이야기’(감독 박지호)나 시설에서 경험한 삶을 나누고 비오는 날 우비를 쓴 채로 다시 시설에 찾아가 보는 영화 ‘우리는 말한다’(감독 조상지)처럼 뚜렷한 주제 의식을 갖고서 보다 직접적으로 장애인 당사자가 처한 현실을 말하는 작품도 있다.

 

또한 직접 그린 그림과 사진 등을 통해 담담하고 짧게 일상을 담은 ‘나의 오후는’(감독 서호영)에서는 긴 설명 없이도 장애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일을 말한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니, 일단 그것만으로도 재미는 보장돼 있다.

 

특히 장애인 당사자가 인터뷰 진행자가 돼 비장애인을 인터뷰하며 촬영하는 장면이나 전동휠체어에 탑승해 촬영한 덕에 등장할 수밖에 없는 흥미로운 앵글에서 의도하지 않은 전복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들이 노들야학 영화반의 영화를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스크린을 통해 보는 장면을 잠시나마 상상해 본다. 그야말로 ‘우리의 영화는 우리가 만든다’는 말에 걸맞은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이들 영화를 보는 ‘일’이 하나의 ‘사건’이 돼, 영화를 만드는 계기로 피어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노들노래공장의 ‘우리의 노래는 우리가 만든다’(만수)는 문장을 단어만 ‘영화’로 바꿔서 사용했음을 밝힌다.


원더

감독 신재 | 2024 | 극 | 28분 5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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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성준은 소설 쓰기를 그만둔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동창 댄이 불쑥 성준을 찾아오고, 평온한 성준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인권평

나는 너의 이야기가 궁금해

-장호경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댄은 소설가 지망생이다. 최근 새로운 작업에 들어간 댄. 이번 작업의 주인공은 언어장애가 있어 문자로 소통하는 장애인이다. 아직 기획 단계에 머물러 있는 작업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듣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사람들은 문자로 소통한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다. 댄이 떠올린 주인공은 사실 대학시절 친구인 성준이다. 성준 또한 여러 번의 수상 경력도 있는 촉망받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소설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간다.

 

한편 댄은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돌입한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다 성준을 떠올리고, 취재 겸 오랜만에 그를 찾아간다. 컴퓨터를 앞에 놓고 술 한 잔 하며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댄은 성준이 대학 시절에 쓴 소설 ‘원더’를 좀 보여달라 요청한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소설을 꺼내보는 성준.

“그 땐 쓰는 것도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즐거웠는데...”

댄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성준에게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유를 설명하는 성준. 댄은 성준이 글을 쓰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다. 성준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인물을 등장시킨 첫 소설이었는데 완성시키지 못했다며, 내 감정도 쓰다보면 미지근해지는데 다른 인물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그럴싸한 거짓말만 하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이야기한다. 다음 날, 성준의 집에서 잔 댄은 비어있는 성준의 집을 둘러본다. 상자 안에 담겨 있는 성준의 상장들과 트로피, 그리고 그 옆에는 파스가 있다.

 

다시 합평 자리. 댄은 성준과 있었던 그 날의 일을 소설로 썼다. 솔직하고 정확한 글쓰기라는 고민, 문자로 한 글자, 한 글자씩 쓰는 성준에 대한 묘사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 소설을 좀 더 진전시키기 위해 아예 성준의 집으로 들어가는 댄. 댄과 성준의 동거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소설 쓰기를 그만 둔 성준, 두 번째는 성준이 모티브가 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완성시켜야 하는 댄, 그리고 세 번째는 두 사람의 만남이 가져다주는 변화이다.

 

성준은 왜 소설 쓰기를 그만두었나. 성준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파스까지 붙여 가며 어렵게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가야하는 육체적 한계도 느꼈을 것이다. 상장, 트로피와 함께 상자 안에 유폐시켜 놓은 파스는 성준의 이런 마음을 느끼게 해준다. 반면 이런 성준의 상황은 장애 때문에 갖는 어려움이긴 하지만 마치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다’라고 표현되는 글쓰기의 어려움, 글쓰기의 진정성 같은 것들에 대한 비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댄은 성준과 비교된다. 댄은 성준과의 대화에서 솔직하고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관찰해야 쓸 수 있는 글’을 쓴다고 칭찬한다. 댄은 주인공으로 상정된 성준을 관찰하고, 주인공으로서 개연성을 지닌 성준을 읽어내고자 한다. 솔직하고 정확한 글쓰기란 고민을 갖고 있는 성준은 발견하지만 내가 어떻게 솔직하고 정확한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성준의 ‘원더’가 완성되어야 댄의 소설도 완성된다. 이렇게 다른 지점에서 소설을 쓰는 두 사람은 며칠간의 동거를 통해 변화를 겪게 된다.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 자신에게 다른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 안의 이야기도 좋지만 영화 밖의 이야기도 좋다. 장애인 당사자를 소재로 하는 콘텐츠들이 어떤 관점에서 당사자를 다뤄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이는 댄을 통해 투영되는데 당사자를 잘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훌륭하지만 관찰에서만 그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많은 콘텐츠들에서 장애는 (흔히 대상화라 표현되는) 장애 당사자의 서사가 중심이 아닌 주변적 소재로서 등장하고, 어떤 현상을 (대개는 결핍과 관계의 문제) 은유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되곤 한다. 장애와 당사자를 잘 관찰하고 그의 신체가 움직이는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그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어떻게 당사자의 생각과 태도와 일상을 변화시키는지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자기 표현이 어려운 발달장애인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이나 비언어적 표현들에 대해 오랜 시간 관찰하고, 표현의 의미를 알아내는 적중률을 높이는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장애인 당사자와 관계를 맺을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 면에서 댄이 글을 쓰기 위해 성준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자신이 쓰던 소설을 휴지통에 넣는 장면은 통쾌하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장점은 비장애인 뿐만이 아니라 장애인도 변화한다는 점이다. 댄의 끈질긴 질문과 글에 대한 집요함은 잠자고 있던 성준의 글에 대한 욕망도 일깨운다. 다시 파스를 붙이며 밤새 글을 쓰는 성준의 모습은, 수혜자로서 대상으로서 주로 묘사되던 장애인 캐릭터를 뒤집는다. 섬처럼 자신의 질곡 속에 갇혀 있던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관계를 통해 변화하고, 새로운 지향을 꿈꾼다.


