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19 오전에 진행되었던 부대행사 <지옥의 문을 깨부수고>, 영화 <원더>와 <나의 세개>의 관객과의 대화는 현장사정으로 인하여 속기가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
(하은) 안녕하세요? 저는 피플퍼스트 성북센터라고 발달장애인 당사자 단체에서 조력자로 활동하는 하은이고요. 오늘 사회를 맡았습니다. <같이 살기> 관련해서 두 감독님하고 이야기를 나눠볼 텐데 영화에 두 분이 출연하셨지만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민다홍) 안녕하세요? <같이 살기> 공동 연출 민다홍이라고 합니다.
-(공새롬) 안녕하세요? <같이 살기> 공동 연출 공새롬입니다.
(하은) 저는 영화 처음 시작할 때 <같이 살기> 사이 이렇게 슬래시가 있는 게 되게 인상 깊었는데요. <같이 살기>가 동거의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같이 있음과 또 동시에 삶을 살아가기라는 의미가 같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보여주는 타이틀인 것 같아서 되게 인상 깊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사실 같이 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삶을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첫 번째 질문은 두 분의 근황과 함께 어떻게 같이 살기가 계속되고 있는지? 아니면 어떻게 살고 계신지 그리고 장고님과 뚱이님 소식도 궁금합니다.
-(민다홍) 영화 속에 나왔던 그 공간에서 같이 잘 지내고 있고요. 영화에서도 사실 실직한 내용에 대해서 아직 그 연장선상에 있어요. 저도 드론사업자를 내고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 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고 나머지는 알아서 이야기해주세요. 뚱이랑 장고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공새롬) 일단 영화에서 나왔던 것처럼 제가 직장을 잃은 게 그 직장이 없어졌어요. 폐업을 한 거라서. 그래서 사실 직장인으로서 사는 것보다는 제 일을, 제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준비 중에 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것을 넘어서서 홍과 함께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영상 제작이 사실은 요즘에 필수 요소잖아요. 무엇을 하든 간에, 그래서 저 혼자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홍과 최대한 길게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향을 모색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장고는 부모님이 한 달에 3주는 부모님이 데리고 있으시고 너무 예뻐 하셔서, 저랑은 일주일 정도 지내고 있습니다.
(하은) 제가 되게 좋아하는 장면들이 너무너무 많았지만 추리고 추려서 좀 이야기를 하면 사실 서로의 다른 생활습관, 설거지를 어느 타이밍에 할 것인가? 이 논쟁이 저는 서로가 되게 진짜로 같이 사는 이런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느껴져서 갈등, 이런 느낌이 아니고 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이었거든요. 그래서 사실 영화 초반부에 민다홍 감독님은 가족에게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가족은 어디 있을까 질문을 던지시면서 시작을 하셨고 공새롬 감독님은 혼자 지내는 안정감과 부모님과 지내는 안정감이 나에게 둘 다 있다, 이러한 표현을 해주셨는데 어쩌면 가족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는 게 한 사람의 세계관이 굉장히 다른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두 분이 어떻게 같이 살게 결심을 하셨는지, 제가 알기로는 감독님이 먼저 제안을 하셨다고 영화에서 이해를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제안을 하실 수 있었는지? 두 분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공새롬) 제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지만 사실 우리 같이 살자라고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고 처음에 홍이 부산에 왔을 때 저희 집과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집을 구했어요. 차로 10분? 그런데 저는 부모님 집에서 지내면서 부모님을 너무 사랑하고 너무 좋지만 조금... 힘든 거 있잖아요. 뭔지 알죠? 아시죠. 그래서 홍 집에 자주 왔다 갔다 하게 됐고 그리고 서울과 부산의 인프라 자체가 완전 달라요. 나름 이런 교통편이 편리한 지역에 살았지만 그래도 서울에 비하면 굉장히 불편해서 출퇴근을 제가 도와주기도 하고 장을 보기도 하고 도와주다 보니까 머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길어졌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민다홍) 사실 재밌잖아요. 혼자 사는 것보다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서로 각자 다른 직장을 다녔지만 집에 와서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하루의 마무리를 같이 하고 또 뭔가 저도 낯선 공간에, 지역에 와서 혼자 지내면 조금 어려운 그런 부분들을 친구가 같이 해주니까, 그러다 보니까 사실 서로 처음부터 같이 살자고 했던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거죠. 그래서 사실 이렇게 누가 먼저라기보다는 되게 그 과정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부모님한테서 그 사랑해서, 너무 사랑하지만 좀. 그렇죠. 그런 마음이 있었고 저도 그냥 혼자 사는 것보다는 재미있으니까.
-사회자: 영화에서 어쨌든 민다홍 감독님은 청각장애가 사실 후천적으로 생기시는 과정이 있었잖아요. 어쨌든 청각장애를 받아들이고 그거를 삶의 조건으로써 삼고 살아가려는 와중에 되게 원통하게 실직이라는 그런 시련도 있었고 그래서 사실 민다홍 감독님과 또 같이 사는 삶을 같이 하는 친구로서 공새롬 감독님한테 청각장애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민다홍)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장애 등급을 받은 장애인은 사실 아니고요. 그 경계에 딱 걸쳐 있어서 이도 저도 아닌 그 중간에서 사실은, 좀 그런 상태예요. 그 애매함이 어떤 불편함이 있냐 하면 직장에 가서 사실 뭐 이렇게 장애인을 위한 어떤, 우대해주는 그런 부분들,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제가 저의 어떤 불편함에 대해서 밝힐 수 있는 그게 또 아닌 게 있고 그런데 막상 또 같이 일을 해보면 뭔가 좀, 어쨌든 불편함이 같이 생기니까 회사에서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시는 부분도 있고 그런 상태예요. 원래는 한쪽 귀 청력이 좀 떨어져서 한쪽을 착용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양쪽 다 청력이 떨어지면서 양쪽 다 보청기를 착용하게 되었고 사실 그 과정에서 제가 영상 작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디오에 대해서 좀 핸디캡, 리스크가 좀 생겼던 부분에 있어서 받아들이는 게 제 스스로가 마음이 처음에는 되게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쨌든 지금은 사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드러내는 것을 선택을 했거든요. 그래도 많이 주변에 인식들이 많이 좋아지고 또 저의 어떤 컨디션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렇게 소통을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게끔 온전하게 소통할 수 있게끔 저의 컨디션에 대해서 먼저 상황을 설명을 드리고 있고.
영화에 나왔던, 분명히 면접 때는 구두상 이야기할 때는 소통이 문제없이 되는데 촬영 현장이나 미팅을 나가거나 아니면 대화가 잘 이렇게, 제가 알아듣기 힘든 부분이 있거나 좀 그런 부분에서 제가 나이나 경력에 비해서 직급을 더 올릴 수 없는 문제가 발생을 했고 그 부분에서 대표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대표님이 그냥, 그래서 “네 귀는 언제 낫는데?”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뭐라고 할 수가 없었죠. 제 귀는 낫는 그게 아니라 지금의 컨디션을 유지를 하면서 천천히 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상황인데 ‘언제 나을 건데?’ 라는 그 말 자체가 되게 슬펐고 억울했고 그리고 바로 그날 당장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나가라고 하셔서 바로 그날 이야기하고 회사에서 퇴사를 했거든요. 그래서 사실 그 과정이 어쨌든 좀 부당한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뭐라 항의할 수 없고 사실 마지막달도 제대로 정산을 안 해주셨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분까지도 하기가 그때 당시에는 어떤 그 상황에 대한 억울함이 너무 커서 무기력함과 우울과 그런 감정이 앞서서 이성적으로 그 상황을 제가 대처하거나 하지 못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그래도 같이 지내면서 좀 더 계속 옆에서 많이 멱살잡이해서 이렇게 많이 끌어올려줬고. 그래서 저런 작품으로까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떠셨어요?
