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영화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 바퀴와 몸들이 만든 거리에서 | 안희제 작가


바퀴와 몸들이 만든 거리에서

안희제 작가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온다. 거리라는 말은 하나의 상징이다. 그게 무엇이건 말을 하려면 거리로 나와야 하기에, 그게 누구이건 만나려면 거리로 나와야 하기에, 거리는 투쟁의 현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말들과 몸들이 마주치는 장소인 거리는 그렇게 불화와 충돌의 현장이 되었다. 거리에 발라진 벽돌과 시멘트는 조용하지만, 거기에 어떤 이들이 어떤 물건들을 들고 올 때, 공간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마이크, 앰프, 스티커, 현수막, 쇠사슬, 사다리, 피켓, 바리깡이 출현하면, 그곳은 거리가 된다. 시위란 그런 일이다. 공간을 요동치게 하는 일. 어떤 공간을 ‘거리’로 만드는 일.

 장애인들이 승강장으로 나온다. 이 문장은 이미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 싸운 역사 위에서만 사실이 될 수 있었다. 마스크, 서류들이 담긴 가방, 패딩, 양복, 청바지, 휴대전화가 바닥과 일정한 리듬으로 부딪히는 구두 혹은 운동화와 함께 승강장에서 지하철로 들어간다. 이들 사이에서 특별히 질서랄 것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것들은 지하철 속에 제각기 놓여 있다. ‘출근길 지하철’이다. 여기에 ‘탑니다’라는 세 글자가 붙는 순간, 어떤 형태의 ‘질서’가 솟아난다.

 바퀴들이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틈을 넘어 지하철로 굴러 들어간다. 바퀴와 함께 피켓들이, 마이크가, 앰프가, 그리고 몸들이 지하철로 굴러 들어간다. 지하철 안 복도가 바퀴와 몸으로 가득 찬다. 어떤 눈들은 여전히 휴대전화에만 꽂혀 있고, 어떤 눈들은 당황하며, 어떤 눈들은 분노한다. 입들이 열린다. 우리는 20년을 기다렸다. 또 다른 입들이 열린다. 나 좀 내리자, 출근해야 한다, 당신들 지금 이러는 게 권리라고 생각하냐. 이것은 질서다. 휠체어와 움직이는 몸들이 다른 사물들과 함께 이동할 수 없다는, 대중교통의 질서.

 눈, 입, 손가락, 팔뚝 들이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방에서 욕설들이 터져 나온다. 지하철도 합세한다. “현재 장애인 단체의 시위로 인하여 차가 출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전이 확보되는 대로, 안전이 확보되는 대로 곧 출발하겠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거듭 죄송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장애인 단체의 시위로 …” 지하철에게도 입이 있다. 시위대를 향해 쏟아지는 욕, 휠체어를 강제로 끌어내려는 팔뚝들을 경찰은 애써 제지하지 않는다. 차가운 바닥에 떨어지는 등과 어깨와 뒤통수.

 힘이 잔뜩 들어간 근육이 휠체어를 들거나 밀려고 할 때 휠체어 위의 몸은 고개를 떨궜다. 그 시야에는 바닥과 목에 건 피켓과 자신의 몸이 함께 보인다. 고개는 떨궜지만 느린 속도를 타협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휠체어에서 내린다. 몸들은 느린 싸움에 바닥을 끌어들인다. 바퀴가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를 건너도록 만들어진 구조물에 스티커가 붙고 등이 팽창하고 팔꿈치와 무릎과 배가 닿는다. 차갑고 뻣뻣하다. 지하철을 멈춘다. 시간을 터뜨린다. 질서를 깨뜨린다. 불구의 시간(crip time)이 이동권을 향한 20년의 치열한 기다림으로 출근길 지하철에 등장한다. 이것이 ‘출근길 지하철’ 뒤에 붙는 ‘탑니다’라는 세 글자의 의미다.

 장애인들이 함께 지하철에 타는 일은 ‘시민’이라는 이름을 선점한 이들이 지하철, 경찰과 맺은 동맹에 맞서는 일이다. 수십 년의 폭력과 고립, 그리고 그에 맞선 투쟁의 역사를 안고 있는 바퀴와 몸들이 승강장과 지하철을 ‘거리’로 만드는 일이다. 경찰들이 몸들과 휠체어들을 끌어내면, 장애인들은 자신도 똑같이 들어가서 조사받을 수 있는 경찰서를 요구한다. 바퀴가 가는 곳마다 거리다. 거리는 전염된다. 다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거리가 시끄러워진다.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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