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나의 것, 지원주택 사람들 |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 23.04.28 부대행사 '힘차게 달려라_탈시설' 속기록

-사회자: 안녕하세요? 저희 탈시설을 주제로 한 영화 두 편을 같이 봤는데요. 재미있게 잘 보셨나요?

저희가 요즘 아주 핫하게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탈시설을 주제로 한 영상을 보고 이야기손님들과 함께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근데 시작하기 전에 저희 부대행사 제목이 뭔지 아시죠?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입니다.

-사회자: 저희 영화제 제목입니다. 지금 이 순간 이 부대행사 탈시설을 주제로 저희가 나누고 있는데요. 이 부대행사의 제목! 아시죠?

맞습니다. '힘차게 달려라_탈시설'인데요. 여러분들과 함께 힘찬 구호로 저희가 이야기손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해요. 같이 해주실 수 있으시죠? 제가 어떻게 구호를 외치면 좋을까 많이 고민을 했는데. 음율이 잘 안 되더라고요. 먼저 '힘차게'를 외치면 여러분이 '탈시설'이라고 외쳐주세요. '달려라' 하면 '탈시설' 외쳐주시면 되고요. 마지막에 힘차게 달려라라고 해주시면 탈시설이라고 해주시면 됩니다.

여러분과 함께 힘찬 구호를 외치면서 이야기손님을 모시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힘차게!

-탈시설!

-사회자: 달려라!

-탈시설!

-사회자: 힘차게 달려라!

-탈시설!

-사회자: 감사합니다. 많이 긴장하실 것 같아서 마음을 푸시라고 구호를 외쳐봤고, 힘을 좀 받으시라고 해봤습니다. 저희 이번 부대행사가 '힘차게 달려라_탈시설'이에요.

두 편 영화를 함께 봤고요. 탈시설운동 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야기손님으로 네 분이 함께하고 계시는데요. 하기 전에 각자의 소개를 한번 들어봐야겠죠?

그래서 제 바로 왼쪽에 있는 손님부터 자기소개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탄진: 안녕하세요? 나야 인권강사 김탄진입니다.

평소에는 노들센터에서 공공일자리로 일하고, 야간에는 노들야학에서 수업을 듣고 있으며, 근래에는 탈시설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현아: 안녕하세요? 저는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는 김현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회자: 긴장하셨다고 했는데 전혀 긴장하신 줄 모르겠는데요. 혜란 님.

-정혜란: 저는 MBTI가 I로 시작하기 때문에 앉아서 하겠습니다. 한국장애포럼에서 활동하는 정혜란 활동가입니다. 반갑습니다.

-박미주: 저도 I여서 앉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기침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진행하겠습니다.

저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미주입니다.

-사회자: 아까 김탄진님이 탈시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소개해주셔서. 혹시 그럼 내년에 우리 영화제 나오는 건가요? 출품되는 건가요?

-김탄진: 참석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사회자: 내년에는 꼭 김탄진님이 만든 영화를 이 자리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오늘 함께 본 이야기가 탈시설에 관한 이야기예요. 김탄진, 김현아 님은 시설에서 생활하시다가 탈시설한 분이시거든요. 두 분에게 탈시설을 했던 과정 그리고 지금 어떻게 나오시게 되셨는지에 대한 과정들을 먼저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탄진님부터 시작할까요?

-김탄진: 저는 2009년 5월 14일에 시설을 나왔습니다. 그때 당시 TV에서 장애인 탈시설운동을 하고 있던 정혁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본 저는 시설의 제 방에 있던 컴퓨터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고 운이 좋게 연락이 닿아 정혁이의 집에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정혁이의 모습을 보고 시설에서 생활을 하던 저의 모습은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고. 저도 탈시설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설을 나가겠다고 말하자 시설의 원장은 극구반대를 했지만 무연고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시설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사회자: 우리 TV에서 먼저 탈시설한 분을 보고 연락을 하셨다는 거죠. 탄진이형이 말씀하신 정혁이 박정혁님 말씀하시는 거죠? 지금 아마 박정혁님도 서울에 그리고 우리나라에 아무런 탈시설 관련 정책이 없었을 때 정말 시설에서 나와서 힘들게 사시면서 여러 운동들을 함께하셨던 우리 동지죠. 지금은 고인이 되셔서 아마 하늘에서 보고 계실 거 같아요. 앞서 굉장히 많은 우리의 정책들을 만드는 데 앞선에서 함께했던 정혁이 형을 이야기 들어서 깜짝 놀랐는데요. 갑자기 생각이 들어서 말씀드렸고. 정혁이 형이 또 한 분의 탈시설한 동지를 만들어내셨네요.

그럼 우리 현아님도 시설에서 나오셨는데,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오시게 되셨어요?

-김현아: 저는 6살 때부터 시설에 있는 재활아동요양원에서 6살 때부터 살았고요. 그때가 이름 자체도 없었고 거기다가 시설 선생님께서 제 이름을 김현아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2017년도에 신월5동에 있는 자립홈이라는 데서 5명과 살았는데요. 그때 재활원에서는 자유도 없었고 그때는 아침은 몇 시에 먹고, 점심은 몇 시에 먹고, 저녁은 몇 시에 먹고, 잠자는 시간은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고 이렇게 정해져 있어서 그것도 단체생활이다 보니까 시간도 정해져 있다 보니까 너무너무 불편했고. 거기다가 또 약속도 잡고 싶어도 못 잡았고. 왜냐하면 시설 선생님들한테 눈치도 보일까 봐 제가 약속도 잡고 싶어도 못 잡았고. 만약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싶어도 못 간 것도 있고. 그래서 저는 2018년도에 신월5동에 있는 그룹홈에서 4명과 같이 살았는데요.

