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의 대화 -마이너리메이저리티 트래블-10년의 검증 |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 24.04.20 해외 초청작_관객과의 대화 속기록

(김상희) 안녕하세요? 영화제에 함께하고 있는 김상희라고 합니다. (박수)

(서한영교) 김상희 님이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감독님과 그리고 퍼포먼스 공연을 연출하셨던 모미야마 토모코 씨와 그리고 그 영화에도 등장하시죠? 나가츠 씨가 함께 와 있습니다. 차례로 인사해 주시겠어요?

 

-(사사키) 감사합니다. 저는 감독인 사사키 마코토입니다.

-(모미야마) 안녕하세요? 저는 모미야마라고 하고요. 이 영화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있고 이 영화의 중심 소재였던 <마이너리메이저리티 트래블> 대표입니다.

-(나가츠 유이치로) 저는 나가츠라고 하고요. 공연의 인턴 스태프로 참여했고 영화의 실행위원회 사무국을 맡고 있습니다.

 

 

(김상희) 아무래도 기획하시는 분들이다 보니까 저마다 기획하시는 부분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인물이 있을까요?

 

-(사사키) 이 영화는 2005년 당시에 공연을 할 당시에는 기록 영상으로 참여했고 그것을 재구성한 것과 2016년에 다시 촬영한 내용이 같이 구성되어 있는 복잡한 영화입니다. 저는 공연으로부터 그리고 이 영화까지 10년간 굉장히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고요. 그리고 극장 개봉을 하기도 했고 제가 굉장히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달라진 10년을 돌아보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2006년에 영화에도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저는 2006년에 사회적인 이슈 같은 것에 전혀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이는데 이런 이슈에 뛰어들었고 10년 후에 그 당시를 다시 보니까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미야마) 제가 조금 보충을 하면 이 영화에 나오시는 분들, 혹은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신 분들은 굉장히 한 명 한 명 깊은 생각을 가졌고 깊은 경험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한 명의 등장인물이 기억에 남는다거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05년과 2006년의 공연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고 그리고 2015년, 2016년에 영화 촬영에 참여하셨지만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요. 그리고 그 사이에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촬영 직후에 돌아가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은 돌아가셨지만 영화를 통해서 계속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부분은 특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뭔가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하면 굉장히 영화조차 영상으로조차 남아 있지 않은 일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아마도 여러분들이 보실 때 영상과 영상 사이의 틈에서 여러분들이 보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굉장한 일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김상희) 또 한 가지 질문을 드릴 텐데요. 영화를 보면서 가장 공감이 됐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은 워크숍에서 어떤 한 참가자가 전동 휠체어 체험을 하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휠체어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려면 꼬박 하루 동안 휠체어를 타지 않고 머뭇대지 않을 정도의 자세로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대요. 저도 이 말에 무척 공감을 하는데요. 그렇다면 이 체험을 실제로 하셨을까요?

 

-(모미야마) 하지 않았습니다.

-(서한영교) 이 체험을 똥꼬에서 자세를 떼지 않는 이 정도의 자세라는 것은 혹시 어떤 의미로 좀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한데요. 저는 이게 하나의 어떤 우리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만날 때 어떤 하나의 역량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했었는데, 이 장면을 그 영화에 이렇게 그래도 나름 편집을 해서 넣은 것은 어떤 우리한테 좀 전해 주고 싶었던 게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기는 했거든요.