-(공새롬) 저는 원래 전공이 작업치료를 했어서 이런, 정말 뇌 손상 환자분들, 척추환자분들 중증질환의 환자분들과 주로 만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사실 홍의 그런 핸디캡이 크게 문제가 와닿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학부 시절 때도 이런 감각 손상에 대한 것들 부분을 다양하게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그런데 정작 이 친구가 밖에 나가서 듣고 온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너무 일하기가 힘들었던 거죠. 왜냐하면 이 친구는 분명히 자기의 영역을 잘 해나갈 수 있는 그 무기를 가지고 있는 친구인데 능력이 있는 친구인데 그거를 마치, 하여튼 너무 많이 속상하더라고요. 그리고 저한테 생긴 변화는 딱 한 가지인데 제 목소리가 원래 크기도 한데 원래 볼륨을 작게 조절하고 살고 있었거든요. 서비스직이라서 조근조근 스마트하게 했는데 목소리가 엄청 커졌어요. 그래서 밖에 나가면 좀 조용히 해라, 작게 말해라는 소리를 듣는 그런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은) 저도 굉장히 공감이 되고, 그렇죠. 사실 이성적으로 대처를 못하셨다기보다는 제가 느끼기에는 그런 폭력적인 말을 듣고 마음의 에너지를 가지고서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자세히 들으니까 더 제가 싸우고 싶고,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 영화가 결국에는 같이 산다는 것, 보통은 그거를 가족이라고 이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굳이 가족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같이 산다는 것에 굉장히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런 영화라고 느꼈는데요.
그리고 장고와 뚱이 이야기를 할 때 장고님과 뚱이님 목격하면서 그리고 서로의 일상을 목격해주는 사람이 되면서 홀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그런 감각을 주는 사이가 저는 그게 일을 같이 하는 동료든, 친구든 가족이든 그걸 명명하고 이름을 짓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게 너무 중요하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영화를 기쁘게 보았고요. 그래서 드리는 질문이지만, 혹시 또 이런 멋진 작품을 만드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민다홍) 지금 이 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저희 나온 아파트 근처에 작은 산이 있는데 그 산에 거기에 있는 새 둥지가 있고 거기가 번식하는 장소인데, 그런 장소의 무분별한 개발 이런 것들을 기록을 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지금 사실 최근에 선거가 있었잖아요? 선거를 앞두고 거의 한 달 정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선거가 끝나자마자 또 다시 포클레인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런 상황들을 지금 기록을 하고 있고 저는 부산에 들어온 외지인의 시각에서 이렇게 부산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찍고 있지만 또 옆에서 부산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이 상황이 어떤 메시지였고 이 산이, 어떤 존재였는지 이야기를 해주고 있고 해서 다음 작품도 뭔가 서로가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작업을 지금 하고 있고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자리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새롬) 그 산이 제 어릴 때부터 쭉 살았던 아주 조그마한 산이긴 하지만 거기 왜가리들이 매년 날아와서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떠났다가 돌아와서 새끼를 낳고 그런 곳인데 그 산을 지키고자 하는 의미를 왜가리에 포커스를 맞춘 건 저희 둘 뿐이더라고요. 다들 조망과 소음, 분지 문제 이런 문제라서. 처음에는 멋지다고 예쁘다고 찍었던 왜가리 영상이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한 게 2년째 됐거든요. 홍이 이거를 잘 작품으로 만들 수 있도록 최대한 열심히 보조 중입니다. 왜냐하면 밖에서 포클레인 작업 하면 못 들어요. 저는 들리니까 야, 큰일 났다. 톱 소리 난다. 그러면 휴대전화 들고 가서 찍고 그런 과정 중에 있습니다.
(하은) 그러면 조금 시간이 됐으니까 기다리신 정창영 감독님과 대화를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관객분들께 소개를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정창영) 보셨던 영화 <소희로부터> 연출한 정창영이라고 하고요.
(하은) 저는 같이 살기처럼 영화 제목이 참 인상이 깊었는데요. <소희로부터> 영화는 어쨌든 소희가 지윤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한 사람을 알아가고 한 사람의 삶을 알아가고 세상을 알아가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영화 제목이 <소희로부터>니까 뭔가 문장을 완성을 하고 싶은 소희로부터 뭐? 계속 곱씹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제목을 이렇게 정하신 이유가 궁금했어요.
-(정창영) <소희로부터>는 사실 시나리오와 연출이 좀 분리가 되어 있는 작품이에요. 예를 들어서 저희 지역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인권 영화를 주제로 시나리오 공모전을 해서 시나리오가 당선이 된 걸 각색 과정을 거쳐서 만든 작품입니다. 그래서 원 제도 <소희로부터>고 만드는 과정에서 제목과 작품의 스토리, 분위기가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굳이 고치지 않았고요. 원 시나리오 작가도 저도 그렇고 이른바 비장애인이잖아요.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장애인 인권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주인공을 장애인과 비장애인 5:5로 두지 않고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어떤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게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은): 감사합니다. 손승연 작가님이 시나리오 작가를 하고 각색을 하셔서 영화를 만드셨잖아요. 이 영화는 그러면 어쨌든 시나리오 공모전 같은 것을 통해서 당선된 작품을 직접 제작하신, 극영화를 제작하시는 과정이 있었는데 영화 전반에서 되게 어쨌든 짧은 러닝 타임 안에서 촘촘하게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당황스러운 순간, 차별들이 잘 배치가 되어 있고 그래서 영화 한 편을 봐도 다양한 고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 작품 자체를 제작하게 된 과정이 궁금한데, 어쨌든 출품은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출품됐고 이 배우분들이 활동가분들이 아닌가? 생각이 좀 들었거든요. 인상깊은 연기를 하시는 분들, 점심시간을 굉장히 강조하시는 부장님 캐릭터들, 그런 과정이 궁금합니다.
-(정창영) 사실 저도 영화를 처음 만들어본 거고 그다음에 영화관, 영상 제작 활동을 지역에서 좀 했었어요. 그래서 올해로, 그러니까 작년까지 4년째 저희 지역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랑 처음에 장애인분들이 스마트폰 활용이라든지 사진을 찍는 방법이라든지 비디오 교육을 하는 것부터 시작을 했다가 이제 인권영화제로 성장해서 발전을 하는 과정을 거친 거고 영화 형식은 저도 처음입니다. 시나리오도 처음이었고 그래서 저희끼리 계속 반복적으로 작업하다 보면 볼 수 있는 시선이 축소될 수 있어서 시나리오공모전을 하면 많이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전국으로 시나리오 공모전을 했는데 많이 들어오지는 않더라고요. 많이 들어오지는 않았는데 블라인드로 심사를 했습니다. 우연처럼 최우수작으로 뽑힌 작가님이 옥천 지역 주민이었어요. 그 친구도 시나리오를 처음 썼다고 합니다. 쓰는 방법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쓰고 나서 저희에게 오게 된 거고 저 <소희로부터> 작품의 콘셉트는 유지가 됐는데 내용은 80%가 각색 과정이 있었어요. 굉장히 강조하는 점심, 부장님 캐릭터는 원작에 없던 분들이었습니다. 보시면 전체적으로, 제가 한 4, 5년 장애인 인권 관련한 활동을 하다 보니까 함께 혹은 옆에서 지켜본 느낌 중 하나는 초반에도 나오지만 지나치게 무거울 때가 있다. 주제 자체는 굉장히 무겁고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전달 방식이 매번 좀 이렇게 격렬한 투쟁이나 무거운 방식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볼 때, 특히 사람들에게 편견을 줄 수 있어서, 그냥 보이는 것 자체가 싫어서 외면을 받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아서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다루고 싶었고. 등장인물들은 다 활동가분들은 아니고 대부분 저희 지역 주민들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연기들이 좀... 자연스럽지만 촌스럽죠. 부장님은 경찰 퇴직하신 공무원분이시고 활동가분들은 두세 분 등장하는데 식당에서 “아이, 민폐야. 장애자가 왜 와?” 악역을 맡은 분들은 활동가 센터 분들이에요. 아무도 그 역을 맡으려고 안 해서, 나머지 직원분들, 주민분들은 일반 주민분들이십니다.
