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막작] 이기적인 조선동
■ 사회: 이규식(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한(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 패널: 황나라(감독), 조선동(주인공), 한명희(노들야학)
■ 장소: 마로니에 공원 야외공연장
Q1. 첫 번째는 조선동에게 묻겠습니다. 조선동은 갖고 싶은 게 많은데, 이미 많이 갖고 있지 않아요?
선동: 나에게 소유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요. 지금은 950만 원짜리 전동휠체어를 사고 싶지요. 어렸을 때는 좀 더 비싼 것을 살수가 없었어. 부모님이 물건을 다 골라서 주었죠. 무언가를 사면 마음이 든든하죠. 그리고 이왕 살 때 좋은 거, 비싼 거를 사고 싶잖아요.
규식: 와 그러면 돈이 많나 봐요?
선동: (부정)
규식: 아, 돈은 없는 걸로. 잘 알겠습니다.
Q2. 그러면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선동: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집이에요. 저는 종로구에 삽니다. 투쟁해서 만들었기 때문이죠. 함께 만들어주어서 고마워요.
규식: 뭐니 뭐니 해도 동지가 최고죠. 다음은 황나라한테 묻겠는데요. 조선동을 오랫동안 가까이서 봐왔는데, 도대체 매력이 뭔가요? 나보다 더 매력이 있어요?
나라: 이규식 대표님보다 확실히 더 매력이 있고요. 조선동님은 생각 외로 젠틀하다고 해야 하나? 약간, 가끔 제가 무례한 질문을 하거나 제가 못 알아들을 때나, 눈이 마주칠 때 저한테 씨익하고 보내는 미소가 있어요. 좀 느끼한 미소. 지금 저 미소요. 그게 매력인 것 같습니다.
규식: 사기 치지 말고.
정한: 진짜 그게 다예요?
나라: 어, 그게 큰 매력..? 처음엔 저도 매력을 못 찾았는데, 보다 보니까..
Q3. 네, 잘 알았고요.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를 담는 다큐였고, 그래서 조선동님의 주체적인 모습 혹은 이기적인 모습, 같은 것을 담아낼 때 주체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 특별히 기울인 노력이 있나요?
나라: 처음엔 별생각 없이 찍었는데요. 영화 주인공으로 하기에는 좀 나쁜 역할 같은 느낌이 있어서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제 사수이신 호경 감독님이 꼭 착하게만 그릴 필요가 없다고 해서 계속 기록을 했었는데… 좀 나쁜 모습들이나 자기가 자기 주장하는 강한 모습, 그런 소리들을 잘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Q4. 지금 관객석에서 "이런 모습은 안 담겼네", "우리 열심히 싸우던 건 안 담겼네" 하는 말들이 들리는데 덜어내신 것도 있나요?
나라: 활동지원사랑 싸우시는 모습? 이런 것들은 저는 재밌었는데 보시는 분들은 불편하실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뺐습니다.
규식: 그렇군요. 빼기를 잘했네요.
Q5. 선동님의 그 천성적인 고집은 어디서부터 생긴 것인지 궁금하네요, 이 고집과 힘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선동: 될 것 같았어요. 이 투쟁 말이에요. 근데 중간에 물론 힘든 점은 아주 많았죠.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어요. 나는 나를 믿어요. 어차피 내가 할 때까지 하는 거니까요.
정한: 그러면 농성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선동: 입맛이 없었어요. 바다에 사는 것들을 좋아하는데 생각도 안 났지. 농성을 하니 입맛이 없어지더라구요. 장애인이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서울시 보증금 사업이 되었지만, 장애인이라고 하면 집구경을 아예 하러도 오지 말라고 하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집도 많고요. 여튼 밥을 잘 못 먹었어요. 야학 사람들이 나갔다 오면 들어올 때 빵이랑 이것저것 챙겨와서 주기도 하고 같이 나눠도 먹고 했어요.
Q6. 말씀처럼 쉽지 않은 일인데, 조선동님이 영화에도 나왔듯이 고집이 정말 세시지만 그래도 조율하거나 타협하거나 하려고도 하셨을 것 같아요. 실제로 그렇게 한 부분이 있나요?
