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은) 제가 알기로는 이렇게 다섯 분의 영화가 상영되는 게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처음으로 상영을 한번 했고 이번이 두 번째라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 두 번째 맞습니다.
(조희은) 이렇게 두 번째 상영을 하게 됐는데 자기소개부터 하면서 GV 시작하겠습니다. 제 왼쪽에 계신 이영욱 교사분부터 쭉 차례대로 자기소개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이영욱) 안녕하세요? 영화반 교사 이영욱입니다. 반갑습니다.
-(박정수) 안녕하세요? 영화반에서 매니저 맡았던 박정수입니다.
-(김홍기) 안녕하세요? 그리운 어머니를 만든 김홍기입니다.
-(조상지) 안녕하세요? 노들장애인야학 자칭 에이스 조상지입니다.
-(오지우) 오지우입니다.
-(서호영) 안녕하세요? 서호영입니다.
-(박지호) 안녕하세요? 박지호라고 합니다.
(조희은) 이처음으로는 제 왼쪽에 계신 이영욱 교사께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에 저도 교사를 하고 있지만 목요일마다 다양한 특활 수업들이 있잖아요? 그중에서 영화반이 있었을 때도 있었고 없었을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제 이영욱 교사가 오시면서 영화반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됐는지 어떻게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는지 영화반 이야기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영욱) 짧게 하겠습니다. 2022년 가을 정도에 원래 영화반이 자조 모임이 있었고 여기 계신 세 분이 함께했고 자조모임 선생님을 찾던 중에 제가 같이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2022년 가을 정도에 자조모임을 몇 차례 하고 그러고 나서 작년에 영화 노들야학 특활반으로 수업을 시작했고요. 그래서 저희가 처음에 자조모임을 시작할 때 어떻게 했냐 하면 학생들이 영화를 다 만들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셔서 그리고 그때 정수 선생님도 함께하셨고. 그래서 본인들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간략한 한 줄 정도 소개를 받았어요. 그래서 그거를 바탕으로 자조모임 수업 계획서 비슷하게 모임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정했었는데요. 그래서 작년에 특활반 활동은 자조모임의 일종의 연장선으로 활동을 했었고 그러면서 새롭게 지우 님이랑 서호영 님이 함께 영화반으로 들어오셨고. 그리고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것을 다 만드셨어요. 만들려고 하셨고 수업 중에 워낙 개별적인 작업들이 많으니까 그런 부분들이 있으면 좀 따로 만나서 작업을 진행했던 경우들도 많고. 그리고 작년 말에 이렇게 간단하게 영화반 상영회를 했었고요. 그리고 좀 기회가 돼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상영이 돼서 너무 학생들은 어떤지 좀 궁금하기도 하고 저는 되게 기분이 좋습니다. 이상입니다.
(조희은) 처음에는 학생분들의 자조모임 형태로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그런 모임들이 있었다가 점점 커지면서 영화반까지 노들야학에서 진행되었다고 말씀 주셨습니다.
다음으로는 이제 또 매니저님께 한번 질문을 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 영화반이라고 하면 교사와 학생분들이 함께 어떤 영화를 만들면 좋을지,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기획도 나누고 하시는 것 같은데, 혹시 매니저님은 영화반에서 어떤 역할들을 하셨는지? 아까 영화에서 보시면 인터뷰하시기도 하셨던 것 같아서 또 역할들, 영화반 활동들 좀 이야기 나눠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박정수) 2022년에 영화 노들에서 영화 모임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사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거듭해서 보면 민들레야학 팀이 멋진 작품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고 좀 질투심이 생겼어요. 우리 노들야학도 충분히 영화 만들 수 있는 학생분들과 또 그런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을 텐데. 그리고 노들야학 수업 속에서 조금 더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하자고 해서 만들었고요. 그러면서 이제 특활반 수업을 하려면 교사 자격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교사였기 때문에 매니저로서 역할을 하고 강사 이영욱 선생님을 강사로서 초빙을 해서 수업을 하게 됐고요. 매니저는 그냥 지원해 주는 거예요. 학생분들이 필요한 기술적인 어떤 지원을 좀 해 주고 또 의사소통도 좀 해 주고 그런 역할 정도였습니다.
