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기획작



김기영의 조각들     

김기영의 조각들 | 민아영 | 다큐 | 2026 | 40분



 

시놉시스


2025년 6월 17일, 대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무연고자의 장례가 치러진다. 장례식장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고인은 1973년생 김기영, 상주는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 척결 대책위원회’. 기영 씨의 첫 기록은 1994년 6월 1일에 만들어졌다. 대구시립희망원에서 ‘1973년 6월 1일생 김기영’이라 정했다. 그는 거리 단속을 통해 시설에 입소한, 실제 이름도 생년월일도 알 수 없는 신원 미상의 장애인이었다. 누렇게 때가 탄 옷을 입고 온몸에 검게 멍이 든 채 발견된 그는 사라진 20년의 시간에 이어, 26년간 희망원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2019년 3월 27일, 긴 시설 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탈시설한다. 이삿짐은 단 하나의 박스뿐이었다. 자립생활주택에서 1년 6개월간의 삶을 시작하지만, 첫 건강검진에서 위암이 발견되고 치료 이후 폐렴이 이어지며 다시 요양병원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4년을 보낸 뒤, 그는 생을 마감한다.


이 영화는 시설에서 함께 살았던 거주인들, 그를 돌봤던 시설 직원들, 탈시설 이후 자립생활을 함께했던 지원자들의 구술을 통해 김기영의 삶을 더듬는다. 중증의 장애가 있고 언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작고 왜소한 몸, 그러나 유난히 큰 눈망울을 가진 사람 김기영.


혹독하게 홀로였던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며, 김기영과 함께했던 이들의 일상과 기억을 통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기록한다.

 



인권평

- 서한영교(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시퍼런 여자, 왜소한 장애인, 그리고 삔

-20년, 시퍼런 여자, 부랑인

신원미상의 왜소한 여자가 대구 거리에 놓여있었다, 는 조각 하나. 1994년 경찰 단속에 의해 ‘부랑인’으로 이름 붙여져, 대구시립희망원에 수용되었다, 는 조각 둘. 수용 당시 여자는 “(엉덩이가) 시퍼렇고 등 뒤에 (멍으로)시퍼렇고, 다리도 (멍으로) 시퍼렇”게 짓이겨져 있었다, 는 조각 셋. 시퍼런 여자는 무려 이름이 있었다. 1973년생 김기영. 영화는 김기영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말 조각들을 모아 시작한다.

 

-25년, 왜소한 여자, 장애인

희망원 내에 장애인거주시설이 설립되면서, “희망원에서 제일 힘든 얘들”을 한꺼번에 ‘장애인’으로 이름 붙여 몰아넣었다, 는 조각 하나. “여기 가서 때리고 저기 가서 때리고 고함을 지르고 그래 뭐, 조용할 날 없”는 시퍼런 폭력의 시간이었다, 는 조각 둘. “우리 기영이는 많이 맞았다. 질질질, 개 끌듯이 끌고 가서” 많이 맞았다, 는 조각 셋.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목소리를 시설 밖으로 내보기 위해서 였을까? 김기영씨가 “잠을 자지 않고 벽에 머리를 부딪친다거나, 소리를 지르면서 우신다거나” 했던 것은? 그렇게 온 몸으로 시설 벽을 조금씩 허물어트린 걸까? 영화는 우리에게 직접 질문하는 대신, 직접 질문의 조각을 맞출 수 있게 한다. 의미를 간단히 봉쇄시키지 않고, 조각난 의미의 여백을 관객에게 넘겨주며 영화는 전진한다.

 

-1년 6개월, 깔깔깔 희망인, 김기영

2016년, 내부 고발을 통해 희망원 내 거주인에 대한 참혹한 인권유린이 드러났다. 시설 밖 투쟁이 시작되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존엄함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문제에 “아니면 말고라는 게 없”는 탈시설 투쟁을 통해 김기영씨와 동료들은 대구시 최초로 ‘희망인’이라고 불리며 지역사회로 나왔다. 신원미상 김기영, 부랑자 김기영, 무연고 김기영, 시퍼렇게 멍든 여자 김기영, 왜소한 여자 김기영, 장애인 김기영으로 산산조각난 희망인 김기영을 “상자 하나”에 모두 담아 지역사회로 나오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이 부분에 삽화가 들어와 있다. 자립생활을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동료들과 근처 마트에서 산 머리 “삔”을 서로의 머리에 달고 너무 좋아 그만 깔깔깔, 웃는 장면. 감독은 왜? 어떻게 해서든 이 장면을 드러내고 싶었던 걸까? 희망원에서 탈시설해 ‘희망인’으로 불려졌던 김기영씨가 만난 희망이란 어쩌면 사소하고, 작고, 왜소하고, 반짝거리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산산조각나있던 김기영씨와 지역사회를 묶으며 희망인 김기영씨를 살아가게 하는 희망의 반짝거림을 드러내고 싶었던 걸까?

영화는 자꾸 관객에서 저마다의 질문을 조직하게 한다. 그것은 한결같이 김기영에 “관해 말하기”가 아니라 그 김기영씨의 “곁에서 말하기”라는 방식을 택한다. 자료와 기록으로 잘 남아있는 않는 김기영씨 ‘곁’을 맴도는 목소리와 사물들의 조각을 담아낸다. 감독이 영화의 구성을 지배하는 선형적 방식을 벗어나, 권위자의 위치를 벗어나, 그저 그 ‘곁에서 말하기’를 끝까지 고집하며 영화는 끝을 향한다.

 

-4년, 응급환자 김기영

인생 전체가 응급상황이었고, 비상사태였던, 김기영씨가 자립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위암판정을 받고 위를 절제하였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급성 폐렴에서 패혈증으로 진행되면서 4년간 투병하다 응급이 생을 마감했다. 김기영씨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자립생활을 지원했던 활동가의 추모편지 낭독을 길게 길게 길게 기록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우리 모두는 관객이면서, 동시에 목격자이고 증언자로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의 윤리와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겸손한 목격자 민아영 감독이 “꾸역꾸역 손가락 하나를 건네는” 그 자리, “조금씩 기대며 세상과 우리와 적응하며 사는 삶의 관계”의 자리, 아무도 기억하려 들지 않는 죽음들이 “잊혀질까 두려”워 카메라를 드는 자리, “그저 당신답고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셨으면 합니다”하고 기원하는 그 자리, 이 영화는 우리에게 그 자리로 초대하고 있다.

 



제작진 소개


연출
민아영
기획
민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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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TV
각본
민아영
촬영
민아영
편집
민아영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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