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어

네가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어 | 2020 | 다큐 | 00:15:00 | 연출 박준형 | 기획 CBS씨리얼 | 제작 박준형



 

시놉시스


“혹시, 원형 씨가 원하는 퇴소인가요?” “네!”

어느 겨울, 20여 년간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에서 살았던 원형 씨(23)와 석원 씨(24)가 ‘탈시설’을 했다. 본인의 명의로 집을 계약하고, 전입신고도 했다. 시설 밖 자립은 쉽지 않다. 예산을 정해서 장을 봐야하고, 직접 요리해서 밥도 먹어야 하고, 변기가 말썽이면 고쳐야 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챙길 수 있는 세상은 이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다. 어느 날, 석원 씨는 원형 씨에게 집들이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기획의도


대한민국의 장애인들은 모두 숨어있다. 전체 인구의 5%. 거기에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3만여 명, 그룹홈, 노숙인 시설, 정신요양 시설 등 집계되지 않는 숫자까지 포함하면 우리 곁의 장애인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버스에서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숨어있는 장애인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비장애인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프리웰 김정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증 발달장애인들을 보면서, 의사표현이 어렵고 예, 아니오를 말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들이 감정을 안 느낀다고 생각해요.”

이런 현실 속에서, 어떤 장애인들은 죽을 때까지 ‘시설’에 살기도 한다. 태어나자마자 시설로 보내져 꽁꽁 숨겨진다. 집단생활 속 반복되는 일과를 부여 받는다. 입고 싶은 옷을 직접 고르는 즐거움은 잘 모른다. 애초 사회의 시선 때문에 숨겨졌다가, 이들을 ‘보호’하는 울타리 속에서 점점 더 외부와 단절된다. 시설 속 장애인들에게 만약 시설 밖에서 살 수 있다는 선택지가 생긴다면, 이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니, 어떤 삶을 선택할까?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흐름은 느리지만 분명히 가시화되고 있다. 시설 안 장애인 3만 명이 모두 탈시설을 해 바깥으로 나온다면, 한국은 어떻게 바뀔까 궁금해졌다. 그 질문을 비장애인들에게도 던져보고자, 작품에 등장한 발달장애인 두 청년을 만났다. 이들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모습과 생각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간단히 부숴버린다. 뮤지컬을 좋아하고, 저녁 식사 전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소고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시설 안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길 바라고 있다. 어설프고 사건·사고도 많이 일어나는 일상이지만, 누구인들 겪음직한 하루하루다. 본인의 욕구로 시작되는 하루를 보여주며, 영상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나와 다르지 않은 두 사람이 매일 좀더 잘 살아가기를 마음 모아 응원하게 만들고자 기획했다.

길 위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탈시설한 장애인들을 항상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식당 옆자리에선 먹고 싶은 메뉴를 고민하며 고르는 장애인들을 쉽게 만나길 바란다. 장애인 학교, 장애인 시설에 대한 혐오감도 채 극복하지 못한 미약한 환경이지만, 머지 않은 날 ‘네가 내 옆집 사는 이웃이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오고갈 공간을 만들어두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특히 이 작품은 유튜브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해, 보다 젊은 연령층에 소구될 수 있는 영상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작품 속 두 사람과 같은 나이대인 2030 세대가 공감하길 바랐다. 우리 사이의 단절을 좁혀나갈 기회를 아직 젊은 우리가 더 깊이, 더 오래 고민하길 바라며.




인권평


네가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어
-유지영 | 1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위원

“혹시 원형 씨가 원하는 퇴소인가요?” “네! 제가 원해서 하는 겁니다!” 20여 년간 발달장애인 시설에서 살다가 ‘탈(脫)시설’을 앞두고 진행된 퇴소식에서 원형 씨는 당당하게 “제가 원해서 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이내 쑥스럽게 웃는다. 모든 게 처음이다. 이사를 하면서 책상과 침대를 나른다. 집을 계약하고, 전입신고를 한다. 전입 사유를 적으라는 주민센터 직원의 말에 어리둥절한 원형 씨. “이거 사유를 뭐라고 체크해요?” 원형 씨의 ‘탈시설’은 여느 성인들의 첫 자취 경험처럼 설렘이 묻어난다.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해서 밥상을 차리는 것도 물론 필수다. 아참, 소고기가 비싸서 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마저 공감의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비단 원형 씨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모든 이들의 ‘홀로서기’가 그렇듯 원형 씨는 온전히 혼자서 설 수만은 없다. ‘네가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어’라는 다정한 제목에 걸맞게 원형 씨의 이웃집에는 그와 같은 시설에서 살던 동료들도 이사를 온다. 원형 씨의 집에는 그의 탈시설을 응원하는 이들이 드나들기 시작한다. 원형 씨는 이들을 위해 ‘집들이’를 기획하기로 한다.

영화는 원형 씨의 탈시설 이후를 비교적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다. 탈시설을 해낸 지금이 좋지만 동시에 자신이 자랐던 시설을 그리워하는 원형 씨의 양가감정이 그려지면서 다큐멘터리는 비로소 입체성을 갖게 된다. 처음 집을 구했다는 달뜬 설렘은 잦아들고 시설에서의 시간이 틈을 놓치지 않고 원형 씨를 찾아온다. 원형 씨의 탈시설은 아마 그 날부터 시작일 것이다. 우리가 이 영화의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주목해서 봐야 하는 이유다.




제작진 소개


연출박준형기획CBS 씨리얼
제작박준형각본
촬영박준형, 김미란편집박준형
녹음박준형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