명희: 조율은 잘 안 되었고요. 선동 님이라는 분이 지역 사회에 다시 돌아왔을 때, 서울시 전세 자금 대출 금액 정도로는 종로구가 아니라 성북구, 거기만 가도 훨씬 더 살 수 있는 선택지들이 많이 있었어요. 서울시도 왜 꼭 종로구에만 살려고 하냐고 했어요. 근데 노들야학이 했던 말은, “조선동님이 원하니까요”. 저도 선동 님이 종로구에 살 수 있을까? 정말 이게 될까? 생각했던 것들인데요. 이 사람은 정말 내가 가야 한다고 하니까요. 서로가 서로를 잡아주지 않았을까 합니다. 타협은 없었습니다.
Q7. 그러면 노들야학에서 같이 싸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명희: 선동님이 2월달에 결심이 서면서 3월에 노들야학에 오셨는데, 아니, 거리에 등장을 하셨는데요. 정부 청사 앞에 쏠라티 차량을 대놓고 거기서 주무시면서 농성을 시작하셨어요. 제일 힘들었던 건 경기에서 서울로 오시면서 지역 자체가 달라졌잖아요. 활동지원사를 새로 구해야 하는데, 농성까지 같이할 활동지원사 분을 구하는 게 일단 어려웠어요. 씻는 것도, 활동가들이 서로 집을 내어주면서 씻기도 했었고요. 구호와 의제도 그렇지만 사람의 일상, 먹고 씻고 자고 이런 것들을 지켜내는 게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규식: 또 누가 조선동같이 나오겠다고 하면 또 그렇게 싸울 건가요?
명희: 이 투쟁이라는 건, 예측할 순 없다, 계획할 수 없다는 데 있죠. 그런 상황이 발생을 한다면, (잠시 멈춤)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2의 조선동들을요. '지금 마음먹기까지 하지는 않겠다'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규식: 나도 똑같아요. 근데 조선동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 싸웠잖아요.
명희: 조선동독립투쟁단이라는 이름도 재밌잖아요. 이 번개처럼 들이닥친 투쟁이요. 조선동님에게 이기적이라고들 하죠. "비장애인도 살기 힘든 종로구에 장애인이 살겠다는 건 억지 아냐?" 이런 말들. 제가 참 답답했던 게, 한번은 시청 앞에 1인 시위를 하러 조선동님이랑 같이 갔는데 공무원이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비장애인 꾐에 이 장애인이 이용되는 거 아니냐고. 그때 진짜 억울했어요. 이 날벼락 같은 투쟁 때문에 우리도 이 추운 데 나와서 시위하는데. 억울해 죽겠단 말이 목구멍까지 나올 뻔했지만, 저는 이러한 개인 안의 욕구들, 중증장애인이라고 해서, 소수자라고 해서 내 개인의 어떤 의제들이나 욕구들을 참아야지라고 하는 것들을 시원하게 발설하셨다는 생각이 들고요. 지금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이 작년에 이 개인의 욕구를 의제로 만들어주고 구호로 만들어줘서 활동 보조 24시간을 요구하는 의미 있는 투쟁으로 연결해준 동지들이자 동료들이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Q8. 황나라 감독님은 촬영하시면서 어떤 점을 느끼셨는지?
나라: 선동 님이 좋아하신 거 저는 찍기만 했다고 생각하고요. 느낀 점은 조은별 국장님의 인터뷰에서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진부한 말이지만 저는 선동님 보면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게 노들을 움직이는 하나의 투쟁이 돼버렸으니까. 그게 참 신기하고 소름끼친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한: 차기작이나 다음 영화제에서 만날 기회가 있을까요?
나라: 계속 다큐멘터리 만들고 싶고 장애운동도 계속 기록하고 싶고, 근데 다음에 만들 건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방금 저기 노들야학 이홍기 학생이 자기 일대기?를 찍어달라고 해서 이슈를 만들어오라고 했는데 자기 글 쓰는 거 찍어달라고 해서 저는 재밌는 것만 찍기 때문에 고민을 좀 해보겠습니다.
정한: 이건 홍기 님에게 달린 일이겠네요. 홍기님 재밌는 투쟁 하실 건가요?
홍기: (저 뒤에서) 응!
Q9. 그건 제가 한번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조선동이 이제 종로에 자리를 딱 잡았잖아요. 아주 편하게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고 하고 있는데, 그 조선동이 배신을 할까요, 안 할까요? 그러니까, 투쟁판에 나올 건가요, 안 나올 건가요?
