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존, 별은 알고 있다 |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 24.04.19 연대작_관객과의 대화 속기록

** 04.19 오전에 진행되었던 부대행사 <지옥의 문을 깨부수고>, 영화 <원더>와 <나의 세개>의 관객과의 대화는 현장사정으로 인하여 속기가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


장세현: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 <별은 알고 있다>와 <그레이존>의 관객과의 대화를 사회를 맡은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장세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일단 끝까지 봐주신 관객분들 모두 감사드리고요. 영화 <별은 알고 있다>에 출연하셨던 송해진 님과 그리고 두 영화의 감독님들을 모셨어요. 각자 자기소개와 영화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같은 인삿말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권오연 감독님부터.

 

-권오연: 안녕하세요? 저는 <별은 알고 있다> 연출을 맡은 권오연이고요. 이 영화는 작년 이태원 참사 1주기 때 맞춰서 완성이 된 영화였는데 저는 미디어팀으로 1년 동안 활동을 해 왔었어요. 그래서 1년 동안 이제 제가 참사 이후에 미디어팀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지켜봐 왔던 그리고 함께 기록했었던 그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고요. 사실 오늘 되게 오랜만에 상영을 하는 것이기도 해요. 1주기 때 되게 많이 상영을 했었고 그러고 나서 상영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초대해 주셔서 다시 한번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요. 그리고 또 함께 봐주신 관객분들께도 되게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송해진: 안녕하세요? 저는 이재현 학생의 엄마 송해진이고요. 우선은 쉽지 않은 영화의 다큐 두 편을 연달아서 보시기가 쉽지 않고 힘드셨을 텐데 너무 감사드린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싶고 저 같은 경우에는 우리 재현이는 159번째 희생자예요. 사실 참사 현장에서는 살아돌아온 케이스여서 지금 저는 좀 특이한 어떻게 보면 케이스이기도 하고요. 감독님이 제안 주셨을 때 재현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힘든 점이나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다른 또 사람이 없다 보니 제가 어떻게 영화, 다큐에 출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현숙: 저는 주현숙이라고 하고요. 오늘 보신 <그레이존>은 세월호 참사 10주기 영화 프로젝트라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그런데 그 안에 바람의 세월이라고 지성 아버님이라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만드신 다큐가 있고요. 그다음에 세 가지의 안부라고 독립 미디어 활동가, 다큐멘터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3명이서 한 편씩 해서 옴니버스로 만든 그 프로젝트 안에 있는 게 이제 <그레이존>이고요. <그레이존>, 그다음에 흔적, 그다음에 드라이브 97 해서 세 가지 이야기가 있고요. 또 다른 하나는 극 영화가 있어요. 극 영화는 지금 5월에 개봉을 하는데요. 그거는 지금 텀블벅으로 제작비를 모으고 있습니다.

제가 사실 저도 <별은 알고 있다>를 못 봐서 계속 보려다가 못 봐서 오늘 봐서 약간 지금 보고 나서 저도 관객분들이랑 비슷하게 정신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장세현: 영화 보는 중간에 많이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했었던 것 같아요. 먼저 제가 준비한 질문은 주현숙 감독님한테 정신이 없는데도 좀 먼저 여쭈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좀 궁금했거든요. 영화 제목이 왜 <그레이존>인지 혹시 간단한 설명 같은 거 해 주실까 있으실까요?


-주현숙: 어제도 그 질문을 받았는데 저도 왜 제목을 그렇게 지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레이라는 게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뭔가 회색 논리?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언론계에서는 그 말을 약간 좀 다르게 쓰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어떤 것도 명확하게 희다, 검다라고 할 수 없다, 처음에는. 모든 것은 다 불투명, 불명확하게 다가오는데 그것들을 잘 취재해서 명확하게 만드는 게 일인데 그걸 되게 쉽게 흑이다, 백이다 하는 순간 사실은 본질이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그 그레이를 하지 말고 취재를 잘해라, 이런 이야기이기도 하고 사실 여러 가지 색을 놓고 돌려 보면 회색이 나온대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다양한 이야기들이 그 안에 있기도 하다, 그런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설명을 잘했는지 모르겠어요.

