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부수는 홍기씨의 휠체어
양혜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나는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인 김홍기 학생을 음성 지원의 호명을 따라 ‘홍기씨’라 부르겠다.)
영화 첫 장면. 오랜 기간 노들야학을 지켜온 학생이자 뇌병변 장애인인 홍기씨가 잠에서 깨어 활동지원사 ‘아저씨'를 부른다. 그는 어머니 꿈을 꾸었다며 어머니가 그립다고 말한다. 관객은 홍기가 연기자가 아닌 본인으로서 진짜 잠에서 깬 것인지, 자다 깬 연기를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의 가까운 지인이었다면 그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았을까?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연기자가 되어 미디어에 출연하는 것을 경험한 적 없는 가엾은 대중은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다. 장애인 당사자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대중 미디어 탓을 해보자. 이는 곧 홍기씨가 노들야학을 찾아가자 천성호 선생님이 “어우 네, 홍기 형. 어쩐 일이예요?” 라고 어색한 연기톤으로 물어보는 대사에서 금방 들통난다. 선생님 연기 되게 못하시네, 이거 연기구나? 하하!
노들야학 선생님들과 함께 어머니를 보러가기로 결정된 이후, 홍기씨는 어머니를 보러 가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거울 앞에서 꽃단장을 한다. 말끔히 차려 입은 홍기씨가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빗고 단추를 채우는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거울을 비춘다. 그렇게 홍기씨는 거울 앞에 서야 비로소 화면에 등장한다. 명백히 연출가에 의도된 시선이다. 중요한 사람을 만나기 전 살짝 긴장된 마음으로 거울을 보며 단장을 하는 홍기씨는 누가 보아도 ‘주인공 서사’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야학 선생님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어머니가 있는 공원 묘지로 향하는 길에서부터 영화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말하는 홍기씨, 꽃집에 들러 꽃을 고르는 홍기씨, 공원 묘지에 있는 어머니 산소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 홍기씨, 휠체어 접근성은 커녕 제대로 된 길조차 없는 경로에 선생님들이 다 함께 홍기씨의 휠체어를 들고 내려가는 장면 등은 결코 연기이지 않다. 그는 어머니 산소를 가기 위해 따로 리허설을 한 것도 아니며, 사전 답사를 간 것도 아니다. 노들야학 선생님들이 동원된 엑스트라 연기자인 것도 아니다. 네 명의 비장애인 성인이 힘을 함쳐 홍기씨의 휠체어를 들고 올라갔다 내려가고, 선생님은 진심을 다해 진성으로 “어후” 숨을 내뱉는다. 진짜로... 힘들어보인다. 휠체어 장애인인 그가 부러 접근성이 떨어지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흔히 오롯이 개인의 것으로 치부되는 그리움의 감정을, 휠체어 장애인은 홀로 실현하기 어렵다. 세상을 떠난 가족이 보고 싶어 홀로 고독히 훌쩍 떠나는 어떤 ‘비장애인 주인공 서사‘와는 다르다. 휠체어 장애인 홍기씨에게는 영화 제작이라는 프로젝트와 함께 노들야학 선생님들 여러 명에 활동지원사 선생님까지 곁들여야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비로소 만남이라는 행동으로 실현된다. 차례상을 차리는 것도, 봉분을 정리하는 것도, 그는 타인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영화를 찍은 홍기씨의 실행력 덕분일까. 휠체어 장애인의 접근성이라는 거대한 담론에서부터 어머니를 향한 홍기씨 내면의 그리움까지, 덕분에 관객은 이를 한꺼번에 습득하는 거대한 내부 작용을 경험한다. 마치 하나의 이상적인 가족 이상의 공동체처럼 비추어지는 홍기씨와 노들야학 선생님들의 묵념처럼, 관객 또한 속절없이 한순간에 공동체적 묵념을 경험한다. (당신이 공동체 오타쿠라면, 이 장면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라 믿는다.)
‘내가 연기하고 있는건지 다큐멘터리를 찍는 건지 모르겠지?’ 라는 홍기씨의 익살스러운 질문으로 시작한 영화는, 그래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홍기씨만의 것인지 나에게도 옮았는지 헷갈려하는 관객의 질문으로 변모하며 끝난다. 그렇게 휠체어를 탄 뇌성마비 장애인 홍기씨의 영화는 영화의 경계도, 감정의 경계도, 모두 부순다. 홍기씨의 휠체어가 이동권과 접근성의 경계를 부수는 장애해방의 날도 어서 오기를.
