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선정작
말을 걸다 鬼
말을 걸다 鬼 | 이승환 | 극 | 2025 | 17분 44초
시놉시스
한 장애인이 휠체어에서 생활하던 중, 가족과 사회, 제도의 방치 속에서 착취당하고 학대당한 끝에, 필사적으로 모아둔 자신의 수급비마저 사기당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는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로 건물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고 이후 그 건물에서 ‘휠체어 귀신’이 출몰한다는 괴소문이 퍼진다. 그리고 경비원도 입주기업도 나가 버린다. 건물주는 귀신도 돈을 내야 입주시키는 사람이다. 펄펄 뛴다.
괴소문을 듣고 가장 먼저 나타난 건 유튜버다. 그러나 그는 방송도 못하고 귀신의 정체에 접근하지도 못한 채, 공포로 도주한다. 그 후, 건물주는 경찰, 무속인을 불러 귀신을 퇴치하려 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그 귀는 일반 귀신이 아니었다. 장애라는 정체성과 함께한 귀, 우리 사회에서 말할 수 없고 들리지 않던 존재가 공포와 함께 나타났다. 그제야 장애를 지닌 무당이 등장하고, 귀의 말을 이해한다. 이 귀는 단지 한 개인의 원혼이 아니다. 가난과 혐오, 행정 폭력, 제도의 사각에서 죽어간 이들의 집단적 기억이자 분노였다. 점점 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질 수 있다. 장애인 무당은 귀의 생전 시절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장애인복지센터를 찾는다. 그곳에서 귀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된다. 슬픔과 분노··· 센터소장과 무당은 장애 귀를 달래며 봉인한다. 그리고 무당은 사회적 기업 대표이자 건물주 아내(장애귀를 사기친 사회적기업대표)의 집 앞에서 마지막 의식을 펼친다. 이제 귀는, 스스로의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인권평
- 이정한(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세상에, 귀신이 나온대"
어느 상가, 경비원은 도망가고 세입자는 계약을 해지하고 떠난다.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 때문이다. 각시귀신도 몽달귀신도 아닌 휠체어 귀신이. 건물주는 어떤 놈이 장난을 치고 있는 거라며 푸념한다. 그는 삐뚤게 놓인 소화기를 바로 세운다. 조회수를 높이려는 유튜버도 오고 건물에 숨어 있는 사람은 없는지 순찰하는 경찰관도 오지만 괴이하게 놓인 휠체어를 보며 도망친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보다 단지 대중적 가십으로 소비하려는 이도, 공권력이라 자처하며 자본가의 심부름꾼이 된 이도 귀신을 쫓기는커녕 되려 자신이 쫓겨난다. 결국 건물주는 박수무당을 고용한다. 귀신의 존재보다 세입자의 무존재가 더 무서운 법, 건물주는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아껴 가며 무당을 고용한다. 용한 그 무당의 진단은 '장애귀'다. 그 장애귀의 사연은 이렇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학대받던 장애 소년은 가출한 뒤 지역을 옮겨 독립한다. 홀로 살기 위해 사회적기업에 취업했지만 그 기업은 취약한 장애인들의 수급비를 노린 사기 집단이었고, 결국 적은 재산조차 사기 집단에게 빼앗긴 장애 소년은 좌절 속에 투신해 자살하고 장애귀가 되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장애귀의 사연, 우리의 사연
무당은 귀신을 진단하고는 그 건물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상담한다. 그것은 귀신의 사연을 이해하고자 했기 때문이겠다. 그 장애귀의 사연을 깨달은 무당과 센터장은 함께 위령의 굿을 진행한다. 차별과 박해 속에 살다 요절한 장애인의 한을 풀기 위해 분투하지만, 무당은 곧 의식을 잃는다. 그러나 그 위급한 상황 속에서 센터장은 힘겹게 기어가 휠체어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너의 분노와 슬픔은 우리의 것이야. 우리가 풀어 줄게." 센터장의 진심 어린 마음 덕이었을까, 장애귀를 위로하는 데 성공한 듯 더는 건물에 귀신이 나타나지 않는다. 매일같이 건물에 등장해 무작위로 사람을 괴롭히던 장애귀는, 그 연대의 접촉으로 사라진다. 아니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으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모두 평화를 되찾은 것 같은 날, 곧게 서 있는 소화기를 다시 만지며 건물주는 이제 다시 돈을 벌 수 있겠다며 만족한 웃음을 터트린다.
