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으로 본 한국 수용시설의 역사

형제복지원으로 본 한국 수용시설의 역사 | 2023 | 다큐 | 24분 58초 | 연출 민아영, 장호경




시놉시스


부산 기장군의 한 산 중턱에 있는 중증장애인요양시설 실로암의 집.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흉가 체험을 하는 곳으로 유명한 이곳은 형제복지원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형제복지원은 한국 사회 대표적인 부랑인 강제수용소였다. 1960년도에 형제육아원으로 시작한 형제복지원은 사회복지랄 것이 전무하던 시절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정부로부터는 지원을, 사회로부터는 후원을, 원생들에게는 착취, 폭력, 수용을 행했던 과거 사회복지사업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과거 유신시절 발효된 ‘내무부 훈령 410호’에 의해 부랑인이라 불리던 사회복지지원이 필요한 빈민, 장애인들을 강제수용한다. 뿐만 아니라 정권 유지에 필요한 ‘사회 불안요소’를 거리에서 치우는 역할까지 자처한다.

이 영상은 형제복지원의 역사를 통해 아직 사회복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던 시절부터 자신들의 힘을 키워왔던 한국사회 사회복지법인의 운영구조, 장애인 수용정책의 뿌리를 찾아간다.




인권평


-최한별 (22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나의 엄마는 80년대 후반까지 부산에서 살았다. “어른들이 부산역 근처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그러다 누가 납치해 간다고 엄청 겁을 줬었어. 난 그게 도시 괴담 같은 건 줄 알았더니, 형제복지원이라고, 진짜 있는 얘기더라. 어쩜 같은 동네 살면서도 까맣게 몰랐을까, 저 끔찍한 데를.” 텔레비전에서 형제복지원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엄마는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정말 놀랍고, 정말 의아하다는 듯 말한다.

 

형제복지원은 왜 안개 같았을까. 잡혀 온 사람들이 손수 깎은 산 위에 또 손수 구운 벽돌로 쌓았다는 벽, 족히 수만 명이 거쳐 갔다는 그 엄청난 벽은 어떻게 그렇게 사회로부터 감쪽같이 존재감을 감출 수 있었을까. 형제복지원의 벽은 201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허물어졌다. 기나긴 시간 끝에 드디어 그 벽이 해체되었으므로, 이제는 형제복지원이 진짜 허물어졌다고 생각한 건 우리의 오만이거나 여전한 무관심이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한종선이 떠나온 벽 너머에 여전히 문석영이 있었으므로.

 

그 벽은 형제복지원과 동시대, 같은 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춘 곳이었고, 반대로 문석영의 그룹홈 선생님의 방과 거주인들의 방을 가르는, 그래서 문석영이 같은 지붕 아래 있어도 ‘방’이라고 인식조차 못하게 만든 가름선이었다. 그 벽은 ‘건전한 국민’과 ‘모자란 존재’를 나눈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저 너머는 나와 상관없어. 나는 갈 일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반대편에서는 ‘저 너머는 내가 감히 넘볼 수 없는 곳이야’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 벽을 부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워서, 심지어 ‘그’ 형제복지원의 벽도 20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부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싶어진다. 애초에 그 벽을 부술 필요가 있는지 되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스크린 밖에서 이어지는 한종선과 문석영의 활동을 보면서 우리는 어쩌면 그 어려워 보이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것이 ‘모자란 존재’로 여겨진 사람들이 벽 바깥의 세상을 무려 용서하고 사랑하기에 가능해질 것이라는 걸 배워간다.

 

다시는 제2의 형제복지원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소명 의식으로 한종선은 떠올리기도 고통스러운 참상을 12년째 작은 모형으로 재현하고 있고(“표현 못할 참혹함을 ‘모형’으로…집념이 쌓아 올린 ‘지옥의 디테일’”, 한겨레, 2024.3.3.), 문석영은 “미래의 아기 장애인들이 시설에 가지 않고 가족이랑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사회를 깊은 곳부터 바꾸기 위한 활동을 힘차게 이어가고 있다. 자신의 고통을 방치했던 사회, 나아가 벽을 둘러 적극적으로 외면까지 했던 사회를 향한 이들의 사랑은 그렇게 벽을 흔들고 있다.




제작진 소개


연출장호경기획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제작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각본
촬영장호경, 민아영편집장호경
녹음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