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편견영화 <배심원들> | 배심원들 | 박정수(노들장애학 궁리소)

배심원들



박정수(노들장애학 궁리소)


강간치상 피고인에 대한 국민참여 재판 최종 판결을 앞두고 7인의 배심원들이 회의한다. 피고는 일용직 노동자 남성, 중졸에 전과자, 평소 야동을 즐겨보고, 애인을 자주 때린다. 그런데 물증은 없고, 피고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다. 피해자의 진술도 오락가락, 조사과정에서 경찰의 강압과 협박도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과 사람을 보지 말고 행위를 보라는 사법적 원칙은 성폭력에 대한 ‘정의로운’ 분노와 피고인의 전력, 정황, 인간 됨에 대한 편견 앞에 무력 해진다. 소위 ‘정상적’ 가치와 ‘안전사회’를 염원하는 다수 배심원은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한다. 반면, 평소 편견과 차별의 피해 경험이 많은 장애인, 여성, 이주민은 다수 의견에서 차별의식과 편견을 느낀다. 특히, 뇌병변 장애인은 경찰의 강압 수사와 다수 배심원의 편견이 얼마나 위험한지 역설한다. 결국, 피고인은 다수결로 유죄 선고를 받게 되고, 끝까지 자신의 혐의를 부정한다. 강제로 끌려가는 피고인은 배심원 중 장애인을 쳐다보며 “저런 xx이 왜 여기 있어!”라며 장애인 혐오 발언을 쏟아낸다. 한낱 장애인한테 심판당한 것이 억울하다는 듯이. 그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약자에게 쏟아내는 데 매우 익숙해 보인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물론 장애인의 인권을 초점화하진 않는다. 대신 도시 하층민 남성에 대한 편견이 전면에 등장한다. 현실에서 소수자 혐오와 편견의 중심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집단의 일원을 편견의 피해자 위치에 놓는다. 자칫 그 집단을 방어하거나 ‘우리 모두 편견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다’는 식으로 문제를 희석할 위험도 있다. 그런데도, 소위 ‘정상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다수 배심원이 장애인, 여성, 이주민과 대립된 관계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그려진 것은 시의적절한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다수자에 맞서 뇌병변 장애인이 자신의 차별 피해 경험을 가지고 편견의 위험성을 역설하는 모습과 마지막 반전으로 피고인이 장애인 혐오 발언을 내뱉는 장면은 이 영화를 ‘장애인 인권 영화제’에 상영해도 좋을 요인이라 생각한다.


편견의 피해자 위치에 있던 사람이 다른 소수자를 향해 편견을 드러내는 아이러니가 부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을 흐리는 희석효과가 아니라 가해의 위험성에 대한 예민함의 상승효과를 내기 바란다. 그래서 이 영화의 관람이 소수자들 간에도 편견이 있을 수 있으며, 한 사람 안에는 한 가지 정체성이 아니라 다양한 교차성이 있다는 성찰로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