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하네

희한하네 | 2021 | 브이로그 | 00:08:00 | 연출 정창영 | 기획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 제작 정창영



 

시놉시스


선화(주인공)씨는 요즘 장애인 체험홈에서 자립을 준비하고 있다. 오랜 시간 집 안에만 머물러 있던 선화 씨에게 자립과 독립은 남의 일로만 여겨졌지만 본인의 강력한 의지와 주변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자립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 금강유원지로 나들이를 갈 생각이다.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고, 타고, 이동하고, 금강휴게소에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_너무나 평범한 일상_ 속에서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출발도 하기 전에 사건은 전혀 예기치 못한 엉뚱한 상황으로 바뀌어 버렸다.




인권평


<옥천 장애인이 보여주는 서울 장애인 지하철 투쟁의 이유>
영화 <희한하네>, 앙코르작 <육지의 섬>, <우리는 원숭이가 아니다>, <길 위의 세상>
-하민지 비마이너 기자,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20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위원

서울 지역 장애인들은 요즘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2021년 12월부터 출근길 지하철 타기 투쟁을 진행해 비장애인 승객의 발을 묶었기 때문이다. 언론의 취재도 뜨겁다. 비마이너 10년차 기자인 강혜민 편집장은 장애인이 겪는 문제를 언론이 이렇게 열띠게 보도하는 건 처음 본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점거하며 투쟁한 지는 21년이 됐다. 비장애인 승객이 불편하다고 성화를 내니 언론은 이제야 앞 다퉈 보도한다.

갖은 욕을 먹어가며 출근길 지하철에 타는 이유는 기획재정부 때문이다. 끈질긴 투쟁 끝에 2021년 12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지역마다 천차만별인 장애인콜택시 운영 기준을 통일할 수 있게 (광역)이동지원센터를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국가가 예산을 투입한다고 개정안 원안에 명시돼 있었는데, 통과될 때는 이 부분이 삭제됐다. 기재부가 돈 없다고 반대했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장애인 복지에 돈을 쓰기 싫은 건 아닐까. 2021년, 한국의 장애인 복지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0.6%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평균 장애인 복지 예산은 국내총생산의 1.9%다. 한국은 세계 상위권 경제 대국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장애인 복지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평균의 절반도 안 쓰고 있다.

장콜 운영에 국비가 투입되는 게 ‘하여야 한다’는 의무조항에서 ‘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바뀐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장애인이 원할 때 언제든 장콜을 타고 시군구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길은 불투명해졌다. 국비 투입이 무산되면 결국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감당해야 하고, 그러면 장콜 운영은 또 지자체마다 따로 놀게 될 수 있다.

2022년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상영작 <희한하네>의 공간적 배경인 충청북도 옥천군은 장콜 운영이 너무나 열악한 곳 중 하나다.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하루 전날 예약해야 한다. 점심시간엔 운영하지 않는다. 야간운행은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인데 이때는 장콜이 1대밖에 다니지 않는다. 옥천군 관내만 운행해서 인접 지역이 아무리 가까워도 옥천 장콜을 타고는 갈 수 없다.

옥천군은 충북지체장애인협회 옥천군지회라는 민간단체에 장콜 운영을 위탁하고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희한하네>에 등장하는 이선화 씨와 그의 동료들은 장콜을 타고 금강휴게소로 나들이를 가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장콜 운전원이 규정에 없는 이용기준을 내밀며 동승자 탑승을 거부한 탓이다. 여행 브이로그로 계획한 영화는 이 지점부터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 바뀐다. 선화 씨와 동료들은 그 길로 옥천군청에 민원을 넣으러 간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사태 파악도 잘 못한다.

<희한하네>는 인구 5만의 작은 지역인 옥천군 장애인 이동권 현실을 잘 보여준다. 기재부가 예산 편성 책임을 방기한 탓에 장애인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잘 드러나 있다. 상영시간은 8분으로 짧지만 서울 지역 장애인들이 왜 아침마다 지하철에 타며 투쟁하는지, 이 영화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장콜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전국의 장애인을 잇는다. 올해 상영작으로 선정한 이유다.

또한 <희한하네>의 카메라는 선화 씨와 그에게 연대하는 동료들로 구성된 공동체 내부를 한 번도 떠나지 않는다. 카메라를 잡고 촬영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사람, 즉 작품을 끌고 가는 화자도 선화 씨의 동료이자 옥천군의 열악한 장애인 이동권 현실을 고발하는 주체다. 공동체 내부에서 연대의 힘으로 서로를 지원하고 지지하며, 차별에 저항하는 모습이 잘 담겨 있다. 관객도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공동체 내부에서 연대의 힘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함께 볼 앙코르 작품으로 <우리는 원숭이가 아니다>(2011), <육지의 섬>(2016), <길 위의 세상>(2020)을 선정했다. 세 작품 모두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원숭이가 아니다>에는 ‘살인기계’라 불리는 지하철 리프트 위 장애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리프트에 타서 비장애인을 바라보는 장애인의 시점 샷이 등장한다. 관객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매라 앵글을 통해 리프트가 얼마나 위험한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비장애인 수백 명이 계단을 오가는 동안 세월아 네월아 올라가는 리프트를 보면 장애인이 왜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투쟁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리프트를 오르는 장애인을 동물원 안의 동물처럼 쳐다보는 비장애인의 따가운 시선을 볼 수 있다. 동물은 자유를 박탈당한 채 동물원에 전시돼 ‘존재노동’을 한다. 장애인 또한 그와 같은 취급을 당하는 현실이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육지의 섬>은 일종의 로드무비다. 주인공 이미숙 씨는 시험을 보기 위해 거주지인 속초시에서 강릉시로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장애인콜택시 예약, 고속버스 탑승에 모두 실패했다. 이동수단이 없지만 시험은 봐야 했기에 전동휠체어를 타고 강릉시까지 가기로 한다. <육지의 섬> 또한 시점 샷을 활용해 휠체어 이용자가 이동할 때 위험 요소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준다. 울퉁불퉁한 도로, 인도에 불법주차된 자동차들, 좁은 인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전봇대 등 때문에 미숙 씨는 결국 위험한 차도로 지나갈 수밖에 없다. 육지에 살지만 섬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장애인의 상황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수작이다.

<길 위의 세상>은 강원 지역 장애인 당사자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영화다. 이들은 투쟁 끝에 저상버스와 장애인콜택시 등을 도입했다. 그러나 탑승의 기쁨은 잠깐이었다. 장애인이 버스장류장에 있는데도 리프트를 내리지 않고 지나가는 저상버스, 리프트를 내리고 장애인이 타는 동안 버스 출발이 늦어지는 것에 불만을 표하는 비장애인 승객의 따가운 시선 등을 견뎌야 했다. “장애인은 왜 한 지역에서만 살아야 하나”,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면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구분조차 사라질 것”이라는 생생한 당사자 증언만큼 현실을 잘 보여주는 말은 없다.

올해 상영작 <희한하네>와 앙코르작 세 편을 통해 전국의 장애인들이 연결돼 이동권 보장을 함께 외치고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제작진 소개


연출정창영기획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제작정창영각본정창영
촬영정창영편집정창영
녹음정창영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