그때도 시설 소속이다 보니까 많이 불편하기도 했고 눈치도 많이 보이고 제 방도 없다 보니까 많이 불편했습니다.

-사회자: 현아님이 쭉 시설에서 삶에 대한 증언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아까 영상에서 봤던 '지원주택 사람들' 보셨죠? 그 영화가 프리웰이라고 하는 법인에서 운영하는 지원주택인데요. 우리 현아님도 그곳에서 생활하고 계세요. 맞죠?

-김현아: 맞습니다.

-사회자: 시설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에서 일정 기간 생활하시다가 그 이후 프리웰지원주택으로 자립을 하신 거죠?

-김현아: 네.

-사회자: 현아 씨에게 여쭤보고 싶은데요. 어쨌든 지원주택이 과거에는 없었고 아마 현아 씨가 지금 지원주택에 살고 계시지만 아마 서울시가 처음 시범사업으로 진행하는 그런 지원주택에 나오시게 되셨어요. 그래서 더디지만 정책들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데, 그래도 발달장애 당사자인 현아 씨가 보시기에 조금 미흡한 제도, 어떤 것들이 좀 더 내가 자립하는 데 있어서 필요하다라고 느껴지시는 게 있다면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현아: 솔직히 말하면 제가 지금 자립을 하고 있고 거기다가 탈시설한 사람이다 보니까 지금도 시설에서 아직까지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분들과 또 아직까지 시설에서 갇혀 있는 분들을 좋은 자립주택도 생겼으면 좋겠고. 또 좋은 집도 생겨서 빨리 저처럼 자립해서 자유가 생겼으면 좋겠고.

여러 다른 동료도 만나서 좋은 경험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현아님은 지금 지역사회에 지원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주택에 자립을 해서 생활하고 계시는데요. 아직도 시설에서 살고 있는 많은 발달장애인분들이 현아 씨처럼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주택이 더 많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거죠?

-김현아: 네 맞습니다.

-사회자: 아마 서울시는 저희가 탈시설할 때 여러 가지 제도들이 많이 필요하죠. 많이 필요한데 당장 저희가 이야기하는 것이 살 공간, 주택에 대한 주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저희가 이야기를 하고 있고. 서울시는 지원주택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주택과 주거유지서비스가 결합된 주거형태인데요.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 일상의 삶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들이 되고 있어요. 근데 아주 많이 미흡하죠. 서울시가 아마 계획으로는 매년 70호라고 이야기했는데 시설에 계신 분들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잖아요, 70호가. 그런데 여전히 지금 70호가 되고 있지 않아요. 작년에도 38호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서울시만 하더라도 2000여 명이 넘는 장애인분들이 시설에 살고 계시는데 그분들이 과연 지금의 속도라면 언제 다 지역사회에 나와서 함께 우리와 살아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탈시설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요구들을 지금 하고 있고. 그리고 현아 씨도 지금 피플퍼스트센터에서 그런 활동들을 하고 계시고 있죠?

-김현아: 왜냐하면 원래 제가 다사랑에서 일을 하다가 사무실에 미소, 현주, 시몬, 소연, 라현 이렇게 해서 다사랑 그만두고 피플에서 일하는 거 어떠냐고 추천도 해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3월 29일에 그만두고 3월 30일에 면접을 보고 3월 30일에 결과발표가 나왔는데요. 합격을 해서 4월 4일부터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우리 현아님 기억력이 너무 좋지 않아요? 날짜를 다 기억하고 계시고.

제가 지금 생각해보니까 제 소개를 안 했네요. 그렇죠?

저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소입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냐면 아까 현아님이 미소라고 얘기해가지고 제가 잠시 프리웰 지원주택에서 일을 했었거든요. 그때 제가 있는 권역에 제가 지원하는 분이 현아님이었어요. 그래서 현아님이 너무나 권리의식도 너무 좋고 하실 수 있는 게 너무 많은데 직업보호작업장인가요? 한 달에 7만 원 받고 일을 하고 계셨어요. "안 된다. 현아는 피플에 가서 권리옹호활동을 해야 한다." 현아님께 엄청 피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지금 1년 넘으셨죠?

-김현아: 4월 4일이 1년이 되었습니다.

-사회자: 지금 피플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말씀해주셔서 제가 잠깐 설명드렸고요. 그 앞에 '내 인생은 나의 것' 저희 420 티도 써 있죠? '내 인생은 나의 것'인데. '내 인생은 나의 것'에 나오는 영화를 보면 UN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지금 많은 사람들이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당사자의 목소리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우리의 삶은 우리가 결정하죠. 우리가 결정하고 우리가 결정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아야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지금 시설에 살고 계시는 분들에 대해서 자기결정, 주체적인 삶을 결정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의견들이 많이 배제되고, 영화에서는 후견인이라는 분들이 많은 권한을 가지면서 당사자의 목소리보다 후견인들에 의해서 삶이 많이 바뀌기도 하고 결정되어지죠.


그래서 제가 알기로 우리나라도 UN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되어 있잖아요. 그렇죠, 현아님? 그래서 아마 아실 수 있겠지만 좀 더 우리가 이 자리에서 UN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나라는 어떻게 잘 이행하고 있는지, 잘 지키고 있는지 이런 이야기를 활동하고 계시는 한국장애포럼 혜란 활동가님한테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혜란: UN장애인권리협약은 아마 들어보신 분들이 더 많으실 것 같기도 한데.

