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편견영화 <우리의 연극을 쓰다> | 우리의 연극을 쓰다 | 홍성훈(1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위원)

우리의 연극을 쓰다



홍성훈(1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위원)


무대 조명이 켜지면 연극이 시작된다. 연극이 이어지고 진지한 대사, 사뭇 비장한 분위기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제법 성공적인 연극을 해낸 배우 승윤과 서영에게 대학 친구들이 꽃다발을 안기며 축하인사를 건넨다. 그들 사이에서 쭈뼛쭈뼛 대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연극 대본을 쓴 우리다. 우리를 본 승윤이 친구들에게 소개한다. 그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에게로 꽂힌다. 연극 조명은 꺼졌지만 사람들의 관심 조명은 우리에게 닿은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조금 특별한 작가다.


우리는 이동할 때 케인(이동 보조기기)을 이용하고, 청각에 의지하는 삶이 익숙한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이자 대학생인데, 어느 날 학교에서 우연히 배우 지망생인 승윤과 서영을 만나 연극을 준비하고 올렸던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노력으로 완성한 연극을 성공적으로 마친 세 사람은 뜻밖의 일을 맞이한다. 그 일은 학내 잡지에 세 사람의 연극을 다룬 기사가 나온 것. 기사는 승윤의 친구가 쓴 것인데, 우리는 그 기사가 조금 불편하다. 그가 불편해하는 지점은 자신을 ‘장애를 극복한 작가’로 부르고 승윤, 서영과 함께 이룬 것들을 지워버린 것이다. 그런데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승윤도 마찬가지다. 우리 위주로 나온 기사를 보면서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는데, 우리가 그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니 화가 난 것이다. 둘 사이에서 생긴 이 불편함은 우리와 승윤이 서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둘을 중재했던 서영에게서 들은 말을 오해한 결과다.


영화는 우리와 승윤이 갈등을 고조시키다가 끝에 이르러서 각자의 생각을 확인하고 오해를 푸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승윤은 우리가 왜 그 기사를 불편해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장애 극복 서사’가 지워버리는 수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주인공 세 명은 ‘장애를 극복한 우리가 쓴’ 공연을 한 것이 아니라 세 명이 모인 ‘우리’가 함께 작품을 만들고 공연을 만들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영화는 끝난다.


다루고 있는 주제에 비해 무겁지 않은 톤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장애 극복 서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끔 한다. 다만 “나는 내 장애보다 내 글로 사람들에게 평가받았으면 한다.”는 우리와는 달리 실제로 자신의 장애를 정체성으로 삼아 작업을 하고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많은 장애예술가들이 이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놓치는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우리의 연극을 쓰다>를 연출한 세 명의 감독들이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연극을 쓰다>는 그 출발점으로 삼기에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