(하은) 그러면 캐스팅은 어떻게?
-(정창영) 작은 동네니까 인맥으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만 등장하는 분들도 대여섯 분 돼요. 지윤이, 그 왼쪽 과정에서 나오는 목소리도 지역 주민이거든요. 얼굴은 나오지 않지만 독하게 말할 수 있다는, 뽑아서 진행을 했습니다.
(하은) 진짜 독하게 말해서 아주 보면서 가슴을 팍팍 쳤던 것 같고요. 이렇게 굉장히, 처음 하는, 처음 연출하신 영화에 처음 시나리오에 처음 연기를 해보시는 분들과 이렇게 만드는 과정 자체가 좀 시행착오가 많지만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느낌이 영화에도 잘 드러난 것 같아서 관객석에서도 빵빵 터지고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희 캐릭터를 보면서 사실 저도 제가 활동지원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가 되게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래서 제가 사실 시작하기 전에 저는 좀 어린 동료를 지원을 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제가 좀 지원하기가 공부를 뭘 하면 좋을까요?” 했더니 “아니요. 그냥 만나보시면 됩니다”라고 하면서 시작을 했는데 그 소희의 당혹스러움 그러면서도 낯선 것에 대해서 내가 실수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들. 그런데 또 장애인이 아닌 지윤이라는 사람을 알아가고 싶고 사람으로 대하려고 하는 그 태도를 보면서 인상이 깊었고 제가 일하는 곳은 발달장애인 동료가 일하는 곳이다 보니까 알기 쉬운 영화 설명을 저희 동료들이 직접 다 썼는데, 그랬을 때 <소희로부터> 어떤 영화예요? 하고 물어보니까 “소희가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했거든요. 이 소희 캐릭터를 같이 만들어가시는 과정들이 그것도 설명이 좀 듣고 싶습니다.
-(정창영) 원 시나리오 있었던 소희라는 캐릭터는 특별히 어떤, 그러니까 콘셉트가 있는 캐릭테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각색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20대 후반, 30대 초반 젊은 여성인데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인 이슈나 이런 데 민감하고 예를 들면 장애인 단체라든지 구호 단체라든지 기부도 열심히 하지만, 내 동료로 장애인이 들어오는 순간 자기가 옳고 믿던 그런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혼란과 고민을 하는 캐릭터로 처음에 각색이 1차로 됐다가 너무 지역 실정과 안 맞아서 작위적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그 과정에 조금은 평범한 사람으로 바꿔갔던 거죠. 다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좀 돌아볼 수 있는 정도의, 그러니까 아주 뛰어나거나 예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감각하지 않은 인물이면 적당할 것 같다고 저희가 합의는 하면서 만들어갔던 것 같아요.
(플로어) <같이 살기>가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좋네요. 앞으로 협업을 계속 하실 거잖아요. 생업과 또 이게 병행일 것 같은데 같이 할 생업 후보가 뭐였을까가 좀 궁금하네요. 보통은, 물론 전문직이시니까 그쪽으로 가실 것 같긴 한데 보통은 왜 어떤 비건 식당을 한다거나 그런 거 많이 하잖아요. 거기에서 카모메식당 같은 게 떠오르기도 했는데 뭔가 이미 해보셨는데 안 된 게 있다거나 아니면 리스트가 있으면 나눠주세요. 공유하게.
-(공새롬) 일단 저희가 먹는 장면이 나와서, 저는 작업치료 전공을 했고 서브로 한 게 화장품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프라인에서는 제 에스테틱샵을 열 계획이고 온라인으로는 화장품 쪽을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끊임없이 소비되어야 하는 그 영상 콘텐츠들을 누구보다 든든한 여기 민 감독과 함께할 생각이고 거기 나오는 수익에 대한 걸 이제 적절한 배분을 하는 식으로 할지, 아니면 제가 외주다 생각하고 계약을 맺을지. 어쨌든 제가 가고자 하는 행보에서 최대한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민다홍) 사실 지금 생활의 많은 부분을 새롬이 담당하고 있어요. 재정적인 부분. 제가 개인 사업자를 내고 한 1년 반, 지금 2년 차가 됐는데 사실 최근에 한 6개월 가까이 새로 들어온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부담을 해주고 있고 그리고 또 이렇게 새로운 아이템으로 뭔가 새로 준비를 하고 있고 또 요즘에 어떤 영상이라는 콘텐츠에 니즈가 어디서든 사용되기 때문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은 뜻으로 좋은 콘텐츠를 같이 만들면서 나중에 또 그게 포트폴리오가 되어서 어디서든 사용될 수 있으니까 계속해서 같이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고요.
사실 농담삼아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나중에 늙어서 우리끼리 뭔가 팝업 레스토랑 같은 것을 한다든지 뭔가 새로운 장르의 다른 걸 해보면 좋지 않을까 이런 얘기도 하고요. 그래서 당장은 지금 새로 준비하는 사업 그리고 저는 영상 제작하는 그런 부분에서 좀 더 공격적으로 광고와 미팅을 통해서 수익을 쟁취하기 위한 그런 방법을 고안하고 있고 또 향후에도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업들을 고민을 같이 하고 있고요. 만약에 그런 게 생기면 SNS든 알려드릴게요. 저희 네이버에 같이 살기 검색하시면 저희가 마이크로페이지가 만든 게 나오거든요. 거기 보시면 저희 블로그, 이메일 주소도 있고 하니까 저희 개인 SNS 팔로우 해주시면 다양한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플로어) 한 가지만 더 질문을. 저희도 작은 공동체에서 영화제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그거 준비할 때, 공모나.
-(정창영) 시나리오만 공모를 한 거고요. 옥천마을장애인인권영화제를 4년째 하고 있고 행사 통계를 드리면 처음에는, 우선 제 소개를 좀 더 드리면 두 분 감독님은 개인 활동을 하시는데 저는 마을협동조합을 지역 주민들과 2019년에 만들었습니다. 한 10여 명 정도 되는 조합원들과 같이 활동을 하고 있고 그 안에서 미디어 교육이나 콘텐츠 제작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저희 지역에 장애인 활동을 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라는 단체가 있어요. 거기서 그분들이 하고 싶은 것과 저희가 하고 싶은 거 고민하다가 인권영화제를 하자고 해서 첫, 두 해는 자체적으로 진행을 했었고 펀딩 없이, 그런 것들이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저희가 좀 옥천군에 재정 지원, 예산 지원 요청을 했고 일부, 지금은 영화제 자체는 일부 지원을 받아서 진행됩니다.
역할은 행사 기획 쪽은 자립생활센터 쪽에서 하고 영화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제작하기 위해서 장애인분들 교육하고 이런 것들은 저희가 맡아서 진행을 하고 있고 나머지 큰 부분들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팀에서 도와주시는 거로 하고 있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한 개인이나 한 팀이 모든 것을 다 담당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을 나눠서 계속하고 있고 규모, 대신 규모가 조금씩 커지고는 있는 부분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극영화 형식이 4년만에 할 수 있었던 게 처음에는 장애인 한 분, 한 분 인터뷰하는 영상, 간단한 영상으로 시작을 했던 거고 그때 저도 카메라를 처음 잡았을 때고 그게 시간이 흐르면서 단체도 성장을 하고 개인도 축적이 되면서 지금은 단체, 여전히 좀 그렇게 매무새가 충분하지 않지만 영화 꼴이 그래도 좀묻어나는 작품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 뭘 해보신다고 하면 그런 방식으로 각 지역마다 사정은 다른 거니까 역할을 나눠서 함께할 수 있는 팀과 사람을 모으면 방법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플로어) 해보시니 많이 좋은가요?