 

 

장세현: 그래서 뭔가 그런 상황이 이제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우리가 아직도 10년이 지났지만 그런 마음 속에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고 국가가 특별히 책임을 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불명확한 거를 표현하고 싶으셔서 했던 제목이라고 이해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해도 될까요?

 

-주현숙: 훌륭한 해석인 것 같아요.

 

 

장세현: 영화 마지막 장면 있잖아요. 거기를 보면 인터뷰를, 참여했던 언론인들이 이제 영화 내용을 쭉 보면 세월호 참사를 현장을 마주하고 난 뒤에 겪게 되는 변화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에 세월호 기록팀에 합류하는 분들도 계시고 아니면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 되새기면서 국가를 더 비판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된 분들 이야기도 나오고 특히 마지막 장면에는 이태원 참사 이후에 어떻게 언론인들이 활동을 하는지가 나오면서 정기 라디오 프로그램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이야기를 내보내면서 가장 중요한 기록자는 누가 뭐라 해도 유가족이 아닐까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뭔가 영화 초반에는 다들 보도에 집중한 사람들이었다면 소식을 알리는 것에 집중한 사람들이었다면 엔딩에는 그 여러 가지 언론 활동의 분야 중에서 기록에 집중됐다고 생각했어요. 보도와 기록이 과연 어떤 관계인가, 이런 의문이 들기는 하더라고요. 그래서 특히 기록인이라는 그 업무, 그 의무를 소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언론인이 참사에 대해서 더 책임감 있게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을 하시는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주현숙: 사실 제가 전작이 있어요. 당신의 세월이라는 그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목격자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였는데 사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영화를 한다는 건 사실 쉽지가 않거든요. 어떤 참사를 사실 다루더라도 쉽지 않은데 그래서 저는 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한 편 만들었으면 됐지. 다른 사람이 만들면 되니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재작년에 이태원 참사가 난 걸 보면서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됐어요. 그 이유가 영화에도 나오기는 하지만 단순히 어떤 보도를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떤 참사가 났을 때 그 참사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가 잘 합의를 해야 하잖아요, 사실은. 그래야만 혐오나 이런 것이 없고 잘 애도하고.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이제 보도는 사실 상황을 전달해 주는 정보의 어떤 전달자라는 역할만 하니까 실제로, 그런데 그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기록하고 공동체가 그걸 잘 기억하고 합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지 않을까? 기록이라는 거는 그런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저한테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는 언론인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세월호 참사로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저도 여전히 그런 부분이 있고 저도 영화를 보면서 계속 <별은 알고 있다>을 보면서 되게 그런 부분에 무너지는 마음이 있기도 했는데 어떤 덩어리는 많이 안 바뀐 것 같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 사람들은 사실 세월호 참사를 공유하면서 각자 그거를 해석하고 어떤 숙제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물론 모든 언론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제가 만나봤던 사람들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 같고 그리고 사실은 그 고민이 영화를 보고 있는 저를 포함해서 영화를 만든 저를 포함해서 보고 있는 사람들도 그 질문을 같이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10년 동안 그럼 나는 뭘 했지?라는 질문을,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록은 좀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장세현: <별은 알고 있다>로 나오신 감독님과 해진 님에게도 비슷한 질문 드리고 싶었어요. 이제 직접 언론을 많이 상대하셨을 텐데 이태원 참사 때는 이제 세월호 때보다 좀 더 언론인들의 태도에서 기록을 주현숙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사건을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기록의 역할이 더 언론에서 강조가 된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권오연: 일단 저도 이제 <그레이존> 보면서 저는 이제 그 당시에 고등학생이었어서 뉴스 보도나 이런 것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 보면서 다시 좀 오래전의 기억을 다시 꺼내게 됐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되게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참사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면 이태원 참사는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았었던, 그리고 그날 밤. 그러니까 진짜 10시부터 새벽까지의 상황이 끝난 후에는 되게 그냥 그거에 대한 어떤 이야기나 보도나 이런 것들이 되게 사라졌던, 순식간에. 이게 딱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뭘 알고 싶어도 사실은 잘 모르겠고 그거는 가족들도 너무 마찬가지였다는 걸 나중에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 되기도 했었고 뭔가 그런 게 정보는 사실 너무 많았는데, 그러니까 인터넷을 켜면 그 참사에 대한 소식이 들리고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사진이나 이런 걸 볼 수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지? 그리고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라는 거에 대한 해석이나 이런 것들은 너무나 부족했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여전히 되게 기록이나 언론의 역할이나 이런 질문들은 우리가 계속 가지고 가야 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또 어머니가 더 하실 이야기가 많을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