이사

감독 여인서 | 2021 | 다큐 |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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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점점 낡아가는 집이 못내 못마땅한 남실은 매일 유튜브에서 전원주택 매물을 검색해본다. 도시를 사랑하는 남편 선구와 달리 그녀는 서까래와 아궁이가 있는 시골집에서 살고 싶다. 한편 남실의 아들이자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청년인 인찬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동네 친구들, 선생님, 보이지 않는 관계망들이 인찬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한편 인찬의 누나인 감독은 이사를 가지도, 쿨하게 머물지도 않는 가족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동시에 인찬의 방보다 넓은 방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언젠가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집에 대한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가족은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게 될까?



인권평

집, 다양한 욕망들이 춤추는 공간

-홍성훈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 <이사>에는 어느 가족이 등장한다. 틈틈이 주택 탐방(?) 유튜브를 보는 남실과 만화와 그림에 열정을 쏟는 인찬, 그리고 둘의 모습을 찍는 ‘나’는 한 집에서 산다(틈틈이 아버지이자 남편인 선구도 등장하지만 앞선 세 사람에 비해 비중이 작은 편이다).

나날이 커가는 키를 색연필로 표시한 벽지가 너덜너덜해지고 고양이가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집.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조금만 더 시선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욕망들이 깃들어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가장 뚜렷하고 정확한 욕망을 이야기하는 이는 남실이다. 그는 서울을 떠나 서까래와 툇마루가 있고 아궁이로 불 떼는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 ‘나’는 남실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우리집 값이랑 저렇게 넓은 집값이랑 비슷하냐”
이때 돌아온 남실의 대답, “그러니까 왜 서울에서 살아야 되냐고.”

한편, 남실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리모델링했는데 이로 인해 인찬에게는 방이 하나 더 생긴다. 인찬은 그 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책을 마음껏 보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며 좋아한다. 또한 인찬은 같이 그림 그릴 친구가 있는 동네를 사랑한다. ‘나’는 인찬의 모습을 보며 죄책감에서 벗어나 내심 마음을 놓는다. 아스퍼거 증후군 동생이 있음에도 더 많은 것을 독점하고 있었다는 죄책감을 느끼던 ‘나’였다. 그런 ‘나’는 조금씩 부모가 없는 세상에서 인찬과의 삶을 상상한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남실은 선뜻 자신의 욕망을 실천에 옮기지 못한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사랑하는 인찬에게 같이 가자고 설득하기 힘들뿐더러 ‘나’에게 인찬에 대한 부담감이 더 늘어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서다. 자세한 설명은 나오지 않지만 지금의 집으로 오기까지 스무 번도 넘는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아마 추측컨대 이사의 이유는 대부분 인찬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지지망이 있는 곳을 찾으러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인찬과 그림 그릴 수 있는 친구가 사는 그런 동네 말이다. 인찬은 다행히 그런 동네를 찾았고, 지금 만족해한다. 하지만 가족이 모든 삶의 조건을 장애인 구성원에 맞출 필요는 없다. 남실이 장애운동가의 길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실’이라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자신의 욕망을 쉽게 포기하지 않아서다.

과연 남실은 자신이 꿈꾸던 공간을 찾아 떠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동생 인찬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공존’할 수 있을까? 이후의 이야기가 더 궁금한 영화 <이사>다.


느린 걸음

감독 김해빈 | 2021 | 다큐 |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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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발달 장애 3급인 판정을 받은 아들 도현을 키우고 있는 선화와 민재. 장애 판정을 받은 지 좀 됐지만 장애인 등록은 하지 않았다. 진전이 되지 않는 도현의 상태. 그리고늘어만 가는 도현의 치료비에 빠듯해지는 생활. 선화는 도현의 치료와 지원비를 위해 장애인 등록 및 바우처 신청을 하기 바라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 대한 걱정을 하는 민재는 이를 반대한다.