-(정창영) 많이 어렵습니다. 사실 많은 일이 그렇지만 할 때는 굉장히 많이 싸우고 내가 이거를 왜 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2, 3년 정도는 전혀 재정적 지원 없이 했던 거고 다만 그거를 하면서 저희 같은 경우에는 옥천마을미디어사회협동조합으로 비영리 조합이거든요. 정체성이 뭐냐고 했을 때 전체적으로 저희는 장애인인권영화를 한다고 상징성을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에 도와준 측면이 있고요.
그리고 기획하고 촬영할 때 제일 많이 싸우고 그때는 사람하고의 갈등이 직접 있지만 사실 공감하실 텐데 제일 힘든 건 편집할 때 입니다. 끊임없이 30분짜리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못 해도 100번 이상 돌려보니까, 보면서 계속 현타가 오는 겁니다. 내가 왜 여기 앉아서 욕먹어가면서 돈 버는 것도 아니고 왜 하고 있나, 그런데 잊을 만하면 이런 자리에 한 번씩 초대를 받거든요. 초대를 받으면 좋은 말해야 하잖아요? 아름다운 말 해야 하고. 오늘 같은 날 맨앞에 딸이랑 같이 왔어요. 11살짜리 딸이 왔는데 아빠가 뭐하는 사람이 알 둥 말 둥 해서.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정해진 회사 출퇴근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활동가라는 사람들이 다 그렇잖아요. 그래서 기회, 이런 자리를 통해서 내가 활동하는 것을 증명하고 보여줄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거기서 많이 에너지를 얻는 것 같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힘들지만 보람은 있고 보람은 있지만 내년에 꼭 하겠다, 약속은 하지 않는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하은) 제가 굉장히 난감한 게 작년에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출품한 영화가 작년에는 이동권에 대한 다큐 영화였다가 올해는 <소희로부터>라는 극 영화로 바뀌고 이게 사실 다큐멘터리, 극 영화가 어떤 게 더 어렵다 이렇게 할 수 없지만 이게 장르적으로 굉장히 다른데 이런 변화를 일궈낸 게 역량의 성장이라고 느껴지기도 해서 주제 의식도 이동권에서 조금 더 성장했다고 느껴져서, 앞으로 차기작 계획을 여쭤보려고 했는데.
-(정창영) 차기작 계획이 구체적으로 있는 것은 아닌데 다만 이런 활동을 하면서, 저 같은 경우에는 장애인 인권 문제가 제 관심사의 80, 90%라기보다는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여러 가지 이슈와 문제가 있는데 그중 매우 중요한 줄기 중 하나가 장애인 문제라고 인식하는 거죠. 그만큼 저에게 중요한 건 지역의 청년 문제, 인구감소, 고령화라든지 사실 개인적인 관심이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꼭 장애인 인권이 아니더라도 아마 이런 활동을 계속하게 될 것 같고 장애와 관련해서는 저는 과거에 보면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보통 이동권, 접근권, 노동권, 권리중심의 권리 투쟁, 쟁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것도 하시는 작품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으니까 저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드러난 어떤 문제보다 그냥 장애인의 삶, 장애인의 사랑, 장애인의 성, 장애인의 가족, 그런 것들 있잖아요 장애가 아니지만 누구나 겪고 있는 문제인데 단지 그거를 겪는 사람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조금 그럴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부분들, 저는 자꾸 장애인권이라는 미디어가 장애인을 폭력적으로 다루는 주류 시각이 문제기도 하지만 그거를 이게 아니에요. 하는 반대적인 방법도 주제나 전달방식이 관성적인 부분이 없지 않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한 사람의 삶이 한두 마디로 정리되지 못하는 것처럼 장애인의 삶도 한두 개로 정리되지 않을 텐데 매번 반복적인 그런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간접적인 방식, 직접적이지 않고 하지만 돌아서 집에 가서 생각하면 관객분들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은) 관객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 한마디씩 해주시면 GV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다홍) 바쁘신 시간에 이렇게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또 같이 보면서 같이 웃어주시고 또 이렇게 시간을 보내주셔서 너무 감동이었고 감격스럽고요. 저희 사실 이 영화에서 저한테 되게 가족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 상처만 있는 것처럼 표현이 됐는데 이 단편에 다 담아내기에는 굉장히 복합적으로, 함축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 더 풀어냈었으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좀 남지만, 왜냐하면 오늘 저희 어머니가 오셨거든요.
그래서 사실 이 작품 만들면서 새로운 새롬 가족과 그 안에 들어가면서 느낀 안정감, 지금 이 시점이 분명히 저에게 좋은 바탕이 되고 밑거름이 됐지만 어쨌든 저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데에는 어쨌든 가족이 있었던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어쨌든 혈연은 어쩔 수가 없는 거구나. 그런데 내가 또 선택해서 사는 다른 가족의 형태, 그리고 내가 누구와 살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그 권리에 대해서 다양한 삶의 형태에 대해서 좀 더 폭넓게 다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 너무 감사드립니다.
-(공새롬) 일단 같이 살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저희의 어떤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보고 공감하고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또 저희를 스스로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것도 있어서 너무 어렵지 않은 편안한 이야기지만 뭔가 힐링이 되는 그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데 중간중간 웃어주시기도 하고 저도 보면서 좀 웃기기도 하고. 또 저희 강아지들이 나오는 장면들이 사실은 더 많이 넣고 싶었어요. 강아지를 더 많이 넣어서 더 힐링하셔라 이렇게 하고 싶었는데 단편이다 보니까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고 또 장편에 대한 생각이 없는지, 저희 부모님이 궁금해하셔서. 좀 더 저희 이야기가 또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관심을 주신다면 저희가 조금 더 노력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저희 부산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는 길이 좀 멀긴 했지만 마음은 꽉 채워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창영) 귀한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관객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희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함께 만든 작풂은 올해 <소희로부터>는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이 예정되어 있어서 유튜브에 올라가 있지는 않은데 그전 작품들은 유튜브에 올라가 있습니다. 옥천마을방송이라고 유튜브 검색해보시면 저희 단체에서 자립생활센터에서 혹은 저희 지역의 여러 마을에서 만든 영상들이 다 올라가 있습니다. 앞에 둘째 줄에 계신 저분처럼 이렇게 이야기하면 휴대전화를 꺼내서 옥천마을방송을 찾으셔서 구독과 좋아요 같은 걸 눌러주시면 참 좋을 것 같고요. 당사자 중심의 이야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그런데 너무 당사자 주의에만 매몰되면 소통과 공감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마지막으로 저희가 유튜브 말씀을 드렸던 이유도 센터랑 늘 고민인 게 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그래도 많은 사람이 들여서 영화를 만드는데 1년에 저희 지역에서 영화제를 한 번 하고 아주 운이 좋으면 이렇게 서울에 초청을 받고 저희 작품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만날 수 있는 건 두 번밖에 없고 유튜브에 올리더라도 장애인인권영화를 굳이 찾아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이런 이야기들이 좀 많이 널리 널리 회자가 되고 공유가 됐으면 좋겠고요. 만약에 가능하시다면 관심이 있으시다면 각자 돌아가시는 지역과 마을과 그곳에서 이런 작품들, 제가 만든 작품이 아니더라도 이런 작품들에 많이 관심을 갖고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끝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은) 다시 한번 상기를 시켜드리면 옥천마을방송 유튜브 구독해서 많은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하셨고 저희가 검색창에 <같이 살기>를 검색하면.