경계를 부수는 홍기씨의 휠체어
양혜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나는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인 김홍기 학생을 음성 지원의 호명을 따라 ‘홍기씨’라 부르겠다.)
영화 첫 장면. 오랜 기간 노들야학을 지켜온 학생이자 뇌병변 장애인인 홍기씨가 잠에서 깨어 활동지원사 ‘아저씨'를 부른다. 그는 어머니 꿈을 꾸었다며 어머니가 그립다고 말한다. 관객은 홍기가 연기자가 아닌 본인으로서 진짜 잠에서 깬 것인지, 자다 깬 연기를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의 가까운 지인이었다면 그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았을까?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연기자가 되어 미디어에 출연하는 것을 경험한 적 없는 가엾은 대중은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다. 장애인 당사자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대중 미디어 탓을 해보자. 이는 곧 홍기씨가 노들야학을 찾아가자 천성호 선생님이 “어우 네, 홍기 형. 어쩐 일이예요?” 라고 어색한 연기톤으로 물어보는 대사에서 금방 들통난다. 선생님 연기 되게 못하시네, 이거 연기구나? 하하!
노들야학 선생님들과 함께 어머니를 보러가기로 결정된 이후, 홍기씨는 어머니를 보러 가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거울 앞에서 꽃단장을 한다. 말끔히 차려 입은 홍기씨가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빗고 단추를 채우는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거울을 비춘다. 그렇게 홍기씨는 거울 앞에 서야 비로소 화면에 등장한다. 명백히 연출가에 의도된 시선이다. 중요한 사람을 만나기 전 살짝 긴장된 마음으로 거울을 보며 단장을 하는 홍기씨는 누가 보아도 ‘주인공 서사’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야학 선생님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어머니가 있는 공원 묘지로 향하는 길에서부터 영화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말하는 홍기씨, 꽃집에 들러 꽃을 고르는 홍기씨, 공원 묘지에 있는 어머니 산소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 홍기씨, 휠체어 접근성은 커녕 제대로 된 길조차 없는 경로에 선생님들이 다 함께 홍기씨의 휠체어를 들고 내려가는 장면 등은 결코 연기이지 않다. 그는 어머니 산소를 가기 위해 따로 리허설을 한 것도 아니며, 사전 답사를 간 것도 아니다. 노들야학 선생님들이 동원된 엑스트라 연기자인 것도 아니다. 네 명의 비장애인 성인이 힘을 함쳐 홍기씨의 휠체어를 들고 올라갔다 내려가고, 선생님은 진심을 다해 진성으로 “어후” 숨을 내뱉는다. 진짜로... 힘들어보인다. 휠체어 장애인인 그가 부러 접근성이 떨어지는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흔히 오롯이 개인의 것으로 치부되는 그리움의 감정을, 휠체어 장애인은 홀로 실현하기 어렵다. 세상을 떠난 가족이 보고 싶어 홀로 고독히 훌쩍 떠나는 어떤 ‘비장애인 주인공 서사‘와는 다르다. 휠체어 장애인 홍기씨에게는 영화 제작이라는 프로젝트와 함께 노들야학 선생님들 여러 명에 활동지원사 선생님까지 곁들여야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비로소 만남이라는 행동으로 실현된다. 차례상을 차리는 것도, 봉분을 정리하는 것도, 그는 타인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영화를 찍은 홍기씨의 실행력 덕분일까. 휠체어 장애인의 접근성이라는 거대한 담론에서부터 어머니를 향한 홍기씨 내면의 그리움까지, 덕분에 관객은 이를 한꺼번에 습득하는 거대한 내부 작용을 경험한다. 마치 하나의 이상적인 가족 이상의 공동체처럼 비추어지는 홍기씨와 노들야학 선생님들의 묵념처럼, 관객 또한 속절없이 한순간에 공동체적 묵념을 경험한다. (당신이 공동체 오타쿠라면, 이 장면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라 믿는다.)
‘내가 연기하고 있는건지 다큐멘터리를 찍는 건지 모르겠지?’ 라는 홍기씨의 익살스러운 질문으로 시작한 영화는, 그래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홍기씨만의 것인지 나에게도 옮았는지 헷갈려하는 관객의 질문으로 변모하며 끝난다. 그렇게 휠체어를 탄 뇌성마비 장애인 홍기씨의 영화는 영화의 경계도, 감정의 경계도, 모두 부순다. 홍기씨의 휠체어가 이동권과 접근성의 경계를 부수는 장애해방의 날도 어서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