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네 옆에 있어
지금 네 옆에 있어 | 2023 | 다큐 | 26분 46초 | 연출 여인서
시놉시스
발달장애 청년들과 비장애 예술가들이 모여 연극을 만들기로 한다. 포유류 동물들을 좋아하는 청년 ‘냐옹이’가 쓴 이야기에 살이 붙고, 피아노를 좋아하는 청년 ‘피아노’의 연주로 연극이 풍성해진다. ‘차니’, ‘혜정’, ‘마카롱’ 역시 주인공이 된다. 그런데 연극 만드는 과정이 썩 순탄치 않다. 냐옹이는 대본이 자꾸만 수정되는 상황이 못마땅하고, 연극을 총괄하는 비장애 예술가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통 방식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열 번의 워크샵과 두 번의 공연을 통해 연극 <메마른 땅 위의 동물왕국>은 완성될 수 있을까?
인권평
-이정한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연기’를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닌 무언가를 ‘가짜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배우는 숨기는 게 없어야 연기를 잘할 수 있다. 연기는 있는 그대로를 표현함으로써 완성된다는 격언처럼 냐옹이와 피아노와 혜정은 극을 만들어 보인다. 배우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연극을 완성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메마른 땅 위의 동물왕국>은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냄으로써 완성한다. 그러므로 연기는 고유성으로 완성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나는 나다’라는 극 중 노래의 가사처럼, <메마른 땅 위의 동물왕국>은 각자의 정체성을 열렬히 드러내는 것이 곧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길임을 잘 보여 준다. 우리는 연극이 아니라 그 연극의 제작 과정을 다큐로 보지만, 이 연극이 얼마나 값진 작품인지를 충분히 체험할 수 있다.
한편, 다큐멘터리 <지금 네 옆에 있어>는 있는 그대로가 아닌 무언가의 관점 속에 만들어진다. 연기에 대한 앞선 격언을 비틀어 생각하자면, 좋은 다큐멘터리는 어떤 기획과 의도 속에서 완성된다. 의도된 기획으로 만들어진 서사라고 결코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 <지금 네 옆에 있어>를 보며 각자가 느끼는 조마조마함들이 있다. 마이크를 빼앗거나 사과를 쉽게 받아주지 않는 모습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 예상 못 한 대답에서 다가오는 당혹과 생각 못 한 행동에 느끼는 반가움은 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공간-내 가족-내 동료들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다큐멘터리는 고유해 보이는 인물들을 보여 주지만 사실은 이 인물들의 이야기가 보편적 서사임을 알린다. 개별성 위에 자리한 보편성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저 먼 곳의 ‘A 씨’와 ‘B 씨’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와 ‘나’의 이야기로 변모하고, 나와 가족과 친구와 노동자의 이야기로 변모한다. 그래서 이들은 말한다.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고 이야기를 만들며, ‘나는 지금 네 옆에 있어’라고.
한편 아령의 비중이 다소 커 보이는 것은 조심스럽다. 자칫 잘못하면 무게중심이 비장애인으로 쏠릴까 걱정이 있다. “I won't give up, no, I won't give in.”의 화자가 우리 모두가 아니라 아령 개인의 말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 다짐의 말이 분투하며 살아가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그 동료들이 아니라 조력인만의 말이 되면 구도는 전혀 달라진다. 이런 여지는 아령이 연극에 깊이 참여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조력자로서 그만의 분투가 분명 있었을 것이기에, ‘주변인의 고생’으로 오인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데, 오히려 배우이자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온전하게 드러나며, 주변인은 그저 주변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모두의 탄탄한 배역으로 엮인 이 다큐를 보다 보면, 이것이 다루는 이야기가 특정한 누군가의 것이 아니라 극을 만들어가는 모두의 것이며, 또한 이를 통해 감정을 나누는 모든 관객의 것임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다. <지금 네 옆에 있어>의 조곤조곤함이 오히려 우리를 떠안는 넉넉함인 셈이다.
제작진 소개
연출 | 여인서 | 기획 | 발달장애인청년허브 사부작 |
제작 | 슈풍크 | 각본 | |
촬영 | 박현영 외 | 편집 | 여인서 |
녹음 | 정수인 외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