(조희은) 그리고 또 이번에는 두 분께 동시에 질문을 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영화를 만든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 또 처음 대부분 영화를 만들어보셨을 것 같기도 해서 내가 어떤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지, 이거를 어떻게 좀 표현하면 좋을지 이런 과정들을 교사, 매니저, 감독 이렇게 많이 겪으셨을 것 같은데 이 과정 속에서 좀 투닥투닥하시기도 하고 마음이 잘 맞는 순간들도 있었겠지만 좀 투닥투닥하는 순간들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혹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잠깐 공개하실 수 있는 선에서 뭔가 그런 에피소드들 같은 게 있었는지, 어떻게 풀어나가셨는지 이런 것들도 매니저님과 교사분께 한번, 감독님들과의 소통, 영화를 만들 때 어땠는지 이런 것들 좀 여쭤봐도 될까요?
- (박정수) 저요? 이게 다른 야학이나 자립생활센터에서 만든 학생분들이 참여하는 영화나 이렇게 영상을 보면 주로 이렇게 화면 속에만 나오고 직접 제작은 안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 영화반의 힘이자 특징은 당사자들이 직접 제작하고 감독을 하고 기획하고 구성을 짜고 한다는 거죠. 물론 기술적으로 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있어요. 촬영을 이렇게 어떤 촬영을 하고 싶다고 하면 제가 촬영을 지원하고 또 편집 방향이나 이런 것도 말씀을 하시면 제가 이제 "어디서 끊을까요?, 어떤 영상을 쓸까요? 뒤로 갈까요? 앞으로 갈까요?" 이런 것을 감독님이 말씀을 하시면 제가 같이하는 거죠. 그런 역할을 했고. 그래서 좀 기술적으로 매끄럽고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학생분들, 우리 장애인 당사자분들이 감독 의도와 의지가 이렇게 엿보인다고 하는 게 저는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하다 보면 저는 박지호 감독님과 같이 작업을 했었는데 아침에 지하철 투쟁 아주 열심히 하셨기 때문에 가끔씩 편집을 할 때 주무세요. 그래서 "감독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봐요. 그리고 아침 투쟁을 하면서 느낀 점, 그러니까 같이 투쟁에 참여를 하는 분들 중에서 화장실을 가서 안 나타난다든가 약간 그런 어떤 내부에서, 투쟁 현장에서의 감독님이 가지고 있는 어떤 개인적인 생각이나 불만, 이런 사항들을 인터뷰할 때 자꾸 물어보시고 또 그거를 편집해서 계속 쓰자고 해서 “전체적인 방향이 안 맞는 게 아닐까요?” 이런 의논도 좀 하면서 조율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고집이 다들 세셔서 (웃음) '아, 이래도 될까?' 생각을 하면서도 최대한 감독님의 의도와 그거를 좀 맞춰서 편집을 했습니다.
-(이영욱) 저는 학생들이랑 이렇게 기획부터 마지막 상영까지 함께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다 힘들었어요. 그렇죠?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되게 명확하게 있었어요. '나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홍기 님 같은 경우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셨고 상지 님은 시설에 대한 이야기. 본인 이야기와 그리고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셨고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저는 이 영화반이 처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 모든 게 말이 새롭기는 해서 조금 영화라는 것을 어떻게 이렇게 해야 하지? 저도 솔직히 좀 잘 모를 때도 많고 어떻게 해야 할지 되게 난감할 때도 많은데 ‘이거를 어떻게 학생들이랑 처음 하시는 분들이랑 함께 만들어야 할까?’ 그게 좀 힘들었는데, 학생들이 그냥 자기 것을 너무 열심히 만들려고 하셔서 그냥 그 힘으로 영화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시간을 좀 많이 써야 하는 것들이 좀 힘들기는 했죠. (웃음) 계속 이렇게 찾아오시고 학생들과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해야 했던 게 처음에는 좀 서로가 알아가는 시간들도 필요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자기 이야기 하기 되게 불편하고 이렇게 자기 속내들이 잘 안 나오는데 학생들은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저를 데리고 계속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런 시간들이 다 만들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 같고 그런 관계들이 조금씩 쌓아가면서 되게 많이 싸웠죠. 홍기 형이랑도 솔직히 사이 안 좋고 상지 님이랑 수경 선생님이랑도 서먹한 거 많고 끝나고 나서 연락 잘 안 하거든요. (웃음) 그런데 그간의 시간들이 있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있어서 서로 싫은 소리 할 때도 많고 그렇지만 애정이 있었고 굳이 영화반이 아니더라도 자기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글을 써도 되고 그런 방식으로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희은) 다섯 분의 감독님들께 공통적으로 질문들을 드리게 될 것 같고요. 앉은 순서대로 답변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각각의 주제, 각각의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상영됐습니다. 그래서 감독님들에게 왜 내가 이 이야기들을 사람들한테 하고 싶었는지, 왜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이런 주제를 어떻게 선택하게 되셨는지 답변을 한번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홍기) 어머니 산소 가는 길에, 산소. 생각이 났어요. 어머니가 제게 잘해 주셨고 보고 싶었고, 그래서 영화에 나오고 싶었어요, 어머니와 같이.