선동: 응 (나올게)
Q 10. 이것도 제가 잘 지켜보겠습니다. 한명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조선동은 배신을 할 거 같나요, 안 할 거 같나요?
명희: 선동님이 집회를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고. 자기 마음일 거라 생각하고요. 그런데 조선동이 투쟁을 안 하는 게 배신일까요? 작년에 벼락처럼 떨어진 조선동이지만, 선동이형이 어디에 있든 동료가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걸 가르쳐주기도 했고요. 계속 현장에 있으면 좋겠긴 하지만요. 마침 선동이형도 같이 하겠다고 하니까 더할 나위 없죠. 제가 재밌어 하는 걸 선동이형도 재밌다고 하니까.
관객 질문
진석: 조선동님한테 묻겠어요. 조선동은 종로구가 굉장히 좋은데, 종로구에서 구경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어디예요? 인사동? 광화문?
선동: 마로니에공원
경석: 조선동에게 건강은 좀 어떠신지? 행복하십니까?
선동: (건강은 괜찮으신지) 응 (행복하신지) 아니
명희: 왜 안 행복하세요?
선동: 지금은 안 행복하고, 말하기엔 길다
경석: 나중에 술 한잔해요.
선동: 응
경석: 술 사주셔야 해요.
선동: 응
규식: 마지막으로 질문이 어려울 수 있겠는데요, 조선동이 오랫동안 싸웠잖아요. 소감을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선동: 길에서 자는 것이 쉬운경험은 아니잖아요. 농성을 하면서 좋은것도 힘든 것도 다 많았네요. 그리고 경기도 에서 서울시로 이사왔다고 활동보조 시간이 깎였는데, 활동보조 투쟁을 하니 또 시간이 늘었죠. 그리고 다른 이야기로 여튼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줘서, 영화제 포스터에 내 얼굴도 나온 게 재밌어요. 지금도 여기 곳곳에 제 얼굴이 있잖아요.
규식: 이것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겠습니다. 모두 큰 박수 보내주세요.
[폐막작] 이기적인 조선동
■ 사회: 이규식(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한(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 패널: 황나라(감독), 조선동(주인공), 한명희(노들야학)
■ 장소: 마로니에 공원 야외공연장
Q1. 첫 번째는 조선동에게 묻겠습니다. 조선동은 갖고 싶은 게 많은데, 이미 많이 갖고 있지 않아요?
선동: 나에게 소유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요. 지금은 950만 원짜리 전동휠체어를 사고 싶지요. 어렸을 때는 좀 더 비싼 것을 살수가 없었어. 부모님이 물건을 다 골라서 주었죠. 무언가를 사면 마음이 든든하죠. 그리고 이왕 살 때 좋은 거, 비싼 거를 사고 싶잖아요.
규식: 와 그러면 돈이 많나 봐요?
선동: (부정)
규식: 아, 돈은 없는 걸로. 잘 알겠습니다.
Q2. 그러면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
선동: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집이에요. 저는 종로구에 삽니다. 투쟁해서 만들었기 때문이죠. 함께 만들어주어서 고마워요.
규식: 뭐니 뭐니 해도 동지가 최고죠. 다음은 황나라한테 묻겠는데요. 조선동을 오랫동안 가까이서 봐왔는데, 도대체 매력이 뭔가요? 나보다 더 매력이 있어요?
나라: 이규식 대표님보다 확실히 더 매력이 있고요. 조선동님은 생각 외로 젠틀하다고 해야 하나? 약간, 가끔 제가 무례한 질문을 하거나 제가 못 알아들을 때나, 눈이 마주칠 때 저한테 씨익하고 보내는 미소가 있어요. 좀 느끼한 미소. 지금 저 미소요. 그게 매력인 것 같습니다.
규식: 사기 치지 말고.
정한: 진짜 그게 다예요?
나라: 어, 그게 큰 매력..? 처음엔 저도 매력을 못 찾았는데, 보다 보니까..
Q3. 네, 잘 알았고요.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를 담는 다큐였고, 그래서 조선동님의 주체적인 모습 혹은 이기적인 모습, 같은 것을 담아낼 때 주체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 특별히 기울인 노력이 있나요?