민다홍: <같이 살기> 검색하시면 같이 살기 페이지가 나오고 그 페이지에서 홈 버튼을 한 번 더 누르시면 영화 페이지, 상세 페이지가 나오게 세팅해놨고 네이버에서 버밀리어 영상제작 검색하시면 제가 나옵니다. 그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좋아요, 댓글 남겨주시면 제가 찾아서 서로 이웃도 하고 또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요. 많이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04.19 오전에 진행되었던 부대행사 <지옥의 문을 깨부수고>, 영화 <원더>와 <나의 세개>의 관객과의 대화는 현장사정으로 인하여 속기가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
(하은) 안녕하세요? 저는 피플퍼스트 성북센터라고 발달장애인 당사자 단체에서 조력자로 활동하는 하은이고요. 오늘 사회를 맡았습니다. <같이 살기> 관련해서 두 감독님하고 이야기를 나눠볼 텐데 영화에 두 분이 출연하셨지만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민다홍) 안녕하세요? <같이 살기> 공동 연출 민다홍이라고 합니다.
-(공새롬) 안녕하세요? <같이 살기> 공동 연출 공새롬입니다.
(하은) 저는 영화 처음 시작할 때 <같이 살기> 사이 이렇게 슬래시가 있는 게 되게 인상 깊었는데요. <같이 살기>가 동거의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같이 있음과 또 동시에 삶을 살아가기라는 의미가 같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보여주는 타이틀인 것 같아서 되게 인상 깊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사실 같이 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삶을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첫 번째 질문은 두 분의 근황과 함께 어떻게 같이 살기가 계속되고 있는지? 아니면 어떻게 살고 계신지 그리고 장고님과 뚱이님 소식도 궁금합니다.
-(민다홍) 영화 속에 나왔던 그 공간에서 같이 잘 지내고 있고요. 영화에서도 사실 실직한 내용에 대해서 아직 그 연장선상에 있어요. 저도 드론사업자를 내고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 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고 나머지는 알아서 이야기해주세요. 뚱이랑 장고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공새롬) 일단 영화에서 나왔던 것처럼 제가 직장을 잃은 게 그 직장이 없어졌어요. 폐업을 한 거라서. 그래서 사실 직장인으로서 사는 것보다는 제 일을, 제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준비 중에 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것을 넘어서서 홍과 함께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영상 제작이 사실은 요즘에 필수 요소잖아요. 무엇을 하든 간에, 그래서 저 혼자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홍과 최대한 길게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향을 모색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장고는 부모님이 한 달에 3주는 부모님이 데리고 있으시고 너무 예뻐 하셔서, 저랑은 일주일 정도 지내고 있습니다.
(하은) 제가 되게 좋아하는 장면들이 너무너무 많았지만 추리고 추려서 좀 이야기를 하면 사실 서로의 다른 생활습관, 설거지를 어느 타이밍에 할 것인가? 이 논쟁이 저는 서로가 되게 진짜로 같이 사는 이런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느껴져서 갈등, 이런 느낌이 아니고 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이었거든요. 그래서 사실 영화 초반부에 민다홍 감독님은 가족에게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가족은 어디 있을까 질문을 던지시면서 시작을 하셨고 공새롬 감독님은 혼자 지내는 안정감과 부모님과 지내는 안정감이 나에게 둘 다 있다, 이러한 표현을 해주셨는데 어쩌면 가족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는 게 한 사람의 세계관이 굉장히 다른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두 분이 어떻게 같이 살게 결심을 하셨는지, 제가 알기로는 감독님이 먼저 제안을 하셨다고 영화에서 이해를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제안을 하실 수 있었는지? 두 분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공새롬) 제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지만 사실 우리 같이 살자라고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고 처음에 홍이 부산에 왔을 때 저희 집과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집을 구했어요. 차로 10분? 그런데 저는 부모님 집에서 지내면서 부모님을 너무 사랑하고 너무 좋지만 조금... 힘든 거 있잖아요. 뭔지 알죠? 아시죠. 그래서 홍 집에 자주 왔다 갔다 하게 됐고 그리고 서울과 부산의 인프라 자체가 완전 달라요. 나름 이런 교통편이 편리한 지역에 살았지만 그래도 서울에 비하면 굉장히 불편해서 출퇴근을 제가 도와주기도 하고 장을 보기도 하고 도와주다 보니까 머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길어졌고 그러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민다홍) 사실 재밌잖아요. 혼자 사는 것보다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서로 각자 다른 직장을 다녔지만 집에 와서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하루의 마무리를 같이 하고 또 뭔가 저도 낯선 공간에, 지역에 와서 혼자 지내면 조금 어려운 그런 부분들을 친구가 같이 해주니까, 그러다 보니까 사실 서로 처음부터 같이 살자고 했던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거죠. 그래서 사실 이렇게 누가 먼저라기보다는 되게 그 과정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부모님한테서 그 사랑해서, 너무 사랑하지만 좀. 그렇죠. 그런 마음이 있었고 저도 그냥 혼자 사는 것보다는 재미있으니까.
-사회자: 영화에서 어쨌든 민다홍 감독님은 청각장애가 사실 후천적으로 생기시는 과정이 있었잖아요. 어쨌든 청각장애를 받아들이고 그거를 삶의 조건으로써 삼고 살아가려는 와중에 되게 원통하게 실직이라는 그런 시련도 있었고 그래서 사실 민다홍 감독님과 또 같이 사는 삶을 같이 하는 친구로서 공새롬 감독님한테 청각장애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민다홍)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장애 등급을 받은 장애인은 사실 아니고요. 그 경계에 딱 걸쳐 있어서 이도 저도 아닌 그 중간에서 사실은, 좀 그런 상태예요. 그 애매함이 어떤 불편함이 있냐 하면 직장에 가서 사실 뭐 이렇게 장애인을 위한 어떤, 우대해주는 그런 부분들,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제가 저의 어떤 불편함에 대해서 밝힐 수 있는 그게 또 아닌 게 있고 그런데 막상 또 같이 일을 해보면 뭔가 좀, 어쨌든 불편함이 같이 생기니까 회사에서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시는 부분도 있고 그런 상태예요. 원래는 한쪽 귀 청력이 좀 떨어져서 한쪽을 착용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양쪽 다 청력이 떨어지면서 양쪽 다 보청기를 착용하게 되었고 사실 그 과정에서 제가 영상 작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디오에 대해서 좀 핸디캡, 리스크가 좀 생겼던 부분에 있어서 받아들이는 게 제 스스로가 마음이 처음에는 되게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쨌든 지금은 사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드러내는 것을 선택을 했거든요. 그래도 많이 주변에 인식들이 많이 좋아지고 또 저의 어떤 컨디션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렇게 소통을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게끔 온전하게 소통할 수 있게끔 저의 컨디션에 대해서 먼저 상황을 설명을 드리고 있고.
영화에 나왔던, 분명히 면접 때는 구두상 이야기할 때는 소통이 문제없이 되는데 촬영 현장이나 미팅을 나가거나 아니면 대화가 잘 이렇게, 제가 알아듣기 힘든 부분이 있거나 좀 그런 부분에서 제가 나이나 경력에 비해서 직급을 더 올릴 수 없는 문제가 발생을 했고 그 부분에서 대표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대표님이 그냥, 그래서 “네 귀는 언제 낫는데?”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뭐라고 할 수가 없었죠. 제 귀는 낫는 그게 아니라 지금의 컨디션을 유지를 하면서 천천히 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상황인데 ‘언제 나을 건데?’ 라는 그 말 자체가 되게 슬펐고 억울했고 그리고 바로 그날 당장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나가라고 하셔서 바로 그날 이야기하고 회사에서 퇴사를 했거든요. 그래서 사실 그 과정이 어쨌든 좀 부당한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뭐라 항의할 수 없고 사실 마지막달도 제대로 정산을 안 해주셨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분까지도 하기가 그때 당시에는 어떤 그 상황에 대한 억울함이 너무 커서 무기력함과 우울과 그런 감정이 앞서서 이성적으로 그 상황을 제가 대처하거나 하지 못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그래도 같이 지내면서 좀 더 계속 옆에서 많이 멱살잡이해서 이렇게 많이 끌어올려줬고. 그래서 저런 작품으로까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떠셨어요?