-(사사키) 그 이야기에 답변을 하셨던 몽마 씨 같은 경우는 평생 휠체어에서 몸을 분리시킬 수 없는 상태시죠. 그리고 똥꼬에서 의자를 떼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실 배를 붙이고 계시는 상태, 엎드려서도 휠체어를 타시기 때문에요. 그 이야기를 하신 것은 본인들에게는 평생의 일인데 이것을 굉장히 쉽고 간단하게 한순간 체험하려고 하는 것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지 마라고 생각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이 몽마 씨, EL 씨라고도 나오는데 그 영화를 찍은 후 친한 친구가 되었고 그리고 저의 후속 작품 2편에도 참여하셨고요. 이분 같은 경우는 보통이라면 다른 사람을 향해 하지 않았을 말이나 행동을 많이 하시고 길에서도 싸우거나 시비도 걸기도 하시고 하는 분인데 그래서 저랑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상희) 다른 질문을 드릴게요. 그 멤버들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 활동에서 그 정체성이 각각 다르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멤버들 사이에서 어려움이나 힘든 점이 있을 것 같은데 이 점에 대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모미야마) 다양한 멤버들이 모이고 그리고 성소수자이기도 하고 지체장애이기도 하고 각각의 정체성이 있는데 각 정체성을 특화시킬 의도로 작품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어에서 장애인의 반대말은 겐조샤라고 하는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런데 그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가 디자인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장애의 경험을 겪게 되고요, 사회 안에서. 그래서 장애라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저 사람이 장애인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겪었던 경험, 체험에 따라서 정의된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이 사회를 만드는 것은 누가 장애인이고 누가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냐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특성이 모두 반영되는 사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성소수자,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하는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어려운 점이 있었냐는 질문을 주셨는데요. 앞의 질문하고도 연결됩니다. 휠체어 체험에 대해서 격한 반응을 하셨던 몽마 씨랑도 연결되는데요. 영화 안에서 안라쿠 씨가 이런 말을 하시잖아요. "모르는 것은 괜찮은데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하지 말아라" 이 이야기를 감독에게 하시는데요. 우리는 서로를 당연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을 알고 아는 것처럼 하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 그런데 아는 것처럼 하지 않기 위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런 공유의 방법을 실험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면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모였던 멤버 중 한 분이 휠체어 이용자였어요. 그런데 그분이 우리가 모이는 장소나 이런 곳의 접근성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프로젝트를 할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강력하게 이의제기를 하셨었는데요. 그때 제가 말씀드렸던 것은 여기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은 각각의 장애가 있다. 그래서 한 명 한 명이 무엇이 필요한지가 다 다르다. 그것을 완벽하게 해결해놓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서로의 필요를 모두 공유하는 과정이 이 작업의 의도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김상희) 저는 영화를 보면서 저도 저런 고난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좀 들었었어요. 그러면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드는 게 고정 멤버들 중에 장애여성 비율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에 관련해서 특별한 사유나 이유가 있으실까요? 아니면 제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모미야마) 영화에서 보셨던 분들 중에는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그 장애를 가진 분 중에는 여성도 계셨고 남성도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신체 장애를 특별히 이야기하신 게 아니시라면 장애여성도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김상희) 다음 질문은요. 영화를 만들 때 가장 고되거나 고민하셨던 부분이 있으셨을까요?

(서한영교) 특히 여기서 이거 보고 하신 거죠? '기억'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영화를 다루려고 할 때 어떤 점을 주되게 고려하셨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모미야마) 특별히 어렵다기보다는 10년 전의 기억을 다루는 게 흥미롭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서한영교) 굳이 이게 10년 전 기억이라서 지금 현재로 끌여들여와서 작품으로 작품화 하려고 했을 때는 과거의 그때의 기억을 돌아보면서 지금을 어떻게 좀 뭔가 구성, 영감을 얻는다거나 현재를 어떻게 되돌아보는 질문들을 던지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해서 10년 전으로 거슬러 가서 대화, 기억의 대화라는 것으로 했다고 생각이 좀 들었는데. 그래서 10년 전과 그리고 지금 현재의 이런 사이에서의 기억이라고 했을 때 어떤 기억들을, 과거의 기억들을 지금으로 가지고 오고 싶어 하셨는지에 대해서 질문 드려도 될까요?

