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

질주 | 2022 | 극 | 00:20:00 | 연출 임지혜 | 기획 가온장애인자립생활센터 | 제작 온플릭스



 

시놉시스


불의의 사고로 후천적 장애인이 된 혜민은 사회와 단절되어 혼자 집에서 지낸다. 생활비로 쓰는 대출금은 늘어나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력한 삶을 계속 보내던 어느 날, 빚처럼 쌓인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경제활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해보고 싶은 혜민은 취업사이트에 이력서를 넣지만 계속해서 취업에 실패하고 그렇게 자신을 받아주는 배달라이더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혜민에게 배달보다 힘든 상황을 거리에서 계속 마주하게 된다. 사장님은 다른 라이더들은 거부하는 소위 '똥콜'을 혜민에게 맡기고 업체에서 자신을 대우하는 처우조차 좋지 않다. 장애인에게 불편한 거리를 지나가며 생존을 위해 위태로운 배달 일을 하는 혜민은 장애인에게 불편한 사회의 장애물을 가로질러 질주하고 싶다.




인권평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위원 )


영화 ‘질주’는 혼자 사는 장애여성이 생활비와 대출금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 혜민은 혼자 살며 사회와 단절된 채 집에서 고립되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대출금이 점점 쌓이고 부족한 생활비가 감당되지 않자 경제활동을 하기로 한다. 그러나 취업 알선해 주는 곳에선 ‘장애인’이라는 말만 하면 무시하고 상대조차 해주지 않으려 했다. 혜민은 낙담하며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전봇대에 붙여진 배달 아르바이트 전단을 보고 배달 일에 뛰어든다.

사실 배달 아르바이트는 장애인 동료들 사이에서 한 번쯤 나눠 보았을 듯한 이야기이다. 나 역시 동료들과 전동휠체어 타고 배달하면 누구보다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지인들과 농담 삼아 나눴던 이야기가 이렇게 영화로 제작된 걸 보니 다른 장애인도 상상하고 있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지인들과 만약 배달 일을 하게 된다면 여러 어려움에 대해 말했었는데 영화 ‘질주’에서도 휠체어 탄 장애여성이 배달 일을 하게 되면서 겪는 사회적 편견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장애를 가진 배달원이 일을 잘하지 못할 것이란 끊임없는 의심의 말과 시선을 보내는 업체 사장, 의심 속에 배달하러 간 혜민은 대중교통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배달을 수행하지 못하고 배달 업체로 결국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끝내 사장은 입속에 감춰 놨던 모욕 말들을 쏟아냈다. 또한, 조금의 불편함도 겪고 싶지 않은 비장애 중심의 사회에서 휠체어를 탄 배달원이 배달 음식을 전달하려고 하자 고객은 한숨과 짜증이 툭 튀어나온다. 마치 장애를 가진 당신에게 조금의 수고로움(문을 열고 나와 몇 발짝 이동하여 뒤 가방에 있는 배달 음식을 꺼내 가는 행위)도 허용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 장면에서 나는 매일 아침 지하철 행동 혹은 선전전에 향한 냉랭한 일부 시민과 정부 관계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당신(장애인)들로 하여금 조금의 불편함도 겪고 싶지 않으며, 1분의 시간도 내어줄 수 없다’라는 말이 영화 속 화면과 겹치는 것만 같았다.

예컨대 영화 속에 다양한 장애 유형의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스칠 듯 나온다. 비장애 중심 사회는 장애인은 없는 존재로 여겨왔다. 이에 대해 반기를 드는 듯 일상 곳곳에 다양한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배달 이용 고객으로 나오는 청각장애인의 등장은 장애인 내부에서도 서로의 장애에 대한 존재의 상상력이 부족함을 꼬집는다. 주인공 혜민은 배달 장소에 도착했지만, 문 앞까지 나온 고객은 혜민을 본체만체하며 배달 음식도 받아 가지 않은 채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배달 음식을 그대로 들고 배달 보냈던 카페로 돌아온 혜민은 사장에게 배달을 못 한 이유를 설명하자 사장은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그러나 통화 연결이 됐는데도 아무 말 없이 끊어진다. 이후 카페 문을 열고 배달 음식을 받아 가지 않았던 고객이 옆 테이블에 놓인 쪽지에 글을 써서 보여준다. 자신은 청각 장애인이라고... 그때야 혜민은 배달 음식을 왜 받아 가지 않았는지 이해가 갔다. 혜민도, 카페 사장도 그가 청각 장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전혀 못 했던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 다양한 존재들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협소한 존재의 규정은 너무나 쉽게 다른 존재들을 지워버린다. 영화 ‘질주’는 이 점을 가로질러 편견이 가득한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 장면 중에 다소 아쉬움도 있었다. 첫 장면에서 활동지원사로 나오는 분이 혜민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쏟아내는 모습이 나온다. 극적인 요소를 갖추기 위해 자극적인 대사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정부의 탈시설 반대 정책들로 인해 부정적인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지역사회 내 서비스조차 인권침해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거 같아서 우려스럽다. 또한 청각 장애인 고객이 의사소통 어려움으로 배달 음식을 받지 못하는 장면에서 충분히 배달 온 사람에게 본인의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청각장애를 가진 힘듦을 설명해내기 위해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능력을 과소 평가를 한 거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영화에서 장애인의 장애를 표현하고 어려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그 장애가 가진 취약성이 강조될 때가 있다. 나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상 매체에서 장애를 설명하고 드러내고자 할 때 비장애인을 이해시키기 위한 장치(취약성만 강조되는)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다. 이 점에 대한 고민이 확장되었으면 좋겠다.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조금 다른 장면으로 담아내기 위한 노력이 많은 영화에서 보고 싶다.




제작진 소개


연출임지혜기획가온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제작온플릭스각본임지혜
촬영임지혜편집임지혜
녹음고재경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