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브@8PM

무브@8PM | 2022 | 다큐 | 01:24:00 | 연출 정가원 | 기획 연분홍치마 | 제작 연분홍치마
시놉시스
문워크를 좋아하는 보안 검색 감독관 이안, 돌처럼 단단하게 춤추는 이공계 대학원생 돌, 비보잉을 잘하는 장애인 인권 운동가 김유스. 성격도 직업도 너무 다른 퀴어들이 춤을 추기
위해 한 팀이 된다.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세상과 얼굴을 드러내야 하는 무대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춤을 추는 퀴어 댄스 팀 큐캔디. 어느 날 큐캔디에게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친다.
과연 우리, 다시 춤출 수 있을까?
인권평
무브@8PM
-이정한(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위원)
출연진의 뻔뻔함 때문에 왜 내가 부끄러워져야 하는가? 오프닝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출 섞은 오프닝에서, 뻔뻔함과 어색함을 섞은 듯한 표정을 보며 괜시리 내 시선을 돌렸다. 영화를 보기 전 내가 아는 정보라곤 러닝타임뿐. 80분이 넘는 동안 나는 이 뻔뻔함을 떠안고 봐야 하는 걸까? 불안함으로 손톱을 뜯을 수밖에 없었다.
기타를 치고 춤을 추는 게 여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함이었다며 자신의 ‘셀링 포인트’를 슬며시 말하는 팔짱 낀 이안을 보면서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 뻔뻔하다. 왜 이안의 이름은 이안인가? 이뻔뻔이었어야 하지 않았는가?
60대의 감성을 가졌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의 이름은 유스(youth). 킹받네... 피식 웃음이 나와 자존심이 조금 상했다. ‘돌: 이공계 박사 과정’이라는 자막에선, 물론 웃음을 노린 게 아니겠지만 또 웃음이 나왔다. 왜 나는 이들의 뻔뻔함을 보며 웃어야 하는가. 팀 이름도 큐캔디라니, 너무 뻔뻔하게 귀여움을 드러낸달까... 그리고 왜 그냥 블러 처리를 하는 게 아니라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는 건데?
‘무브@8PM'은 뻔뻔함에 대한 기록이렷다. 조금 표현을 바꾸자면, 이것은 ‘당당함’이 어떻게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지를 그리는 기록이다. 평범한 고통 속에서 발휘되는 특별한 힘에 대한 기록. 삶 속에서 겪은 각자의 고유한 상처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소수자로서 겪는 보편적 사례다. 한편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거리 두기 사회는 전 지구적이었지만 그 시간에 대처하는 방식은 무수히 다양했다. 이안은 직장을 잃었고 돌은 논문을 썼으며 유스는 가혹한 활동을 헤쳐야 했다. 이처럼 각자의 색깔로 살아가는 이들은 그 고유의 색으로 새로운 만남을 완성한다.
발달장애인과 성소수자의 만남. 사회의 체계와 분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오빠’라 부르기도, 또 ‘언니’라든가 자기 마음대로 부르는 발달장애인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의 끼를 털어 내는 성소수자들. 이날을 위해 큐캔디가 존재했던 건 아닐까? 큐캔디가 늘 있었던 곳은 쫓겨나는 이들의 자리, 혹은 경계 바깥으로 내쳐지는 이들의 곁이었다. 경계선을 긋고 그 밖으로 내쫓기는 사람들과 함께, 또한 바로 그 바깥으로 이미 내쳐지곤 하던 큐캔디가 경계를 넘나들며 오래간 활동을 이어 왔다. 활동이라 말하는 게 옳다. 취미생활일 수도, 동호회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건 활동이고 운동이다. 돌의 표현대로, 흑백의 삶 속에서 컬러풀해지는 시공간이 탄생한다면 말이다. 그 춤이 사회의 규범을 교란시키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면 그것은 혁명의 시도라 말해져야 한다. 나의 이런 뻔뻔한 주장도 이해해 주길.
이안은 말한다. ‘전광판에는 내 모습이 크게 나올 수도 있어. 근데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아.’ 그래서 이안의 춤은 해방적이고, 큐캔디의 서사와 각자의 서사를 차례로 짚어 나갈 때, 이것은 이안과 돌과 유스 세 명에 대한 개인사이기도 하지만 또한 한 공동체의 서사이며, 나아가 이는 성소수자 운동의 기록이다. 고통스럽고 보편적이었던 평범한 사건들을 겪었으며, 고유하면서 특수한 활동을 이어 왔고, 그 활동의 자리는 언제나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를 스쳤기에 이것은 2010년대의 성소수자에 대한 반동적 공격에 맞서는 유려한 기록이다.
오후 여덟 시면 당연하게 이뤄지던 그들의 몸짓은 몸의 움직임인 동시에 사회를 바꾸는 변화의 운동이다. 그래서 ‘우리 자체로 정치적인 존재’라는 김유스의 말은 옳다. 오후 여덟 시에 시작되는 두 번째 삶은 여덟 시 전까지의 삶의 온도와는 다르지만, 분명 같은 존재가 같은 힘으로 세상을 살아 내고 있다.
제작진 소개
연출 | 정가원 | 기획 | 연분홍치마 |
제작 | 연분홍치마 | 각본 | |
촬영 | 오지수 | 편집 | 정가원 |
녹음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