-송해진: 그런데 사실 이런 사회적 참사의 기록이라는 거는 크게 보면 진상 조사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기록의 중요성도 있을 것 같고 이 사회가 참사 이후에 어떻게 회복되어 가는가. 재발 방지 대책이나 이런 거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도 기록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 같은데 여러 기록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우선 희생 유가족이다 보니까 이런 유가족이나 생존자의 목소리를 듣는 거는 기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한 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이태원 참사 같은 경우에는 정부가 어떻게 보면 희생자의 이름이나 얼굴을 알리고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피하려고 하는 듯한 태도가 보였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생존자도 그렇고 저희 유가족도 그렇고 목소리를 내는 게 굉장히 주저했었던 것도 그런 분위기도 있었고 힘들었고. 또 사회적으로도 저희의 목소리를 들으러 와주는 사람도 세월호 때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 159번째 희생자이다 보니 아이가 죽음의 형태가 현장에서 죽은 게 아니라 자살이란 말이에요. 제가 끊임없이 힘들어했던 지점 중의 하나는 이 아이도 개인적인 이유로 총리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의지의 부조리나 이런 게 아니라 참사의 희생자라는 거를 말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저에게 그 이야기를 물어봐주는 사람은 어디 누구도 없었어요. 아무도 말을 물어봐주지 않으니 저는 말을 할 수 없었고 당연히 언론에서도 비춰지기 힘들었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국회의원이나 방송이나 이런 데 직접 연락을 해야 했고 연락을 해서 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제 스스로 말을 했어야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기록은 사실 너무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런데 유가족인 저희는 어떤 게 중요한지를 잘 몰라요. 시간 자체가 너무나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시기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이거는 중요한 거니까 기록해 줘, 이걸 물어봐줘야 하는데 그런 거는 어떤 정부 기관도 마찬가지고 언론도 마찬가지고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이런 지점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많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장세현: 들어보니까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에 대한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많이 나아진 점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나빠진 점도 있는 것 같아서 더 우리가 다 안고 갈 숙제인 것 같습니다. 다음 질문도 사실 해진 님에게 하는 질문인데 이제 유가족 협의회 운영위원으로 계시면서 되게 많은 인터뷰를 하시잖아요. 그래서 보통 재현 님의 어머니로 소개를 하시고 재현 님에 대한 사적인 기억도 어느 정도는 계속 나누는 입장이시다 보니까 이 질문이 어려우시면 대답을 안 하셔도 되는데 이런 이야기를 언론에 하시는 게 힘드실 것 같아서 이런 입장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시는지 공유를 하고 싶으시면 해주세요.