 

-(모미야마) 이 영화의 주된 소재가 되었던 2005년, 2006년 프로젝트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과 만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여러 어려움을 매일매일 해결해 나가면서 공연 하루 했던 게 최선이었고 그게 기적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말씀드렸듯이 재공연이 어렵잖아요? 우리가 했던 프로젝트를 통해서 사회에 던지려고 했던 질문이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 10년 후에도 사회가 굉장히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여전히 질문이 유효하다고 생각해서 이것을 영화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사회 구성원 한 명 한 명이 어디에 선 긋기를 하는 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꺼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가츠) 저는 저 연극을 만들 때 대학교 연극을 창작할 시기에 대학교 2학년 학생이었는데요. 이 경험을 하고 나서 졸업 논문으로 이 프로젝트에 대한 논문을 썼고요. 그 논문 자체가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여러 곳에서 이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공연을 다시 보고 싶다는 요청들이 있었는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재공연이 불가, 어렵기 때문에 만들었던 계기도 있습니다. 제가 오늘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와서 감동을 받은 게 부스를 돌아보면서 장애와 관련한 단체나 활동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같은 다양한 마이너리티들의 활동이 같이 연대하고 있는 것을 이 영화제를 통해서 보게 돼서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예술계에서는 이런 횡단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을 해서 우리 영화가 보여주려고 했던 그런 소수성들의 연대가 여전히 새롭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떤 기억이기도 하지만 앞으로에 대한 시도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김상희)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신선했던 내용이 있었는데요. 그러니까 공연을, 버스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매우 신선했습니다. 프로젝트에 대한 의미나 의도가 매우 궁금하고요. 또 한 가지는 그 버스 승객들로 온 사람들은 어떻게 왔을까,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있습니다.

 

-(모미야마) 그때 그 프로젝트 제목이 <도쿄 경계선 기행>이었잖아요? 그래서 기행은 여행의 기록이라는 의미기 때문에 기획 단계에서부터 여행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기획하고 여행을 떠나게 한다는 게 중요한 콘셉트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여행, 이동은 물리적인 이동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의 이동 역시도 여행의 일환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창작 과정뿐만이 아니라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 역시 같이 여행을 한다는 것도 기획의 한 축이었고요. 그분들은 단순히 여행을 하는 작업을 관람할 뿐만 아니라 관객 자신도 물리적으로 여행을 하는 것 역시도 기획 단계에서부터 설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객하고 같이 여행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했었는데요. 배에 같이 탈까, 이런 고민도 했었고 지하철 한 칸을 빌려서 우리가 사용할까도 했었는데 결국 버스가 됐던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도쿄교통국, 그러니까 여기서 도 버스라고 나오는 도쿄도가 운영하는 버스에서 도쿄도의 버스는 휠체어 승객도 이용하기 편리하다는 것들을 조금 알리기 위해서 이 프로젝트에 전격적으로 협력을 해 주신 부분이 있었고요. 지금 한국에서도 장애인 이동권 투쟁, 특히 버스를 둘러싼 이동권 투쟁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일본에서도 도쿄도 휠체어 이용객이 쉽게 탈 수 있게 하는 여러 가지 과정, 계기들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참여하셨던 분들이 버스가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셨던 공연 장면은 공연을 위해서 버스 한 대를 아예 빌린 거여서요. 일반 그냥 버스를 타려고, 노선을 타려고 타신 승객은 없었고 다 티켓을 구매해서 보러 오셨던 관객들만 그 해당 버스에 타셨습니다. 하지만 길에서 내리기도 하고 타기도 하는 장면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목격하신 일반 시민들은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김상희) 제가 활동가이다 보니까 영화를 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영화 중간에 사회적 투쟁 관련한 말씀을 하시면서 “싸워 왔습니까?”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사회적 투쟁과 예술적 투쟁은 저는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희는 빡세게 투쟁을 하고 왔는데요. 최근에도. 그와 관련해서 작품 중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내시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나가츠) 잠깐 먼저 말씀을 드리면요. 일본 사회에는 한국만큼 사회운동의 에너지가 그렇게 세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절실함이 좀 적다고 할까요? 그래서 어떤 활동을 가지고 연대를 하는 이런 움직임이 굉장히 약합니다. 그렇게 사회운동이 강력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 일본인의 특성 같은 것도 들 수 있겠지만 뭔가 직접적으로 행동을 하기보다는 다른 방식을 통해서 표현을 하는 방식들이 오히려 일반적이고요. 그런 다른 방식 중의 하나가 예술 장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미야마) 지금 질문하신 답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운동과 예술은 다르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예술 같은 경우에는 어떤 한쪽 편에 서서 정의감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다만 예술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거나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감각으로 사회를 보는 것은 가능하고요. 예술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연대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하고요. 예술이라는 것은 정의감을 추구하는 활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도구적인 방법으로 윤리를 추구하는 활동이라고나 할까요? 조금 더 쉽게 말씀드릴게요. 그러니까 세상이 지금까지는 이쪽이 반드시 옳다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 다른 관점, 방향에서 보면 다른 측면이 더 옳다, 옳을 수 있다, 옳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이기 때문에 그 점 때문에 운동과 다르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 두 가지가 협력하게 되면 운동의 힘이 될 거라고는 생각합니다.