나라: 처음엔 별생각 없이 찍었는데요. 영화 주인공으로 하기에는 좀 나쁜 역할 같은 느낌이 있어서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제 사수이신 호경 감독님이 꼭 착하게만 그릴 필요가 없다고 해서 계속 기록을 했었는데… 좀 나쁜 모습들이나 자기가 자기 주장하는 강한 모습, 그런 소리들을 잘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Q4. 지금 관객석에서 "이런 모습은 안 담겼네", "우리 열심히 싸우던 건 안 담겼네" 하는 말들이 들리는데 덜어내신 것도 있나요?
나라: 활동지원사랑 싸우시는 모습? 이런 것들은 저는 재밌었는데 보시는 분들은 불편하실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뺐습니다.
규식: 그렇군요. 빼기를 잘했네요.
Q5. 선동님의 그 천성적인 고집은 어디서부터 생긴 것인지 궁금하네요, 이 고집과 힘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선동: 될 것 같았어요. 이 투쟁 말이에요. 근데 중간에 물론 힘든 점은 아주 많았죠.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어요. 나는 나를 믿어요. 어차피 내가 할 때까지 하는 거니까요.
정한: 그러면 농성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선동: 입맛이 없었어요. 바다에 사는 것들을 좋아하는데 생각도 안 났지. 농성을 하니 입맛이 없어지더라구요. 장애인이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서울시 보증금 사업이 되었지만, 장애인이라고 하면 집구경을 아예 하러도 오지 말라고 하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집도 많고요. 여튼 밥을 잘 못 먹었어요. 야학 사람들이 나갔다 오면 들어올 때 빵이랑 이것저것 챙겨와서 주기도 하고 같이 나눠도 먹고 했어요.
Q6. 말씀처럼 쉽지 않은 일인데, 조선동님이 영화에도 나왔듯이 고집이 정말 세시지만 그래도 조율하거나 타협하거나 하려고도 하셨을 것 같아요. 실제로 그렇게 한 부분이 있나요?
명희: 조율은 잘 안 되었고요. 선동 님이라는 분이 지역 사회에 다시 돌아왔을 때, 서울시 전세 자금 대출 금액 정도로는 종로구가 아니라 성북구, 거기만 가도 훨씬 더 살 수 있는 선택지들이 많이 있었어요. 서울시도 왜 꼭 종로구에만 살려고 하냐고 했어요. 근데 노들야학이 했던 말은, “조선동님이 원하니까요”. 저도 선동 님이 종로구에 살 수 있을까? 정말 이게 될까? 생각했던 것들인데요. 이 사람은 정말 내가 가야 한다고 하니까요. 서로가 서로를 잡아주지 않았을까 합니다. 타협은 없었습니다.
Q7. 그러면 노들야학에서 같이 싸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명희: 선동님이 2월달에 결심이 서면서 3월에 노들야학에 오셨는데, 아니, 거리에 등장을 하셨는데요. 정부 청사 앞에 쏠라티 차량을 대놓고 거기서 주무시면서 농성을 시작하셨어요. 제일 힘들었던 건 경기에서 서울로 오시면서 지역 자체가 달라졌잖아요. 활동지원사를 새로 구해야 하는데, 농성까지 같이할 활동지원사 분을 구하는 게 일단 어려웠어요. 씻는 것도, 활동가들이 서로 집을 내어주면서 씻기도 했었고요. 구호와 의제도 그렇지만 사람의 일상, 먹고 씻고 자고 이런 것들을 지켜내는 게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규식: 또 누가 조선동같이 나오겠다고 하면 또 그렇게 싸울 건가요?
명희: 이 투쟁이라는 건, 예측할 순 없다, 계획할 수 없다는 데 있죠. 그런 상황이 발생을 한다면, (잠시 멈춤)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2의 조선동들을요. '지금 마음먹기까지 하지는 않겠다'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규식: 나도 똑같아요. 근데 조선동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 싸웠잖아요.