-송해진: 제가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언론 인터뷰나 이런 거를 자주 했던 사람도 아니고 방송에 비친다거나 기사에 나온다거나 이런 거는 거의 없었던 일인데 안 그래도 힘든 상황인데 자꾸 막 누구한테 연락은 오고 인터뷰를 하자고 하는데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굉장히 고민이 많았어요. 사회적인 분위기도 역시 이건 저의 아이를 드러내는 게 과연 옳을까? 이로 인해 또 저도 그렇지만 ‘저희 가족들도 피해를 보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굉장히 컸어요.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도 제가 처음부터 인터뷰나 이런 활동에 대해서 주저하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던 건 재현이가 어쨌든 저한테 마지막으로 남겨준 영상 안에는 잊어버리지 마, 기억해 줘라는 말을 저희한테 해 줬어요. 그래서 물론 어미가 어떻게 자식을 잊겠어요. 잊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그거지만 이 아이가 앞으로 살았다면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것이고 그 안에서 자기의 이름이 불려질 것이고 자기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텐데 그게 어떻게 보면 한순간에 없어진 거라서 남아있는 제가 재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재현이 이름을 한 번 더 불러줄 수 있게 하고 얼굴을 한 번 더 보여질 수 있게 하는 게 어떤 큰 의미가 아니라 엄마인 제가 재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그래서 재현이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장난기가 많은 고등학교 1학년 남자 아이였어요. 그래서 평상시에도 장난기도 많았고 어렸을 때부터 워낙에 활발한 아이, 활동적인 아이여서 사고도 많이 있었어요. 119 차에도 많이 실려가고 자전거 타다 부딪히고 그래서 그런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저한테 남아 있는 재현이의 이미지가 있어요. 이미지는 항상 웃는 얼굴, 그다음에 어떤 봄, 햇살? 이런 게 저한테 재현이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이미지 같은 거거든요. 그런 이미지의 아이였어요. 그런 이미지의 아이였는데 갑자기 너무나 친한 친구 둘을 잃게 되다 보니까 그 친구들이 정말 많이 보고 싶었을 것이고...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지만 저도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지만 죽는다는 게 이 친구한테는 정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거였던 거예요. 죽기만 하면 두 친구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마음을 제가 어느 순간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죽기만 하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죽는 게 이 아이한테는 그다지 그렇게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순간에는. 그런데 마지막에 걸렸던 거는 가족인 거예요. 저나 아빠나 동생이나. 그래서 마지막 영상에 그 아이가 저희 가족들한테 해 준 말들을 보고 있으면 아, 얘가 가고는 싶은데 남아있는 가족들이 걱정은 되고 자기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마음들이 다 느껴졌어요.

다 느껴져서 사실 그런 마지막 메시지나 그런 영상들을 보면서 많은 힘을 받고 또 그런 아이였던 것 같아요.

 

플로어: 안녕하세요? 영화 너무 잘 봤고요. 저는 감독님한테 질문드리고 싶은데 뭔가 참사 현장이나 유가족을 다루면서 굉장히 그거를 되게 객관적으로 조금 너무 다가가서 뜨겁지 않게 하지만 이거를 보여줄 수, 경계를 되게 잘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하신 게 계속 띄어서 되게 멋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면서 더 이해가 되고.

아무튼 그런 와중에서 어떤 지점에서 노력하셨는지, 그리고 마지막에도 엔딩 크레딧 보면 또 친구들의 사진이 확 올라가잖아요. 그거는 또 그전에 있었던 표현 방식이랑 또 확 달라지는 느낌이어서 그거에 대해서도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넣으신 건지 그런 것도 궁금합니다.

 

-권오연: 사실 되게 거리를 두려고 노력을 했다기보다는 사실 참사가 일어난 지 1년밖에 시간이 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저희도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으로 가족분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긴 시간 깊이 있게 들은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아마 그 거리감이 아마 저희가 경험했던 거리감과도 비슷한 거리감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좀 들고 그리고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은 사실 재현 어머니가 방금 해 주신 말씀이랑 되게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우리가 참사 이후에 어떤 특별법 제정이나 이런 걸 이야기할 때 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사실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라는 거를 늘 같이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이런 참사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언급되거나 다시 호명될 때 그 사람들이 주눅든다거나 뭔가 왠지 그 이야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그 순간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거든요. 그런데 여전히 우리 사회는 너무나 그런 것 같아요. 가족들도 처음에 영화에도 나오지만 처음에 그 기자회견을 하기까지 50일이 걸렸다는 것, 그리고 언론에 인터뷰를 할까 말까 고민해야 하는 상황들. 그런 것들이 결국에는 우리가 그 피해자를 온전히 애도하고 같이 기억하는 것을 방해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되게 재현 어머니가 방금 이야기해 주신 재현이의 표정, 얼굴, 말투, 이런 사람이었는지 그거를 마치 내 친구나 가족처럼 기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되게 짧은, 진짜 짧은 한 장의 사진이지만 진짜 그 살아 있을 때 모습이 온전히 담겨 있는 밝은 모습, 가장 예쁜 모습으로 한 분, 한 분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에 긴 시간을 할애해서 그런 크레딧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장세현: 저도 그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한 분, 한 분 이렇게 이름이랑 사진이 보이잖아요. 그분들 인생이 어떤 사람이었을지 자꾸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한 분, 한 분 계속 나오는데. 그래서 너무 인상이 깊었습니다. 혹시 다른 질문하고 싶으신 분 계실까요? 사실 저희 시간이 거의 다 돼서 질문이 한 두 개 더 있었는데 일단 해진 님한테 한 가지 질문을 더 하자면 영화 보면 유가족들이 함께 뭉치는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분향소를 같이 정리하시기도 하고 꽃을 꽂아주시기도 하고 또 이지연 님의 어머니께서 항상 자녀분한테 맛보여줬다면서 신메뉴 올리는 모습도 기억이 나요. 그래서 이제 같은 유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유대감과 연결 그런 걸 느끼시겠지만 분향소나 투쟁 현장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잖아요. 그런 시간을 통해서 더 깊은 연결감을 느끼셨는지, 아니면 그런 활동들을 통해서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 이런 게 기억나는 게 있으신지 한번 여쭈어보고 싶었습니다.


