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시민을 피해 줘? 시민은 시민 피해 안 줘”
“도움이 필요하면 말을 하세요. 빨리 가라니까요? 최선을 다해서!”
“공공 안녕 질서를 위해 신속히 신고된 대로 행진을 출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동 좀 빨리해 주세요. 예? 빨리 이동 좀 해주세요. 조금만 더 빨리 해달라고요. 전동차 지연이 심하잖아요.”
활동가들은 지하철의 여느 시민과 같이 꾸벅꾸벅 졸며 지하철을 타고, 핸드폰을 보며 지하철에서의 시간을 보낸다. 다만 보통의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움직여야 출근 시간에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말’들을 마주한다. 출근하는 이들은 시민은 시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도와줄 테니 빨리 가라고 말한다. 경찰들은 공공질서를, 지하철 관계자들은 전동차 지연을 이유로 빨리 이동하라고 말한다. 이들의 말 속에서 시민은 최선을 다해서 신속하게, 빠르게 이동하는 존재다.
출근길에 함께 지하철을 타기 이전에 지하철 철로를 점거한 일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장애인이 죽은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사람들을 끌어내고 현수막을 빼앗았다. 철로가 비워지자 지하철은 곧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장애인들은 20년을 넘게 안전하게 지하철을 타고 싶다고 외쳐야 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역을 건너뛰면서, 큰 소리를 내며 불안하게 계단 옆을 내려가는 위험한 리프트를 타면서. 세계는 장애인을 감당한 적이 없다. 장애인들이 세계를 감당하며 살았다.
이들은 단식 농성을 하고 날짜를 세며 대답을 기다렸다. 길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전단지를 나눠주며 수많은 외면을 감당했다. 버스와 자신을 쇠사슬로 묶고 철로를 점거하며 행인들의 욕설과 물리적 폭력을 견뎠다. 어느 하나 쉽지 않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때쯤, 도무지 더는 못하겠다는 울분이 터져 나온다. 행인들, 경찰들, 교통공사 직원들의 얼굴로 출현하는 세계는 장애인들을 에워싸고 자신들의 속도를 요구하며 장애인들을 마구잡이로 밀고 당기다가 넘어뜨린다. 어떤 시간의 강요는 몸에 대한 침해로 이어진다. 여기서 시간은 폭력의 문제이고, 몸의 문제이며, 시민의 문제다.
행인들은 기로에 선다. 바로 욕하고 밀칠지, 아니면 망설이며 고민할지.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지하철이 멈춘 시간 동안, 버스가 멈춰 차들이 경적을 울리는 시간 동안, 이들에게 주어진 건 자신들과 함께 살기 위해 여태 눈치껏 빠져줬던 이들을 잠깐이라도 기다릴 기회다. 이것은 시민에 대한 질문이다. 시민이 다른 시민들과 함께 사는 존재, 적어도 함께 살고자 하는 존재라고 할 때, 행인을 시민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납세도 투표도 아닌 기다림이다. 우린 기다림으로써, 타인의 속도를 몸으로 느낌으로써 시민이 되어 간다. 시민의 역량은 그러한 감수능력(patiency)에 있다. 지하철을 얼른 다시 움직이게 하고, 비장애인만을 태우고 출발하게 하는 경찰과 교통공사는 행인들로부터 기다릴 기회를, 즉 시민이 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어느 정치인은 “최대 다수의 불편에 의존하는 사회가 문명이냐”며 장애인들의 집회를 비난했다. 맞다. 그게 문명이다. 서로를 감내하고 견뎌주며 함께 살아내는 것이 문명이다. 또 다른 정치인은 “전장연은 더이상 시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는 21년째 장애인들을 시설과 집에 가두어 장애인의 인내심을 시험해 왔다. 그 피해를 평생 감당한 건 장애인들이다.
시민은 서로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불편을 감수하며 서로를 기다려 주는 존재다. 이 이야기는 언제나 기다리는 몸에 대한 것이었다. 5분을 기다리지 못하는 이들과 20년을 넘게 기다린 이들의 마주침에서 드러나는 것은 타인을 기다리게 할 수밖에 없어서 평생 타인들을 기다려야 했던 몸들과 그 기다림을 지나쳐 걸어갈 수 있는 몸들의 차이였다. 지하철을 타는 장애인들의 속도가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있는 것은 느린 시간과 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시민이 될 시간이다.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라는 인사 앞에서, 우리에게는 비로소 시민이 될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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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시민을 피해 줘? 시민은 시민 피해 안 줘”
“도움이 필요하면 말을 하세요. 빨리 가라니까요? 최선을 다해서!”
