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

원더 | 2024 | 극 | 28분 50초 | 연출 신재



 

시놉시스


성준은 소설 쓰기를 그만둔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동창 댄이 불쑥 성준을 찾아오고, 평온한 성준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인권평


나는 너의 이야기가 궁금해

-장호경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

댄은 소설가 지망생이다. 최근 새로운 작업에 들어간 댄. 이번 작업의 주인공은 언어장애가 있어 문자로 소통하는 장애인이다. 아직 기획 단계에 머물러 있는 작업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듣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사람들은 문자로 소통한다는 점에 흥미를 느낀다. 댄이 떠올린 주인공은 사실 대학시절 친구인 성준이다. 성준 또한 여러 번의 수상 경력도 있는 촉망받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소설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간다.

 

한편 댄은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돌입한다. 장애인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보다 성준을 떠올리고, 취재 겸 오랜만에 그를 찾아간다. 컴퓨터를 앞에 놓고 술 한 잔 하며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댄은 성준이 대학 시절에 쓴 소설 ‘원더’를 좀 보여달라 요청한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소설을 꺼내보는 성준.

“그 땐 쓰는 것도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즐거웠는데...”

댄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성준에게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유를 설명하는 성준. 댄은 성준이 글을 쓰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다. 성준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인물을 등장시킨 첫 소설이었는데 완성시키지 못했다며, 내 감정도 쓰다보면 미지근해지는데 다른 인물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묘사하지 못하고 그럴싸한 거짓말만 하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이야기한다. 다음 날, 성준의 집에서 잔 댄은 비어있는 성준의 집을 둘러본다. 상자 안에 담겨 있는 성준의 상장들과 트로피, 그리고 그 옆에는 파스가 있다.

 

다시 합평 자리. 댄은 성준과 있었던 그 날의 일을 소설로 썼다. 솔직하고 정확한 글쓰기라는 고민, 문자로 한 글자, 한 글자씩 쓰는 성준에 대한 묘사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 소설을 좀 더 진전시키기 위해 아예 성준의 집으로 들어가는 댄. 댄과 성준의 동거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소설 쓰기를 그만 둔 성준, 두 번째는 성준이 모티브가 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완성시켜야 하는 댄, 그리고 세 번째는 두 사람의 만남이 가져다주는 변화이다.

 

성준은 왜 소설 쓰기를 그만두었나. 성준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파스까지 붙여 가며 어렵게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가야하는 육체적 한계도 느꼈을 것이다. 상장, 트로피와 함께 상자 안에 유폐시켜 놓은 파스는 성준의 이런 마음을 느끼게 해준다. 반면 이런 성준의 상황은 장애 때문에 갖는 어려움이긴 하지만 마치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다’라고 표현되는 글쓰기의 어려움, 글쓰기의 진정성 같은 것들에 대한 비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댄은 성준과 비교된다. 댄은 성준과의 대화에서 솔직하고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관찰해야 쓸 수 있는 글’을 쓴다고 칭찬한다. 댄은 주인공으로 상정된 성준을 관찰하고, 주인공으로서 개연성을 지닌 성준을 읽어내고자 한다. 솔직하고 정확한 글쓰기란 고민을 갖고 있는 성준은 발견하지만 내가 어떻게 솔직하고 정확한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성준의 ‘원더’가 완성되어야 댄의 소설도 완성된다. 이렇게 다른 지점에서 소설을 쓰는 두 사람은 며칠간의 동거를 통해 변화를 겪게 된다. 서로를 바라보며 각자 자신에게 다른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 안의 이야기도 좋지만 영화 밖의 이야기도 좋다. 장애인 당사자를 소재로 하는 콘텐츠들이 어떤 관점에서 당사자를 다뤄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진다. 이는 댄을 통해 투영되는데 당사자를 잘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훌륭하지만 관찰에서만 그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많은 콘텐츠들에서 장애는 (흔히 대상화라 표현되는) 장애 당사자의 서사가 중심이 아닌 주변적 소재로서 등장하고, 어떤 현상을 (대개는 결핍과 관계의 문제) 은유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되곤 한다. 장애와 당사자를 잘 관찰하고 그의 신체가 움직이는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그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어떻게 당사자의 생각과 태도와 일상을 변화시키는지를 읽어낼 필요가 있다. 자기 표현이 어려운 발달장애인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이나 비언어적 표현들에 대해 오랜 시간 관찰하고, 표현의 의미를 알아내는 적중률을 높이는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장애인 당사자와 관계를 맺을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 면에서 댄이 글을 쓰기 위해 성준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자신이 쓰던 소설을 휴지통에 넣는 장면은 통쾌하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장점은 비장애인 뿐만이 아니라 장애인도 변화한다는 점이다. 댄의 끈질긴 질문과 글에 대한 집요함은 잠자고 있던 성준의 글에 대한 욕망도 일깨운다. 다시 파스를 붙이며 밤새 글을 쓰는 성준의 모습은, 수혜자로서 대상으로서 주로 묘사되던 장애인 캐릭터를 뒤집는다. 섬처럼 자신의 질곡 속에 갇혀 있던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관계를 통해 변화하고, 새로운 지향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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