-송해진: 사실 이런 집회나 이런 투쟁 현장에 있었던 경험들이 저도 그렇지만 저희 유가족들이 거의 처음 해 보는 경험들이거든요. 그래서 물론 옆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분들이 같이 도와주시니까 지금까지 오기는 했는데 일종의 저희는 하나의 미션 같은 거예요. 159시간 비상 행동. 159km 걷기. 이런 식이거든요. 이거를 해 나가려면 10일이든 일주일이든 항상 그런 프로그램이 생기면 이거를 혼자 하면 당연히 못하죠. 그리고 뻘쭘하고 그 사람 많은 데서 언제 기어서 절을 해 봤겠으며 다 못해 본 것인데 같이 하니까 또 할 수 있고 또 그 하나의 미션 같은 거를 같이, 이거를 성취, 끝내었을 때 그 안에서 서로 느끼는 어떤 공통의 어떤 마음, 연대감 이런 것도 가면 갈수록 커지는 것 같고 최근 같은 경우에는 대통령께서 거부권을 행사하신 다음에 저희 어머님들이랑 아버님들이 삭발을 하셨는데 삭발하실 분들을 신청을 받았어야 했어요, 제가. 신청을 받았는데 신청을 받게 되었을 때 신청해 주신 어머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어머님들 중에서도 나이차가 있을 거 아니에요. 조금 더 나이가 있으신 어머님도 계시고 조금 더 어리신 분도 계시고 직장 생활을 하는 분도 있고 안 하는 분도 있고. 애가 큰 애가 있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어린아이, 학생이 있는 아이도 있고. 그런데 삭발하시는 어머님들이 나이 든 내가 해야지. 어린 너희는 일도 더 해야 하고 애도 있는데 내가 다른 거는 못해도 이거는 내가 하는 게 맞아.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거든요. 그럴 때는 너무 마음도 아프고. 참 마음도 아프고 고맙고 또 그런 마음들이 하나하나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같이 모아지고 느끼고 하니까 사실 지금은 저희는 사실 유가족이라고 안 그렇고 별가족이라고 이야기해요. 같이 손 만져주고 하는 것들이 굉장히 큰 위로고 소중합니다. 모든 관객들이 다.

 

 

장세현: 저희도 이제 여기 계신 모든 관객분들한테 별가족이라고 말을 잘 기억하고 돌아가실 것 같아요. 잠시만요. 그래서 이제 권오연 감독님께는 질문을 안 드려서 궁금하긴 했거든요. 이제 처음에 거리감이 있다고 아까도 말씀을 해 주셨는데 어떻게 인터뷰 하시는 별가족님들과 어떻게 유대감을 쌓으셨고 그런 과정들이 궁금하실 것 같아서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권오연: 인터뷰를 할 때로부터 또 1년이 지나서 지금은 가족분들이랑 훨씬 그때보다도 더 가까워졌던 것 같은데 저는, 그러니까 이 가족분들이 서로, 그러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막 같은 아픔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족같이 느껴지고 이런 것은 또 아니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가족분들이 서로를 만나고 관계를 맺고 그런 끈끈한 아까 재현 어머니가 말해주셨던 것처럼 끈끈한 유대감을 쌓아 오는 과정에서 그 주변에 있는 다른 활동가들이나 저희 같은 미디어팀도 함께 그 관계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과정을 앞으로도 그런 과정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장세현: <별은 알고 있다>는 1년, 1주기에 맞춰서 나온 영화잖아요. 혹시 올해에도 준비하고 계신 게 있는지.