-(공새롬) 저는 원래 전공이 작업치료를 했어서 이런, 정말 뇌 손상 환자분들, 척추환자분들 중증질환의 환자분들과 주로 만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사실 홍의 그런 핸디캡이 크게 문제가 와닿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학부 시절 때도 이런 감각 손상에 대한 것들 부분을 다양하게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그런데 정작 이 친구가 밖에 나가서 듣고 온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너무 일하기가 힘들었던 거죠. 왜냐하면 이 친구는 분명히 자기의 영역을 잘 해나갈 수 있는 그 무기를 가지고 있는 친구인데 능력이 있는 친구인데 그거를 마치, 하여튼 너무 많이 속상하더라고요. 그리고 저한테 생긴 변화는 딱 한 가지인데 제 목소리가 원래 크기도 한데 원래 볼륨을 작게 조절하고 살고 있었거든요. 서비스직이라서 조근조근 스마트하게 했는데 목소리가 엄청 커졌어요. 그래서 밖에 나가면 좀 조용히 해라, 작게 말해라는 소리를 듣는 그런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은) 저도 굉장히 공감이 되고, 그렇죠. 사실 이성적으로 대처를 못하셨다기보다는 제가 느끼기에는 그런 폭력적인 말을 듣고 마음의 에너지를 가지고서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자세히 들으니까 더 제가 싸우고 싶고,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 영화가 결국에는 같이 산다는 것, 보통은 그거를 가족이라고 이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굳이 가족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같이 산다는 것에 굉장히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런 영화라고 느꼈는데요.
그리고 장고와 뚱이 이야기를 할 때 장고님과 뚱이님 목격하면서 그리고 서로의 일상을 목격해주는 사람이 되면서 홀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그런 감각을 주는 사이가 저는 그게 일을 같이 하는 동료든, 친구든 가족이든 그걸 명명하고 이름을 짓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의미를 발견해 나가는 게 너무 중요하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어서 너무 영화를 기쁘게 보았고요. 그래서 드리는 질문이지만, 혹시 또 이런 멋진 작품을 만드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민다홍) 지금 이 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저희 나온 아파트 근처에 작은 산이 있는데 그 산에 거기에 있는 새 둥지가 있고 거기가 번식하는 장소인데, 그런 장소의 무분별한 개발 이런 것들을 기록을 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지금 사실 최근에 선거가 있었잖아요? 선거를 앞두고 거의 한 달 정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선거가 끝나자마자 또 다시 포클레인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런 상황들을 지금 기록을 하고 있고 저는 부산에 들어온 외지인의 시각에서 이렇게 부산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찍고 있지만 또 옆에서 부산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이 상황이 어떤 메시지였고 이 산이, 어떤 존재였는지 이야기를 해주고 있고 해서 다음 작품도 뭔가 서로가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작업을 지금 하고 있고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자리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새롬) 그 산이 제 어릴 때부터 쭉 살았던 아주 조그마한 산이긴 하지만 거기 왜가리들이 매년 날아와서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떠났다가 돌아와서 새끼를 낳고 그런 곳인데 그 산을 지키고자 하는 의미를 왜가리에 포커스를 맞춘 건 저희 둘 뿐이더라고요. 다들 조망과 소음, 분지 문제 이런 문제라서. 처음에는 멋지다고 예쁘다고 찍었던 왜가리 영상이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한 게 2년째 됐거든요. 홍이 이거를 잘 작품으로 만들 수 있도록 최대한 열심히 보조 중입니다. 왜냐하면 밖에서 포클레인 작업 하면 못 들어요. 저는 들리니까 야, 큰일 났다. 톱 소리 난다. 그러면 휴대전화 들고 가서 찍고 그런 과정 중에 있습니다.
(하은) 그러면 조금 시간이 됐으니까 기다리신 정창영 감독님과 대화를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관객분들께 소개를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정창영) 보셨던 영화 <소희로부터> 연출한 정창영이라고 하고요.
(하은) 저는 같이 살기처럼 영화 제목이 참 인상이 깊었는데요. <소희로부터> 영화는 어쨌든 소희가 지윤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한 사람을 알아가고 한 사람의 삶을 알아가고 세상을 알아가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영화 제목이 <소희로부터>니까 뭔가 문장을 완성을 하고 싶은 소희로부터 뭐? 계속 곱씹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제목을 이렇게 정하신 이유가 궁금했어요.
-(정창영) <소희로부터>는 사실 시나리오와 연출이 좀 분리가 되어 있는 작품이에요. 예를 들어서 저희 지역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인권 영화를 주제로 시나리오 공모전을 해서 시나리오가 당선이 된 걸 각색 과정을 거쳐서 만든 작품입니다. 그래서 원 제도 <소희로부터>고 만드는 과정에서 제목과 작품의 스토리, 분위기가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굳이 고치지 않았고요. 원 시나리오 작가도 저도 그렇고 이른바 비장애인이잖아요.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장애인 인권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주인공을 장애인과 비장애인 5:5로 두지 않고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어떤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게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은): 감사합니다. 손승연 작가님이 시나리오 작가를 하고 각색을 하셔서 영화를 만드셨잖아요. 이 영화는 그러면 어쨌든 시나리오 공모전 같은 것을 통해서 당선된 작품을 직접 제작하신, 극영화를 제작하시는 과정이 있었는데 영화 전반에서 되게 어쨌든 짧은 러닝 타임 안에서 촘촘하게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당황스러운 순간, 차별들이 잘 배치가 되어 있고 그래서 영화 한 편을 봐도 다양한 고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 작품 자체를 제작하게 된 과정이 궁금한데, 어쨌든 출품은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출품됐고 이 배우분들이 활동가분들이 아닌가? 생각이 좀 들었거든요. 인상깊은 연기를 하시는 분들, 점심시간을 굉장히 강조하시는 부장님 캐릭터들, 그런 과정이 궁금합니다.
-(정창영) 사실 저도 영화를 처음 만들어본 거고 그다음에 영화관, 영상 제작 활동을 지역에서 좀 했었어요. 그래서 올해로, 그러니까 작년까지 4년째 저희 지역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랑 처음에 장애인분들이 스마트폰 활용이라든지 사진을 찍는 방법이라든지 비디오 교육을 하는 것부터 시작을 했다가 이제 인권영화제로 성장해서 발전을 하는 과정을 거친 거고 영화 형식은 저도 처음입니다. 시나리오도 처음이었고 그래서 저희끼리 계속 반복적으로 작업하다 보면 볼 수 있는 시선이 축소될 수 있어서 시나리오공모전을 하면 많이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전국으로 시나리오 공모전을 했는데 많이 들어오지는 않더라고요. 많이 들어오지는 않았는데 블라인드로 심사를 했습니다. 우연처럼 최우수작으로 뽑힌 작가님이 옥천 지역 주민이었어요. 그 친구도 시나리오를 처음 썼다고 합니다. 쓰는 방법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쓰고 나서 저희에게 오게 된 거고 저 <소희로부터> 작품의 콘셉트는 유지가 됐는데 내용은 80%가 각색 과정이 있었어요. 굉장히 강조하는 점심, 부장님 캐릭터는 원작에 없던 분들이었습니다. 보시면 전체적으로, 제가 한 4, 5년 장애인 인권 관련한 활동을 하다 보니까 함께 혹은 옆에서 지켜본 느낌 중 하나는 초반에도 나오지만 지나치게 무거울 때가 있다. 주제 자체는 굉장히 무겁고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전달 방식이 매번 좀 이렇게 격렬한 투쟁이나 무거운 방식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볼 때, 특히 사람들에게 편견을 줄 수 있어서, 그냥 보이는 것 자체가 싫어서 외면을 받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아서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다루고 싶었고. 등장인물들은 다 활동가분들은 아니고 대부분 저희 지역 주민들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연기들이 좀... 자연스럽지만 촌스럽죠. 부장님은 경찰 퇴직하신 공무원분이시고 활동가분들은 두세 분 등장하는데 식당에서 “아이, 민폐야. 장애자가 왜 와?” 악역을 맡은 분들은 활동가 센터 분들이에요. 아무도 그 역을 맡으려고 안 해서, 나머지 직원분들, 주민분들은 일반 주민분들이십니다.
