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대화-마이너리메이저리티 트래블-10년의 검증

기억과 대화-마이너리메이저리티 트래블-10년의 검증 | 2016 | 다큐 | 61분 | 일본 | 연출 사사키 마코토



 

시놉시스


누군가가 누군가를 ‘장애인'이라고 부를 때, 거기에는 선이 그어져 있다. 하지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장애인'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정상인’일까. 그 선은 누가 그었을까?

창작유닛‘마이너-메이저 투어'는 2005년부터 2006년에 걸쳐 <도쿄 경계선 기행>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신의 소수자성으로 '장애’를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들과 공연을 만들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16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도쿄 경계선 기행>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상을 더듬는 다큐멘터리이다. 다양성과 사회적 포용,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s) 등을 소리높여 외치는 시대에 메이저리티(다수파)의 마이너리티(소수파) 착취와 배제가 오히려 확산되고 있는 일본. 일본 국내 각지에서 상영한 바 있는 이 영화는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질문을 공유하고 서로의 말을 엮으며 각각의 문맥을 참조하고 지금 시대에서의 ‘장애’와 ‘정상’의 경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여행’을 시도한다.




인권평


-서한영교(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우리가 했던 건 뭐였던 걸까요? 그걸 해서 뭐가 변했나요?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을 쫓는다. 장애/비장애, 정상/비정상, 주류/비주류를 구분하는 ’경계선'을 넘나들며 <도쿄 경계선 기행> 프로젝트를 10년 전 함께 진행했던 관련자들을 만나가며 질문한다. 10년의 시차 속에서 영화는 현재-인터뷰와 과거-퍼포먼스 과정을 나란히 교차하며 엮는다.

 

흐무러지는 경계

영화는 "경계선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정상성의 배치를 두드리며 시작한다. <도쿄 경계선 기행> 프로젝트를 시작한 작곡가 모미야마는 “스스로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딘가에 선을 긋고, 나는 이쪽. 저쪽은 장애인, 그런 식으로 나누는 것 같”다고 말한다. 모미야마는 경계선 바깥의 불구인 몸, 트랜스한 몸, 퀴어한 몸들과 함께 정상성의 배치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드러내고자 퍼포먼스 작품을 준비한다.

영화는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을 기록하며 정상⌇비정상의 경계선을 허물어트리는 방식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어느 샌가” 정상≀비정상 경계선이 흐무러지는 순간순간들을 기록한다. “모두 함께 깊은 호흡으로 천천히 천천히 이야기를 듣고”, 안전하게 약속된 공동체의 시간을 보내고, 진심을 다해 싸우고, 함께 여행을 다니고, 음악을 듣고, 북을 두드리며 서로의 “경계선 근처를 계속 왔다갔다” 한다. 그 과정에서 ‘어쩌다보니 어느 샌가’ “나와 다른 사람 사이의 경계선이 사라지”기도 하고, “서로를 엄청 잘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서로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달까. 다들 함께 흥이 오른 것 같달까. 같이 걷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어느 샌가 피부 아래로 스며든다. 경계선이 서서히 흐무러지고, 흐려지며 “시야에 들어있지 않았던” 다양하게 교차하는 소수성을 향한 “시야가 넓어”지고, 다양한 소수성의 “세계를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세계에서 뭔가 확장되는 것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도쿄 경계선 기행> 프로젝트 멤버들의 현재-인터뷰들이 겹쳐진다. 과거와 현재는 흐무러진 경계 사이로 이어져 점점 두꺼워져간다. 자신들의 마이너티를 숨기고 억압하지 않아도 되는 배치 안에서 저마다의 해방된 느낌을 누리며 “여러 사람의 인생이 달라졌다”.

 

과거미래시제

하지만 영화 곳곳에는 10년 동안 ‘여전히’ 장애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없는 것 같다는 한탄과, 10년 동안 ‘여전히’ 별 고민 없이 장애를 재현하는 작품들 마주하며 한숨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영화는 단순히 개인의 변화를 회고하는 후일담에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현재적인 장애/비장애, 정상/비정상, 주류/비주류를 구분 짓는 ‘경계선’에 맞서 감히, 소수자-되기를 감행했던 <도쿄 경계선 기행> 프로젝트에 10주년이라는 기념비를 세운다. 어쩌면 잊혀질 수 있었던 10년 전의 기억을 과거-미래시제로 기념(commemorate)한다는 것. 그것은 함께-기억(com-memorate)하자는 것. 기억(remember)하자는 것. 그것은 다시-멤버(re-member)가 되자는 것이다. 영화는 도전받지 않는 정상성의 배치를 향해 감히, 떠나보는 <도쿄 경계선 기행>의 멤버로 오늘날 다시 우리를 응답의 세계로 초대한다.

감독이 쫓아다니던 질문에 대한 마지막 응답은 “그러니까, 모르겠어요”다. 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이야기를 서둘러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감독은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경계선을 향한 질문을 끝내지 않을 작정인 것이다. 모르겠다는 건 이야기를 계속하게 하는 힘이 된다. 이제 응답의 몫은 스크린 밖으로 이어진다.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도대체 변혁은 이토록 쟁취하기 어려운가? 경계를 가르는 지배 권력은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누가 어디서 경계선을 끊임없이 그어대는가? 응답을 위한 실천은 이야기 속에 있지 이론 속에 있지 않다. ‘인권’평의 마무리는 영화 속 한 이야기로 전할까 한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비장애인 멤버가 “휠체어를 한번 타보고 싶어요”라고 휠체어 이용 장애인 EL에게 말한다. EL은 이렇게 응답한다. “단순히 좀 타보고 싶은”거라면 “의미가 없어요”. 단지 신체적인 부자유를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경계성이라는 걸 이해하려고 하는 거라면 철저하게 꼬박 하루 동안 똥구멍에서 (휠체어를) 떼지 않겠다, 방석에서 (몸을) 떼지 않겠다는 정도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 어쩌면 이 이야기 속에서 어떤 진실한 응답이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길게 생각했다.




제작진 소개


연출사사키 마코토기획
제작마이너리메이저리티 트래블 실행위원회각본
촬영
편집
녹음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