-(조희은) 영화에서도 많이 등장이 나온 말들이지만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하셨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많았고 또 어머니 산소를 같이 방문하는 과정 속에서 이런 영화들을 만들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주신 것 같아요. 또 옛날 생각들도 많이 나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이 영화로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김홍기) 저희 어머니가 저의 장애로 인해서 너무나도 육체적인 고생, 심적인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를 등에 업고 다니시면서 병을 고쳐보겠다고 유명한 곳에 다 찾아다니시며 고생을 하셨지만 결국에는 어머니 본인이 몸이 아파지셨고 회복이 안 되어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시설에서는 어머니를 잊고 살았고 탈시설 후에 영화반이 있어서 영화반에서 <그리운 어머니>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노들야학에서 차량 지원, 인적 지원을 해 주셔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시설에 25년을 넘게 살면서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그리운 어머니>으로 주제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조상지) 저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15살에 철원에 있는 문혜요양원에 버려서 15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시설에 있는 동안 언어장애가 있는 나의 말은 개 짖는 소리로 취급되었고 시설 안에서 학대와 인권 유린은 저의 경우 시설에 있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 더 심했습니다. 시설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상처였고 겹겹이 쌓여 있는 억울함의 덩어리였습니다. 같은 시설에 있었던 탄진이 형과 시설 이야기를 하면서 억울함으로 같이 눈물을 흘렸고 그 대화를 계기로 문혜원의 동료들과 모며를 꾸려 우리들의 겪은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상처를 덮기보다 드러내어 상처 치료법을 찾아보자는 의미로 모임을 시작했고 모임을 영상 기록으로 남긴 게 영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오지우) 오래전부터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를 보는데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거예요 그것을 보며 '나도 패러글라이딩을 하면 좋겠다' 생각을 했지만 제가 중증장애인이라 엄두를 못내다가 영화를 찍고자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주제 픽하여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서호영) 영화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주제를 뭐라고 할 것인지 생각했을 때 노들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노들에서 보낸 저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노들에서 일자리하고 공부하면서 자부심, 성취감을 느꼈는데 영화 주제를 뭐로 할 것인지 질문 받았을 때 노들을 생각했던 겁니다.
-(박지호) 저는 일반인이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인권을 갖고 그리고 우리가 2019년에 고용노동부가 들어어왔을 때, 그리고 요즘에 그러다가 올해 들어와서 갑자기 오세훈 시장이 공공일자리 관련해서 오세훈 시장이 지원을 멈췄고 그것에 대한 주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조희은) 다음 질문은 이제 교사와 매니저께는 영화를 찍으면서 또 어떠한 투닥투닥하는 일들이 있었는지를 제가 질문을 드렸었는데요. 감독님들께는 이제 영화를 만들면서 또 어떤 점이 가장 인상깊고 재미있었는지 그런 에피소드들이 있으시다면 이야기 주셔도 좋을 것 같고요. 또 한 분씩 차례대로 답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홍기 감독님 먼저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홍기) 어머니 산소에서 빨리 촬영을 끝내려다 보니 전달 안 될 부분도 있어서 아쉽습니다. 다음에는 잘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카메라 앞에 서니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NG가 많이 났고 웃음도 많이 나왔습니다.