UN에서 2006년도에 UN에 있는 회원국이 그 당시 192개국의 회원국이 있었는데, 회원국가 전체가 만장일치로 동의해서 만들어진 국제법인데요. 이 법이 얘기하고 있는 것은 장애인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가 전 세계적으로 너무 잘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걸 잘 지킬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고 약속하자라는 내용을 담은 국제법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도 2008년에 가입을 했고요. 우리나라 헌법내용에 국제법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고 명시가 돼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이 UN장애인권리협약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그런 역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잘 지켜지고 있냐고 물어보셨는데, UN장애인권리협약을 국가가 비준을 하게 되면 정기적으로 UN장애인권리협약이 그 국가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심의를 정기적으로 하게 되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2004년도에 1차 심의를 받고 바로 작년도에 2차, 3차 심의를 합쳐서 받았어요. 근데 안타깝게도 사실상 거의 9년 전에 첫 심의를 받았던 거에 대한 내용과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최종견해 결과가 나와서 9년 사이에 사실 크게 우리나라 장애인 인권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도 저희가 평가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부분을 우리가 계속해서 좀 지켜보면서 어떻게 UN장애인권리협약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회자: 혜란 활동가님, UN장애인권리협약에 많은 내용들을 장애인의 전반적인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잖아요. 저희가 요즘에 UN장애인권리협약이 담고 있는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그 탈시설에 대한 부분만 또 살짝 핵심만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혜란: UN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르면 그 협약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말씀하신 것처럼 지역사회 자립, 자립생활, 탈시설인데요. 그래서 정말 엄격하고 저희가 봐도 놀라울 정도로 시설을 운영한다든지 시설에 국가의 예산이 투입된다든지 이런 부분들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요, 이 협약에 따르면. 그래서 국가는 사실상 지금 당장 모든 우리나라에 있는 시설을 폐쇄를 해야 되는 게 맞고요, 이 협약에 따르면. 이런 것들이 UN장애인권리협약이라는 문서 자체가 20페이지밖에 안 되는 사실 많지 않은 분량이라서 그 안에 장애인의 여러 가지 많은 권리들을 담다 보니까 좀 선언적으로 들어간 내용들이 있기 때문에 이걸 다르게 해석을 한다거나 국가에 따라서 아니면 어떤 정부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한다거나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어서. 이걸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 UN장애인권리협약을 더 보충해서 잘 설명해주는 일반논평도 있고요. 그리고 작년에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이라는 문서가 나왔는데, 이 문서에 정말 세세하고 정확하게 모든 국가에 있는 시설은 폐쇄해야 하고 지역사회에서 사라져야 하고 그리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 이런 내용들. 그리고 그룹홈에 대한 이슈들도 많은데. 사실 탈시설을 한다라고 하는 국가들을 보게 되면 사실상 이게 탈시설이 아니라 시설을 조그맣게 쪼개서 작은 또 하나의 시설을 만드는 그런 형태로도 많이 가고 있는데.

이런 것들 역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고. 저는 그리고 또 인상 깊었던 게 이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시설에 거주했던 사람과 지금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시설 생존자라는 표현을 사용해요.

그 정도로 시설이라는 공간이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지 못하는 그런 정말 폭력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굉장히 알게 해주는 그런 용어 사용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런 시설 피해자에 대한 배상, 보상에 대한 내용들까지 아주 정말 세세하고 잘 담겨 있어서 이 내용들은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씩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자: 저희가 어느 해보다 작년, 올해, 2020년 12월에 탈시설 지원법이라고 하는 법이 이제 국회에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 발의를 했는데 아직 개정이 안 됐어요. 지금 3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 개정이 안 됐고. 윤석열 정권하에서 제정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최근 탈시설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죠. 탈시설을 꼭 해야 한다, 탈시설은 인간의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한 권리이다,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 좋겠는데 그 반대인, 탈시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들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당사자이기보다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전문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 부모들이 반대하고 있고.

그래서 어느 해보다 저희가 UN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외치고 있거든요.

탈시설 정혜란 활동가님이 말씀해주셨던 탈시설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해보다 많이 하고 있어서 이야기를 부탁을 드렸고. 옆에 있는 미주 활동가님은 굉장히 바쁘시죠, 요즘에? 올 한 해 지금 4월인데 아마 벌써 12월 같은 느낌을 받으실 것 같아요.