복수의 대상?
돈만 아는 건물주의 집일지 학대 가해 원가정의 집일지 모를 현관 앞에서 박수무당이 장애귀의 '해방'을 선언하니 다음날 그 집에서 어떤 복수의 사고가 일어나고,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장애인의 차별에 대한 응징, 그리고 복수. 그 복수는 건물주였을지 원가정의 집이었을지, 혹은 누군가의 집일지 모르는 곳에서 이뤄졌다. 어딘지 모른다는 점에서 이 복수는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 벌어진 사적 차별에 대한 사적 복수가 아니다. 장애귀가 겪었던 일들을 보자. 친족 가정의 학대, 자립의 시도, 장애인을 노린 '사회적 기업'의 사기, 죽음 이후에조차 놓일 곳 없는 무연고, 공적 공간에서의 거부⋯. 이것은 어떤 개인의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여전히 300만 한국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평범한 사건들이다. 자립을 가로막는 것은 구조의 문제인 동시에 그 구조에 복무하고 있는 이들 때문이 아닌가? "월세 안 내는 귀신 때문에 식겁했다"는 건물주의 말처럼, 탄압과 차별은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이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다. 그렇게 이 영화는 폭력과 차별 구조 속에 위치한 주변인들에게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말을 걸다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장애인이라는 유령이. 자본(건물주)과 공권력(순찰관) 앞에, 공익이라 내세우며 장애인을 배반하는 사회적 기업과 가면을 쓴 채 가십 거리로 격하시키려는 유튜버들 앞에, '귀신'이 출몰하고 있다. 공용 화장실에서, 계단에 걸린 채로, 텅 빈 복도에 등장하는 휠체어는 그 자체로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에 대한 함의를 전하고 있다. 그저 거주시설에, 그저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했던 존재였기 때문에 공적 공간에 출몰하는 자체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장애인들은 '귀신'이라도 된 양 취급받고 있다. 그러나 그 장애귀는 (‘복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 누구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았고 단지 '등장'했을 뿐이다. 귀신의 출몰에 자본과 권력과 제도는 질서의 혼란을 두려워하지만, 비문명적인 무당과 무능력하다고 여겨진 중증장애인만이 진실을 알아본다.
그래서 영화는 '말을 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희망을 보고 찾아온 이 지역사회, '너'와 '나'의 사적 관계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너의 차별'을 '나의 일'로 더 함께하지 못했음에 동료 장애인은 자책한다. 영화는 우리가 함께 투쟁해야 함을, 연대의 가치가 더 끈끈하게 형성되어야 함을 분명하게 말한다. 주변인의 상반된 반응을 통해 말 건네기에 어떤 응답을 해야 할지, 우리는 반대로 어떤 말을 걸어야 할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영화는 두 개의 '말 걸기'를 다루고 있다. 하나는 상상 못 한 존재가 공적 공간에 출현하며 전하는 투박한 말 걸기 행위다. 허용되지 않던 공간에 등장하여 다급하게 촉구하는 이들의 말 걸기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 다급하고 투박한 등장에 반응하는 말 걸기다. 등장이 야기한 현장의 혼란이 아니라, 그 존재가 가진 서사의 혼란에 직면하는 연대의 말 걸기의 필요를 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말 걸기'란 취조가 아닌 경청이며, 경청한 이의 동참을 제안하고 있는 셈이다. 투박하고 낯선 문법의 시도와 도전 이후를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시도가 관계성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적 공간에 등장하는 투쟁이라는 그 시도 이후, 우리는 어떤 응답을 할 수 있을까. 뻔한 말로 다시 묻자면, 그렇다면 지금 한국사회는 지하철 승강장과 버스 앞에 들어서는 장애인들의 출몰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제작진 소개
| 연출 | 이승환 | 기획 | 세종보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
| 제작 | 세종보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 각본 | 이승환 |
| 촬영 | 이승환 | 편집 | 이승환 |
| 녹음 | 이승환 | 기타 | PD 이정숙, 이승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