-(조상지)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모임을 준비하면서 영상 작업을 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영화반 영욱 선생님께서 기획안 수업을 해 주셨어요. 수업을 듣고 기획안을 쓰게 됐어요. 지인의 소개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 지원 신청을 했는데 그게 덜컥 선정됐어요. 너무 기뻐서 노들야학 대표하는 영화인이라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잘난척하고 다녔거든요. 그때 제가 살짝 미쳤었어요. 두 번째는 영상에도 장면이 나오는데 시설에 갔을 때 시설 직원들이 저희를 견제하는 거예요. 우리를 보면 시설의 장애인들이 모두 탈시설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나 봐요.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절대 세상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그들의 생각이 돌아오는 우리들을 슬프게 했어요. 그때의 먹먹함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조희은) 노들야학 영화반의 에이스 (웃음) 자칭타칭 에이스 조상지 감독님의 답변 들어봤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제 감옥 같은 장애인 거주시설이라고 저희가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거주시설의 고발 영화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고요. 그래서 시설종사자들도 이렇게 탈시설 해서 당당하게 지역에서 자립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보면서 시설 거주인들이 시설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 어떻게 나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상지님의 말씀처럼 그런 두려움들이 그들에게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음으로는 오지우 감독님의 답변 들어보겠습니다.
-(오지우) 재미있었던 것보다는 어려웠던 점을 말하겠습니다. 패러글라이딩 탈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어려웠던 점입니다.
-(서호영)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이루어지는 편집 과정이 어려웠지만 영화반 이영욱 선생님께서 저랑 쉬운 말로 소통해 주시면서 편집하는 과정을 함께해 주셨어요. 그런 것이 재미있었어요.
-(박지호) 저는 인터뷰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러니까 인터뷰할 시간이 너무 어려웠는데요.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고.
(조희은) 저희 마지막으로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이렇게 크게 영화 상영도 하게 되시고 감독으로도 데뷔를 하게 되셨는데 이런 소감들을 한번 쭉 나눠 주시면서 교사, 매니저분들까지 앞으로 노들야학 영화반의 활동은 어떻게 될 것인지, 또 다음 출품 계획이 있다면 나눠 주셔도 좋을 것 같고요. 그렇게 하면서 좀 마무리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영욱) 힘들게 준비하셨을 텐데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5편 준비했는데 편집 안 된 한 가지가 더 있기는 해요. 작년에 노들야학에서 선생님을 하셨던 분들에 대한 인터뷰 영상들이 조금 남아 있고 그 작업들을 조금 올해 하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리고 올해는 여기 계신 학생분들이 좀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해서 조금 아주 느리게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새로운 두 분이 영화반에서 함께하고 계신데 학생을 가리면 안 되겠죠? (웃음) 그런데 새로운 분들을 만나니까 또 재미있는 것도 있기는 한 것 같아요. 사람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이분들과 또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찾아나가는 그런 재미가 있어서 지금 여기 오늘 영화 만드셨던 다섯 분도 조금 신변이 정리되시면 다시 영화반도 본인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으시면 오셔서 함께했으면 좋겠고 다들 다섯 분, 너무 고생 많으셨다는 이야기를 꼭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정수)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꼭 노들야학 학생분들하고 함께 이렇게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화반을 이렇게 만들었는데요. 1년 만에 이렇게 목표를 달성해서 올라오게 되어서 너무 감동적이고 개인적으로는 학생분들하고 같이 이렇게 이야기들을 잘 모아서 극영화를 학생분들하고 만들어보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이 있습니다. 파이팅!
-(김홍기) 이 영화는 저 혼자였다면 결코 할 수 없을 일이었을 테니까요. 산소는 전동휠체어 접근이 안 돼서 수동으로 갈아타고 내려갔습니다. 힘든 점이 있었지만 제 영화를 위해서 애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 교장선생님, 상근자 선생님, 영화반 이영욱 선생님, 활동지원사 허종현 아저씨, 정말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조상지) 올해 오세훈이 아무런 이유 없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개최가 불투명했었는데 개최될 수 있었던 것은 영화로운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뜻깊은 노들야학의 영화가 상영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입니다. 지속적으로 윤석열과 오세훈이 구석구석 탄압이 들어오고 있는데 늘 그랬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은 멈출 수 없잖아요? 저도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해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으로 투쟁을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지우) 매사에 조금 위축되지만 저의 모토가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한다인데 좋은 기회가 와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장애를 가지고 계신 여러분들도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찾아보세요. 삶 속에 좋은 기회가 올 것입니다. 망설이지 마시고 꼭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서호영) 후련해요. 후련하고 여러분, 영화 통해서 표현하고 싶은 것이 신기했어요. 감사하고 항상 감사합니다. 이영욱 선생님하고 그다음 박정수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수)
-(박지호) 저는 인터뷰부터 완성까지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요. 그리고 뿌듯한 부분도 있었는데, 영화반 이영욱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조희은) 제가 알기로는 이렇게 다섯 분의 영화가 상영되는 게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처음으로 상영을 한번 했고 이번이 두 번째라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 두 번째 맞습니다.