오세훈 시장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굉장히 미주 활동가, 장차연 서울활동가들 바쁘게 활동하게끔 만들고 있는데. 지금 서울시가 탈시설 관련된 정책들을 활동가가 보시기에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지금 어떤 목소리를 강력하게 우리가 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미주: 일단 과거에 비해서 지금 좀 변화된 지점들을 말씀드리면, 과거에 비해 점진적으로 아까 말씀하셨던 지원주택, 자립생활주택, 서울시에서 추가지원하는 활동지원서비스, 탈시설정착금 등 이런 정책들이 아주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은 확대가 되어가고 있기는 한데요. 그래도 과거에 비해 현재 지금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은 이전에는 이런 활동지원 서비스라든지 지원주택 공급 이런 부분들이 개별적인 조례에 기반해서 되게 파편적으로 시행되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런 탈시설이라는 정책을 지원하는 법적 기반이라든지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시장 한 명이 바뀐다거나 그랬을 때 시장의 의지에 따라서 정책이 지금 탈시설 정책들이 축소된다거나 퇴행한다거나 이런 상황들이 있었어요. 불안정한 상황들 안에서 탈시설 정책들을 잘 지켜내기 위해서 매번 이렇게 대응투쟁을 진행하고 그런 상황들이 반복이 됐었는데. 아마 다들 여기 있는 분들 아실 것 같은데 작년 7월에 서울시에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가 제정이 됐습니다. 2009년부터 탈시설을 염원하는 많은 동지들이 함께 거리에서 투쟁을 한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근데 이 조례가 여전히 많이 납작다고 해야 하나요? 납작하고 많은 한계지점이 아직 존재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시설이라는 권리가 명문화되었고 그리고 당사자의 관점 그리고 충분한 공적지원이라든지 장애인의 자기결정, 이런 부분들 그리고 인권보장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기본원칙 아래에서 서울시가 탈시설에 대한 5개년 계획을 수립을 해야 하고요.

그 계획에 따라서 가장 중요한, 그에 마땅한 예산들이 마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조례와 계획들을 바탕으로 해서 서울에서 장애인들이 완전한 독립적인 주체로서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하면서 완전한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이런 법적근거를 두고 이제는 지금 서울시에 탈시설 정책들이 시행이 되고 있는 상황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너무 멀리 있지만 국회에 지금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국회에 계류돼 있는 탈시설지원법도 제정해야 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장연 죽이기라고 칭하는 서울시의 표적수사도 매일같이 하루하루 편지를 보내듯이 이렇게 터져 나오고 있어서 거기에도 대응해야 하고. 여전히 우리 앞에는 수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지금 서울에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탈시설해서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생겼다는 것, 그것이 일단 오늘날 현재 가장 큰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자: 너무 아름답게 얘기해주신 거 아니에요? 서울시가 아마, 국가가 정책이 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보건복지부하고 탈시설 관련된 정책들을 전혀 하지 않았죠. 하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서울시가 2009년도에 탈시설에 관련된 정책들을 최초로 만든 지자체이긴 해요, 서울시가. 굉장히 그 자체로는 의미가 있죠. 2009년도 그 당시에 서울시장이 오세훈 시장이었거든요.

오세훈 시장이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자립 필요해. 지역사회 함께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을까요?

그러지는 않겠죠. 그렇지는 않고 그 당시 많은 당사자분들이 시설에 살고 계시던 분들이 목숨을 건 투쟁을 하셨고 그 결과로 정책들이 만들어졌어요. 아마 지자체 최초로 만들어졌고 정책들이 조금씩 더디지만 2009년 쭉 이어와서 이제 2023년까지 왔는데.

그래도 저희가 아직 할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렇죠? 서울시가 기존에 만들었던 정책마저 조금씩 후퇴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계속 우리가 얘기하는 시설에 예산 투여하지 말고 지역사회 기반이 없어서 자립생활 못한다라고 말하지 말고 시설에 투자하는 그 예산을 지역사회에 살 수 있도록 만들어라, 지원체계 만들어라. 거기에 예산을 쏟아라, 책정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설을 유지하는 정책들을 더 많이 하려고 하고, 지금 더 그러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서울시가 그러지 못하도록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같이 함께 연대를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하실 거죠?

지금 혜란, 미주 활동가를 통해서 UN장애인권리협약은 어떻고 서울시 정책은 어떤지 이야기를 나눴고요.


다시 두 분에게 돌아왔습니다. 우리 탄진 님이랑 현아 님이 어쨌든 우리 탄진 님은 2009년도에 자립을 하셨고 아마 당시에 정말 지역사회 지원체계가 없어서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아요. 주택도 그렇고 활동지원 서비스도 그렇고 여러 가지 힘드셨을 것 같고. 현아 님은 2008년 체험홈에 있다가 2009년 나오셨는데 지역사회에 사시면서 정말 이때 너무 행복했었다, 혹은 이때 정말 신기한 경험이나 행복했던 그런 기억들이 있으시다면 한 가지만 말씀해주실 수 있으세요?

-김탄진: 시설에 있던 당시에는 집회라는 개념이 생소했는데, 탈시설을 한 뒤 처음 참여해본 집회는 다양한 장애인들이 모여 장애인들도 다양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되찾고자 싸우던 모습이 신기했고, 지금은 저도 일원이 되어 투쟁하며 싸울 수 있어 기쁘고 행복합니다.

-사회자: 활동가답게 지금 가장 기억에 남고 신기한 게 투쟁, 집회현장이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맞으시죠? 지금 누구보다 탈시설 정책 그리고 장애인의 권리투쟁에 앞장서서 활동하고 계시는 김탄진 님이시고. 집회현장이 가장 좋았다, 기억에 남는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현아님은 재미있었거나 즐거웠거나 그런 경험.

-김현아: 저는 탈시설을 하니까 특히나 피플에 아는 사람도 만날 수 있고 거기다 맛있는 음식 시켜 먹을 수도 있고 특히나 지하철도 탈 수 있게 되고 피플퍼스트를 다녀보니까 지하철 노선도 다 알게 되고 거기다가 맛있는 음식 시켜 먹을 수 있어 좋고 늦게 자서 좋고 자유가 있어서 좋고 피플에서 많은 활동을 하니까 기분이 좋아요.

