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선정작
<천사와 드라이브>

천사와 드라이브 | 2024 | 29’ | 다큐 | 김로사
시놉시스
로사의 아버지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으로, 손재주를 타고났지만 재능을 펼칠 기회가 적었다, 그가 가족을 향한 사랑과 희생을 표현하는 방식은 드라이브였다. 어느 날, 그에게 또 다른 불치병이 찾아온다. 그의 불건강을 지켜보며 로사는 숨 가쁜 꿈을 꾼다. 언젠가 다시 아버지와 드라이브를 할 수 있을까.
인권평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소중하고 평범한 꿈에 대하여
-이정한 (23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
딸 '로사'의 나지막한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로사는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며 그의 삶을 차분히 전한다. 유년 시절, 청년의 기억, 실업과 장애로 이어진 삶의 여정을 로사는 담담히 읽어 내려가듯 말한다. 아버지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가장' 중 하나였다. 경제난 속에 실업자가 되었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내를 조수석에, 세 아이를 뒷자리에 태우고 함께 드라이브를 떠나는 것, 그것은 평범한 가장들의 평범한 소망이지만, 장애와 실직이라는 이중의 벽 앞에서 그 꿈은 멀어져 간다.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무엇에 의해서든, 우리는 오래간 무의식적으로 평범함을 구축해 왔다. 정상성, 혹은 평범성은 한국사회에서 비장애인중심의 사회로 건축되어 왔다. 가부장제 속에서 생계를 책임지는 아버지, 가족 구성원의 살림과 지지를 감당하는 어머니, 그리고 그런 부모에 대해 존중의 마음을 갖는 자녀. 이 평범한 정상가족의 형태가 우리 사회의 대를 이어 오고 있다. 비장애인으로서 생애주기를 거치며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도시 사회에서 벗어나 시골에서 안락함을 꿈꾸는 것은 인간 사회의 평범한 정상의 모습으로 상정되어 왔다. 많은 경우 그 평범한 모습을 꿈꾸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경쟁의 과정을 견뎌 내고 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욕망, 사랑하는 가족과 안락한 미래를 꿈꾸는 것은 누군가에겐 허황된 소망인 동시에 불가능한 시련으로 놓이고 만다. 로사 가족의 이야기는 그 평범한 정상에의 욕망이 어떻게 탈락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그린다.
장애인 아버지를 둔 가족이 겪는 ‘평범한’ 일상은 비범한 인내와 돌봄의 연속이다. 로사의 시점에서 그려지는 이 영화는 그런 일상의 무게를 단조롭게 전하기에, 우리는 이 ‘뻔한’ 일상에서 어떤 고유함을 찾을 수 있는지 묻게 된다. 아버지를 위해 밥을 차리고, 말벗이 되어 주며, 함께 시간을 나누는 일은 ‘딸’이 수행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그 부조리한 사회를 그리거나, 그에 분투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보편적이고, 정상적이고, 평범하다고 여겨져 왔던 그 형상이 사실 환상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사례가 된다. 아버지는 장애와 중증 호흡기 질환으로 인해 위태로운 삶의 시간들을 보낸다.
평범한 일상 안에 스며든 희망과 사랑의 조각들을 소중히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는 걷지 못하고, 호흡기 장애로 인해 인공호흡기를 달고 살아가지만 영화는 그 고통에 집중하지 않는다. 고통의 외침 대신 반복되는 호흡기 소리와, 아이처럼 들뜬 아버지의 표정이 이 영화의 톤을 만들어 간다.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배제하고 있는지 찾는 대신, 그런 배제 속에서도 가족이 어떻게 희망을 꺼내 들고 살아가는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영화 속 아버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노트북을 다루며 전동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차량을 찾아본다. 그 계획은 구체적이고 조심스럽다. 로사는 그 계획을 응원하면서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버지는 중증 COPD 환자이며, 발병 후 60개월 이내 사망률이 40%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미 7년째 살아가는 그는 다행히 60%에 해당하지만, 반반의 확률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위태로운 불안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사망위험군이라는 진단 결과를 로사는 아버지에게 전하지 못한다. 나아질 거라는 아버지의, 혹은 자신의 희망을 꺾고 싶지 않기에, 차차 나아지리라, 산소호흡기를 뗄 수 있노라 말한다. 눈물을 삼키며 전하는 이 소망이 로사의 가족을 여전히 희망차게 만든다.
이 가족에게 비극은 없다.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감행하는 아버지, 함께 집터를 보러 가고 중고차를 찾으며 소소한 웃음을 나누는 가족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적 장치보다 진실하다. <천사와 드라이브>에는 불쌍한 장애인이나 근엄한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다. 거대한 투쟁이나 슬픔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지켜내는 사람들이다. 차별과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자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도, 그들은 생의 매 순간을 평화롭게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휠체어에 몸을 실은 아버지의 드라이브는 그저 상상 속의 장면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여정인지도 모른다.
산소호흡기의 바람 소리와 기계음이 영화의 마지막을 채운다. 그러나 그 소리는 죽음의 전조가 아니라 삶이 지속되고 있다는 증거다. <천사와 드라이브>는 그래서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야말로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기록이 아닐까?
제작진 소개
연출 | 김로사 | 기획 | 김로사 |
제작 | 김로사 | 각본 | 김로사 |
촬영 | 김로사 | 편집 | 김로사 |
녹음 | 김로사 | 기타 |