(조희은) 이렇게 두 번째 상영을 하게 됐는데 자기소개부터 하면서 GV 시작하겠습니다. 제 왼쪽에 계신 이영욱 교사분부터 쭉 차례대로 자기소개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이영욱) 안녕하세요? 영화반 교사 이영욱입니다. 반갑습니다.
-(박정수) 안녕하세요? 영화반에서 매니저 맡았던 박정수입니다.
-(김홍기) 안녕하세요? 그리운 어머니를 만든 김홍기입니다.
-(조상지) 안녕하세요? 노들장애인야학 자칭 에이스 조상지입니다.
-(오지우) 오지우입니다.
-(서호영) 안녕하세요? 서호영입니다.
-(박지호) 안녕하세요? 박지호라고 합니다.
(조희은) 이처음으로는 제 왼쪽에 계신 이영욱 교사께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에 저도 교사를 하고 있지만 목요일마다 다양한 특활 수업들이 있잖아요? 그중에서 영화반이 있었을 때도 있었고 없었을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제 이영욱 교사가 오시면서 영화반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됐는지 어떻게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는지 영화반 이야기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영욱) 짧게 하겠습니다. 2022년 가을 정도에 원래 영화반이 자조 모임이 있었고 여기 계신 세 분이 함께했고 자조모임 선생님을 찾던 중에 제가 같이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2022년 가을 정도에 자조모임을 몇 차례 하고 그러고 나서 작년에 영화 노들야학 특활반으로 수업을 시작했고요. 그래서 저희가 처음에 자조모임을 시작할 때 어떻게 했냐 하면 학생들이 영화를 다 만들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셔서 그리고 그때 정수 선생님도 함께하셨고. 그래서 본인들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간략한 한 줄 정도 소개를 받았어요. 그래서 그거를 바탕으로 자조모임 수업 계획서 비슷하게 모임을 어떻게 운영할지를 정했었는데요. 그래서 작년에 특활반 활동은 자조모임의 일종의 연장선으로 활동을 했었고 그러면서 새롭게 지우 님이랑 서호영 님이 함께 영화반으로 들어오셨고. 그리고 본인이 만들고 싶은 것을 다 만드셨어요. 만들려고 하셨고 수업 중에 워낙 개별적인 작업들이 많으니까 그런 부분들이 있으면 좀 따로 만나서 작업을 진행했던 경우들도 많고. 그리고 작년 말에 이렇게 간단하게 영화반 상영회를 했었고요. 그리고 좀 기회가 돼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상영이 돼서 너무 학생들은 어떤지 좀 궁금하기도 하고 저는 되게 기분이 좋습니다. 이상입니다.
(조희은) 처음에는 학생분들의 자조모임 형태로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그런 모임들이 있었다가 점점 커지면서 영화반까지 노들야학에서 진행되었다고 말씀 주셨습니다.
다음으로는 이제 또 매니저님께 한번 질문을 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 영화반이라고 하면 교사와 학생분들이 함께 어떤 영화를 만들면 좋을지,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기획도 나누고 하시는 것 같은데, 혹시 매니저님은 영화반에서 어떤 역할들을 하셨는지? 아까 영화에서 보시면 인터뷰하시기도 하셨던 것 같아서 또 역할들, 영화반 활동들 좀 이야기 나눠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박정수) 2022년에 영화 노들에서 영화 모임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사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거듭해서 보면 민들레야학 팀이 멋진 작품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고 좀 질투심이 생겼어요. 우리 노들야학도 충분히 영화 만들 수 있는 학생분들과 또 그런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을 텐데. 그리고 노들야학 수업 속에서 조금 더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하자고 해서 만들었고요. 그러면서 이제 특활반 수업을 하려면 교사 자격이 있어야 하는데 제가 교사였기 때문에 매니저로서 역할을 하고 강사 이영욱 선생님을 강사로서 초빙을 해서 수업을 하게 됐고요. 매니저는 그냥 지원해 주는 거예요. 학생분들이 필요한 기술적인 어떤 지원을 좀 해 주고 또 의사소통도 좀 해 주고 그런 역할 정도였습니다.