(하은) 그러면 캐스팅은 어떻게?
-(정창영) 작은 동네니까 인맥으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만 등장하는 분들도 대여섯 분 돼요. 지윤이, 그 왼쪽 과정에서 나오는 목소리도 지역 주민이거든요. 얼굴은 나오지 않지만 독하게 말할 수 있다는, 뽑아서 진행을 했습니다.
(하은) 진짜 독하게 말해서 아주 보면서 가슴을 팍팍 쳤던 것 같고요. 이렇게 굉장히, 처음 하는, 처음 연출하신 영화에 처음 시나리오에 처음 연기를 해보시는 분들과 이렇게 만드는 과정 자체가 좀 시행착오가 많지만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느낌이 영화에도 잘 드러난 것 같아서 관객석에서도 빵빵 터지고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희 캐릭터를 보면서 사실 저도 제가 활동지원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가 되게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래서 제가 사실 시작하기 전에 저는 좀 어린 동료를 지원을 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제가 좀 지원하기가 공부를 뭘 하면 좋을까요?” 했더니 “아니요. 그냥 만나보시면 됩니다”라고 하면서 시작을 했는데 그 소희의 당혹스러움 그러면서도 낯선 것에 대해서 내가 실수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들. 그런데 또 장애인이 아닌 지윤이라는 사람을 알아가고 싶고 사람으로 대하려고 하는 그 태도를 보면서 인상이 깊었고 제가 일하는 곳은 발달장애인 동료가 일하는 곳이다 보니까 알기 쉬운 영화 설명을 저희 동료들이 직접 다 썼는데, 그랬을 때 <소희로부터> 어떤 영화예요? 하고 물어보니까 “소희가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했거든요. 이 소희 캐릭터를 같이 만들어가시는 과정들이 그것도 설명이 좀 듣고 싶습니다.
-(정창영) 원 시나리오 있었던 소희라는 캐릭터는 특별히 어떤, 그러니까 콘셉트가 있는 캐릭테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각색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20대 후반, 30대 초반 젊은 여성인데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인 이슈나 이런 데 민감하고 예를 들면 장애인 단체라든지 구호 단체라든지 기부도 열심히 하지만, 내 동료로 장애인이 들어오는 순간 자기가 옳고 믿던 그런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혼란과 고민을 하는 캐릭터로 처음에 각색이 1차로 됐다가 너무 지역 실정과 안 맞아서 작위적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그 과정에 조금은 평범한 사람으로 바꿔갔던 거죠. 다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좀 돌아볼 수 있는 정도의, 그러니까 아주 뛰어나거나 예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감각하지 않은 인물이면 적당할 것 같다고 저희가 합의는 하면서 만들어갔던 것 같아요.
(플로어) <같이 살기>가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좋네요. 앞으로 협업을 계속 하실 거잖아요. 생업과 또 이게 병행일 것 같은데 같이 할 생업 후보가 뭐였을까가 좀 궁금하네요. 보통은, 물론 전문직이시니까 그쪽으로 가실 것 같긴 한데 보통은 왜 어떤 비건 식당을 한다거나 그런 거 많이 하잖아요. 거기에서 카모메식당 같은 게 떠오르기도 했는데 뭔가 이미 해보셨는데 안 된 게 있다거나 아니면 리스트가 있으면 나눠주세요. 공유하게.
-(공새롬) 일단 저희가 먹는 장면이 나와서, 저는 작업치료 전공을 했고 서브로 한 게 화장품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프라인에서는 제 에스테틱샵을 열 계획이고 온라인으로는 화장품 쪽을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끊임없이 소비되어야 하는 그 영상 콘텐츠들을 누구보다 든든한 여기 민 감독과 함께할 생각이고 거기 나오는 수익에 대한 걸 이제 적절한 배분을 하는 식으로 할지, 아니면 제가 외주다 생각하고 계약을 맺을지. 어쨌든 제가 가고자 하는 행보에서 최대한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민다홍) 사실 지금 생활의 많은 부분을 새롬이 담당하고 있어요. 재정적인 부분. 제가 개인 사업자를 내고 한 1년 반, 지금 2년 차가 됐는데 사실 최근에 한 6개월 가까이 새로 들어온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부담을 해주고 있고 그리고 또 이렇게 새로운 아이템으로 뭔가 새로 준비를 하고 있고 또 요즘에 어떤 영상이라는 콘텐츠에 니즈가 어디서든 사용되기 때문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은 뜻으로 좋은 콘텐츠를 같이 만들면서 나중에 또 그게 포트폴리오가 되어서 어디서든 사용될 수 있으니까 계속해서 같이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고요.
사실 농담삼아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나중에 늙어서 우리끼리 뭔가 팝업 레스토랑 같은 것을 한다든지 뭔가 새로운 장르의 다른 걸 해보면 좋지 않을까 이런 얘기도 하고요. 그래서 당장은 지금 새로 준비하는 사업 그리고 저는 영상 제작하는 그런 부분에서 좀 더 공격적으로 광고와 미팅을 통해서 수익을 쟁취하기 위한 그런 방법을 고안하고 있고 또 향후에도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업들을 고민을 같이 하고 있고요. 만약에 그런 게 생기면 SNS든 알려드릴게요. 저희 네이버에 같이 살기 검색하시면 저희가 마이크로페이지가 만든 게 나오거든요. 거기 보시면 저희 블로그, 이메일 주소도 있고 하니까 저희 개인 SNS 팔로우 해주시면 다양한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플로어) 한 가지만 더 질문을. 저희도 작은 공동체에서 영화제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그거 준비할 때, 공모나.
-(정창영) 시나리오만 공모를 한 거고요. 옥천마을장애인인권영화제를 4년째 하고 있고 행사 통계를 드리면 처음에는, 우선 제 소개를 좀 더 드리면 두 분 감독님은 개인 활동을 하시는데 저는 마을협동조합을 지역 주민들과 2019년에 만들었습니다. 한 10여 명 정도 되는 조합원들과 같이 활동을 하고 있고 그 안에서 미디어 교육이나 콘텐츠 제작 활동을 하고 있는데 저희 지역에 장애인 활동을 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라는 단체가 있어요. 거기서 그분들이 하고 싶은 것과 저희가 하고 싶은 거 고민하다가 인권영화제를 하자고 해서 첫, 두 해는 자체적으로 진행을 했었고 펀딩 없이, 그런 것들이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저희가 좀 옥천군에 재정 지원, 예산 지원 요청을 했고 일부, 지금은 영화제 자체는 일부 지원을 받아서 진행됩니다.
역할은 행사 기획 쪽은 자립생활센터 쪽에서 하고 영화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제작하기 위해서 장애인분들 교육하고 이런 것들은 저희가 맡아서 진행을 하고 있고 나머지 큰 부분들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팀에서 도와주시는 거로 하고 있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한 개인이나 한 팀이 모든 것을 다 담당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을 나눠서 계속하고 있고 규모, 대신 규모가 조금씩 커지고는 있는 부분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극영화 형식이 4년만에 할 수 있었던 게 처음에는 장애인 한 분, 한 분 인터뷰하는 영상, 간단한 영상으로 시작을 했던 거고 그때 저도 카메라를 처음 잡았을 때고 그게 시간이 흐르면서 단체도 성장을 하고 개인도 축적이 되면서 지금은 단체, 여전히 좀 그렇게 매무새가 충분하지 않지만 영화 꼴이 그래도 좀묻어나는 작품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 뭘 해보신다고 하면 그런 방식으로 각 지역마다 사정은 다른 거니까 역할을 나눠서 함께할 수 있는 팀과 사람을 모으면 방법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플로어) 해보시니 많이 좋은가요?