명희: 조선동독립투쟁단이라는 이름도 재밌잖아요. 이 번개처럼 들이닥친 투쟁이요. 조선동님에게 이기적이라고들 하죠. "비장애인도 살기 힘든 종로구에 장애인이 살겠다는 건 억지 아냐?" 이런 말들. 제가 참 답답했던 게, 한번은 시청 앞에 1인 시위를 하러 조선동님이랑 같이 갔는데 공무원이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비장애인 꾐에 이 장애인이 이용되는 거 아니냐고. 그때 진짜 억울했어요. 이 날벼락 같은 투쟁 때문에 우리도 이 추운 데 나와서 시위하는데. 억울해 죽겠단 말이 목구멍까지 나올 뻔했지만, 저는 이러한 개인 안의 욕구들, 중증장애인이라고 해서, 소수자라고 해서 내 개인의 어떤 의제들이나 욕구들을 참아야지라고 하는 것들을 시원하게 발설하셨다는 생각이 들고요. 지금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이 작년에 이 개인의 욕구를 의제로 만들어주고 구호로 만들어줘서 활동 보조 24시간을 요구하는 의미 있는 투쟁으로 연결해준 동지들이자 동료들이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Q8. 황나라 감독님은 촬영하시면서 어떤 점을 느끼셨는지?
나라: 선동 님이 좋아하신 거 저는 찍기만 했다고 생각하고요. 느낀 점은 조은별 국장님의 인터뷰에서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진부한 말이지만 저는 선동님 보면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게 노들을 움직이는 하나의 투쟁이 돼버렸으니까. 그게 참 신기하고 소름끼친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한: 차기작이나 다음 영화제에서 만날 기회가 있을까요?
나라: 계속 다큐멘터리 만들고 싶고 장애운동도 계속 기록하고 싶고, 근데 다음에 만들 건 다른 장르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방금 저기 노들야학 이홍기 학생이 자기 일대기?를 찍어달라고 해서 이슈를 만들어오라고 했는데 자기 글 쓰는 거 찍어달라고 해서 저는 재밌는 것만 찍기 때문에 고민을 좀 해보겠습니다.
정한: 이건 홍기 님에게 달린 일이겠네요. 홍기님 재밌는 투쟁 하실 건가요?
홍기: (저 뒤에서) 응!
Q9. 그건 제가 한번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조선동이 이제 종로에 자리를 딱 잡았잖아요. 아주 편하게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고 하고 있는데, 그 조선동이 배신을 할까요, 안 할까요? 그러니까, 투쟁판에 나올 건가요, 안 나올 건가요?
선동: 응 (나올게)
Q 10. 이것도 제가 잘 지켜보겠습니다. 한명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겠습니다. 조선동은 배신을 할 거 같나요, 안 할 거 같나요?
명희: 선동님이 집회를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고. 자기 마음일 거라 생각하고요. 그런데 조선동이 투쟁을 안 하는 게 배신일까요? 작년에 벼락처럼 떨어진 조선동이지만, 선동이형이 어디에 있든 동료가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걸 가르쳐주기도 했고요. 계속 현장에 있으면 좋겠긴 하지만요. 마침 선동이형도 같이 하겠다고 하니까 더할 나위 없죠. 제가 재밌어 하는 걸 선동이형도 재밌다고 하니까.
관객 질문
진석: 조선동님한테 묻겠어요. 조선동은 종로구가 굉장히 좋은데, 종로구에서 구경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어디예요? 인사동? 광화문?
선동: 마로니에공원
경석: 조선동에게 건강은 좀 어떠신지? 행복하십니까?
선동: (건강은 괜찮으신지) 응 (행복하신지) 아니
명희: 왜 안 행복하세요?
선동: 지금은 안 행복하고, 말하기엔 길다
경석: 나중에 술 한잔해요.
선동: 응
경석: 술 사주셔야 해요.
선동: 응
규식: 마지막으로 질문이 어려울 수 있겠는데요, 조선동이 오랫동안 싸웠잖아요. 소감을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선동: 길에서 자는 것이 쉬운경험은 아니잖아요. 농성을 하면서 좋은것도 힘든 것도 다 많았네요. 그리고 경기도 에서 서울시로 이사왔다고 활동보조 시간이 깎였는데, 활동보조 투쟁을 하니 또 시간이 늘었죠. 그리고 다른 이야기로 여튼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줘서, 영화제 포스터에 내 얼굴도 나온 게 재밌어요. 지금도 여기 곳곳에 제 얼굴이 있잖아요.
규식: 이것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겠습니다. 모두 큰 박수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