(조희은) 그리고 또 이번에는 두 분께 동시에 질문을 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영화를 만든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 또 처음 대부분 영화를 만들어보셨을 것 같기도 해서 내가 어떤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지, 이거를 어떻게 좀 표현하면 좋을지 이런 과정들을 교사, 매니저, 감독 이렇게 많이 겪으셨을 것 같은데 이 과정 속에서 좀 투닥투닥하시기도 하고 마음이 잘 맞는 순간들도 있었겠지만 좀 투닥투닥하는 순간들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혹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잠깐 공개하실 수 있는 선에서 뭔가 그런 에피소드들 같은 게 있었는지, 어떻게 풀어나가셨는지 이런 것들도 매니저님과 교사분께 한번, 감독님들과의 소통, 영화를 만들 때 어땠는지 이런 것들 좀 여쭤봐도 될까요?
- (박정수) 저요? 이게 다른 야학이나 자립생활센터에서 만든 학생분들이 참여하는 영화나 이렇게 영상을 보면 주로 이렇게 화면 속에만 나오고 직접 제작은 안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 영화반의 힘이자 특징은 당사자들이 직접 제작하고 감독을 하고 기획하고 구성을 짜고 한다는 거죠. 물론 기술적으로 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있어요. 촬영을 이렇게 어떤 촬영을 하고 싶다고 하면 제가 촬영을 지원하고 또 편집 방향이나 이런 것도 말씀을 하시면 제가 이제 "어디서 끊을까요?, 어떤 영상을 쓸까요? 뒤로 갈까요? 앞으로 갈까요?" 이런 것을 감독님이 말씀을 하시면 제가 같이하는 거죠. 그런 역할을 했고. 그래서 좀 기술적으로 매끄럽고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학생분들, 우리 장애인 당사자분들이 감독 의도와 의지가 이렇게 엿보인다고 하는 게 저는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하다 보면 저는 박지호 감독님과 같이 작업을 했었는데 아침에 지하철 투쟁 아주 열심히 하셨기 때문에 가끔씩 편집을 할 때 주무세요. 그래서 "감독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봐요. 그리고 아침 투쟁을 하면서 느낀 점, 그러니까 같이 투쟁에 참여를 하는 분들 중에서 화장실을 가서 안 나타난다든가 약간 그런 어떤 내부에서, 투쟁 현장에서의 감독님이 가지고 있는 어떤 개인적인 생각이나 불만, 이런 사항들을 인터뷰할 때 자꾸 물어보시고 또 그거를 편집해서 계속 쓰자고 해서 “전체적인 방향이 안 맞는 게 아닐까요?” 이런 의논도 좀 하면서 조율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고집이 다들 세셔서 (웃음) '아, 이래도 될까?' 생각을 하면서도 최대한 감독님의 의도와 그거를 좀 맞춰서 편집을 했습니다.
-(이영욱) 저는 학생들이랑 이렇게 기획부터 마지막 상영까지 함께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다 힘들었어요. 그렇죠?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되게 명확하게 있었어요. '나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홍기 님 같은 경우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셨고 상지 님은 시설에 대한 이야기. 본인 이야기와 그리고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셨고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저는 이 영화반이 처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 모든 게 말이 새롭기는 해서 조금 영화라는 것을 어떻게 이렇게 해야 하지? 저도 솔직히 좀 잘 모를 때도 많고 어떻게 해야 할지 되게 난감할 때도 많은데 ‘이거를 어떻게 학생들이랑 처음 하시는 분들이랑 함께 만들어야 할까?’ 그게 좀 힘들었는데, 학생들이 그냥 자기 것을 너무 열심히 만들려고 하셔서 그냥 그 힘으로 영화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시간을 좀 많이 써야 하는 것들이 좀 힘들기는 했죠. (웃음) 계속 이렇게 찾아오시고 학생들과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해야 했던 게 처음에는 좀 서로가 알아가는 시간들도 필요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자기 이야기 하기 되게 불편하고 이렇게 자기 속내들이 잘 안 나오는데 학생들은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저를 데리고 계속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런 시간들이 다 만들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 같고 그런 관계들이 조금씩 쌓아가면서 되게 많이 싸웠죠. 홍기 형이랑도 솔직히 사이 안 좋고 상지 님이랑 수경 선생님이랑도 서먹한 거 많고 끝나고 나서 연락 잘 안 하거든요. (웃음) 그런데 그간의 시간들이 있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있어서 서로 싫은 소리 할 때도 많고 그렇지만 애정이 있었고 굳이 영화반이 아니더라도 자기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글을 써도 되고 그런 방식으로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희은) 다섯 분의 감독님들께 공통적으로 질문들을 드리게 될 것 같고요. 앉은 순서대로 답변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각각의 주제, 각각의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상영됐습니다. 그래서 감독님들에게 왜 내가 이 이야기들을 사람들한테 하고 싶었는지, 왜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이런 주제를 어떻게 선택하게 되셨는지 답변을 한번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홍기) 어머니 산소 가는 길에, 산소. 생각이 났어요. 어머니가 제게 잘해 주셨고 보고 싶었고, 그래서 영화에 나오고 싶었어요, 어머니와 같이.
