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다 배우다 얻다
2024 | 23’ 51“ | 다큐 | 황나라
배리어프리 ⭕
시놉시스
“나는 그냥 학교에 안 가는 건가보다 했어요”
학교에 데려가는 사람이 없어 오랜 시간 집 지키는 사람으로 살았던 장애인이 있다. 야학은 단순히 장애인이 공부하는 건물을 넘어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배우고 사람을 얻는 공간으로 발전한다. 그 과정에서 전국의 야학을 구성하는 행위자들이 있다. 공간, 사람 그리고 예산과 법. 장애인 야학을 꾸려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남’, ‘배움’, ‘얻음’. 세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하여 들어보자.
인권평
정성철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교육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포함해 다양한 것들을 배우는 과정이자 수단이다. 국가는 구성원들에게 교육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고, 사회에서 교육은 권리라고 쓰고 읽힌다. 한국은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고등교육 이수율과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음에도 교육권이 모두에게 작동하지 않는 나라다. 가난한 집 그리고 여성의 경우 초등교육조차 받기 어려웠던 삶은 서적 속 역사가 아니라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하는 이들이 겪어 온 일상이다. 그리고 그 가장 아래에 장애인 교육권이 위치해 있다. 무상교육이 확대되어왔음에도 여전한 시설 중심의 복지체계로부터 장애인은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한다. 가족에게 맡겨진 돌봄과 입시 중심의 교육체
계는 장애인을 교육의 현장 바깥으로 밀어낸다.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20주년을 맞아 제작된 <만나다 배우다 얻다> 영화는 장애인 야학의 일상을 통해 교육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깨지고 배우며 나와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수단임을 보여준다. 또 입시 중심의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 담긴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활동지원사, 장애인콜택시, 엘리베이터와 같이 진보적 장애운동이 성취해 온 성과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국가와 사회가 제공하지 않은 지역사회 내 장애인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작은 움직임들이 만나서 확장하고 연결되어 부족하나마 지금에 이르렀다. 장애인 야학에 학생으로 나왔던 이들이 진보적 장애운동의 활동가로 역할하며 사람과 공간을 넓혀왔기에 가능했다. 이 싸움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간 시설이 없어지는 날, 장애 유무를 막론하고 지역사회에서 모두가 함께 교육받는 날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또 언젠간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을 요구하는 주류 교육질서에 작게나마 균열을 내는 순간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장애인은 왜 배워야 하나
감독 조상지 | 2020 | 다큐 | 14분 | 기획·제작 조상지
시놉시스
장애인은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선생님, 학생, 학부모 인터뷰를 통해 답을 얻는다.
기획의도
배움을 시작한 이후에 내가 왜 배우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인권평
-박정수 | 노들장애학 궁리소
영화가 시작되면 ‘장애인’, ‘왜’, ‘배워야 하나?’라는 자막이 순차적으로 뜬다. 그리고 이 영화를 연출하고 일부 촬영한 상지씨가 등장해서 뭐라고 말을 한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듯하다. 그리고 다시 ‘나는 말을 못 합니다.’라는 자막이 뜬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에서 보던, 말이 문자로 표현되는 기법이다. 녹음기술 문제가 아니라면, 왜 이런 기법을 썼을까? 상지씨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분명 소리 내어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막으로 ‘나는 말하지 못합니다.’라고 나온다. 녹음기술 때문이 아니라, 상지씨가 가진 뇌병변 장애 때문에 그녀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상지씨의 말을 전달하는 보조언어로 ‘자막’ 외에 ‘장애인의사소통보조기기’(AAC)가 사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다양한 의사소통 수단을 통해, 그리고 ‘영화’라는 또 다른 매체를 통해 상지씨가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다만, 상지씨의 일상과 배움의 과정에 좀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야학 구성원들의 삶과 배움에 천착했더라면 주옥같은 인터뷰가 더 나올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영상 제작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의 시작이길 바라며, 내년 영화제에서도 상지씨의 영화를 볼 수 있기 바란다.
봄이 오면
감독 김경민 | 2019 | 다큐 | 19분 | 기획·제작 김경민
시놉시스
일반 남자 중학교에 재학 중인 자폐성 장애 1급의 태윤이.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우려와 다르게 태윤이와 반 친구들은 서로 이해해가며 잘 지내고 있다.
기획의도
장애학생이 일반 학교로 진학하는 비율은 매년 늘고 있다. 지금은 7만명의 장애 학생들이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교육의 수준은 그냥 데려다 앉혀 놓는 수준이며, 질적인 사회적 통합은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통합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지 않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멀쩡한 애들도 제대로 수업이 안 되는 판인데 무슨 장애인을 위한 교육까지 신경을 씁니까?"라는 질문을 종종 듣게 된다. 그런 문제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장애학생과 학부모 개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학교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과 그 높은 벽들은 혼자 감당해내기에 힘든 수준이다.
인식의 변화에서부터 시스템의 변화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 한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통합교육의 현실적인 모습과 학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통합교육의 가치와 필요성을 이야기 하고 싶다. 통합교육은 장애인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인권평
-김주현 |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양면 색종이와 흙 놀이를 좋아하는 3학년 2반 18번 유태윤.
중학교 3년째 태윤과 함께 생활해왔지만, 통합학급은 장애인이랑 같이 수업 듣는 것이라 이해하고, 발달장애를 지체장애로 잘못 알고 있거나 장애 유형이 뭔지 조차 모르는 친구들. 하지만 친구들은 발달장애인이라는 단어보다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나’처럼 잘 먹고, ‘나'보다 힘이 센, 시엠송을 흥얼거리고 즉흥적인 사고뭉치, 그리고 느리긴 해도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가는 그냥 그런 특징을 가진 친구로 태윤을 인식한다. 1학년 때와 달리, 이제는 태윤이 어떤 친구이고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경험적으로 안다.
일반중학교에서 학교생활을 했던 나에겐 이런 친구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1학년 때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곧 아이들은 나의 장애에 대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장애인이 아닌 그냥 이러저러한 다른 특징이 있는 친구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이 나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라 느껴지지는 않았다. 작품에서 어딘지 모를 불편함이 있었는데, 바로 인터뷰였다. ‘통합학급’, ‘장애’, ‘이해’, ‘배려’ 등의 단어가 친구들의 입에서 나왔을 때 그들이 일상에서 보여준 행동들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태윤과 친구들은 산에, 들에, 진달래 피는 곳에 함께 피어난 여러 마음 중 하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마음을 남겨둔 채 꽃만 따다 저 단어들에 가두어버린다. 그냥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의 마음도, 심지어 태윤의 마음도 ‘고마워~’라는 꽃 같은 단어만 취한 채 버려진 건 아닐까? 태윤이 그런 아쉬움을 노래한다.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