-사회자: 우리 현아님은 모든 게 다 기억이 좋으신 거죠? 현아님, 제가 듣기로는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딱 핵심이 꽂히는 게 맛있는 거 먹을 때 좋았다.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김현아: 저는 피자하고 떡볶이하고 이런 거 좋아합니다.

-사회자: 피자, 떡볶이 얘기하니까 먹고 싶네요. 언제 같이 한번... 그러면 시설에서 나와서 더 많이 드실 수 있나요?

-김현아: 시설에서는 음식을 시켜 먹고 싶어도 못 시켜 먹는 이유가 시설에 선생님도 계시다 보니까 음식도 잘 시켜 먹지도 못하고 자유가 없다 보니까 또 탈시설하다 보니까 많은 음식도 시켜 먹을 수도 있고 특히나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도 시켜 먹을 수 있고 요리도 해서 먹을 수도 있고.

특히 제가 요리도 잘해요. 그래서 제가 요리도 해가지고 피플 사람들한테 제공도 많이 해주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제가 사실은 요리는 못하는 건 없고 다 잘합니다.

-사회자: 우리 현아님이 요리를 잘하신다고 하니까 아까 '내 인생은 나의 것'에서 조력하시는 분이 주인공에게 했던 말 기억하세요? "우리 집에 와서 요리 좀 해줄래?"라고 했는데 현아 씨가 해주는 요리를 먹어보고 싶네요. 이어서 현아 씨한테 질문을 드릴 건데요. 지금 현아 씨가 지원주택에 살고 계시잖아요. 지금 아마 혼자 계시지 않고 다른 동료들과 함께 지내시는 거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혼자 동료 친구들과 말고 정말 혼자 살려고 준비한다고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김현아: 지금 제가 집을 세 군데를 넣었어요. 1순위가 장안, 2순위 은평, 3순위 송파 쪽을 넣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혼자 살고 싶은 이유는 제가 아는 지인과 피플퍼스트 서울센터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서 집을 세 군데를 넣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살면 눈치도 안 보고 자유도 많이 많이 생길 거고, 먹고 싶은 것도 잘 먹을 수 있어서 저는 빨리 이사하고 싶습니다.

-사회자: 제가 이사하려고 마음 먹은 계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집에 친구들이 마음껏 초대하고 싶다. 꼭 돼서 3순위까지 넣었으니까 하나라도 돼서 혼자 사시면 집들이에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탄진이 형님 요즘에 정말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반대하는 분들도 많이 목소리를 내고 계시잖아요. 이야기하고 계시는데 탈시설을 한 당사자로서 탈시설을 반대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실까요?

-김탄진: 반대로 그런 사람들에게 시설에 들어가서 5년 정도 우리하고 똑같이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생활을 해보고 나서도 그런 말들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사회자: 단 하루도 못 견뎠을 것 같은데 5년... 안 가실 것 같네요. 그렇죠?

탄진이 형 말씀해주시니까 저희 책 중에 '나를 위한다고 말하지 마'라는 책이 있거든요.

탈시설에 반대하시는 분들이 당사자를 위하는 거라고 이야기하면서 목소리를 내시는데 정말 그분들에게 본인들이 직접 시설에 가서 한번 경험해보고 느껴보고 반대할 수 있는지.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정말 그렇게 했으면 좋겠네요. 근데 안 갈 것 같은데 어떡하죠?

저희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만들어진 거 아시죠? 출범을 했습니다. 우리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에 아마 탄진이 형님과 현아님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우리가 더 큰 목소리를 내면 될 것 같습니다. 탈시설 반대하시는 분들보다 더 큰 당사자로서 우리의 목소리를 더 크게 외치고 많이 알려내는 활동을 같이 더 힘차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혹시 네 분에게 탈시설 관련된 현장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분들이거든요. 중간에 제가 기회를 드릴게요. 질문하실 수 있는 기회. 손 드신 겁니까?

-네 명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탈시설하실 때 힘든 거 없었어요? 가장 큰 좌절.

-사회자: 누구에게 질문이세요?

-네 분 다요.

-사회자: 아쉽게 탈시설한 동지가 현아, 탄진님인데 두 분께 여쭤보겠습니다. 탈시설할 때 어려움이 없었는지 질문해주셨어요.

두 분 생각하실 동안 또 질문을 같이 받겠습니다.


-처음에 탈시설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어떤 계기로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사회자: 탈시설을 어떤 계기로 나오게 됐는지, 나오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는지 이어서 얘기해주시면 되겠네요. 두 분 다 궁금하신 거예요? 탄진님과 현아님에게?

-김현아: 사실은 탈시설 한 계기는 첫 번째는 혼자 살고 싶어서 탈시설한 거고요.

두 번째는 탈시설 하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고 탈시설을 했고요.

마지막 세 번째는 탈시설 하면 어떤 기분이고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탈시설을 했습니다.

-사회자: 혹시 나오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있었나요?

-김현아: 사실은 제가 탈시설 안 했을 때는 403호에서 살았는데 벌레 공포증이 있거든요. 바퀴벌레가 많이 나와서 너무너무 싫어가지고 빨리 탈시설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김탄진: 그때 당시 시설에 있었는데 시설 원장님께서 탈시설을 하면 안 된다고 언어적으로도 비속어를 섞어서 폭력적으로 대하셨고 되게 억압을 많이 가하셨습니다. 그것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2009년 5월 14일에 성공적으로 탈시설을 했습니다.