-(조희은) 영화에서도 많이 등장이 나온 말들이지만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하셨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많았고 또 어머니 산소를 같이 방문하는 과정 속에서 이런 영화들을 만들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주신 것 같아요. 또 옛날 생각들도 많이 나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이 영화로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김홍기) 저희 어머니가 저의 장애로 인해서 너무나도 육체적인 고생, 심적인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를 등에 업고 다니시면서 병을 고쳐보겠다고 유명한 곳에 다 찾아다니시며 고생을 하셨지만 결국에는 어머니 본인이 몸이 아파지셨고 회복이 안 되어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시설에서는 어머니를 잊고 살았고 탈시설 후에 영화반이 있어서 영화반에서 <그리운 어머니>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노들야학에서 차량 지원, 인적 지원을 해 주셔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시설에 25년을 넘게 살면서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쌓여 <그리운 어머니>으로 주제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조상지) 저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15살에 철원에 있는 문혜요양원에 버려서 15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시설에 있는 동안 언어장애가 있는 나의 말은 개 짖는 소리로 취급되었고 시설 안에서 학대와 인권 유린은 저의 경우 시설에 있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 더 심했습니다. 시설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상처였고 겹겹이 쌓여 있는 억울함의 덩어리였습니다. 같은 시설에 있었던 탄진이 형과 시설 이야기를 하면서 억울함으로 같이 눈물을 흘렸고 그 대화를 계기로 문혜원의 동료들과 모며를 꾸려 우리들의 겪은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상처를 덮기보다 드러내어 상처 치료법을 찾아보자는 의미로 모임을 시작했고 모임을 영상 기록으로 남긴 게 영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오지우) 오래전부터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드라마를 보는데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거예요 그것을 보며 '나도 패러글라이딩을 하면 좋겠다' 생각을 했지만 제가 중증장애인이라 엄두를 못내다가 영화를 찍고자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주제 픽하여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서호영) 영화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주제를 뭐라고 할 것인지 생각했을 때 노들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노들에서 보낸 저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노들에서 일자리하고 공부하면서 자부심, 성취감을 느꼈는데 영화 주제를 뭐로 할 것인지 질문 받았을 때 노들을 생각했던 겁니다.
-(박지호) 저는 일반인이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인권을 갖고 그리고 우리가 2019년에 고용노동부가 들어어왔을 때, 그리고 요즘에 그러다가 올해 들어와서 갑자기 오세훈 시장이 공공일자리 관련해서 오세훈 시장이 지원을 멈췄고 그것에 대한 주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조희은) 다음 질문은 이제 교사와 매니저께는 영화를 찍으면서 또 어떠한 투닥투닥하는 일들이 있었는지를 제가 질문을 드렸었는데요. 감독님들께는 이제 영화를 만들면서 또 어떤 점이 가장 인상깊고 재미있었는지 그런 에피소드들이 있으시다면 이야기 주셔도 좋을 것 같고요. 또 한 분씩 차례대로 답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홍기 감독님 먼저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홍기) 어머니 산소에서 빨리 촬영을 끝내려다 보니 전달 안 될 부분도 있어서 아쉽습니다. 다음에는 잘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카메라 앞에 서니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NG가 많이 났고 웃음도 많이 나왔습니다.