“공공 안녕 질서를 위해 신속히 신고된 대로 행진을 출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동 좀 빨리해 주세요. 예? 빨리 이동 좀 해주세요. 조금만 더 빨리 해달라고요. 전동차 지연이 심하잖아요.”
활동가들은 지하철의 여느 시민과 같이 꾸벅꾸벅 졸며 지하철을 타고, 핸드폰을 보며 지하철에서의 시간을 보낸다. 다만 보통의 출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움직여야 출근 시간에 사람들과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말’들을 마주한다. 출근하는 이들은 시민은 시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도와줄 테니 빨리 가라고 말한다. 경찰들은 공공질서를, 지하철 관계자들은 전동차 지연을 이유로 빨리 이동하라고 말한다. 이들의 말 속에서 시민은 최선을 다해서 신속하게, 빠르게 이동하는 존재다.
출근길에 함께 지하철을 타기 이전에 지하철 철로를 점거한 일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장애인이 죽은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사람들을 끌어내고 현수막을 빼앗았다. 철로가 비워지자 지하철은 곧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장애인들은 20년을 넘게 안전하게 지하철을 타고 싶다고 외쳐야 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역을 건너뛰면서, 큰 소리를 내며 불안하게 계단 옆을 내려가는 위험한 리프트를 타면서. 세계는 장애인을 감당한 적이 없다. 장애인들이 세계를 감당하며 살았다.
이들은 단식 농성을 하고 날짜를 세며 대답을 기다렸다. 길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전단지를 나눠주며 수많은 외면을 감당했다. 버스와 자신을 쇠사슬로 묶고 철로를 점거하며 행인들의 욕설과 물리적 폭력을 견뎠다. 어느 하나 쉽지 않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때쯤, 도무지 더는 못하겠다는 울분이 터져 나온다. 행인들, 경찰들, 교통공사 직원들의 얼굴로 출현하는 세계는 장애인들을 에워싸고 자신들의 속도를 요구하며 장애인들을 마구잡이로 밀고 당기다가 넘어뜨린다. 어떤 시간의 강요는 몸에 대한 침해로 이어진다. 여기서 시간은 폭력의 문제이고, 몸의 문제이며, 시민의 문제다.
행인들은 기로에 선다. 바로 욕하고 밀칠지, 아니면 망설이며 고민할지. 중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지하철이 멈춘 시간 동안, 버스가 멈춰 차들이 경적을 울리는 시간 동안, 이들에게 주어진 건 자신들과 함께 살기 위해 여태 눈치껏 빠져줬던 이들을 잠깐이라도 기다릴 기회다. 이것은 시민에 대한 질문이다. 시민이 다른 시민들과 함께 사는 존재, 적어도 함께 살고자 하는 존재라고 할 때, 행인을 시민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납세도 투표도 아닌 기다림이다. 우린 기다림으로써, 타인의 속도를 몸으로 느낌으로써 시민이 되어 간다. 시민의 역량은 그러한 감수능력(patiency)에 있다. 지하철을 얼른 다시 움직이게 하고, 비장애인만을 태우고 출발하게 하는 경찰과 교통공사는 행인들로부터 기다릴 기회를, 즉 시민이 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어느 정치인은 “최대 다수의 불편에 의존하는 사회가 문명이냐”며 장애인들의 집회를 비난했다. 맞다. 그게 문명이다. 서로를 감내하고 견뎌주며 함께 살아내는 것이 문명이다. 또 다른 정치인은 “전장연은 더이상 시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는 21년째 장애인들을 시설과 집에 가두어 장애인의 인내심을 시험해 왔다. 그 피해를 평생 감당한 건 장애인들이다.
시민은 서로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불편을 감수하며 서로를 기다려 주는 존재다. 이 이야기는 언제나 기다리는 몸에 대한 것이었다. 5분을 기다리지 못하는 이들과 20년을 넘게 기다린 이들의 마주침에서 드러나는 것은 타인을 기다리게 할 수밖에 없어서 평생 타인들을 기다려야 했던 몸들과 그 기다림을 지나쳐 걸어갈 수 있는 몸들의 차이였다. 지하철을 타는 장애인들의 속도가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있는 것은 느린 시간과 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시민이 될 시간이다. <시민 여러분, 반갑습니다>라는 인사 앞에서, 우리에게는 비로소 시민이 될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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