인권평

장애등록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차별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지영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부부는 발달장애 판정을 받은 자녀를 두고 있다. 이들은 자녀의 교육비 때문에 생활에 허덕이면서도 혹여나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될까봐 장애인 등록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장애인으로 등록하면 교육비가 대부분 지원된다는데 그거 그냥 하면 안 될까? 장애 등록하지 말고 내가 주말까지 일해서 생활비는 더 벌면 되잖아. 부부 사이에는 어느덧 커다란 견해차가 생긴다.

16분 30초 분량으로 길이가 짧은 영화 ‘느린 걸음’에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장애가 있는 어린 자녀를 둔 부부의 현실이 잘 드러난다. 젊은 부부는 모든 게 처음이어서인지 아이 앞에서도 자주 무너지는 모습을 드러낸다. 발달장애 자녀의 돌봄을 부부라는 개인이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영화는 아득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희망이나 화해를 말하지 않는다. 관객들은 이들 부부의 갈등이 쉽게 해결되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등록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차별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차별을 만드는 건 장애등록 그 자체가 아닌 사회다. 영화가 그 점을 짚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쉽다. 영화는 부부가 처한 현실을 사회가 아닌 개인의 영역으로 자주 끌고 들어간다. 부부는 자주 무너져서 울고 차별로 인해 장애등록이 단순히 ‘선택’이 아닌 갈등의 요소가 된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영화는 거기서 그친다.

그렇기에 더욱 영화 ‘느린 걸음’ 밖으로 시선을 확장해봄 직하다. 이 영화를 보고난 뒤 관객들이 나눌 말이 풍성해지기를 기대한다.


여우와 두루미(부제 : 초대전쟁)

감독 양준서 | 2020 | 극 |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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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절친 사이인 한 장애인이 비장애인 친구를 식사 초대 하면서 시작된다. 비장애인이 집들이 겸 장애인 친구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지만, 나루에 집에는 그릇과 포크가 단 2개뿐. 먼저들 먹으라고 하고 주식은 나무젓가락이라도 얻기 위해 편의점으로 간다. 하지만, 친구는 이미 식사를 다 마친 상황. 물론 주식의 몫까지.

기분이 상한 주식은 복수를 다짐하고, 나루를 집으로 초대한다. 물론 나루가 먹기 힘든 음식과 포크를 준비하지 않고서 말이다. 결국 나루도 기분이 상하게 되고, 둘의 초대 전쟁은 시작된다.



인권평

-김유미 (1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희화화하지 않고 웃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일상에서 자주 느낀다. 장애를 둘러싼 여러 표현들은 정치적 긴장 속에 있을 때가 많다. 웃고 욕하는 일상의 작은 표현들 속에 손쉬운 빗댐과 무신경한 대상화가 있다. 장애와 장애인은 손쉬운 욕지거리 표현이 되는가 하면, 실수할까 두려워 말 건네기 어려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우와 두루미’를 보며 오랜만에 크게 웃을 수 있었다. 비장애인보다 장애인 배우가 훨씬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라 얼떨떨한데, 배우들은 ‘어라 이거 장애차별 아니야?’ 싶게 헷갈리는 짓궂은 장난들을 주고받는다.

나루와 주식, 이들은 서로를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절친한 사이이다. 나루는 집에 놀러온 친구 주식에게 짜파게티를 끓이게 하고, 주식이 젓가락을 찾으러 간 사이 여자 친구와 함께 짜파게티를 홀랑 다 먹어버린다. 뇌병변장애인인 나루의 집엔 젓가락이 없고, 포크만 딱 두 개가 있을 뿐이다. 약이 오른 주식은 콩자반과 젓가락으로 복수를 기약하고 나루를 집으로 초대해 작은 승리를 거둔 뒤 낄낄거린다. 영화는 이 과정을 유머 가득하게, 대놓고 웃기는 방식으로 담고 있다.

장애, 비장애의 관계 속에서 대놓고 약 올리고 웃기는 일이 가능한 건, 이들 관계에 쌓인 힘의 균형 덕분 아닐까 싶다. 어느 한 쪽으로 쉽게 찌그러지는, 불균형한 힘의 관계에선 우정이나 유머가 어렵다. 우리 사회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힘의 불균형 속에 처할 때가 많다. 물론 힘의 열세는 대체로 장애인 쪽이다.

이 작품은 인천의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배경으로 촬영된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에 오랜 기간 장애인,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부대끼며 가꿔온 민들레 공동체의 경험과 힘이 깔려있다고 본다. 장애와 비장애의 구획을 넘어 유머와 자유를 경험하는 공동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짜장 범벅이 된 입으로 활짝 웃는 나루의 얼굴과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싹싹 긁어먹으며 기뻐하는 쪼잔한 주식의 모습 덕에 더 잘 웃을 수 있는, 반가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