-사회자: 탄진이 형님은 미신고 시설이서 생활하셨어요. 신고되지 않은 불법인 거죠.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고. 경기도에 있는 시설이었고. 정말 서비스나 지원체계가 없는. 그나마 서울시는 서울시 관할에서 자립하는 분들 이후 자립생활주택이라든지 약간의 정착금을 받으셨지만 아무런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탈시설을 하셨거든요. 아까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냐고 했는데, 제가 볼 때는 없었던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탄진이 형님이 나오신 이후에 시설에 살았던 짝꿍을 같이 데리고 나왔거든요. 그렇죠? 아마 너무 좋으셨으니까 열심히 짝꿍에게 이야기해서 같이 나오시지 않았을까. 그래서 같이 시설에 사셨던 분이셨고 지금은 나오셔서 결혼하셔가지고 같이 생활하고 계세요. 그렇죠? 제도가 잘 되지 않아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드셨을 테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좋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질문 있으신가요?


-안녕하세요? 탈시설은 탈출구, 밖으로 나간다의 '탈'이고. 탈시설. 시설 밖으로 나간다잖아요.

그것처럼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표현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그만큼 열심히 싸워야 한다는 힘을 주변 사람들이 이런 분들이 있기에 이런 세상이 조금씩 조금씩 점차 점진적으로 발전되고 있기 때문에 저는 탈시설 아자 파이팅하고요. 앞으로 여기 있는 분들 건강하시고요. 남북 통일하는 것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한테는 탈시설이 완전한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탈시설 파이팅!

-사회자: 질문보다는 대범님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도 궁금한 게 있는데 현아님한테 질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아도 혹시 억압이나 폭력을 당하지 않으셨나요?

-김현아: 제가 사실은요. 인기가 많아가지고 폭력을 당한 적이 없고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1학년 때부터 별명이 하나 있었고요. 초등학교 때 별명은 예쁜이였고요. 또 중학교 때 별명은 에이스였고요. 제가 초중고는 다 왕따나 따돌림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인기가 많아요.

-사회자: 아주 멋집니다. 현아님이 주변에서 함께하는 동료들의 열렬한 지지와. 더욱더 현아님이, 아주 뿌듯하네요.

다시 질문 이어보도록 할까요? 저희가 탈시설을 계속 이야기하니까 많은 분들이 탈시설에 대해서 어떠한 집단이 이야기하는 거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사실 탈시설은 어떤 집단들이 이야기하고 전장연이 얘기하기보다, 지금 아까 UN장애인권리협약이라든지 이런 세계적으로 자립생활에 대한 사회통합이라고 하는 정책들이 변화되고 있는 거죠, 혜란 님.

그래서 우리가 지금 우리나라 말고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탈시설 관련 정책들이 되고 있고, 우리가 이런 UN장애인권리협약을 지키기 위해서. 아직까지 국가가 전혀 하고 있지 않은데 어떤 역할들을 국가가 해야 되는지를 간략하게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혜란: 저희가 KDF 한국장애포럼이 세계에 있는 다양한 여러 나라의 장애단체들과 만날 기회가 굉장히 많아서 만나서 그쪽 나라는 어떤 UN장애인권리협약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조항 중에서 어떤 것에 가장 관심 있냐, 어떤 이슈가 핫하냐고 물어봤을 때 빠지지 않는 게 탈시설이었어요. 그만큼 제 생각에는 탈시설이라는 의제가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고 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의제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예를 들어서, 다른 나라는 그래서 탈시설 상황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이건 국가마다 차이는 확실히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뉴질랜드 같은 국가에서는 정말 신기하게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 탈시설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시설을 폐쇄하는 그런 정책을 펼치기도 했었는데, 그런 곳에서는 탈시설이 잘 되는 그런 케이스도 있었던 반면에. 방금 영화 '내 인생은 나의 것'에서 보신 헝가리 같은 경우에는 그게 잘 안 되고 계속해서 시설에 대한 문제가 많이 발생을 하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아까 나왔던 발리더티 재단이라는 여기가 인권법률단체인데, 여기서 UN장애인권리협약을 헝가리 정부가 지키지 않고 있다. 탈시설과 역행하는 그런 정책을 헝가리가 펼치고 있다라는 내용으로 직권조사 신청을 넣게 돼요. 직권조사를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UN장애인권리협약을 아까 180개 넘는 국가가 UN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고 있고. 협약 말고 부속문서라고 선택의정서라는 부속문서가 있는데 UN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하더라도 선택의정서를 비준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요. 근데 만약에 이 선택의정서를 비준하게 되면 아까 말씀드린 직권조사라든지 개인통보 같은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데 그게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에서 UN장애인권리협약이 잘 지켜지지 않았을 때 그것을 UN에 신고할 수 있는 제도인 거예요. 신고하면 UN이 그것을 조사하고, 그래서 이렇게 시정해야 한다고까지 권고를 주는 그런 선택의정서를 당시 헝가리에서는 비준을 하고 있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작년에 정말 오랜 기다림 끝에 비준을 했는데. 그래서 헝가리가 탈시설 문제에 대한 직권조사를 UN에 신청을 했고. UN에서 무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헝가리 내의 시설 문제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됐어요, 직권조사를 신청했으니까. 그래서 2년 동안 거의 200명이 넘는 장애인 당사자와 인터뷰를 UN 위원들이 직접 하고. 또 2000페이지가 넘는 증거자료들을 다 수집해서 2년여 조사 끝에 정말 지금 헝가리 내에 있는 시설 문제가 심각하다, 헝가리 정부가 UN장애인권리협약을 지키고 있다고 말은 하고 자기들이 시설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시설 쪼개기에 불과하고 여전히 많은 예산들이 시설에 들어가고 있고. 그리고 아까 나왔던 후견인 문제까지 다루면서 이런 것들을 시정해야 된다고 권고하는 결과문서까지 나왔는데요. 사실 이걸 헝가리 정부든 한국 정부든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다거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2년 동안 계속 UN위원이 이런 자료 주세요, 저런 자료 주세요 하고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굉장한 압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UN이 어쨌든 국제기구이고 이게 국격이랑도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가 절대 이걸 무시하고 '그냥 안 지켜도 돼.' 이렇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고 보고 있어요. 그리고 또 직권조사에 대한 결과문서가 나오고 거기에 UN장애인권리위원들이 이런 이런 부분이 잘못됐으니까 이렇게 이렇게 시정하세요라는 부분이 그 이후부터 잘 시정이 되고 있는지를 매년 UN에 보고를 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걸 또 보고해야 되니까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우리나라도 선택의정서를 작년에 비준을 했으니까 KDF를 비롯한 여러 장애단체들에서 같이 이런 직권조사를 신청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자: 그러면 우리나라도 직권조사 할 수 있는 거죠? UN에? 탈시설 관련한 정책들을 전혀 국가가 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시설을 유지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정책이 잘못됐다고 우리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UN에 우리 이거 차별이고 심각한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직권조사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같이 꼭 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우리의 역할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미주 활동가님한테, 서울시가 탈시설 관련된 이야기를 작년 말, 올해 초 굉장히 많이 이야기하면서 가짜뉴스들을 많이 퍼트리고 있잖아요.