-(정창영) 많이 어렵습니다. 사실 많은 일이 그렇지만 할 때는 굉장히 많이 싸우고 내가 이거를 왜 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2, 3년 정도는 전혀 재정적 지원 없이 했던 거고 다만 그거를 하면서 저희 같은 경우에는 옥천마을미디어사회협동조합으로 비영리 조합이거든요. 정체성이 뭐냐고 했을 때 전체적으로 저희는 장애인인권영화를 한다고 상징성을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에 도와준 측면이 있고요.
그리고 기획하고 촬영할 때 제일 많이 싸우고 그때는 사람하고의 갈등이 직접 있지만 사실 공감하실 텐데 제일 힘든 건 편집할 때 입니다. 끊임없이 30분짜리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 못 해도 100번 이상 돌려보니까, 보면서 계속 현타가 오는 겁니다. 내가 왜 여기 앉아서 욕먹어가면서 돈 버는 것도 아니고 왜 하고 있나, 그런데 잊을 만하면 이런 자리에 한 번씩 초대를 받거든요. 초대를 받으면 좋은 말해야 하잖아요? 아름다운 말 해야 하고. 오늘 같은 날 맨앞에 딸이랑 같이 왔어요. 11살짜리 딸이 왔는데 아빠가 뭐하는 사람이 알 둥 말 둥 해서.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정해진 회사 출퇴근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활동가라는 사람들이 다 그렇잖아요. 그래서 기회, 이런 자리를 통해서 내가 활동하는 것을 증명하고 보여줄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거기서 많이 에너지를 얻는 것 같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힘들지만 보람은 있고 보람은 있지만 내년에 꼭 하겠다, 약속은 하지 않는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하은) 제가 굉장히 난감한 게 작년에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출품한 영화가 작년에는 이동권에 대한 다큐 영화였다가 올해는 <소희로부터>라는 극 영화로 바뀌고 이게 사실 다큐멘터리, 극 영화가 어떤 게 더 어렵다 이렇게 할 수 없지만 이게 장르적으로 굉장히 다른데 이런 변화를 일궈낸 게 역량의 성장이라고 느껴지기도 해서 주제 의식도 이동권에서 조금 더 성장했다고 느껴져서, 앞으로 차기작 계획을 여쭤보려고 했는데.
-(정창영) 차기작 계획이 구체적으로 있는 것은 아닌데 다만 이런 활동을 하면서, 저 같은 경우에는 장애인 인권 문제가 제 관심사의 80, 90%라기보다는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여러 가지 이슈와 문제가 있는데 그중 매우 중요한 줄기 중 하나가 장애인 문제라고 인식하는 거죠. 그만큼 저에게 중요한 건 지역의 청년 문제, 인구감소, 고령화라든지 사실 개인적인 관심이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꼭 장애인 인권이 아니더라도 아마 이런 활동을 계속하게 될 것 같고 장애와 관련해서는 저는 과거에 보면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보통 이동권, 접근권, 노동권, 권리중심의 권리 투쟁, 쟁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것도 하시는 작품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으니까 저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드러난 어떤 문제보다 그냥 장애인의 삶, 장애인의 사랑, 장애인의 성, 장애인의 가족, 그런 것들 있잖아요 장애가 아니지만 누구나 겪고 있는 문제인데 단지 그거를 겪는 사람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조금 그럴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부분들, 저는 자꾸 장애인권이라는 미디어가 장애인을 폭력적으로 다루는 주류 시각이 문제기도 하지만 그거를 이게 아니에요. 하는 반대적인 방법도 주제나 전달방식이 관성적인 부분이 없지 않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한 사람의 삶이 한두 마디로 정리되지 못하는 것처럼 장애인의 삶도 한두 개로 정리되지 않을 텐데 매번 반복적인 그런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간접적인 방식, 직접적이지 않고 하지만 돌아서 집에 가서 생각하면 관객분들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은) 관객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 한마디씩 해주시면 GV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민다홍) 바쁘신 시간에 이렇게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또 같이 보면서 같이 웃어주시고 또 이렇게 시간을 보내주셔서 너무 감동이었고 감격스럽고요. 저희 사실 이 영화에서 저한테 되게 가족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 상처만 있는 것처럼 표현이 됐는데 이 단편에 다 담아내기에는 굉장히 복합적으로, 함축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 더 풀어냈었으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좀 남지만, 왜냐하면 오늘 저희 어머니가 오셨거든요.
그래서 사실 이 작품 만들면서 새로운 새롬 가족과 그 안에 들어가면서 느낀 안정감, 지금 이 시점이 분명히 저에게 좋은 바탕이 되고 밑거름이 됐지만 어쨌든 저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데에는 어쨌든 가족이 있었던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어쨌든 혈연은 어쩔 수가 없는 거구나. 그런데 내가 또 선택해서 사는 다른 가족의 형태, 그리고 내가 누구와 살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그 권리에 대해서 다양한 삶의 형태에 대해서 좀 더 폭넓게 다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 너무 감사드립니다.
-(공새롬) 일단 같이 살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저희의 어떤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보고 공감하고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또 저희를 스스로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것도 있어서 너무 어렵지 않은 편안한 이야기지만 뭔가 힐링이 되는 그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데 중간중간 웃어주시기도 하고 저도 보면서 좀 웃기기도 하고. 또 저희 강아지들이 나오는 장면들이 사실은 더 많이 넣고 싶었어요. 강아지를 더 많이 넣어서 더 힐링하셔라 이렇게 하고 싶었는데 단편이다 보니까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고 또 장편에 대한 생각이 없는지, 저희 부모님이 궁금해하셔서. 좀 더 저희 이야기가 또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관심을 주신다면 저희가 조금 더 노력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저희 부산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는 길이 좀 멀긴 했지만 마음은 꽉 채워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창영) 귀한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관객분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희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함께 만든 작풂은 올해 <소희로부터>는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이 예정되어 있어서 유튜브에 올라가 있지는 않은데 그전 작품들은 유튜브에 올라가 있습니다. 옥천마을방송이라고 유튜브 검색해보시면 저희 단체에서 자립생활센터에서 혹은 저희 지역의 여러 마을에서 만든 영상들이 다 올라가 있습니다. 앞에 둘째 줄에 계신 저분처럼 이렇게 이야기하면 휴대전화를 꺼내서 옥천마을방송을 찾으셔서 구독과 좋아요 같은 걸 눌러주시면 참 좋을 것 같고요. 당사자 중심의 이야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그런데 너무 당사자 주의에만 매몰되면 소통과 공감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마지막으로 저희가 유튜브 말씀을 드렸던 이유도 센터랑 늘 고민인 게 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그래도 많은 사람이 들여서 영화를 만드는데 1년에 저희 지역에서 영화제를 한 번 하고 아주 운이 좋으면 이렇게 서울에 초청을 받고 저희 작품이 공식적으로 세상에 만날 수 있는 건 두 번밖에 없고 유튜브에 올리더라도 장애인인권영화를 굳이 찾아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이런 이야기들이 좀 많이 널리 널리 회자가 되고 공유가 됐으면 좋겠고요. 만약에 가능하시다면 관심이 있으시다면 각자 돌아가시는 지역과 마을과 그곳에서 이런 작품들, 제가 만든 작품이 아니더라도 이런 작품들에 많이 관심을 갖고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끝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은) 다시 한번 상기를 시켜드리면 옥천마을방송 유튜브 구독해서 많은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하셨고 저희가 검색창에 <같이 살기>를 검색하면.
민다홍: <같이 살기> 검색하시면 같이 살기 페이지가 나오고 그 페이지에서 홈 버튼을 한 번 더 누르시면 영화 페이지, 상세 페이지가 나오게 세팅해놨고 네이버에서 버밀리어 영상제작 검색하시면 제가 나옵니다. 그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좋아요, 댓글 남겨주시면 제가 찾아서 서로 이웃도 하고 또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요. 많이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