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거짓말 | 2023 | 극 | 00:38:13 | 연출 양준서 | 제작 지오필름
시놉시스
이봄이라는 인물이 물을 마시기 위해 힘겹게 정수기를 향해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봄'이라는 인물은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또한, '공단직원'만 만나면 많이 유독 떨린다. 센터에서 자조모임을 가지던 이봄은 거짓말을 너무나도 잘하는 '벌구'를 보며 자신이 필요한 '활동지원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거짓말을 비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알려주려던 벌구도 남은 기간을 보며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깨닫고, 단기속성 '일타강사'를 소개 시켜준다. '일타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이봄은 어느정도의 거짓말을 해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드디어 D-DAY가 되었다. 공단직원과 마주하는 그날... 과연 이봄은 거짓말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인권평
‘할 수 있음’과 ‘하고 싶음’의 거리
거짓말(양준서)
-이정한(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 2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위원)
3년에 한 번씩 받아야 하는 서비스지원종합조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봄. 그는 뇌병변 장애인으로 혼자서 물을 마실 수 없다. 정수기를 향해 땀을 뻘뻘 흘리며 기어가 보지만 결국 활동지원사가 물을 떠다 주고서야 마실 수 있다.
봄이 활동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회원들과 마피아 게임을 하는데, 권일은 목숨이라도 건듯이 거짓말을 열정적으로, 또 능수능란하게 한다. 모두를 속여 게임에서 이기자 어떻게 거짓말을 그리 잘하는지 다들 궁금하다. 권일의 거짓말에 특히 큰 감명을 받은 봄은 권일과 따로 만나 ‘거짓말 잘하는 법’을 배워 가며, 바로 이 거짓말을 감쪽같이 해내야 활동지원 시간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생리를 배운다.
며칠 남지 않은 종합조사, 특훈을 위해 ‘일타 강사’ 태민의 강의가 시작된다. 태민의 가르침은 명료하다: ‘할 수 있어도 못 한다고 한다.’ 활동지원 시간을 많이 받기 위해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위해 내 신체로는 ‘할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종합조사에서 조사위원이 체크하는 항목들이 대부분 ‘할수 있느냐, 없느냐’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목욕이나 옷 갈아입기를 혼자 ‘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일상생활동작 영역, 전화기 사용이나 청소를 하는 등 혼자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수단적일상생활 영역 등.
3년 동안의 활동지원 시간을 위해 10여 분 동안 그것들을 점검한다. 1842일간의 광화문 농성을 통해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했으나 결국 ‘가짜 폐지’, 즉 제도는 바뀌었으나 이전과 철학을 같이하는 서비스지원종합조사로 인해 여전히 장애인은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받을 뿐이다. 활동지원 시간 많이 받고 싶지 않느냐는 권일의 재촉하는 물음에, 봄은 받고 싶고 필요하다 답하며 가르침에 따라 충실히 거짓말을 연습한다. 활동지원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아야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전의 날. 조사관이 방문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은 순조롭게 잘 이뤄질 것이라는 관객의 예상 속에서, 주인공 봄은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양심에 찔려서가 아니다. 봄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은 그 상황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내 일상을 살기 위해, 3년의 삶을 위해 이 기계 같은 존재에게 비참함을 연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그 자체로 비참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연기를 해야만 하는가, 왜 활동지원 시간을 받기 위해 ‘할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가.
그래서 봄은 말한다. ‘하고 싶지 않다’고. 이 말이 제도에 대한 핵심을 드러낸다. 서비스지원종합조사는 ‘하고 싶음’에 대한 조사였어야 했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하는 제도를 요구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당사자의 욕구, 즉 ‘하고 싶음’이 아니라 기능, ‘할 수 있음’의 여부를 따지면서부터 이 제도는 장애 당사자로부터 멀리 떠나갔다.
열연과 함께 영화의 주제, 제도의 문제까지 담아 내는 이 시퀀스로 결말을 매듭지었으면 어땠을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바꿔 낼 수 없는 조사관 한 명의 회심 혹은 반성 정도, 그리고 어쩌면 시혜적인 조사 결과를 내놓음으로써 이 제도의 ‘숨 구멍’을 마련하고야 말았다. 우리가 만나는 서비스지원종합조사는 현실에서 더욱 가혹하고 비참하다.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를 ‘진짜 폐지’로 만들어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조사관이 양심적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받을 수도 있다’는 가짜 가능성을 만들지는 않았는가?
이러한 한편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당사자에게 주어진 한정적 선택지, ‘꼼수’를 통하지 않고는 ‘권리’를 쟁취하기 어려운 현실을 잘 그려 내고 있으며, 양준서는 역시 양준서답게 연출과 음악, 카메라와 호흡까지 섬세하게 다뤄 내고 있다. 이러한 섬세함을 고려한다면 봄의 조사관은 한 명의 개인이 아닌, 한국사회의 변화 가능성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너무도 단단해 보였던 저 제도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빈틈투성이다. 그러므로 이 제도는 작디작은 임기응변으로만 시혜를 베풀 뿐이다.
제작진 소개
연출 | 양준서 | 기획 | |
제작 | 지오필름 | 각본 | 추주식 |
촬영 | 최세웅, 양준서 | 편집 | 양준서 |
녹음 | 추주식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