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로부터
소희로부터 | 2023 | 극 | 29분 17초 | 연출 정창영
시놉시스
소희는 인턴사원 지윤을 만나게 된다. 지윤은 생애 첫 직장생활에 설렘이 가득하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시간, 티타임을 망설이는 지윤. 소희는 그런 지윤의 행동이 궁금해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소희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장애인의 삶과 장애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뒤늦게 깨달으며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인권평
배려가 아닌 권리의 시선으로부터
-홍성훈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어느 시인의 말처럼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또 하나의 우주가 굴러들어 오는 일과 같다. 우리는 그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의 우주’가 너무 넓은 나머지 ‘나의 우주’가 돌이킬 수 없이 바뀌는 일도 종종 생긴다. 그를 통해 내가 변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지킬 것인가? 판단은 각자의 몫에 달려 있다.
영화 <소희로부터>는 비장애인인 소희가 직장에 인턴사원으로 들어온 지윤을 통해 알지 못했던 세계의 조각들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지윤은 휠체어를 탄 장애여성이다. 지윤이 출근하기 하루 전날, 직장동료들은 지윤의 이야기를 나눈다. 지윤의 이야기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은 그의 ‘장애’다. 동료들은 혹시나 장애로 인해 지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소희는 미리 판단을 내리지 말자고 한다. 다음날 제일 먼저 지윤이 사무실에 출근하고, 미리 책상 정리를 마친다. 소희는 지윤과 인사를 하며 자신이 한 달 동안 사수를 맡게 되었다고 말하고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뭐든 물어보라고 한다. 지윤은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고 주어진 업무를 곧잘 한다.
이렇듯 사수로서의 소희와 인턴인 지윤은 서로 잘 맞는 듯하지만 묘하게 어긋나는 부분도 있다. 이를테면 소희가 지윤에게 티타임을 제안하지만, 지윤이 거절하거나,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점심식사 자리를 제안해도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꺼내며 식당에 다녀오라고 말한다. 상냥하지만 어딘가 뼈 있는 거절을 받은 듯한 소희는 자신의 어떤 면이 지윤에게 불편한 지점으로 다가오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소희는 지윤에게 정면으로 묻는다. 자신이 불편하냐고. 지윤은 그런 건 아니라고 답하지만 어쩐지 할말을 다 하지 못한 사람처럼 표정을 짓는다. 소희는 이때다 싶어 지윤에게 그러면 다음 날 같이 점심을 먹자고 제안하고 지윤은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어 제안을 받아들인다.
다음날 지윤과 점심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선 소희는 자신이 알던 세계가 조금씩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자주 가던 식당에 예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턱이 있었고, 휠체어가 갈 만한 곳은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더군다나 겨우 두 사람이 들어간 식당에서는 전동휠체어를 탄 지윤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민들과 마주해야 했다. 식사 후 편의점에 앉아 같이 커피를 마시던 소희가 지윤에게 화가 나지 않냐고 묻는다. 지윤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라고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짓는데, 이어지는 화면에는 지윤이 마주한 물리적인 턱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턱’들, 예를 들면 지윤이 일을 구하는 과정에서 들었던 장애인을 향한 수많은 차별과 편견 섞인 말들이 나온다. 그 말을 들은 지윤은 어느샌가 비장애인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자’라고 마음먹었고, 그 마음이 지윤이 소희에게 ‘선을 긋는 태도’로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소희는 알게 된 지윤의 세계로부터 도망치지 않기로 한다. 지윤과 함께 회사 주변을 돌아본 소희의 눈에는 전에 보이지 않았던 ‘턱’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한다. 소희는 혼자 길거리를 가는 동안에도 턱 앞에서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거나, 턱을 오르고 내려가면서 단차를 넘을 수 없는 지윤을 생각한다. 그제야 묘하게 어긋나 보였던 지윤의 세계가 이어진다. 소희는 먼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행동한다. 그 첫 번째는 회사 내 탕비실에 있는 티백이나 커피 스틱들을 지윤의 손에 닿는 위치로 옮겨놓는 일이다. 지윤은 이제 본인도 차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환하게 웃고, 소희와 지윤이 차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의 제목 ‘소희로부터’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어쩌면 감독은 배려의 시선으로만 지은을 바라보았던 소희가 ‘함께 살 권리’를 가진 동료로서, 지은의 옆에 서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을까? 장애인이 동료 시민으로 거듭나는 것은 ‘권리’를 말하기 시작한 순간 이후의 일이니까 말이다.
제작진 소개
연출 | 정창영 | 기획 |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
제작 |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 각본 | 송승연 |
촬영 | 옥천마을미디어사회적협동조합 | 편집 | 옥천마을미디어사회적협동조합 |
녹음 | 옥천마을미디어사회적협동조합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