아마 오세훈 시장 내내 혹은 그 이후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 있는 우리들이 어떠한 활동들을 같이 가열차게 해야 될까요?

-박미주: 아까 앞서 과거와 서울시의 현재 정책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이끌어낼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먼저 꺼냈었는데. 미소 동지도 말씀해주셨지만 지금 서울시에서는 탈시설과 시설정책에 대한 균형을 이야기를 하면서 올해 원래 3차 탈시설 추진할 계획이 나와야 되는 해예요. 그것을 발표하지 않고 계속 지금 미루고 있는 상황이고. 그러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얼마 전에 덴마크 이런 선진국들을 돌면서 시설을 방문하고 선진화된 시설을 방문하기도 하고. 신규 입소를 허용하고 재입소를 운운하는 지금 그런 상황들이 있고.

또 이런 인권침해적인 조사들만 지금 주구장창 서울시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탈시설 장애인 1000명 전수조사, 활동지원...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조사들을 무분별하게 인권을 침해하는 행태로 무분별하게 조사가 진행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권리에 기반한 조사, 지원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삶이나 일상에 대한 존엄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예산만을 현재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장애인 1명이 지역사회에 나와서 살면 시설에서 사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까 그러면 시설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환경을 변화시켜볼게. 그래서 시설환경을 개편해서 잘 만들고 다시 잘 지어줄 테니까 시설에 들어가서 살면 되지 않냐. 사실 이런 논리로 계속 이야기하고 있고. 그런 궁리 속에서 나오는 조사들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현재 서울시에 지금 이런 행태들도 그렇고 그리고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김상한 복지정책실장이 이야기하는 발언 하나하나가 혜란 동지가 말씀하셨던 UN장애인권리협약,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명백하게 위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매일 오전 8시 시청역에서 기자회견, 선전전 하면서 권리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그 속에서 저희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한다면 다들 잘 아실 것 같기도 한데 위원장님도 앞에 와 계신데 얼마 전에 탈시설장애인연대가 세계 최초라고 하던데 창립을 하기도 했었는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많이 우리는 더 힘 있게 모아내야 할 것 같고요. 그리고 지금껏 우리가 그러해왔듯이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 우리도 이 사회에 존재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적으로 사회에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이 힘들고 지치는 상황들이 앞으로 계속 마주하겠지만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우리는 투쟁해야 할 것 같고요. 그저 온전한 나와 우리 동료의 일상과 존엄들을 지켜내면서 단 한 명이라도 남겨두지 않고 우리가 그토록 외쳐왔던 지역사회들을 확장해내면서 끝끝내 우리가 함께 살아내는 것,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너무 뻔한 대답을 한 것 같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는 전력을 다해 최선을 다해 투쟁해야 한다. 투쟁합시다.

-사회자: 저희가 투쟁해야 되는 이유를 말씀해주셨고. 우리에게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있습니다. 전 세계에 없대요. 우리나라가 유일하게 탈시설한 당사자가 주체가 된 모임 단체가 만들어진 거죠.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가 있기 때문에 이들과 함께 우리들의 목소리를 앞으로도 힘차게 더 많이, 아주 많이 내야 될 것 같습니다. 든든합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앞두고 있는데요. 아까 앞에서 질문을 손을 드셨는데 질문을 하실 건가요?

박경희 님. 질문 손 드셨는데. 질문 있으신가요? 저희가 하나만 질문 받고 마지막 질문 넘어가겠는데요.

-앞으로 탈시설의 갈 길을 듣고 싶어요. 탈시설 대책을 듣고 싶습니다.

-사회자: 시설에서 나오신 분들이 지역사회에 살아가는 데 있어서 대책, 탈시설 대책이 무엇이 있냐는 질문이세요?

-대책과 우리가 해야 할 과제가 어떤 건지 듣고 싶습니다.

