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왜 배워야 하나
감독 조상지 | 2020 | 다큐 | 14분 | 기획·제작 조상지
시놉시스
장애인은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선생님, 학생, 학부모 인터뷰를 통해 답을 얻는다.
기획의도
배움을 시작한 이후에 내가 왜 배우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인권평
-박정수 | 노들장애학 궁리소
영화가 시작되면 ‘장애인’, ‘왜’, ‘배워야 하나?’라는 자막이 순차적으로 뜬다. 그리고 이 영화를 연출하고 일부 촬영한 상지씨가 등장해서 뭐라고 말을 한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듯하다. 그리고 다시 ‘나는 말을 못 합니다.’라는 자막이 뜬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에서 보던, 말이 문자로 표현되는 기법이다. 녹음기술 문제가 아니라면, 왜 이런 기법을 썼을까? 상지씨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분명 소리 내어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막으로 ‘나는 말하지 못합니다.’라고 나온다. 녹음기술 때문이 아니라, 상지씨가 가진 뇌병변 장애 때문에 그녀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상지씨의 말을 전달하는 보조언어로 ‘자막’ 외에 ‘장애인의사소통보조기기’(AAC)가 사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다양한 의사소통 수단을 통해, 그리고 ‘영화’라는 또 다른 매체를 통해 상지씨가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다만, 상지씨의 일상과 배움의 과정에 좀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야학 구성원들의 삶과 배움에 천착했더라면 주옥같은 인터뷰가 더 나올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영상 제작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의 시작이길 바라며, 내년 영화제에서도 상지씨의 영화를 볼 수 있기 바란다.
봄이 오면
감독 김경민 | 2019 | 다큐 | 19분 | 기획·제작 김경민
시놉시스
일반 남자 중학교에 재학 중인 자폐성 장애 1급의 태윤이.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우려와 다르게 태윤이와 반 친구들은 서로 이해해가며 잘 지내고 있다.
기획의도
장애학생이 일반 학교로 진학하는 비율은 매년 늘고 있다. 지금은 7만명의 장애 학생들이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교육의 수준은 그냥 데려다 앉혀 놓는 수준이며, 질적인 사회적 통합은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통합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지 않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멀쩡한 애들도 제대로 수업이 안 되는 판인데 무슨 장애인을 위한 교육까지 신경을 씁니까?"라는 질문을 종종 듣게 된다. 그런 문제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장애학생과 학부모 개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이 학교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과 그 높은 벽들은 혼자 감당해내기에 힘든 수준이다.
인식의 변화에서부터 시스템의 변화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 한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통합교육의 현실적인 모습과 학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통합교육의 가치와 필요성을 이야기 하고 싶다. 통합교육은 장애인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인권평
-김주현 |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양면 색종이와 흙 놀이를 좋아하는 3학년 2반 18번 유태윤.
중학교 3년째 태윤과 함께 생활해왔지만, 통합학급은 장애인이랑 같이 수업 듣는 것이라 이해하고, 발달장애를 지체장애로 잘못 알고 있거나 장애 유형이 뭔지 조차 모르는 친구들. 하지만 친구들은 발달장애인이라는 단어보다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지만, ‘나’처럼 잘 먹고, ‘나'보다 힘이 센, 시엠송을 흥얼거리고 즉흥적인 사고뭉치, 그리고 느리긴 해도 조금씩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가는 그냥 그런 특징을 가진 친구로 태윤을 인식한다. 1학년 때와 달리, 이제는 태윤이 어떤 친구이고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경험적으로 안다.
일반중학교에서 학교생활을 했던 나에겐 이런 친구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1학년 때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은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곧 아이들은 나의 장애에 대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장애인이 아닌 그냥 이러저러한 다른 특징이 있는 친구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이 나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라 느껴지지는 않았다. 작품에서 어딘지 모를 불편함이 있었는데, 바로 인터뷰였다. ‘통합학급’, ‘장애’, ‘이해’, ‘배려’ 등의 단어가 친구들의 입에서 나왔을 때 그들이 일상에서 보여준 행동들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태윤과 친구들은 산에, 들에, 진달래 피는 곳에 함께 피어난 여러 마음 중 하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마음을 남겨둔 채 꽃만 따다 저 단어들에 가두어버린다. 그냥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의 마음도, 심지어 태윤의 마음도 ‘고마워~’라는 꽃 같은 단어만 취한 채 버려진 건 아닐까? 태윤이 그런 아쉬움을 노래한다.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