 

-권오연: 지금 미디어팀도 2주기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게 1주기처럼 다큐의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는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는 일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다큐멘터리나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사람들이 편하게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장소와 이런 자리와 그런 것들을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참사를 어떻게 우리가 기억해 나가야 하는가. 이거를 고민하는 작업들을 이제 2주기때도 조금 더 이어나가보려 하고요. 재현 어머니가 이야기해 주셨듯이 여전히 참사를 함께 경험했었던 생존자나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나오기 힘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한 위로를 건네지 않은 채로 “나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은 되게 힘들고 어려운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좀 그런 분위기를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거를 고민하면서 2주기를 준비해 나갈 것 같습니다.

 

 

장세현: 그럼 이제 마지막, 거의 마지막 질문으로 아까 재현 어머니도 말씀해 주셨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거부권을 행사했잖아요. 그래서 다들 마음속에 담아둔 말들이 많으실 것 같아서 혹시 윤석열 대통령께, 여기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한마디씩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송해진: 계시지도 않고 계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이게 사람들이 거듭 참사가 계속 반복되고 있잖아요. 하나가 다 어떻게 납득 될 만하게 해결이 된 다음에 참사가 있는 게 아니라 아직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참사가 있는데 또 다른 참사로 또 덮여지고 또 덮여지고 이런 상황들이 지금 계속 벌어지고 있는데 물론 이 안에서 처음에는 저도 그랬지만 슬프고 분노감이 있고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무기력해지는 것도 있을 것 같고 또 그냥 누구를, 국가나 다른 누구를 같이 도와서 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 마음속에는 그래도 무언가가 남아 있거든요. 물론 지금 이렇게 방송이나 언론부터 해서 말 못하게 누르고 막고 하고는 있지만 반드시 어느 시점에는 터질 수밖에 없고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 에너지는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통령님도 좀 귀를 하루빨리 여시는 그날이 올 때까지 기도드리겠습니다.

 

-권오연: 저는 되게 또렷하게 남아있는 장면 중의 하나가 국가 애도 기간 때 윤석열 대통령이 맨날 와서 헌화를 하던 장면이었는데 진짜 국화꽃을 이렇게 들고 가서 이렇게 얹어놓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편집하면서도 그 장면 여러 번 봤는데 볼 때마다 약간 저게 정말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진짜 애도하지 않을 생각으로 애도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주현숙: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아요.

 

플로어: 저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하실 거니까 한 가지 부탁이라고 해야 할까요? <별은 알고 있다>를 네 번째 보는 것 같거든요. 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재현 어머니께서 재현이를 기억해 달라고 재현이도 이야기했고 그러려고 하신다고 하셔서 아, 그거는 할 수 있겠구나. 그런, 그거 하나라도 지금 생각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마음이 들고요. 그래서 재현이를 더 기억하기 위해서 뭐라도 말씀을 드려야겠다, 싶어서 말씀을 드렸고. 여기까지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고 혹시 재현이한테 뭔가 말을 해 주시면 지금 앞으로도 오래도록 재현이를 다 같이 기억할 수 있지 않으려나, 잘못된 생각인가? 그런 생각도 잠깐 듭니다.

 