 

-(사사키) 제가 대답을 대신해서 다른 작품을 하나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데 처음에 이야기해 드렸던 <나이트 크루징> 작품입니다.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이 SF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고요. 아까 그 영화, 나이트 크루징의 주인공인 분은 이 영화에 나오셨던 EL 씨와 비슷하신 분이신데 선천적인 장애인이신데 실질적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화를 내거나 시비를 거시는 분인데 시비가 붙어서 상대방의 눈을 때린 적도 있습니다. 그분은 시각장애인이, 그러니까 SF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앞도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이 무슨 영화를 만드느냐, 그리고 영화가 완성된 후에도 왜 영화를 만드느냐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내가 눈이 안 보인다고 영화를 못 만든다고 생각하는 게 너희들한테 딴지를 걸고자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든다, 그것이 그분의 활동 방식, 운동 방식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영화를 만들어서 여러 곳에서 상영하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저희들의 투쟁의 방법, 운동의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상희) 영화의 마지막 엔딩에 대해서, 어떻게 끝이 난 건지 궁금합니다.

(서한영교) 영화 마지막에 "모르겠어"라는 대사로 끝이 났는데 이것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사키) 한국은 지금 어떠신지 모르겠는데요.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일본에서는 다양성이 굉장히 유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다양성이라는 단어의 유행에 대해서 저는 조금 역겹다는 입장이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뭔가 다양성이 유행하면서 다들 다 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예를 들면 "저 사람은 신체장애인이니까 이럴 거야, 이렇다, 정신장애인이니까 이렇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범주화 해서 이해하는 방식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뭔가 다 아는 것 같다면서 만족을 하고 있고요. 하지만 개인이 개인을 이해하는 것도 사실 가족이어도 혹은 결혼한 상대여도 잘 알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항상 대화를 나누거나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민을 하거나 혹은 ‘나는 잘 모르겠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오히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그러니까 상대에 대해서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해 못하는 부분이 생기는 게 인간관계인 것 같고 그래서 대화가 필요하고 대화를 할 때는 잘 모르겠다를 전제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서한영교) 마침 마칠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는데 엔딩에 너무 어울리는 말씀을 해 주셔서. 두 분도 오신 이 봄비를 맞으며 앉아계신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할 한말씀씩 하시고 오늘 GV 자리를 마무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나가츠) 많이 춥네요. 그러니까 이번 상영, 일단 추운데 계속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하고요. 이번 상영을 계기로 일본, 한국은 거리는 가깝기 때문에 정치적 대화는 모르겠지만 뭔가 대화를 계속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모미야마)여기서 여러분들의 사진을 찍고 싶을 정도로 이렇게 안 좋은 날씨 속에서도 우산 받치고 우비 입고 끝까지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모르겠다, 그러니까 끝내자'가 아니라 모르겠다 더 만나서 이야기해 보자가 되어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이 만남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