-(조상지)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모임을 준비하면서 영상 작업을 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영화반 영욱 선생님께서 기획안 수업을 해 주셨어요. 수업을 듣고 기획안을 쓰게 됐어요. 지인의 소개로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 지원 신청을 했는데 그게 덜컥 선정됐어요. 너무 기뻐서 노들야학 대표하는 영화인이라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잘난척하고 다녔거든요. 그때 제가 살짝 미쳤었어요. 두 번째는 영상에도 장면이 나오는데 시설에 갔을 때 시설 직원들이 저희를 견제하는 거예요. 우리를 보면 시설의 장애인들이 모두 탈시설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나 봐요.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절대 세상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그들의 생각이 돌아오는 우리들을 슬프게 했어요. 그때의 먹먹함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조희은) 노들야학 영화반의 에이스 (웃음) 자칭타칭 에이스 조상지 감독님의 답변 들어봤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제 감옥 같은 장애인 거주시설이라고 저희가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거주시설의 고발 영화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고요. 그래서 시설종사자들도 이렇게 탈시설 해서 당당하게 지역에서 자립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보면서 시설 거주인들이 시설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 어떻게 나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상지님의 말씀처럼 그런 두려움들이 그들에게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음으로는 오지우 감독님의 답변 들어보겠습니다.
-(오지우) 재미있었던 것보다는 어려웠던 점을 말하겠습니다. 패러글라이딩 탈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어려웠던 점입니다.
-(서호영)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이루어지는 편집 과정이 어려웠지만 영화반 이영욱 선생님께서 저랑 쉬운 말로 소통해 주시면서 편집하는 과정을 함께해 주셨어요. 그런 것이 재미있었어요.
-(박지호) 저는 인터뷰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러니까 인터뷰할 시간이 너무 어려웠는데요.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고.
(조희은) 저희 마지막으로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이렇게 크게 영화 상영도 하게 되시고 감독으로도 데뷔를 하게 되셨는데 이런 소감들을 한번 쭉 나눠 주시면서 교사, 매니저분들까지 앞으로 노들야학 영화반의 활동은 어떻게 될 것인지, 또 다음 출품 계획이 있다면 나눠 주셔도 좋을 것 같고요. 그렇게 하면서 좀 마무리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영욱) 힘들게 준비하셨을 텐데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5편 준비했는데 편집 안 된 한 가지가 더 있기는 해요. 작년에 노들야학에서 선생님을 하셨던 분들에 대한 인터뷰 영상들이 조금 남아 있고 그 작업들을 조금 올해 하려고 생각하고 있고요. 그리고 올해는 여기 계신 학생분들이 좀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 해서 조금 아주 느리게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새로운 두 분이 영화반에서 함께하고 계신데 학생을 가리면 안 되겠죠? (웃음) 그런데 새로운 분들을 만나니까 또 재미있는 것도 있기는 한 것 같아요. 사람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이분들과 또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찾아나가는 그런 재미가 있어서 지금 여기 오늘 영화 만드셨던 다섯 분도 조금 신변이 정리되시면 다시 영화반도 본인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으시면 오셔서 함께했으면 좋겠고 다들 다섯 분, 너무 고생 많으셨다는 이야기를 꼭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정수)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꼭 노들야학 학생분들하고 함께 이렇게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화반을 이렇게 만들었는데요. 1년 만에 이렇게 목표를 달성해서 올라오게 되어서 너무 감동적이고 개인적으로는 학생분들하고 같이 이렇게 이야기들을 잘 모아서 극영화를 학생분들하고 만들어보고 싶은 개인적인 소망이 있습니다. 파이팅!
-(김홍기) 이 영화는 저 혼자였다면 결코 할 수 없을 일이었을 테니까요. 산소는 전동휠체어 접근이 안 돼서 수동으로 갈아타고 내려갔습니다. 힘든 점이 있었지만 제 영화를 위해서 애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 교장선생님, 상근자 선생님, 영화반 이영욱 선생님, 활동지원사 허종현 아저씨, 정말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조상지) 올해 오세훈이 아무런 이유 없이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개최가 불투명했었는데 개최될 수 있었던 것은 영화로운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뜻깊은 노들야학의 영화가 상영되는 것은 가문의 영광입니다. 지속적으로 윤석열과 오세훈이 구석구석 탄압이 들어오고 있는데 늘 그랬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은 멈출 수 없잖아요? 저도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해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으로 투쟁을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지우) 매사에 조금 위축되지만 저의 모토가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한다인데 좋은 기회가 와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장애를 가지고 계신 여러분들도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찾아보세요. 삶 속에 좋은 기회가 올 것입니다. 망설이지 마시고 꼭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서호영) 후련해요. 후련하고 여러분, 영화 통해서 표현하고 싶은 것이 신기했어요. 감사하고 항상 감사합니다. 이영욱 선생님하고 그다음 박정수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수)
-(박지호) 저는 인터뷰부터 완성까지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요. 그리고 뿌듯한 부분도 있었는데, 영화반 이영욱 선생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