-송해진: 갑자기 저는 아이를 보낸 엄마,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생각한다는 거는 항상 울음이 동반될 수밖에 없기는 해요. 우는 거는 사실 쉽지는 않거든요. 굉장한 큰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고, 그래서 어떨 때는 좀 많이 울었다 싶을 때는 당분간은 재현이를 생각을 안 해 봐야겠다, 이렇게 좀 피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런데 어쨌든 그런 기억할 수 있는 힘, 재현이를 생각할 수 있는 힘, 이런 힘은 결국은 제가 오늘의 이 자리에 있는 것처럼 누군가를 만나는 데서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지금 힘든 상황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어떤 유가족들끼리 만나도 그렇고 저희 권오연 감독님을 만나도 그렇지만 웃고 다 이야기하고 이 안에서 밝은 에너지와 따뜻한 위로와 위안을 다 받거든요. 그래서 이런 관계 안에서 저는 힘을 받는 것 같고 또 이런 힘을 얻어서 이 힘으로 울면서 재현이를 기억하면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굉장히 힘드실 거예요. 제가 세월호를 보내면서 느꼈던 감정도 그랬긴 하지만 이런 기억하기 힘든 이 과정을 조금 더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할 수 있으려면 같이 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으시면 조금 노력하시면 있을 것 같기는 하거든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현숙: 제가 아까 윤석열 대통령은 별로 말도 섞고 싶지 않다고 했던 거는 진짜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거기에 기대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머니 말씀하신 것처럼 실제로 내가 왜 이런 참사에 자기가 당사자도 아니고 가까운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실 다 여기 계신 분들이 마음이 아프시고 아프시잖아요. 어떻게 보면 목격자로서 사실 이 참사에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지만 간접적인 저는 피해자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어머니도 그 다른 유가족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으셨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여러분들이 혹은 저도 제가 제 주변에서 말이 좀 통하는 사람,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하면서 지내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약간 인간관계가 정리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정도쯤은 저는 충분히 그럴 사람이라면 빨리 끊는 게 저는 더 좋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해서 서로 좀 힘을 받았으면 좋겠고 그리고 너무 미안하면 사실 어느 순간 외면하게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 마음이 혐오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마음이 어느 순간 싹 넘어가는 순간 어떤 혐오랑 닿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미안한 마음보다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그냥 찾는 거,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영화도 보고 노란 리본을 맬 수 있으면 노란 리본을 매고 보라 리본을 맬 수 있으면 매고 그다음에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으면 되고 사실 재현이 어머니가 굳이 여기 와서 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이를 잃은 것만으로도 너무 힘든 일인데 그런데 사실은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저는 어느 부분에서는 그 에너지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내 주변에 있는 노동을 하는, 일하는 공간이라든가 아니면 학교라든가 동네라든가 안전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걸 좀 더 유심히 바라보고 관습적으로 관행적으로 했던 일들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하고 그게 꼭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관계 안에서도 안전한가?를 계속 그런 질문들을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는 게 우리가 미안하지 않으면서도 이 참사의 희생자들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그리고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죽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도 막 보면서 울고 힘들기는 했지만 밝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어머니도 사실 이 톤은 몇 년 돼야 나오는 톤이거든요. 그래서 역시 힘을 또 받으면서 오히려 저는 가는 것 같아요. 너무 말이 길었죠? 이제 좀 정신이 돌아와서요. 정신이 돌아왔는데 끝나네요. 어쨌든 그런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짜 오늘 와주셔서. 한 분, 한 분이 감사하고 또 이렇게 영화를 틀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늘 그 감사한 마음으로 이분들의 얼굴을 잘 기억해서 제가 힘을 내면서 저도 잘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권오연: 너무 두 분이 이렇게 말씀 많이 해 주셨는데 제가 더 보탤 수 있는 게 뭔지 모르겠는데요. 너무너무 다 지지하고 공감하는 말씀들이고 진짜 저 역시도 처음에 참사가 일어나고 제일 괴로웠던 거는 죄책감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거기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가 무슨 가해자도 아니고 그거를 막을 수 있었던 사람도 아니지만 너무 죄책감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거기에 있던 그날의 사람들을 떠올리면 또 너무 괴로워졌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왠지 이 참사가 구조적 원인이 있고 사회의 잘못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어떤 그냥 약간 본능적인 어떤 그냥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는 것 같은 그런 참사였잖아요, 이태원 참사가.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 사실을 마주하는 게 두렵고 힘든 거라는 생각이 여전히 들고 그거를 직면하기 위해서 진짜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그런 공감이 필요하겠다. 이 참사는 정말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거를 그 마음을 모아내는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리에서 진짜 제가 활동을 시작한 이유도 그거였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아서 저도 활동을 시작했던 것 같거든요. 그 이전에 미디어 활동을 했었던 것도 아닌데. 그러면서 그런 뭔가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으로 뭔가를 시작해 보자라는 생각을 저도 이태원 참사 이후에 많이 하게 되었고 더 많은 분들이 그런 마음으로 뭐가 됐든 자기 주변에서 그런 활동들을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제 같은 자리가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도 더불어 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