-사회자: 대책과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 대책... 혹시 이 질문에 탈시설 대책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현아 씨가 답해주시겠어요?

-김현아: 대책이라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만약에 탈시설을 하고 싶으면 먼저 돈을 많이 모아야 되고요. 그다음에 탈시설하고 싶으면 용기가 있어야 됩니다. 무조건 용기가 있어야 되고요.

또 돈을 무조건 많이 모으면 자기가 살고 싶은 집도 살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되냐면 무조건 고민을 많이 해봐야 되고요. 또 집은 어디서 살지,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할지를 고민도 해보고 또 가격도 알아봐야 되고요. 그리고 돈도 얼마나 가격이 될지도 알아봐야 됩니다.

-김탄진: 현재로써는 탈시설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립적으로 되어 있는 그런 게 안 돼 있다 보니까, 우리가 그것을 좀 더 확립적으로 탈시설을 할 수 있게끔 투쟁하며 싸워나가면서 쟁취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투쟁하며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고. 미주 활동가님 더 얘기해주실 게 있으세요?

-박미주: 정답을 말씀해주신 것 같아서 더 보탤 건 없고. 탈시설을 위해서 사실 여전히 미비한 현실이고 지역사회에 살아가려고 시설에서 용기를 내서 나오셨을 때 대책은 사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하고자 하고 있고 그 이유는 법을 제정하려고 하는 이유는 사실 실질적으로 지원체계들이 촘촘하게 이동에서도 교육에서도 노동에서도. 그래서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5월 1일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공공일자리. 노동, 돈을 모으기 위한 것 노동 그리고 서울시 지원으로 한다면 탈시설정착금, 활동지원서비스 여전히 굉장히 부족한 활동지원서비스, 이런 부분들이 사실은 계속적으로 확대해나가야 되고, 그렇게 만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지금은 사실 대책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일단 함께 나와서 같이 싸워내면서 그런 기반을 확장해나가는 것, 이동하고 교육받고 일하며 건강하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우리 안에서 잘 안착할 수 있게 투쟁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신 탄진님 말씀과 같은 결인 것 같습니다.

-사회자: 우리 탄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투쟁해서 우리가 얻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까지 우리 권리들이 그냥 인정됐던 경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과거부터 활동지원 서비스 시작도 그렇고 우리의 권리를 우리가 열심히 투쟁해서 하나하나 쟁취해낸 그런 권리들이기 때문에 아마 탈시설도 우리가 함께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싸워서 우리가 권리로서 쟁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네 분에게 다 드리는 질문이고요. 영화에서 그리고 저희 이제 420 T가 '내 인생은 나의 것'입니다. 네 분께서 쭉 삶을 사시는 데 있어서 내 인생은 내 거다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면 한 가지씩만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김탄진: 제가 야구를 좋아하는데 야구장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야구장에 방문해서 직관하고 마시고 싶은 술과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며 피고 싶을 때 담배를 피우면서 자유를 느낄 때 내 인생은 내 거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김현아: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것은 저도 사실은 야구장도 많이 가봤고요. 열심히 피플퍼스트 서울센터랑 광진센터랑 성북센터랑 다 같이 열심히 투쟁해서 시설을 없애는 게 제 소원입니다.

-정혜란: 저는 아까 내 인생은 나의 것 영화를 보면서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얘기가 잠깐 나왔었잖아요. 시설에 거주하는 분들이 점점 표현이 적어지고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잊고 살게 된다는 게 참 시설의 여러 문제 중 큰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저 역시도 아직까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고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걸 싫어하는지 알게 됐을 때. 그리고 좋아하는 걸 하고 만약에 내가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런 것들을 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하고. 근데 그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을 이유로 못하는 일이 없는 그런 삶을 살 때 저는 제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박미주: 저는 사실 이 질문이 되게 제일 고민이 많이 됐어요. 사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느낀 적이 언제일까 고민을 해봤는데. 대표님들 안 계시겠죠? 제가 하기 싫은 일을 내가 미룰 수 있을 때만큼 끝까지 미루고 냅다 침대에 누워버린다거나.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가방 메고 나가서 맥주를 마신다거나 할 때 '이런 게 인생이지.'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실제로 내가 내 인생을 온전한 내 인생이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하기 싫은 것을 미룰 수 있고 거절할 수 있고 내 삶을 마음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회자: 여러분 돌아가시는 길에 '내 인생은 나의 것' 언제 나의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보시면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많이 고민하게 되는데. 나의 것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언제일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지만 꼭 한번 해보세요.

저희가 영화 두 편 탈시설에 관련된 주제 두 편을 보고 1시간 넘게 이야기손님 네 분과 이야기를 진행했습니다. 다음 영화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손님들과 이야기는 마치려고 해요. 즐거우셨나요?

탈시설에 대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겠다라고 다들 결심하셨나요?

저희 그러면 다 될 수 있는 거죠? 저희가 아까 처음 시작할 때 구호 외쳤잖아요.

시작을 했는데, 마칠 때도 그 구호로 오늘의 부대행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죠?

제가 힘차게 탈시설, 달려라 탈시설, 힘차게 달려라 탈시설 할 수 있으시죠?

그러면 현아님이 '힘차게'를 외쳐주시고 탈시설을 해주시고요.

혜란님이 외쳐주실까요?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미주 활동가님이 외쳐주십시오.

-힘차게.

-탈시설!

-달려라.

-탈시설!

-힘차게 달려라!

-탈시설!

-사회자: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